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朱據)는 자가 자범(子據)이고 오군(吳郡) 오현(吳) 사람이다. 그는 의표가 당당하고 근력이 있었으며, 또 변론에 뛰어났다.

황무(黃武) 초년, 그는 오관낭중(五官郎中)으로 임명되었고, 시어사(侍御史)로 충원되었다. 이 당시 선조상서(選曹尚書) 글염(暨豔)은 탐욕스럽고 법을 오염시키는 자들이 관직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그들을 깨끗이 씻어내려고 하였다. 주거는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므로 마땅히 공으로 허물을 덮고, 결점있는 자를 버리고 쓸만한 자를 취하며, 청렴한 자를 천거하고 오염된 자를 발분시켜 저지하고 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만일 한 번에 그러한 자들을 폄적시키고 폐출한다면 후환이 있을 것이 걱정스러웠다. 글염은 주거의 의견을 듣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손권(權)은 그 당시 병사들을 인솔할 장수들이 부족함을 걱정하여 떨쳐 일어나 탄식하고, 여몽(呂蒙)과 장온(張溫)을 추념했다. 그는 주거가 문무를 겸하고 있어 이들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주거를 건의교위(建義校尉)로 임명하고 호숙(湖孰)에 주둔한 병사를 인솔하도록 했다.

황룡(黃龍) 원년(29), 손권은 수도를 건업(建業)으로 옮기고, 주거를 불러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좌장군(左將軍)으로 임명했으며, 운양후(雲陽侯)로 봉했다. 그는 인사들과 교제했으며 재물을 경시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하사받은 봉록이 많았지만 항상 부족했다. 

가화(嘉禾) 연간, 큰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하였는데, 하나에 5백 문(一當五百)의 가치가 있었다. 이후 주거의 부대 사람이 3만민(三萬緡)을 받기로 했는데, 공인(工) 왕수(王遂)가 속여서 그것을 받았다. 전교(典校) 여일(呂壹)은 주거가 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재물을 주관하는 자들을 고문하여 매질로 죽게 했다. 주거는 그의 무고함을 애석해 하며 양질의 관으로 염을 했다. 여일은 또 주거의 관리가 주거를 위해 함구했다고 알리고 장례를 후하게 했다. 손권은 주거를 여러 차례 문책했지만, 주거는 자신의 명백함을 밝힐 방법이 없었으므로 풀 위에 앉아 다스려지기를 기다렸다. 몇 달 후, 전군리(典軍吏) 유조(劉助)가 진상을 밝혀 왕수가 취했다고 말했다. 손권은 크게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주거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는데, 하물며 하급 관리와 백성들이야?”

그리고 여일의 죄를 좇아 다스리고, 유조에게는 1백만 전을 주었다.

적오(赤烏) 9년(246), 주거는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승진했다. 두 궁이 다툴 때 주거는 태자(太子)를 옹호하였는데, 말을 하면 지극히 간절했고, 의로움은 얼굴 빛에 나타났고 죽음으로써 태자를 지켰다.


주거가 항변한 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듣건대, 태자는 국가의 근본이며 그 바탕은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므로 천하 사람들이 마음을 기탁합니다. 지금 갑자기 태자를 질책한다면, 생각지 못한 사태가 있을 것입니다. 옛날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여희(麗姬)의 말을 믿어 태자 신생(申生)은 살지 못했고, 한무제가 강충(江充)을 신용하여 누태자(淚太子)는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신은 사사롭게 태자가 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비록 사자(思子)라는 이름의 궁궐을 세웠을지라도 또 미치지는 못합니다. ”


그 결과 주거는 신도군(新都郡)의 승(丞)으로 좌천되었다. 그가 임지에 도착하기 전에 중서령(中書令) 손홍(孫弘)이 주거를 무함하여, 손권이 질병으로 누워있는 기회를 이용해 거짓 조서를 만들어 주거에게 죽음을 내렸다. 그 당시 주거는 57세였다. 손량(孫亮)의 시대에 그의 두 아들 주웅(熊)ㆍ주손(損)은 각각 또 부대를 통솔하였지만, 전공주(全公主)의 모함을 받아 모두 처형되었다.

영안(永安) 연간, 조정에서는 주거의 공로를 추적하여 기록하고, 주웅의 아들 주선(宣)에게 운양후(雲陽侯)의 작위를 잇도록 하고, 또한 공주(公主)를 아내로 맞도록 하였다. 손호(孫皓)의 시대에, 주선(宣)은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이르렀다.

- 평하여 말한다.

우번(虞翻)은 고대의 지나치게 정직했던 무리로서 진실로 말세에는 화를 면하기 어려웠지만, 손권(權)이 그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마음이 넓지 않았던 것이다. 양웅(揚)의 태현(玄)에 대한 육적의 공헌은 중니(仲尼 : 공자)의 춘추에 대한 좌구명(左丘明)의 공헌이나 노담(老聃)의 도덕경에 대한 장주(周)의 공헌 같은 것이다. 이처럼 귀중한 인재에게 남월(南越)을 지키도록 한 것은, 역시 인재를 해친 것이 아닌가! 장온(張溫)은 재화는 탁월했지만, 몸을 지키는 지혜가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재난과 근심이 이른 것이다. 낙통(駱統)은 대의가 분명하고 언사가 간절하며 이치는 지극했지만, 손권이 듣는 것을 닫아 버려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따. 육모(陸瑁)는 인의가 돈독하고 바르게 간언하였으므로 군자가 칭찬했다. 오찬(吾粲)과 주거(朱據)는 좌절을 만났을 때, 정직했기 때문에 몸을 잃게 되었다. 슬프다!

분류 :
오서
조회 수 :
3776
등록일 :
2013.05.01
13:23:57 (*.148.50.141)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017/095/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017

코렐솔라

2013.07.03
01:45:46
(*.52.89.88)
주거으 1->주거의 로 수정

코렐솔라

2013.07.11
17:04:42
(*.0.203.174)
주석 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53537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58360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13521
70 오서 육개전 [3] 견초 2013-05-01 4321
69 오서 반준전 [7] 견초 2013-05-01 4711
68 오서 종리목전 [4] 견초 2013-05-01 4033
67 오서 주방전 [10] 견초 2013-05-01 3845
66 오서 여대전 [14] 견초 2013-05-01 4966
65 오서 전종전 [4] 견초 2013-05-01 5162
64 오서 하제전 [10] 견초 2013-05-01 5043
63 오서 손분전(오서 14권, 손패의 동생) [1] 견초 2013-05-01 3408
62 오서 손패전 [1] 견초 2013-05-01 3301
61 오서 손화전 [3] 견초 2013-05-01 4496
60 오서 손려전 [2] 견초 2013-05-01 3496
59 오서 손등전 [2] 견초 2013-05-01 4654
58 오서 육경전(육손의 손자들) [3] 견초 2013-05-01 4320
57 오서 육항전 [3] 견초 2013-05-01 6833
56 오서 육손전 [27] 견초 2013-05-01 11501
» 오서 주거전 [2] 견초 2013-05-01 3776
54 오서 오찬전 [2] 견초 2013-05-01 3414
53 오서 육모전 [2] 견초 2013-05-01 3384
52 오서 낙통전 [2] 견초 2013-05-01 3603
51 오서 장온전 [3] 견초 2013-05-01 3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