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전]]에서 분리


육경(陸景)의 자는 사인(士仁)이고,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도위로 임명되었고, 비릉후(毗陵侯)로 봉해졌으며, 육항의 군대를 통솔하게 된 후에는 편장군ㆍ중하독(中夏督)으로 임명됐다. 그는 몸을 닦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수십 편의 저서가 있다. (주)


문사전(文士傳):

육경의 어머니는 장승(張承: 178 ~ 244: 장소의 아들)의 딸로 제갈각(諸葛恪)의 친척이다.(제갈각은 제갈근(174-241)의 장남. 제갈근의 딸이 장소와 결혼했음) 제갈각(203-253)이 살해당하자 육경의 어머니도 집안에서 ㅤ쫒겨났다. 육경은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죽자 육경은 심상(心喪: 상복(喪服)은 입지 않되 상제(喪制)와 같은 마음으로 근신(謹身)하는 일)을 삼년간 했다.


2월 5일, 육안이 왕준의 별군(別軍)에게 살해되었다. 2월 6일, 육경 또한 살해되었는데 당시 31세였다. 육경의 처는 손호의 친동생이며, 육경과 함께 장승(張承)의 외손이다.


육경의 동생 육기(陸機: 260-303)는 자가 사형(士衡)이고 또다른 동생 육운(陸雲: 262-303)은 자가 사용(士龍)이다.


기운별전(機雲別傳): 

진나라 태강(太康)년 말에, 형제가 낙양에 들어와, 사공(司空) 장화(張華)를 만났는데, 장화가 한번에 그들을 보자 높게 평가하며 말했다. "오나라를 격파하고 얻은 최고의 수확은 이 두사람의 준걸을 얻은 것이다". 곧 이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였다.태부(太傅) 양준(楊駿: ?-291)은 육기를 제주(祭酒)로 임명했고, 태자(太子) 세마(洗馬: 관직이름), 상서(尚書) 저작랑(著作郎)이 되었다. 


육운은 사마염(司馬炎)의 아들인 오왕(吳王)인 사마안(司馬晏)의 랑중령(郎中令)이 되었으며, 지방에 나가서 준의(浚儀) 지역을 다스렸으며, 혜정(惠政: 은혜로운 정치)를 하여, 백성들이나 관리들이 깊이 따라, 육운이 살아있을때 이미 사당이 세워졌다. 후에 육운과 육기 형제는 둘다 높은 지위에 올랐다. 육기의 하늘이 준 재능 부터의 재능은 비단처럼 다듬어져 [天才綺練], 문장의 아름다움의 점에서는 [文藻之美] 당대 제일이었다.


육운은 또 속문(屬文: 글을 이리 저리 문구를 얽어서 글을 지음)에도 능했는데,그러니 청신(清新: 작품의 신선도)의 측면에서는 육기에 못 미쳤으나, 구두로 의견을 말하거나 사람들과 논의를 싸울때에는 [口辯持論] 육기를 능가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조정에서는 황태자들이 권력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육기와 육운은 ---사마염의 아들---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이랑 친하였다. 사마영은 육기를 평원국(平原相)에, 그리고 육운을 청하내사(清河內史)로 임명했다. 육운은 곧 우사마(右司馬)가 되었고, 깊은 신임을 받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장사왕(長沙王)과의 사이가 틀어져, 사마영은 곧 병력을 이끌고 낙양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육기는 후장군(後將軍)으로 참여하게 되어, 왕수(王粹)와 견수(牽秀: 견초의 손자)등의 군사 20만명을 이끌었다. 사용(士龍: 육운)은 남정부(南征賦)를 써서, 그 군사행동을 칭찬했다. 육기는 오나라 사람으로 멀리 떨어진 땅에 관직에 올라 유력한 지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사람들 위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진심으로 복종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육기는 수차례 전투에 나섰지만 자주 패하여, 죽거나 도망간 병사가 반이 넘었다.


예전에 환관인 맹구(孟玖)는 사마영의 총애를 받고 있어 권력을 남용하고 있었고, 이에 육운은 수차례 맹구의 단점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사마염은 육운의 조언을 듣지 않았고, 맹구는 곧 원한을 품었다. 이 싸움에서 맹구의 동생 맹초(孟超)도 군사들을 지휘하며 육기의 지휘하에 놓여 있었는데 맹초는 군령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육기가 그를 법에 따라 처벌할려고 하자 맹초는 육기가 장차 반란을 꿈꾸고 있다고 하였다. 곧 견수(牽秀)등도 사마영을 찾아가 육기를 비난하면서, 육기가 적과 아군 사이에 양다리를 걸고 있다고 하였고, 맹구도 영내에서 육기를 비난하고 있었으므로, 사마영은 사람을 보내 육기를 체포하게 하고 덩달아 육기의 동생 육운, 그리고 또다른 동생 육탐(陸耽)도 잡아들여, 모두 사형에 처했다. 육기 형제들은 이미 강남의 수재들로 역시 제하(諸夏: 중국본토)에서도 이름이 유명했는데, 죄도 없이 몰살 당하게 되자 천하의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육기의 문장들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높게 평가되었고, 육운의 저서도 역시 후세에 전해졌다. 예전에 육항이 보천을 죽일때 어린 아이[嬰孩: 영해]까지 죽였는데, 당연하게 사람들을 이를 두고, "육항의 후세들은 필히 그 재앙을 만날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결국에 육기가 죽게 되고 육씨의 세가족이 후세가 없어졌다.


손혜(孫惠)가 주탄(朱誕)에게 준 편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마원(馬援: BC 14-AD 49)이 공직에 나올때는, 좋은 주군을 골라서 했다는 일화는 일반 사람들도 모두 들어서 알고있는데, 지금 육시의 삼형제가 모두 폭악한 조정에 들어가 같이 어울리다가 떼죽음을 당했으니 슬픈 일이다." 이 이야기는 진서에도 있다.


* 평하여 말한다. ― 유비는 천하에서 영웅으로 칭해지고 당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육손은 나이가 젊었을 때는 위세와 명성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적군을 공격하여 승리함에 있어서는 뜻대로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육손의 모략(謀略)을 높이 평가하며, 또 손권이 인재를 식별하였기 때문에 대업을 성취한 것을 찬탄한다. 육손은 충성스럽고, 간절하며 지극하여 국사를 걱정하다 죽었으니, 국가의 신하라고 할 만하다. 육항은 바르고 책략과 재간이 있었으며, 부친의 풍모를 전부 갖고 있어 대대로 사람들에게 찬미되었고,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선친에 비해 약간 못했지만 부친의 사업을 완성시킨 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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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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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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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1
21:54:39
(*.52.89.88)

오타가 있습니다. ㅉㅗㅈ겨났다를 쫓겨났다로 수정부탁드립니다.

코렐솔라

2013.05.02
09:17:55
(*.52.89.212)

오타 수정 및 주석인데 처리 안 된 것 처리 완료

코렐솔라

2013.07.16
16:43:50
(*.0.203.140)
추가할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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