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모(陸瑁)는 자가 자장(子璋)이고 승상(丞相) 육손(遜)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정의를 중시했다. 진국(陳國)의 진융(陳融)ㆍ진류(陳留)의 복양일(濮陽逸)ㆍ패군(沛郡)의 장찬(蔣纂)ㆍ광릉(廣陵)의 원적(袁迪) 등은 모두 빈한한 집안 출신이지만 지향하는 것이 있어, 육모를 찾아와 교유했으며, 육모는 적은 물건이라도 나누어 주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迪孫曄,字思光,作獻帝春秋,云迪與張紘等俱過江,迪父綏為太傅掾,張超之討董卓,以綏領廣陵事。    


원적의 손자는 원엽(袁)으로 자가 사광(思光)이며 헌제춘추를 지었다. 말하길 원적과 장굉 등은 더불어 강을 건너 사관했으며 원적의 아버지인 원수()는 태부연이 되었는데 장초(張超)가 동탁을 토벌할 때 원수로 하여금 광릉의 정무를 맡아보도록 하였다.


같은 군(郡) 사람 서원(徐原)은 회계(會稽)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평소 육모와는 면식이 없었는데, 죽음에 임해 유서를 남겨 고아가 된 나이 어린 자식들을 그에게 의탁시켰다. 육모는 그를 위해 분묘를 세웠으며 그의 자식들을 거두어 양육했다. 또 육모의 숙부인 육적(績)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뒤에 남겨진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은 모두 몇 년 간 고향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육모는 그들을 맞아 돌아오도록 하여 길렀고, 그들이 성장하고서야 헤어졌다. 주(州)와 군(郡)에서 그를 불러 천거하였지만,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당시 상서(尚書)였던 글염은 인물 품평에 매우 탁월했다. 그는 삼서(三署)의 관리들을 선발하여 결정할 때, 사람들의 우매한 실책을 자못 드러내어 그 사람의 단점을 공개했다. 육모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성인은 선량함을 고려하고 우매함을 동정했으며, 다른 사람의 과실을 잊고 공적을 기억함으로써 아름다운 교화를 이루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왕법은 막 세워졌으며 장차 천하를 크게 통일시켜야만 합니다. 이는 한(漢) 고조(高)가 사람들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사용한 시대인 것입니다. 만일 선악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여 여영(汝潁) 사람들의 매달 초하루에 인물을 평가하는 습속을 귀중하게 여기게 된다면, 진실로 습속이 엄정하고 교화는 분명할 수 있을지라도 쉽게 시행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땅히 멀리로는 공자의 큰 사랑을 배워야만 하고, 가운데는 곽태(郭泰)의 사람을 널리 구제하는 것을 본받아야만 하며, 가까이로는 커다란 도(道)를 이루는데 유익함이 있어야만 합니다.

글염은 육모의 견해를 실행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실패했다.

가화(嘉禾) 원년(232), 조정에서 공적인 수레로써 육모를 초빙하여 의랑(議郎)ㆍ선조상서(選曹尚書)로 임명했다. 손권(孫權)은 공손연(公孫淵)이 교묘하게 속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분노하여 직접 정벌하려고 했다. 육모는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

- 신이 듣기로는, 영명한 군왕이 먼 곳의 이민족들을 다스리는 것은 매어놓은 것일 뿐 영원히 그곳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때문에 옛날에 국토를 제정하는 일에서는 이것을 황복(荒服)이라고 했는데, 황홀하여 영원함이 없으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공손연은 동쪽의 이민족 중에서도 작은 세력으로 바다 구석에 있으므로, 비록 사람의 얼굴에 의탁하고 있을지라도 금수(禽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가가 재화를 아끼지 않고 멀리 그들에게 베푸는 것은 그들의 덕행과 도의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들의 사악한 행위를 수렴하여 회유함으로써 그들의 말(馬)을 구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공손연이 오만하고 교활하게 먼 곳에 의지하여 명령을 저버리는 것, 이것은 변방 먼 곳의 소수 민족들의 통상적인 양태인데, 어찌 놀라겠습니까? 옛날 한왕조의 여러 황제 역시 일찍이 이민족을 다루는 데 깊이 주의하여 사자를 보내 재물을 흩어주어 서역(西域)을 가득 채웠는데, 비록 어떤 때는 공손하게 따랐지만, 사자가 살해되고 재화가 동시에 탈취되는 경우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근심하며, 분함을 견디지 못해 큰 바다(巨海)를 건너 직접 그곳 땅을 밟으려고 하는데 신하들의 의론은 불안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북방의 적과 우리 나라는 토지를 접하고 있으므로 만일 틈이 있게 된다면 기회를 틈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다를 건너 말을 구하고 본의를 위배하는 공손연과 친교를 맺으려고 한 까닭은 눈앞의 위급함을 구제하고 마음속에 숨어있는 근심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방향을 바꿔 근본을 버리고 끝을 쫓으며 가까운 곳을 버리고 끝을 쫓으며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을 다스리는 것은, 분하기 때문에 계획을 바꾼 것이며 격노하여 군대를 움직인 것으로, 이것은 교활한 적이 듣기를 희망했던 소식이지 위대한 오나라(大吳)의 가장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또 병가(兵家)의 전술은 공으로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고 안일로써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면, 유리한 자와 불리한 자의 차이가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답저(沓渚)는 공손연으로 부터 떨어져 있어 길이 매우 먼데, 지금 해안에 도착한다면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강력한 부대로 하여금 나아가 취하도록 하고, 그 다음 부대에게는 배를 지키도록 하며, 또 다음 부대에게는 식량을 운송하게 해야 합니다. 출정하는 사람이 비록 많을지라도 전원을 사용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게다가 보병으로 식량을 짊어지고 먼 곳을 지나 깊숙이 들어간다면, 적지에는 말이 많아 변화무상하게 공격할 것입니다. 설령 공손연이 음모를 사용하여 북방과 끊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많은 병력을 움직였을 때, 그들은 입술과 치아처럼 서로 돕게 될 것입니다. 만일 확실히 그가 고립되어 의지할 곳이 없다면, 두려워 먼 곳으로 달아날 것이므로 아마 한 번에 소멸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폐하께서 죄인을 토벌하여 죽이려고 하는 것이 북방의 들녘에 있다고 하여도 산월의 도적들은 틈을 타서 일어날 것이니, 아마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계책은 아닐 것입니다.

