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遜은 자가 백언(伯言)이고 오군 오현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육의(陸議)이며, 대대로 강동의 호족이었다.


육씨세공(陸氏世頌) : 육손의 조부는 육우陸紆이며, 자는 숙반叔盤이다. 민숙(敏淑; 상세하게 파고든다는 말로 정밀하여)하여 배움에 정진했으며 성문교위城門校尉를 맡았다. 아버지는 육준遜駿으로 자는 계재季才이며, 신후(信厚; 믿음이 도탑다.)하며 순의(淳懿; 뜻이 맑다)하였다. 육가 집안을 이뤘고, 관직은 구강도위九江都尉에 이르렀다.


육손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당조부이며 여강태수(廬江太守)였던 육강(陸)을 따라 임지에서 생활했다. 원술은 육강과 틈이 있었으므로 장차 육강을 공격하려고 했다. 육강은 육손과 친척들을 오현으로 돌려보냈다. 육손은 육강의 아들 육적(陸)에 비해 몇 살 위였으므로 육강을 대신해 집안을 관리했다.

손권이 장군으로 임명되었을 때, 육손은 21세였다. 그는 처음에는 손권의 막부에 임명되었으며, 동서조령사를 역임하고 지방으로 나와 해창현(海昌) 둔전교위로 임명되고, 아울러 현의 정무를 관리했다.


육씨사당창전(陸氏祠堂像贊)에 이르길: 해창(海昌)은 오늘날의 염관현(鹽官縣)이다.


그 현이 해를 이어서 큰 한재가 닥치자, 육손은 관청의 곡식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백성들에게 농업과 양잠을 권유하고 감독하였다. 백성들은 매우 많은 혜택을 입게 되었다. 그 당시 오군. 회계군. 단양군에는 숲속에 숨어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육손은 손권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을 진술하고 이런 사람들을 소집시킬 것을 요청했다. 회계군에 있는 산적의 우두머리 반림(潘臨)은 오랫동안 이 지역의 독으로 있었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체포되지 않았다. 육손은 새로 수집한 수하의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험준한 곳까지 깊숙이 들어가 토벌하자,이르는 곳마다 모두 항복했다. 육손 수하의 병사는 이미 2천여 명이 되었다.

파양군 도적 우두머리 우돌(尤突)이 난리를 일으키자, 육손은 또 그곳으로 가서 토벌했다. 그는 정위교위(定威校尉)로 임명되었고, 군대를 이포(利浦)에 주둔시켰다.

손권은 형 손책의 딸을 육손의 배필로 짝지어 주고, 이 시대의 정치문제에 관해, 여러차례 의견을 구하였다. 육손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영웅들이 각지에서 패권을 쥐고 대치하고 있고, 시랑이 같은 자들은 엿보며 관망하고 있습니다. 적을 무찌르고 혼란을 평정시키려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없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산월의 도적은 오랜 원수인데, 험한 지형에 의지하고 깊은 산 속에 있습니다. 내부의 환란이 평정되지 않고 먼 곳을 도모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대오를 확충시켜 그중에서 정예를 선발해야만 합니다."

손권은 그의 책략을 받아들이고, 그를 장하우부독(帳下右部督)으로 임명했다. 마침 단양군에 있는 도적 우두머리 비잔(費棧)이 조조의 인수를 받고 산월을 선동해 몰래 호응했다. 손권은 비잔을 토벌하기 위해 육손을 보냈다. 비잔의 무리는 많았지만 그곳으로 간 육손의 병사는 적었다. 그래서 육손은 군기를 늘리고 군고와 호각을 배치시켜 놓고 밤에 산골짜기에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갔다. 비잔의 무리는 순식간에 격파되어 흩어졌다. 육손은 동방의 세 군에서 부대를 편성하고, 강인한 사람은 병사로 삼고, 약한 사람은 민호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하여 결국에는 수만 명을 얻게 되었고,오랜 세월 지속된 환란은 전부 소탕되었으며, 군대가 지나간 곳은 깨끗해졌다. 육손은돌아와 무호(蕪湖)에 주둔했다.

회계태수 순우식(淳于式)이 손권에게 표를 올려, 육손이 임의대로 백성들을 취하여 관할지역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육손은 이후에 도성으로 가서 손권과 말할 때, 순우식은 훌륭한 관리라며 칭찬했다. 그러자 손권이 말했다.

"순우식은 그대를 고발했는데, 그대는 순우식을 추천했다. 무슨 까닭인가?"

육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순우식의 뜻은 백성들을 기르려고 했기 때문에 저를 고발한 것입니다. 만일 제가 다시 순우식을 비방한다면 성덕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풍은 조장할 수 없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이것은 진실로 훌륭한 행위다. 다만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여몽(呂蒙)이 질병을 칭하여 건업으로 왔을 때, 육손은 가서 방문하고 이렇게 말했다.

"관우와는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멀리 내려왔습니까? 이후에 걱정할 만한것이 없겠습니까?"

여몽이 말했다.

"진실로 당신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만, 나의 질병이 심합니다."

육손이 말했다.

"관우는 자신의 용기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능멸합니다. 처음으로 큰공을 세워 마음은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오직 북진에만 힘쓰고 우리에게는 경계의 마음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한다면, 틀림없이 더욱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나가면, 그를 붙잡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려와 지존을 만나는 것은 마땅히 좋은 계략입니다."

여몽이 말했다.

"관우는 평소 용맹하여 그를 적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는 벌써 형주를 점거하고 은혜와 신의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원래 공로가 있으며 담력과 기세가 성대하여 도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몽이 도착하자, 손권이 물었다.

"누가 그대를 대신할 수 있소?"

여몽은 이렇게 대답했다.

"육손은 사려깊고, 재기는 중임을 담당할 만합니다. 그가 미래의 일을 살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는 대임을 맡길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먼 곳까지 이름이 나 있지 않고 관우가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므로 또 그를 뛰어넘을 자는 없습니다. 만일 그를 임용한다면, 외부에는 참된 의도를 숨기고 안으로는 유리한 형세를 관찰하도록 한 연후에 관우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손권은 곧 육손을 불러 편장군 우부독으로 임명하고 여몽을 대신하도록 했다.

육손은 육구(陸口)에 이르러 관우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 나는 당신이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고 나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군대를 지휘해 가볍게 일어나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당신의공적은 위대하오! 적국이 패배한 것은 동맹국에는 이로운 일이므로 당신의 승리 소식을 듣고 손뼉을 쳤고, 중원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루어 함께 조정을 보좌하고 기강을 유지시키기를 희망했었소. 최근 재능없는 이 사람이 임명을 받아 서쪽으로 오게 되었소. 나는 당신의 풍채를앙모하여, 좋은 대우와 가르침을 받기를 바라고 있소. 

