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전]]에서 분리


육윤(陸胤)은 자가 경종(敬宗)이고 육개의 동생이다. 그는 처음에 어사ㆍ상서선조랑으로 임명되었으며, 태자 손화가 그의 명성을 듣고 남다른 예절로써 대우했다. 마침 전기와 양축 등이 노왕 손패에게 붙어 아부하고, 손화와 분쟁이 생겨 은밀히 서로 모함을 하게 되자, 육윤은 여기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가혹한 형구를 모두 사용했지만, 그는 끝까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2]이후에 육윤은 형양독군도위(衡陽督軍都尉)로 임명됐다. 적오 11년(248), 교지(交 )나 구진(九眞)의 이민족 도적들이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교주(交州)에 소동이 일어났다. 육윤을 교주자사ㆍ안남교위로 임명했다. 육윤은 남족 경계로 들어가 은혜와 신의로써 이들을 계도하고 불러 받아들이는 일에 진력하여 고량의 우두머리 황오(黃吳) 등의 무리 3천여 호가 모두 나와 투항했다. 군대를 인솔해 남하하여 더욱더 지극한 정성을 펴고 재물과 예물을 보냈다. 도적의 우두머리 1백여 명, 백성 5만여 호는 깊은 산 속에 숨어 살았으므로 지배를 받지 못했었는데,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게 되어 교주 지역은 맑아지고 안정되었다.

오록(吳録)에서 이르길: 태자는 페출될 것을 두려워했고, 노왕은 불손한 태도가 더욱 심했다. 손권은 당시 양축(인명)을 보고 측근에 있는 자들을 물린 후 손패의 재능에 관하여 논의했다. 양축은, 손패에게는 문무 양면에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으므로, 마땅히 정식 후계자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진술했다. 그래서 손권은 손패를 태자로 세우기로 약조했다.

그런데 측근에 있는 자가 평상 밑에 엎드려 있다가 이 말을 듣고 태자에게 알렸다. 마침 육윤은 무창에 이르러 태자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태자는 미복으로 육윤의 수레 위로 올라가 함께 은밀히 이를 논의하고, 육손으로 하여금 표를 올려 간언하도록 했다. 그후 육손이 표를 올려 강력하게 진언하자. 손권은 양축이 이 사실을 누설하였을 것으로 의심했다. 문책을 받게 된 양축은 이를 부인했다.

손 권은 양축을 풀어주고, 이 일이 어떻게 누설된것인지 연유를 찾도록 했다. 양축은 육윤만이 서쪽으로 갔으니, 반드시 그가 말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 사자를 보내어 육손에게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된것이냐고 묻자. 육손이 육윤이 알려주었다. 라고 했기 때문에 육윤을 불러 고문하게 되었다. 육윤은 태자에게 죄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양축이 신에게 말했습니다."

라고 했다. 그래서 양축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양축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이런 거짓을 자신이 말했다고 시인하게 되었다. 손권은 애초에 양축을 의심했었는데 양축이 이를 시인하자 예상했던 바 그대로 였다며 양축을 처형시켰다.


육윤은 안남장군을 더하게 되었다. 또 창오(蒼梧)와 건릉(建陵)의 도적들을 토벌하러 가서 무찔렀다. 앞뒤로 항복한 자들 중에서 8천여 명을 병사로 삼아 군사상의 수요를 채웠다. 영안 원년(258), 육윤은 불려가 서릉독이 되었고 도정후로 봉해졌으며, 이후에 전임되어 호림(虎林)에 있게 되었다. 중서승 화핵이 표를 올려 육윤을 천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육윤은 천부적인 자질이 총명하고 재능은 모든 일에 통하며 품행은 깨끗하고, 이전에 선조(選曹)의 직책을 역임하면서 남긴 사적은 후세의 모범으로 기록할 만합니다. 교주로 돌아와 있으면서 조정의 은전을 베풀어 떠도는 백성들이 그에게 돌아와 의탁하게 되어 바다 구석이 정숙해졌습니다. 창오와 남해에는 해마다 장기( 氣)의 독해가 있습니다. 폭풍이 불면 나무가 부러지고, 모래가 날리면 돌이 뒹굽니다. 장기는 안개처럼 조밀하여 날아가는 새도 길을 가지 못합니다. 육윤이 교주에 도착한 이후부터 폭풍과 장기는 끊어져 상인들은 평안하게 왕래하고 백성들에게는 역병이 없게 되었고 농가에는 풍부한 수확이 있게 되었습니다. 교주의 관소는 바다에 임해 있어 바닷물이 흘러들어올 때는 염해를 입었는데, 육윤은 또 물을 저장하여 백성들에게 맛난 식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은혜로운 바람이 대지를 두루 뒤덮고 인간과 신령을 감화시키며, 결국에는 황상의 위세에 의지하여 유리된 백성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그가 조서를 받고 임지로 떠났을 때, 백성들은 그의 은혜에 감격하여 옛 땅에 연연해하는 마음을 잊고 노인을 등에 업고 어린아이를 붙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자처럼 따랐으며, 사람들 중에서 두 마음을 품는 자가 없었고, 호위를 맡은 병사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들이 무리들을 모은 이래로 모두들 위세로 상대방을 협박했지, 육윤과 같이 은혜와 신의로써 단결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육윤이 교주에서 명을 받은 지 10여 년이나 되었고 빈객들은 특수한 풍속이 있고 진귀한 보석이 생산되었는데, 그의 집안에는 화장을 하여 꾸민 처첩이 없었고, 실내에는 무늬있는 거북이나 무소뿔이나 상아 같은 진귀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신하들과 비교하면, 실재로 많이 얻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그를 수도에 있게 하여 왕실을 보좌하여 당(唐)이나 우(虞) 시대처럼 편안한 송가(頌歌)를 바치도록 하십시오. 장강 해안가의 임무는 가벼워 그의 재능을 전부 발휘하게 하지 못하고, 호림독에서는 임무를 어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일 그를 불러 경도로 돌아오도록 하여 고급 관직으로 임용해 총애한다면, 하늘이 부여한 사명은 모두 잘 완성되고 모든 공적이 전부 활발히 흥성할 것입니다. ―

육윤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육식(陸式)이 작위를 계승했으며, 시상독과 양무장군으로 임명됐다.


천책(天策) 원년(275), 육식은 당형 육위(陸褘)와 함께 건안으로 쫓겨났다.

천기 2년(278), 육식은 건업으로 불려 돌아왔으며, 장군의 직무와 후의 작위가 회복되었다.

* 평하여 말한다. ― 반준(潘濬)은 공정하고 청렴하며 과단성이 있다. 육개(陸凱)는 충성스럽고 호방하며 질박하고 솔직하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절개가 빛났으며 대장부의 기백이 있었다. 육윤(陸胤)은 일신을 청결히 하고 사업을 이루었으며, 남쪽 땅에서 명성이 빛났으므로 훌륭한 목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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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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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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