손권은 그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육모는 다시 상소를 올려 말했다.

- 병기와 갑옷은 본래 이전 시대에 폭동과 난리를 일으키는 자를 토벌하고 사이(四夷)를 위협하여 보공시키는 데 사용했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기존에 있던 간웅이 이미 해소되고 천하가 일이 없게 되자 조정에서 한가하게 잇으면서 전쟁으로 남겨진 화제를 논의할 뿐입니다. 중원(中夏)이 혼란하고 구주가 뒤섞일 때는, 대체로 근본은 깊어져 공고해지고 병력을 사랑하고 비용을 아끼며 스스로 휴양에 힘쓰면서 이웃하고 있는 적의 소홀함을 기다려야 되는데, 이와 같은 시기에 맞는 것이 없으면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을 다스려 군대로 하여금 피로하게 합니다. 이전에 울타(尉佗)가 반역하여 황제를 참칭했을 때, 그 당시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들은 부유하며 병사의 수나 식량 축적이 많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문제는 먼 곳까지 정벌하러 갔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력을 대규모로 일으켰지만, 울타에게 이치를 깨우쳤을 뿐입니다. 지금 흉악한 적은 소멸되지 않았고 변방에서는 여전히 경보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록 치우(蚩尤)나 귀방(鬼方)이 난을 일으킨다고 해도 상황의 완만함과 급함의 차이에 따라 처리해야만 하지, 공손연을 출병의 선례로 삼아서는 옳지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권위를 누르고 행동을 멈추고서 잠시 군대를 안녕되게 하고, 깊이 사색하고 냉정하게 살펴서 미래의 계획을 제정하십시오. 이것이 천하 사람들에게는 큰 행운이 될 것입니다.

손권은 육모의 상서문을 읽고 나서 그 문장의 이치와 곧고 간절함을 칭찬하여 원정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다.

당초 육모와 같은 군(郡) 사람인 문인민(聞人敏)이 도읍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 직위는 종수(宗脩)를 뛰어넘었다. 오직 육모만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후의 일은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적오(赤烏) 2년(239)에 육모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육희(喜) 역시 경전을 섭렵하였고 인륜(人倫)에 대한 토의를 좋아하였다. 손호(孫皓)가 정권을 잡았을 때 그는 선조상서(選曹尚書)로 임명되었다.


吳錄曰:喜字文仲,瑁第二子也,入晉為散騎常侍。瑁孫曄,字士光,至車騎將車、儀同三司。曄弟玩,字士瑤。晉陽秋稱玩器量淹雅,位至司空,追贈太尉。    


오록에 이르길 : 육희(陸喜)의 자는 문중(文仲)으로 육모의 둘째 아들이다,진나라에 들어와 산기상시가 되었다. 육모의 손자는 육엽()인데 자가 사광(士光)으로 거기장군, 의동삼사에 이르렀다. 육엽의 동생은 육완()인데 자가 사요(士瑤)이다. 진양추에 칭하길 육완은 기량이 고아하고 드넓었으며 직위가 사공에 이르렀고 태위로 추증됐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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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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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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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1
16:57:42
(*.0.203.174)
한문 주석 추가

코렐솔라

2016.05.29
17:42:48
(*.196.74.143)
강을 건너 임관한 사람들에 대한 주석과 오록의 윤희와 그 일가에 대한 내용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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