또 이렇게 말했다.

-우금 등이 당신의 포로가 되자,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간에 그대를 존경하고 찬탄하였으며, 장군의 공훈은 세상에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 비록 옛날 진문공(晉文公)이 성복(城濮)의 싸움에 참가시킨 군대나 회음후(淮陰侯 ; 漢信)가 조(造)나라를 공격한 계략일지라도 그대를 넘을 수는 없을 것이오. 서황(徐晃) 등이 적은 수의기병을 진지에 주둔시켜 당신의 동향을 엿보고 있다고 들었소. 조조는 교활한 적이오.그는 실패한 분노 때문에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아마 은밀히 병사를 늘려 그 뜻을 이루려고 할 것이오. 비록 그의 군대는 강하지 않을지라도 용맹하고 강인한 장수는 여전히 있소.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항상 적을 경시하는 생각이 생겼소. 고인의 용병술에 의지하여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는 더욱 경계고, 장군이 다방면으로 방침을만들어 완전하게 승리하기를 희망하오. 나는 서생으로 재능이 소원하고 학문이 얕으며행동은 더딘데, 감당하지 못할 직무를 맡게 되었소. 나는 위엄과 덕행이 있는 당신과 이웃이 되어 기쁘고, 나의 마음을 전부 기울이고 싶소. 비록 당신의 계책에 부합되지 못할지 라도 여전히 그리워할 것이오. 만일 당신의 관심을 얻게 된다면 이런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오.

관우는 육손의 편지를 살펴보고 그가 겸손하게 몸을 낮춰 스스로 의탁하려는 뜻이 있고, 매우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다시 경계하는 바가 없게 되었다. 육손은 이런 상황을 손권에게 구체적으로 보고하고 관우를 잡을 수 있는 요령을 진술했다. 손권은 은밀히 서쪽으로 군사를 파견하고, 육손과 여몽을 선봉 부대가 되도록 하여 공안과 남군을 신속하게 점령하도록 했다. 육손은 곧장 진군했다. 그는 의도태수를 겸임하고 무변장군(撫邊將軍)으로 임명되고 화정후(華亭侯)로 봉해졌다. 유비의 의도태수 번우(樊友)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각 성의 관리나 이민족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투항했다. 육손은 금. 은. 동.의 관인을 청하여 방금 귀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 해는 건안 24년(219) 11월이다.

육손은 장군 이이(李異)와 사정(謝旌) 등을 파견해 병사 3천 명을 인솔하여 촉나라 장수 첨안(詹晏)과 진봉(陳鳳)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이는 수군을 지휘하고, 사정은 보병을 이끌고 가서 험한 요새를 끊어 즉시 첨안 등을 무찌르고 진봉을 사로잡았다. 또 방릉(房陵)태수 등보(鄧輔)와 남향(南鄉)태수 곽목(郭睦)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시켰다. 자귀현(秭歸)의 호족인 문포(文布)와 등개(鄧凱) 등은 이족의 병사 수천 명을 규합해 서쪽의 촉과는 머리와 꼬리가 되었다. 육손은 또 사정을 지휘하여 문포와 등개를 토벌하여 무찔렀다. 문포와 등개가 달아나자, 촉나라에서는 이들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육손은 사람을 보내 이들을 회유했는데, 문포는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투항했다. 육손이 앞뒤로 하여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거나 회유하여 투항을 받은 자는 수만 명이 되었다. 손권은 육손을 우호군. 진서장군으로 임명하고, 승진시켜 누후(婁侯)로 봉했다.


오서 왈, 손권은 육손의 공덕에 기뻐하여 그를 특별히 현창하고자 하니, 비록 그를 상장군 열후로 삼았으나 여전히 본주(本州-출신 주.육손은 양주 오군출신)의 거명(擧命)을 거치도록 하고자 하여 이에 양주목 여범(呂範)에게 명해 그를 (양주) 별가종사로 벽소하고 무재(茂才)로 천거하게 했다.

당시 형주의 사인(士人)들이 막 오나라로 귀의했는데, 관직에 오른 자도 있고 안배를 받지 못한 자도 있었다. 그래서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한고조가 천명을 받았을 때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임용하였고, 광무제(光武帝)가 중흥했을 때는 매우 걸출한 사람들이 이르렀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도덕과 교화를 흥성하게 할 수 있다면, 친근하게 하거나 소원하게 할 필요가없습니다. 지금 형주는 방금 평정되었고 인물들은 현달하지 못했습니다. 신이 지성으로 원하는 것은, 이들에게 공양하고 발탁하는 은혜를 보편적으로 주어 스스로 나아갈 기회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연후에 천하 사람들은 목을 길게 빼고 우리들의 커다란 교화로 돌아오려고 할 것입니다.

손권은 그의 건의를 공손하게 받아들였다.

황무 원년(222),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서쪽 변방지역으로 향해 왔다.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가절을 주어 주연(朱然), 반장(潘璋), 송겸(宋謙), 한당(韓當), 서성(徐盛), 선우단(鮮于丹), 손환(孫桓) 등 에게 5만 명을 지휘하여 막도록 했다. 유비는 무협(巫峽)과 건평(建平)에서부터 이릉경계까지 이어 둔영 수십 개를 세우고 금, 은, 비단, 작위, 상으로 각 소수 민족들을 회유했다. 그리고 장군 풍습(馮習)을 대독으로 임명하고, 장남(張南)을 선봉으로 삼았다. 보광(輔匡), 조융(趙融), 요순(廖淳), 부융(傅肜) 등은 각각 별독(別督)으로 임명하고, 우선 오반(吳班)을 보내 수천 명을 인솔하여 평지에 군영을 세워 도전하도록 했다. 오나라 장수들이 공격하려고 하자 육손이 말했다.

"이런 행동에는 반드시 음흉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잠시 살펴보도록하자."


