낙통(駱統)은 공서(公緒)이고 회계군(會稽) 오상(烏傷) 사람이다. 부친 낙준(俊)은 관직이 진군(陳)의 상(相)까지 이르렀지만, 원술(袁術)에게 살해되었다.


謝承後漢書曰:俊字孝遠,有文武才幹,少為郡吏,察孝廉,補尚書郎,擢拜陳相。值袁術僭號,兄弟忿爭,天下鼎沸,羣賊並起,陳與比界,姧慝四布,俊厲威武,保疆境,賊不敢犯。養濟百姓,災害不生,歲獲豐稔。後術軍衆饑困,就俊求糧。俊疾惡術,初不應荅。術怒,密使人殺俊。


사승(謝承)의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길:낙준(駱俊)의 자는 효원(孝遠)이고 문무의 재능이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군의 관리가 되었다가 효렴으로 추천되어 상서랑에 보해지고 진상에 임명되었다. 원술이 제호를 참칭하는데 당하여 원씨 형제가 서로 싸우고 천하가 들끓어 군적이 더불어 봉기하였다. 진은 경계를 바로 옆으로 하였는데 낙준은 무위를 엄하게 하여 경역을 보호하고 도적들이 감히 범할 수 없도록 하였다. 백성들을 휴양시키고 재해가 발생하지 않아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이후에 원술의 군중이 기아에 허덕이므로 낙준에게 가서 군량을 구하였다. 낙준은 원술을 미워하여 처음부터 응답하지 않았다. 원술은 노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낙준을 죽였다. 


낙통의 어머니는 개가하여 화흠(華歆)의 첩이 되었다. 그 당시 낙통은 8세였는데, 부친의 식객이었던 자와 함께 회계군(會稽)으로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전송할 때, 낙통은 하직 인사를 하고 수레에 오른 후 앞으로 향한 채 돌아보지 않았다. 수레를 모는 자가 이렇게 말했다.

“부인께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낙통이 말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더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돌아보지 않을 뿐이오.”

그는 적모(適母)를 매우 공경스럽게 섬겼다. 당시 기황이 들어 고향이나 먼 곳의 식객들 대부분이 공궁하고 궁핌했는데, 낙통은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줄였다. 그의 누이는 인자하고 사랑스러우며 품행이 훌륭했으나, 과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있었고 자식은 없었다. 그녀는 낙통이 매우 슬퍼하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여러 번 물었다. 낙통이 말했다.

“사대부(士大夫)들은 지게미조차 먹을 수 없는데, 나는 어찌하여 혼자만 배부르려고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누이가 말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무엇 때문에 나에게 말하지 않고 스스로 이처럼 괴로워 했는가?”

그리고 자신의 식량을 낙통에게 주고, 또 이 일을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 역시 낙통이 어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이로부터 그의 명성은 알려지게 되었다.

손권(孫權)이 장군의 신분으로 회계태수(會稽太守)를 겸임했을 때, 낙통은 20세로 시험적으로 오정(烏程)의 상(相)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그곳의 백성들은 1만 호를 넘었는데, 모두 그의 은혜로운 다스림에 대해 찬탄했다. 손권은 그를 칭찬하고 불러서 공조(功曹)로 임명하고 기도위(騎都尉)를 겸하도록 했으며, 종형(從兄) 손보(輔)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낙통은 손권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 만사를 통찰하는 데 뜻을 두었으므로 어떤 것을 보고 들으면 한밤중의 일을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그는 항상 손권에게 현인을 존중하고 선비를 받아들이며, 그 시대 정치의 이로움과 폐단을 열심히 탐구하도록 하고, 연회를 열고 상을 내릴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여 의견을 진언하도록 하며, 그들에게 추운지 따뜻한지를 물어 친밀한 감정을 더하여 의론을 발표하도록 하고, 그들의 취지를 관찰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은혜에 감사하고 덕을 쓰고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도록 권유했다. 손권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지방으로 나가 건충중랑장(建忠中郎將)으로 임명되었고, 무야리(武射吏) 3천 명을 통솔했다. 능통(淩統)이 세상을 떠난 후, 능통의 부대를 통솔했다.