《오서》; 여러 장수들은 유비를 맞받아 칠 것을 바랬지만, 육손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유비가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내려와서 날카로운 기세가 비로소 성대하며, 또 높은 곳을 타고 험준한 곳을 지키니 섣불리 공격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것이오. 그것을 공격하여 쫓아내는 것은 다 이기기 어려운 것과 같고, 만약 불리한 일이 있으면 우리의 대세大勢에 손해가 생겨 작은 소치가 아닐 것이오. 지금은 단지 장수와 병사들을 장려하고 넓게 방략方略을 펼쳐 그 변화를 관찰해야 하오. 이렇게 이 평원과 광야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우려로 (우리가) 무너질 일이 있을까를 마땅히 걱정해야지, 지금 산기슭으로 행군하면 세력을 펼치지 못해 저절로 나무와 돌 사이에서 끝장나게 될 것이니, 서서히 그들이 피폐해진 것을 제압해야 할 뿐이오.”

 

여러 장수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육손이 두려워한다고 여겨 각자 분한 마음을 품었다.


유비는 그의 계획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고 곧 바로 8천 명의 복병을 데리고 산골짜기에서 나갔다. 육손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오반을 공격하자는 요청을 듣지 않은 까닭은 반드시 거짓이 있다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릉은 요충지이며 나라의 최전선에 있는 관문인데, 비록 쉽게 얻긴 했지만 역시 또 쉽게 잃게 됩니다. 그곳을 잃게 되면 한 군의 토지를 손실할 뿐만 아니라 형주를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곳을 다투어 틀림없이 성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비는 통상적인 이치를 어기고 자신의 집을 지키지 않고 과감히 보냈습니다. 신은 비록 재능은 없지만, 폐하의 위엄과 명성에 기대어 순리를 따라서 거역하는 자를 토벌하고 짧은 시간에 파괴했습니다. 유비가 앞뒤로 군사를 사용한 것을 살펴보면, 실패는 많았고 성공은 적었으므로, 이로부터 걱정할 가치가 없다고 추단했던 것입니다. 신은 처음에는 그가 물과 육지로 함께 진출할 것을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오히려 배를 버리고 도보로 곳곳에 진영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부서를 살펴보았지만, 다른 변화는 반드시 있을 수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이일에 괘념치 않기를 드려 원합니다.

육손 수하의 장수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유비를 공격한다면 응당 그가 처음 병사를 내었을 때 했어야만 했습니다. 현재는 그로 하여금 오나라로 5,6백 리를 들어오도록 하여 서로 대치한 지 7,8개월이나 되었으며, 많은 요충지는 모두 그가 굳게 지키고있으므로 그를 공격하면 반드시 불리할 것입니다."

육손이 말했다.

"유비는 교활한 적이며, 매우 많은 일을 겪었고, 그의 군대가 처음 집결했을 때, 그의 생각은 조밀하고 전일하였으므로 침범할 수 없었다. 현재는 매우 오랫동안 출병하여 우리의 편의를 차지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피곤하고 사기는 떨어졌으며, 또 새로운 계책은 없다. 앞과 뒤에서 협공 하여 적을 잡을 때는 바로 오늘이다."

그리고 나서 육손은 먼저 유비의 한 진영을 공격했지만, 불리했다. 장수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헛되이 병력을 소모시킬 뿐입니다."

육손이 말했다.

"나는 이미 유비 진영을 격파시길 방법을 알고 있다."

곧 병사 각각에게 띠풀을 하나씩 갖고서 화공(火攻)으로 격파시키도록 명령했다. 순식간에 형세가 이루어지자, 육손은 각 군대를 인솔하여 동시에 함꼐 공격해 장남, 풍습 및 호왕(胡王) 사마가(沙摩) 등의 머리를 베었으며 40여 곳의 진영을 격파시켰다. 유비의 장수 두로(杜路)와 유녕(劉寧) 등은 달아날 길이 없자 투항을 요청했다. 유비는 마안산(馬鞍山)에 올라 주위에 군대를 포진시켰다. 육손이 군대를 격려하고 지휘하여 사방에서 이곳으로 육박해오자 유비의 진영은 붕괴되고 와해되었으며, 죽은 자는 수만명이 되었다. 유비는 밤을 틈타 달아났는데, 역참의 관리가 직접 남아있는 물건을 지고 군악기나 개(槪)를 길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 적병의 추격을 끊었다. 유비는 겨우 백제성(白帝城)으로 들어갔다. 그의 배. 병기. 수군. 보병의 물자는 한 번에 거의 손실됐고, 병사들의 시신은 장강을 떠다녔다. 유비는 매우 부끄럽고 분하여 다음과 같이말했다.

"내가 육손에게 좌절과 모욕을 당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가?"

처음에 손환은 단독으로 이도에서 유비의 선봉대를 토벌하려다가 유비에게 포위되었다. 그래서 육손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육손은 이렇게 말했다.

"안된다."

장수들이 말했다.

"손안동(孫安東 ; 손환)은 손권의 동족인데, 그가 포위당한 것을 알고 어찌 구하지않습니까?"

육손이 말했다.

"안동은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고 성은 견고하며 식량은 충분하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나의 계책이 실시되는 것을 기다리면 안동을 구하지 않아도, 안동의 포위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육손의 계책이 실시되자, 유비는 과연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손환은 이후에 육손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나는 사실 구원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었습니다. 대국이 결정된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신의 조처에는 방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비를 대항할 때, 장군들 가운데 어떤 이는 손책 시대의 노장이고,어떤 이는 황실의 친척이었으므로 각각 긍지를 갖고 서로 듣고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육손이 칼을 잡고말했다.

"유비는 천하에 이름이 알여졌으며 조조도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오늘 그가 우리의 경내에 있는데, 이것은 강대한 적수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모두 국가의 은혜를 받았으니, 마땅히 서로 화목해야 하며 함께 이 적을 무찔러서 위에서 받은 은혜를 보답해야만 하는데, 서로 순종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해야만 되는 일이 아니다.나는 비록 서생이지만, 주상의 명령을 받았다. 국가에서 여러분들을 굽혀 나의 명령을 받도록 한 까닭은 나에게 칭찬할 만한 약간의 장점이 있어 치욕을 참아내고 중임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맡은 일을 해야지, 또 어찌 말을 하겠는가! 군령(軍令)은 영원한 것이니, 범할 수 없다."

유비를 격파시킨 계책은 대부분 육손에게서 나왔다. 장수들은 그를 존경하여 복종했다. 손권은 이러한 상황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애초에 장수들이 지휘와 약속에 복종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소?"

육손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두터운 은혜를 입어 임무는 저의 재능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 장수들 가운데 어떤 이는 주군께서 신임하는 사람이고, 어떤 이는 유능한 장수였으며, 어이는 공신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가가 대사를 이루는데 함께 할 사람들입니다. 신은 비록 재능이 낮지만, 인상여(慕相如)와 구순(寇恂)이 겸허하게 자신을 낮춘 뜻을 사사로이 흠모하여 국가의 대사를 이루려고 한 것입니다."

손권은 크게 웃고, 그의 행동이 옳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육손을 보국장군으로 봉하고, 형주목을 겸임하도록 하였으며, 즉시 강릉후(江陵侯)로 바꿔 봉했다.

또 유비가 백제성에 머물러 있자, 서성. 반장. 송겸 등은 각각 다투어 표를 올려서 유비를 반드시 붙잡을 수 있다며 다시 공격하기를 원했다. 손권은 이에 대해 육손에물었다. 육손은 주연과 낙통(駱統)과 의견을 같이하며, 조비가 대군을 집결하여 겉으로는 우리 나라를 도와 유비를 토벌하려 하지만 속으로는 사악한 마음이 있으므로 결정이 되면 즉시 군대를 돌릴 것이라고 보았다. 오래지 않아, 위나라 군대는 과연 출동했고, 오나라는 삼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오록: 유비는 위나라 군대가 대거 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 


‘적군은 지금 벌써 강릉에 있소.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다시 동쪽으로 갈 것인데, 장군은 이에 동의하오?’ 

그러자 육손은 

‘단지 걱정되는 것은, 당신의 군대는 방금 패배하여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으며, 양국의 화친 관계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스스로 보충해야만 되지 병력을 궁핍하게 할 틈은 없다. 만일 십분 헤아리지 않고 다시 뒤엎어지는 상황 속에서 생존자들을 멀리 파견하여 오게 한다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답했다. 

유비가 질병으로 사망하자, 아들 유선이 자리를 세습했다. 제갈양이 정권을 잡았으며, 손권과 결맹을 맺었다. 그 당시 정사의 마땅한 바에 근거하여 손권은 육손을 통해 제갈양에게 설명하도록 하고, 아울러 손권의 인새를 새겨 육손의 관소에 두었다. 손권은 유선이나 제갈양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는 언제나 육손에게 보도록 하여 어기의 경중(輕重)이나 시비의 타당성에 있어서 합당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곧바로 고치도록 한 연후에 봉인하여 보냈다.

황무 7년(228), 손권은 파양태수 주방(周魴)에게 위의 대사마 조휴(曹休)를 속이도록 했다. 조휴는 과연 병사들을 들어 환현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손권은 육손을 불러 황월(黃鉞)을 주고 대도독으로 임명해 조휴를 맞아 공격하도록 했다.


陸機為遜銘曰:魏大司馬曹休侵我北鄙,乃假公黃鉞,統御六師及中軍禁衛而攝行王事,主上執鞭,百司屈膝。 


吳錄曰:假遜黃鉞,吳王親執鞭以見之。    


육기가 육손의 명을 지어 이르길 : 위나라 대사마 조휴가 북변을 침공하니 마침내 공에게 황을 가하고 육사와 중앙의 금군을 통솔하여 군왕의 일을 대리하도록 하였으니 주상이 채찍을 잡고 백관이 무릎을 꿇었다.


오록에 이르길 : 육손에게 황월을 빌려주고 오나라 왕이 친피 채찍을 잡고 이를 보여주었다.


조휴는 사태를 알아차렸지만, 그에게 속은 일이 부끄러웠고 자신의 병마가 정예이고 많음에 의지하여 육손과 교전하기로 했다. 육손 자신은 중앙의 군대를 지휘하고, 주환(朱桓)과 전종(全琮)에게 왼쪽과 오른 쪽 날개가 되도록 하여 세 갈래 길로 함께 나아가 조휴의 복병과 과감하게 부딪혀 달아나는 조휴의 병사들을 추격하여 곧장 협석까지 갔다. 여기서 죽이거나 포획한 자는 만여 명이며, 소. 말. 노새. 나귀가 끄는 수레 1만 대를 얻었고, 조휴 군대의 물자나 기계를 거의 빼앗았다. 조휴는 돌아간 후, 등에 종기가 나 죽었다.

육손은 각 군대를 정돈하여 무창을 지났는데, 손권이 주위의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자신의 우산 덮개로 육손을 가리고 궁궐 문을 드나들도록했다. 육손에게 하사한 것은 모두 자신이 사용하는 상등의 진귀한 물품이었다. 그 당시에는 육손과 견줄 만한 자가 없었다. 이후에 육손은 서릉으로 돌아왔다.

황룡 원년(229), 육손은 상대장군. 우도호로 임명되었다. 이 해, 손권은 동쪽의 건업을 순시하고 태자, 황자 및 상서 등 구경을 머물도록 했는데, 육손을 불러 태자를 보좌하도록 하고, 동시에 형주나 예장 등 세 군의 일을 관장하며 군사나 국사를 관리 감독하도록 했다. 당시 건창후(建昌侯) 손려(孫)가 전당 앞에 투압란(鬥鴨欄)을 만들어 매우 정교하게 설치했다. 육손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마땅히 경전을 두루 살펴보고 스스로 새로움을 더하도록 힘써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이런 놀이를 하십니까?"

손려는 즉시 그것을 부수고 철거했다.

야성교위(射聲校尉) 손송(孫)은 공자들 가운데 손권이 가장 친애하는 자인데, 병사들을 놀리며 훈련시키지 않았다. 육손은 이 일에 대해서 그의 수하 관리들의 머리를 깎는 형벌에 처했다. 또 남양(南陽)의 사경(謝景)이 유이의 형벌을 우선하고 예절을 뒤에 한다는 견해를 칭찬하자, 육손은 사경을 질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절이 형벌보다 앞선 지 매우 오래되었다. 유이가 번잡한 궤변으로 이전 성인들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대는 현재 태자를 모시고 있으니, 마땅이 인의(仁義)를 존중하여 덕음(德音)을 선양해야지 유이와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육손은 비록 몸은 궁궐 밖에 있었을지라도 마음만은 국사에 있었다. 그는 상소를 올려그 당시의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저는 법이 너무 엄하고 상세하여 아래에서 법을 어기는 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이래로 장수나 관리들이 죄를 지은 것은, 비록 그들이 신중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는 추궁을 받을 만하지만,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으므로 마땅히 나아가 취할 것을 도모해야 하고 작은 과실은 은혜를 베풀어 용서해 아래의 정서를 안정되게 해야만 됩니다. 그리고 현재 세상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훌륭한 재능이 우선해야 하므로, 사악하거나 음란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면 다시 선발하여 재능을 펼쳐 폐하께 보답하도록 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성스런 왕이 허물을 잊고 공로는 기억하여 왕업을 이룬 것입니다. 옛날 한고조는 진평(陳平)의 과실을 버리고 그의 기묘한 재략을 사용하여 결국에는 한왕조를 세우는 공훈이 있었고, 그의 공로는 천 년 간 전해졌습니다. 엄격한 법과 가혹한 형벌은 제왕이 대업을 융성하게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징벌만 있고 용서가 없다면, 이것은 먼 곳의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커다란 계획이 아닙니다."