이 시기에는 노역이 빈번하고 게다가 역병까지 유행해 민호(民戶)가 감소했다. 그래서 낙통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이 듣기로는 한 나라의 군주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는 것으로써 부강함을 삼으며, 권위와 복을 제어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고, 도덕과 인의를 빛내는 것을 영예로 삼고, 영원히 대를 잇는 것을 복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반드시 백성들의 생산에 의지해야 하고, 강성함은 백성들의 세력에 기대야 하며, 권위는 백성들의 세력에 기대야 하고, 복은 백성의 번석이세 말미암고, 덕은 백성들의 흥성함에 기대야 하며, 인의는 백성들의 실행을 통해야만 합니다. 여섯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후에야 천명에 순응하고 복을 받으며 종족을 보전하고 국가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상서(書)에서 말하기를, ‘백성에게 군주가 없으면 느슨해져 안정될 수 없고, 군주에게 백성이 없으면 사방을 개척할 수 없다.(眾非后無能胥以寧,后非眾無以辟四方)’라고 했습니다. 이로부터 추론하여 말하면, 백성은 군주로써 안정되고, 군주는 백성들로써 일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이치입니다. 지금 강대한 적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고, 사해(海內)안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삼군(三軍)에게는 다함이 없는 노역이 있고, 강가에는 풀리지 않는 준비가 있습니다. 조세 징수의 번다함은 몇 십 년에 걸쳐 내려온 것이며, 게다가 재앙과 역병 때문에 죽어 군현은 텅 비었고 들녘은 황폐해져 잡초만이 무성합니다. 제가 관찰하는 성읍의 보고를 들은 것에 의하면, 민호는 점점 줄어들고, 또 대부분 늙고 병약하여 장부는 매우 적다고 합니다. 이 보고를 들었을 때, 제 마음은 불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한 까닭을 깊이 생각하고 찾아 보았습니다. 백성들은 식견이 없고, 고향 땅을 편안히 지키며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으며, 게다가 또 앞뒤로 하여 밖으로 나가 병사가 된 자는 살아 있어도 생활이 곤궁하여 따뜻한 옷이나 배불리 먹을 것이 없고, 죽어도 해골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고향에 연연하고 먼 곳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들이 먼 곳으로 나가는 것은 죽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매번 징발이 있을 때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담이 무거운 자가 먼저 수송됩니다. 식구가 적고 돈이 있는 자는 집안의 재산을 기울여 뇌물을 행하며 가산을 전부 탕진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날래고 표독한 자는 깊은 산 속의 험한 곳으로 들어가 도적의 무리로 나아갑니다. 백성들은 허약하고 고갈되었습니다. 그들은 굶주리기 때문에 슬퍼하고, 슬프기 때문에 산업을 경영하지 않으며, 산업을 경영하지 않아 곤궁함을 불렀고, 곤궁함을 불러서 즐겁게 살지 못하는 것 입니다. 때문에 구복(口腹)이 굶주려 조급해지면 간사한 마음이 싹트고 마음을 떠나 반역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또 듣기로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생활에서 자급할 수 없는 자가 아이를 낳으면 대부분 양육하지 못하며, 둔전하는 가난한 병사들 역시 대부분 자식을 버린다고 합니다. 하늘은 그들을 낳고, 부모는 그들을 죽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으로 인해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에 반역하고 음양을 저촉할까 두렵기만 합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기업을 창업하고 국가를 세우는 것은 끝없는 공업인데, 강성한 인근 나라의 방대한 적들은 단번에 소멸시킬 수 없고, 변방의 정상적인 수비는 한 달의 임무가 아니니, 만일 병사와 백성이 계속 감소하고 후대의 자손이 양육되지 못한다면 오랜 세월 동안 견지하며 성공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무릇 나라에 백성이 있는 것은 물에 배가 있는 것과 같아 물이 멈춰 있으면 안전하지만 요동하면 위험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어리석지만 속일 수 없고, 연약하지만 제압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영명한 군주들은 그들을 중시했습니다. 국가의 화복은 백성들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에 군주는 백성들과 흥하고 쇠함을 함께 하고, 민정의 관찰을 통해 정책을 제정해야 합니다. 지금 지방 관원으로 백성들의 직무에 가까이 하는 자만이 오직 임용되어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눈앞의 조급한 일을 처리한 연후에 다시 은혜로써 다스리는 수단을 삼는 자만이 하늘이 대지를 덮는 것과 같은 폐하의 인의나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은덕에 부합하는 사람입니다. 관리의 정무와 백성들의 습속은 나날이 파괴되어 점점 쇠미해지니, 이러한 형세는 장기간 유지해 나갈 수 없습니다. 질병을 다스리는 것은 질병이 아직 악화되지 않았을 때 해야 하고, 환란을 제거하는 것은 환란이 아직 만연되지 않았을 때가 귀중합니다. 폐하께서는 다망한 정무 중에 시간을 내어 주의깊게 사색하고 성찰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원대한 계획을 깊이 도모하며, 남아있는 백성들을 양육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증식시키기를 희망합니다. 이와 같다면, 우리들의 사업은 일월과 더불어 빛나고 천지와 공존할 것입니다. 이것은 신 낙통이 가장 소원하는 것이며, 신이 죽어도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권은 낙통의 말에 감동하였고, 그의 의견을 특히 중요시했다.

낙통은 육손(陸遜)을 수행하여 의도(宜都)에서 촉나라 군대를 격파시켰으므로 편장군(偏將軍)으로 승진했다.

황무(黃武) 초년, 조인(曹仁)이 유수(濡須)를 공격했을 때, 다른 부대의 장수 상조(常雕) 등에게 중주(中洲)를 습격하도록 했는데, 낙통은 엄규(嚴圭)와 함께 이들을 대항하여 무찔렀다. 그래서 신양정후(新陽亭侯)로 봉해졌으며, 후에 유수독(濡須督)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 당시 정치에 이로운 견해를 자주 진술하였는데, 앞뒤로 수십 번 글을 올렸고, 말한 것은 모두 훌륭했다. 그에 관한 문자는 많기 때문에 전부 기재할 수는 없다. 특히 소집하는 행위가 민간에서 사악함을 조장하고 습속을 파괴시켰으며 반역할 마음을 낳게 하였으므로 시급히 이런 사람에 대한 안배를 멈춰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손권(權)과 그가 반복하여 논쟁하였는데 결국에는 그의 방법을 시행했다.

그는 향년 36세로 황무(黃武) 7년(228)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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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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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1
13:22:51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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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1
16:53:42
(*.0.203.174)
한문 주석 추가

코렐솔라

2016.05.29
17:44:54
(*.196.74.143)
낙준에 대한 주석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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