손권은 한쪽의 부대를 파견하여 이주(夷州)와 주애(朱崖)를 취하려고 하면서 모두 육손에게 자문을 구했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해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므로 응당 백성들의 힘을 동원하여 현재의 긴급한 임무를 처리해야만 합니다. 현재 병사를 일으킨지 수년이 지나 인원이 감소했으며, 폐하께서는 이것을 우려하고 침식을 잊으시고 장차 먼 곳으로 가서 이주를 취하여 대사를 이루려고 하십니다. 신이 거듭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은 유리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 리를 가서 땅을 탈취하여도 풍파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고, 백성들은 수토(水土)가 바뀌어 반드시 질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병들을 달리게 하여 볼모지를 건너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다가 더욱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주애는 매우 험준한 곳이며, 그곳의 백성들은 금수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을 얻는다고 해도 대사를 이룰 수 없고, 그곳의 병사가 없어도 자신의 군대가 감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강동에 있는 병사들은 자연 대사를 도모하기에 충분한데, 단지 병력을 축적한 연후에 움직여야만 합니다. 옛날 환왕(桓王 ; 손책)이 오나라의 기업을 세웠을 때, 병사는 5백 명이 안되었지만 대업을 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천명을 받아 강남지역을 개척하고 평정했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혼란한 세상을 다스리 고 반역자를 토벌할 때는 반드시 군대의 위력에 의지해야만 되는데, 농업이나 양잠에 종사하여 의복과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백성들의 근본적인 사업이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아 백성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마땅히 병사나 백성들을 양육하고 조세를 적게 거둬들여 백성들이 매우 화목해지고 도의로써 용감함을 권한다면, 황하와 위수 유역은 평정시킬 수 있고 전국은 통일될 것입니다."

손권은 이주를 정벌하러 갔지만,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보충하지는 못했다.

공손연이 맹약을 위반하자, 손권은 가서 정벌하려고 했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같이 말했다.

-공손연은 험난한 곳에 의지하고 견고한 수비에 기대어 우리의 특사를 구휴한 채 명마를 바치지 않고 있으므로 사실 원수가 되어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만이는 중원을 소란스럽게 하며 성왕의 교화를 받지 못하고, 새처럼 황폐한 변방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 군대에 대항하여 폐하로 하여금 진노하게 하여 작은 배를 타고 대해를 건너는 위험을 생각지 않고 예측하지 못하는 험난함을 결심하도록 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지금 천하는 구름처럼 혼란하고, 군웅들은 호랑이처럼 다투며, 영웅호걸들은 뛰어오르려고 하며 크게 소리지르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신무(神武)의 자태로써 하늘의 안배를 받아 오림(烏林 ; 적벽)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서릉에서 유비를패배시켰으며, 형주에서 관우를 붙잡았는데, 이 세 명의 적은 당대의 영웅호걸이었지만 모두 그 예봉을 부러뜨렸습니다. 폐하께서 성스러운 교화로 어루만지자, 만 리 안의 백성들은 바람이 풀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원을 평정시키고 통일 대유(大猷)를 실현 시킬 때인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작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우레 같은 분노를 발산시키는 것은 처마 밑으로 가까이 와서 앉지 못하도록 한 경계를위배하고, 만승 군주의 지위를 가벼이 한 것입니다. 이 점이 신을 의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만 리를 가려는 뜻이 있는 자는 중도에 발을 멈출 수 없고, 천하를 통일시키려고 하는 자는 작은 일을 생각하여 큰 일을 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강대한 적은 우리 경내에 있고, 변방 지역에 있는 자들은 우리 조정으로 아직 귀의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배를 타고 원정한다면 반드시 적에게 엿볼 기회를 제공하게 될것이며, 걱정이 근심에 이르며 후회해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통일 대업을 완성할 수 있다면, 공손연은 토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복종할 것입니다. 현재 멀리 요동의 백성과 명마는 아까워하면서, 어찌하여 유독 강동의 안정된 기업을 버리는 것 은 아까워하지 않습니까? 청컨데 병사들을 쉬게 하여 강력한 적군을 위압하고, 일찍 중원 지역을 평정하여 후세까지 빛나도록 하십시오."

손권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가화 5년(236), 손권은 북쪽을 정벌하려고 육손과 제갈근에게 양양(襄陽)을 공격하도록 했다. 육손은 신임하는 한편(韓扁)을 파견하여 손권에게로 가서 전쟁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그런데 한편은 돌아오는 길에 면중(沔中)에서 적을 만나 체포되었다. 제갈근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웠으므로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상은 이미 돌아왔고, 적군은 한편을 붙잡아 우리의 실정을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강물이 말랐으니 응당 급히 떠나야만 합니다.

육손은 이 편지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사람들을 재촉하여 순무와 콩을 심도록 하였으며 장수들과 평상시처럼 바둑을 두고 활쏘기 놀이를 했다. 제갈근이 말했다.

"백언(伯言)은 지략이 많으니,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직접 와서 육손을 만났다. 육손은 이렇게 말했다.

"적군이 주상께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또 걱정할 것이 없으며 우리에게 힘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이미 요충지를 지키고 있고, 우리 병사들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우리들은 마땅히 스스로 진정시켜 병사들을 안정시키고 다양하게 변하는 계책을 편후에 물러나야 합니다. 지금 곧바로 후퇴함을 나타낸다면, 적군은 당연히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가까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실패하는 형세입니다."

그리고 은밀히 제갈근과 계획을 세워, 제갈근은 배를 감독하게 하고, 육손은 병마를 타고 양양성으로 향하였다. 적들은 본래 육손을 꺼렸으므로 황듭히 성으로 되돌아갔다. 제갈근은 배를 이끌고 나오고, 육손은 천천히 대오를 정돈하면서 세력을 과장되게 나타내고 배를 따라 걸었으므로 적군은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대군이 백위(白圍)에 도착하자, 육손은 사냥하러 간다고 말하고서 은밀히 장군 주준(周峻)과 장량(張梁) 등을 파견해 강하군의 신시(新市), 안육(安陸), 석양(石陽)을 공격하도록 했다. 석양의 시장이 한창 시끄러울 때, 주준 등이 엄습해왔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물건을 버리고 성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성문이 닫혀 있자, 적군은 직접 자기 백성들을 죽인 연후에 성문을 열었다. 오나라 군대가 머리를 베거나 생포한 자는 모두 1천여 명이나 되었다.


신 송지가 보건데 육손은 손권이 후퇴하고 위나라가 자기 쪽으로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걱정했는데, 그가 거대한 위세를 나타내어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배를 타고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 아무런 근심도 없으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찌 부장들을 파견해 작은 현을 급습하고, 저자에 있는 자들을 놀라 달아나게 하고 부상당하거나 죽은 자까지 나오게 하겠는가? 천 명을 포로로 잡든 죽였든 위나라에 손해를 입힌 점에서는 부족한 것이므로, 단지 무고한 백성을 이유도 없이 가혹하게 처리한 것이다. 제갈량이 위수 유역(위빈)에서 전개한 군사행동과 비교하면, 어찌 육손이 더 훌륭하다 할 수 있겠는가! 용병의 이치를 위배하는 일은 규율을 잃어 흉악한 일이 이에 응하는 것이다. 그 집안이 이후 삼대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손자대에서 망한 것은 어찌 이 재앙이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생포된 자들은 모두 구호를 받았으며, 사병들로 하여금 침범하거나 속이지 못하도록 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투항해온 자들에게는 사람을 시켜 다방면으로 돌보도록 했다. 만일 처자식을 잃었다면, 즉시 옷과 식량을 공급하여두텁게 위로하여 돌려보냈는데, 간혹 감동하고 앙모하여 서로 손을 잡고 되돌아오는 자도 있었다. 이웃 지역의 백성들도 귀의했는데, 강하공조(江夏功曹) 조탁(趙濯), 익양비장(弋陽備將) 배생(裴生)과 이민족 왕(夷王) 매이(梅頤)등은 모두 수하의 무리들을 인솔하여 육손에게 와서 귀의했다. 육손은 재물과 비단을 기울여 이들을 돌아보고 보살폈다.


臣松之以為此無異殘林覆巢而全其遺{殼鳥},曲惠小仁,何補大虐?    


신 송지가 생각건대 이는 숲을 없애고 둥지를 뒤엎고서 새끼를 살려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소소한 은혜와 인자함이 어찌 커다란 포학을 보충할 수 있겠습니까?


또 위나라 강하태수 녹식(逯式)은 병마를 관리하는 권한을 쥐고 항상 오나라의 변방지역을 소란스럽게 하면서, 위나라 노장 문빙(文聘)의 아들 문휴()와 오랜 기간 화합하지 못했다. 육손은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자, 즉시 녹석에게 거짓으로 회신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절하고 측은한 편지를 받아보고 당신과 문휴가 오랫동안 불화로 틈이 벌어져 있으며 쌍방이 존재할 수 없는 형세이기 때문에 귀의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밀리에 당신에게서 온편지를 조정에 바치고 표를 올려 인마를 모아 영접하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몰래 신속하게 준비를 끝내고 다시 귀의할 시간을 알려 주십시오.

육손은 편지를 변방지역에 놓도록 했다. 녹식의 병사가 편지를 주워 녹식에게 보여주었다. 녹식은 두려웠으므로 직접 처자식을 호송하여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녹식의 관리와 병사들은 그에게 귀의하지 않았으므로 면직되었다.

臣松以為邊將為害,蓋其常事,使逯式得罪,代者亦復如之,自非狡焉思肆,將成大患,何足虧損雅慮,尚為小詐哉?以斯為美,又所不取。    

신 송지가 생각건대 변장이 해를 끼치는 것은 대체로 항상 있는 일이라 녹식으로 하여금 득죄하게 하여도 대체한 사람이 다시 똑같이 할 것이니 간사한 생각으로 장차 큰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어찌 족히 고명한 지혜를 일그러뜨려 오히려 작은 속임수를 사용하겠습니까? 이를 훌륭한 것으로 여긴다면 또한 취하지 않을 바입니다.


가화 6년(237), 중랑장 주지(周祗)가 파양에서 병사를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손권은 이 일을 육손에게 물었다. 육손은, 이 군의 백성들은 쉽게 동요하고 안정시키기 어려우므로, 소집에 응하도록 할 수 없다면 아마도 도적으로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지는 병사를 모집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 군의 백성 오거(吳遽) 등은 과연도적이 되어 주지를 살해하고 여러 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예장군과 여릉군의 옛 날부터 있던 사악한 백성들은 함께 오거에게 호응하여 도적이 되었다. 육손은 이 소식을 들은 즉시 토벌에 나서 격파시켰다. 오거 등은 서로 이어서 항복했다. 육손은 정예병사 8천여 명을 얻었고, 세 군을 평정시켰다.

당시 중서전교(中書典校)로 있던 여일(呂壹)이 요직을 훔쳐 차지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위세와 복을 마음대로 만들었다. 육손은 태상 반준(潘濬)과 함께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이에 관한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후에 손권이 여일을 주살하자 깊이 자책했다. 이에 관한 말은 <손권전>에 있다.

그때 사연(謝淵)과 사굉(謝厷) 등이 각각 마땅히 해야 할 일에 관해 진술하여 유익한 사업을 일으켜 바꿔 보려고 했다.

회계전록: 사연(謝淵)은 자가 휴덕(休德)이며, 어려서부터 직접 쟁기질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안색이 없었고, 또 장래의 뜻을 바꾸지 않았는데, 이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점점 승진하여 건무장군까지 이르렀다. 그는 비록 군대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유능한 인물을 발탁하려는 데 마음을 두었다. 낙통(駱統)의 아들 낙수(駱秀)라는 자가 있었는데, 일족들에게 비방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평판 또한 그것에 미혹되어 아무도 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사연은 이 일을 듣고 탄식하며 

“공서(公緖 ; 낙통)가 요절했을 때, 동맹국에 있는 자들까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의 아들은 뜻있는 행동과 분명한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매한 비방을 받고 있다. 식견있는 사람들이 이 일의 흑백을 분명하게 판단하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라고 했다. 낙수는 결국 무고했음이 밝혀졌고, 그 이후에 다시는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일이 없었으며, 끝내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이것은 사연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吳歷稱云,謝厷才辯有計術。    

오력이 칭하여 이르길 사굉은 재지와 지략이 있었다.


손권은 이 일을 육손에게 심의하도록 했다. 육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며, 강성함은 백성들의 힘에서 나오고, 재력도 백성들에게서 나옵니다. 백성이 풍족한데 국가가 빈약하거나, 백성은 빈약한데 국가가 강한 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얻으면 잘 다스리게 되고, 백성을 잃으면 혼란스럽게 됩니다. 만일 백성들이 이로움을 받고 있지 못한데도 힘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도록 한다면, 이것 역시 곤란합니다. 때문에 <<시경>>에서 `정치의 혜택이 백성들에게 마땅하고 사람들에게 마땅하면 하늘에서 녹을 받을 것이다` 라고 찬탄했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을 안녕되게 하고 구제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몇년 사이에 국가의 재력은 조금씩 넉넉해질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생각 하십시오."

적오 7년(244), 육손은 고옹을 대신하여 승상으로 임명됐다. 임명하는 조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은 덕행을 닦지 않은 몸으로 천명에 순응하여 제위에 올랐지만, 왕도(王塗)로 천하를 통일하지 못하여 간사한 자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짐은 아침 저녁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잠자리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오직 그대는 천부적인 자질과 총명함이 있어 미덕을 빛냈으며, 상장(上將)으로 임명되어 국가를 보좌하고 재난을 제거했다. 세상을 뒤덮을 정도의 공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크나큰 총애를 받아야만 되고, 문무(文武)의 재능을 갖고 있는 자는 반드시 국가의 중임을 맡아야 된다. 옛날 이윤(伊尹)은 탕()을 융성하게 했고, 여상(呂尚)은 주()왕조를 보좌하였는데, 현재 조정 안팎의 임무는 사실상 그대가 겸하고 있다. 오늘 그대를 승상으로 임명하여 사지절, 수태상(守太常)인 부상(傅常)으로 하여금 인수를 수여하도록 한다. 그대는 미덕을 드날려 아름다운 공업을 세우고 공손히 왕의 명령을 집행하여 천하를 어루만지고 평정시키라. 아! 삼공의 직책을 총괄하여 신하들을 훈도하니 공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는 노력하기를 바란다! 형주목, 우도호, 무창의 일을 겸임하던 것은 옛날과 같이 하라.

이보다 앞서, 태자와 노왕의 두 궁궐이 병립하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대부분 자제를 보대 임무를 받도록 했다. 전종이 이 일을 육손에게 보고하자, 육손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제들에게 만일 재능이 있다면 임용되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을 것 이므로, 마땅히 사적인 청탁으로 관리로 임명되어 영리를 구하짐 말아야만 된다. 만일 이 일을 훌륭하게 실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궁궐의 세력이 대적하고 있을 때는, 반드시 이쪽을 지지하는 파와 다른쪽을 지지하는 파가 대립관계가 있게 된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옛사람들이 매우 기피했던 것이다."

전종의 아들 전기(全)는 과연 노왕에게 아부하고 경솔하게 교제관계를 맺었다. 육손이 전종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김일제(金日磾)를 본받지 않고 아기(阿寄 ; 전기)를 비호 하였으니 당신의 가정에 재앙이 이를 것입니다.

전종은 육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다시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태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 불안하다는 의론이 있게 되자,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가 같이 말했다.

-태자는 정통이므로 마땅히 반석같은 견고함이 있어야 하고, 노왕은 번신(藩臣; 왕실의 내부를 지키는 신하)이므로 총애와 대우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두 사람이 피차 각각의 위치에 있어야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안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간절하게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며 저의 의견을 진술합니다.

그는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도성으로 가서 적자와 서자의 구분에 대해 직접 논의하여득실을 바로잡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의 의견을 듣고도 따르지 않았다. 육손의 외숙인 고담. 고승. 요신이 모두 태자에게 가까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육손은 무고하게 쫓겨나게 되었다. 태자태부 오찬은 육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왕래했다는 사실 때문에 옥에 갇혀 사망했다. 손권은 궁궐 안의 사자를 자주 파견하여 육손을 질책했다. 육손은 분노하고 통탄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고, 집에는 남은 재산이라고는 없었다.

당초 글염(暨豔)이 진영의 부서를 세우자는 여론을 조성했을 때, 육손은 이것을 경계하는 간언을 하면서 틀림없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육손은 또 제갈각(諸葛恪)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보다 높은 관직에 있는 자에게 반드시 받들어 함께 승진하고, 나보다 낮은 관직에 있는 자는 도와줍니다. 지금 당신을 보니, 기세는 윗사람을 능멸하고 있고, 마음은아랫사람을 멸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덕행의 기초를 안정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광릉 사람 양축(楊竺)이 젊었을 때 명성을 얻었지만, 육손은 그가 마침내는 패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양축의 형 양목()에게 그와는 별도로 가문을 세우도록 권유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이와 같았다. 육손의 맏아들 육연(陸)이 요절했으므로 차남 육항(陸)이 작위를 계승했다. 손휴가 제위에 있을 때 육손을 추증하여 시호를 소후(昭侯)라고 했다.

 [[육항전]]으로 분리
 [[육경전]]으로 분리


진수의 평:  유비는 천하에서 영웅으로 칭해지고 당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육손은 나이가 젊었을 때는 위세와 명성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적군을 공격하여 승리함에 있어서는 뜻대로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육손의 모략(謀略)을 높이 평가하며, 또 손권이 인재를 식별하였기 때문에 대업을 성취한 것을 찬탄한다. 육손은 충성스럽고, 간절하며 지극하여 국사를 걱정하다 죽었으니, 국가의 신하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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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13:24:36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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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6.23
16:40:54
(*.52.89.88)
고원님 블로그의 주석을 추가했습니다. 무재로 천거했다는 부분으로 출처는 http://blog.naver.com/krighty21/50026131831 이곳입니다.

코렐솔라

2013.07.03
01:48:47
(*.52.89.88)
육손은 주연과 낙통, 조비->육손은 주연과 낙통(駱統)과 의견을 같이하며 로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03
01:49:15
(*.52.89.88)
위나락->위나라로 수정

코렐솔라

2013.07.16
16:36:20
(*.0.203.140)
배주 추가

푸른미르

2013.09.03
14:41:22
(*.214.44.212)
이름에 대한 한자가 거의 다 틀려있네요

코렐솔라

2013.09.03
14:46:30
(*.0.203.46)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자료라 그런 듯 하군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몇 가지 지적해주시면 바로 수정하고 바쁘시면 제가 수업 끝난 다음에 수정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코렐솔라

2013.09.03
14:48:51
(*.0.203.46)
육강과 육적부터 틀려있군요 ㅋㅋㅋ 아 망할, 죄송합니다.

푸른미르

2013.09.03
14:56:05
(*.214.44.212)
육강과 육적 정도는 양호한 편이고 222년부터는 꽤 심해져요~

코렐솔라

2013.09.03
14:58:35
(*.0.203.46)
우돌도 틀리고 반림도 틀리고 현이름도 모조리 다 틀리고 장난 아니군요. 오늘 할 일은 이걸로 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통채로 다 수정해야겠군요. 오, 웬일로 비잔은 맞는 한자인데 이게 더 신기할 지경 ㅋㅋㅋ

코렐솔라

2013.09.03
16:42:40
(*.0.203.51)
모두 수정했습니다. 혹시 빠트린 것 없는지 한 번 봐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ㅠ 이것 때문에 엔하위키는 지금 뻘 한자들이 난무하네요 ㅜㅠ

푸른미르

2013.09.03
17:39:05
(*.111.11.183)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른기전도 살펴보다 보이면 말씀드릴게요~

코렐솔라

2013.09.03
15:04:35
(*.0.203.46)
무변장군 화정후, 번우까지 수정했습니다. 수업 끝나고 마저 하겠습니다.

코렐솔라

2013.09.03
15:23:25
(*.0.203.46)
오반까지 수정.

코렐솔라

2013.09.03
15:28:57
(*.0.203.46)
꺅, 胡王沙摩柯를 호왕(鎬王) 사마(師麻) 라고 해뒀군요. 사마가로 수정합니다.

코렐솔라

2013.09.03
15:31:31
(*.0.203.46)
군령까지 수정. 이 한자까지 막 바꿀 정도면 거의 일부러 그런건데요;;;

코렐솔라

2013.09.03
15:51:23
(*.0.203.46)
투압란까지 수정

코렐솔라

2013.09.03
15:57:25
(*.0.203.46)
통일 대도를 대유(大猷)로 수정 뜻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한자 모조리 다른 것을 보니 짜증나네요.

코렐솔라

2013.09.03
16:39:32
(*.0.203.51)
수정 완료했습니다. 육항전도 봐야겠군요. 분명히 문제 있을듯;;;

구라뱅뱅

2013.09.03
17:58:58
(*.49.168.253)
번역 누락
受曹公印綬,扇動山越,爲作內應,權遣遜討棧。棧支黨多而往兵少,
우두머리 비잔(費棧)이 조조의 인수를 받고 산월을 선동해 몰래 호응했다. 비잔의 무리는 많았지만 그곳으로 간 육손의 병사는 적었다.

權遣遜討棧。 부분이 누락됬네요. (손권은 비잔을 토벌하기 위해 육손을 보냈다.)

수정하자면
우두머리 비잔(費棧)이 조조의 인수를 받고 산월을 선동해 몰래 호응했다. 손권은 비잔을 토벌하기 위해 육손을 보냈다. 비잔의 무리는 많았지만 그곳으로 간 육손의 병사는 적었다.

코렐솔라

2013.09.03
18:00:06
(*.166.245.166)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런 부분은 모조리 놓쳤을 것입니다 ㅜ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추가했습니다.

구라뱅뱅

2013.09.04
15:24:32
(*.49.168.253)
黃武元年,劉備率大衆來向西界,權命遜為大都督、假節,督朱然、潘璋、宋謙、韓當、徐盛、鮮于丹、孫桓等五萬人拒之。
황무 원년(222),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서쪽 변방지역으로 향해 왔다.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부절을 주어 주연(朱然), 반장(潘璋), 송겸(宋謙), 한당(韓當), 서성(徐盛), 선우단(鮮于丹), 손환(孫桓) 등 에게 5만 명을 지휘하여 막도록 했다.

==> 假節 을 부절 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

코렐솔라

2013.09.04
15:32:38
(*.0.203.174)
확실하게 가절로 하겠습니다. 고유명사 한자 바꾸다가 진짜 지옥을 맛봐서 ㅜㅠ 엔하위키에 이걸로 인해 널린 똥 치우는 것도 힘들었어요.

코렐솔라

2013.09.04
15:33:01
(*.0.203.174)
육손의 조부와 부 내용은 구라 뱅뱅님 번역 http://rexhistoria.net/44393

코렐솔라

2013.09.04
19:16:17
(*.52.91.247)
오반 밑에 오서의 육손이 유비의 정공법을 걱정하는 것은 구다라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44590

사나이

2014.08.30
12:40:31
(*.103.140.13)
가화 5년(236년) 육손의 활약 기록에 대한 배송지 평의 해석 중
與諸葛渭濱之師,何其殊哉! 부분이
' 제갈양이 위수 유역에서 전개한 군사 행동과 무엇이 다른가! ' 로 되어있는데

何其殊哉! 는 ' 무엇이 다른가! ' 가 아니라,
' 어찌(何) 그것이(基) 더 훌륭하다(殊) 할 수 있겠는가!(哉) ' 로 해석되어야 할 듯 싶습니다.

지금 배송지의 평은 제갈량이 위빈(오장원)에서 둔전을 하면서도, 군사가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던 행적과의 비교를 통해
백성을 주륙한 육손의 행위를 비판하는 논조이며, 더불어 손자 대에서 집안이 끊겼다는 마무리 또한 육손에게 해당되는 일이지,
제갈량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 제갈량이 위수 유역(위빈)에서 전개한 군사행동과 비교하면, 어찌 육손이 더 훌륭하다 할 수 있겠는가! '
로 해석이 변경되어야 하지 않나 조심스레 말씀드려봅니다.

재원

2014.10.02
23:26:33
(*.95.66.186)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잠수기간 동안 자료들에 달린 모든 코멘트의 업로드가 끝났습니다. 사나이님 뿐 아니라 베네님, 비어마니아님, 푸른미르님께 감사드립니다.

코렐솔라

2016.04.13
00:14:02
(*.234.105.133)
육기가 육손의 명을 받아 지은 내용과 배송지가 둥지 뒤엎고 새끼를 살려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 녹식에 대한 대처에 대한 배송지의 평. 오력의 사굉에 대한 평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주석의 번역이 완료되었습니다.

http://rexhistoria.net/151557

코렐솔라

2018.08.14
10:53:15
(*.112.38.51)
http://rexhistoria.net/161532 의 지적에 따라 60->63세로 수정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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