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패(孫霸)는 자가 자위(子威)이고 손화의 동생이다. 


손화가 태자(太子)로 임명되었을 때 손패(霸)는 노왕(魯王)이었는데, 총애와 특별한 대우에 있어서는 손화와 다름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손화와 손패가 화목하지 않다는 소리가 손권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손권은 사람들의 왕래를 금지시켜 끊도록 하고 그 시간에 학문에 정진하도록 했다. 독군사자(督軍使者) 양도(羊茞)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이 듣기로는, 옛날에 천하를 소유한 사람은 모두 우선 적자(適)와 서자(庶)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자제들에게 봉토를 나누어 주어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조종(祖宗)을 존중하며 국가의 방위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 궁궐이 각기 태자와 노왕(吳)으로 책봉되었을 때 사해 안에서는 마땅한 처사라고 칭찬했으며, 이것은 위대한 오나라가 흥성하여 융성해질 기초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두 궁궐이 동시에 빈객을 거절한다는 말을 듣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사람들은 놀랐으며 크고 작은 관원들은 실망했습니다. 

저는 사사로이 아랫사람들의 의론 중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집하였는데, 모두 두 궁궐에 있는 자는 지혜가 통달하고 영재가 무성하며, 신분을 세우고 명호를 확정시킨 이래로 오늘까지 3년이 되었는데, 덕행은 안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명성은 밖에서 빛나 서쪽과 북쪽 두 모퉁이에서도 오래 전부터 그들의 명망을 듣고 복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덕정(德)에 귀순하기를 갈망하는 것에 순응하여, 두 궁궐에서 사방 먼 곳의 빈객들을 초청하도록 명해 다른 나라로 하여금 그들의 명성을 듣게 한 후 그들의 노복이 되기를 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이 점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히려 조서를 내려 그들의 방위를 감소시키고 빈객을 거절하도록 하여 사방의 예의와 경의로 하여금 다시는 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실제로 폐하께서는 고대의 도의를 숭상하여 두 궁궐로 하여금 학문에만 뜻을 전념하여 다시는 미소한 일을 생각하고 관찰하거나 듣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역사 경험을 익혀 광범위한 사물을 숙지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신들이 머리를 길게 하고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두 궁궐이 전장 제도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신이 앉으나 누우나 편안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설령,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과 같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보충 조사하고 세밀하게 고려하여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사람들로 하여금 유언비어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이 두려운 것은, 의심이 쌓여 비방이 되고, 시간이 오래 흐르면 이 사실이 사방으로 전해질 것이고, 서쪽과 북쪽의 두 모퉁이는 우리 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므로 이동(異)의 말은 쉽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전해지는 날이면, 여론은 반드시 일어나 두 궁궐은 순리를 따르지 않은 죄가 있으며, 폐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이 점을 다른 나라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면, 또한 국내의 백성들에게도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국내의 백성들이 의심하고, 다른 나라에서 훼방을 일으킨다면, 웅대한 사업을 발전시키고 사직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일찍 우수한 조서를 발표하여 두 궁궐로 하여금 처음과 같이 훌륭한 인물들과 예의로써 왕래하고 임명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천지가 맑고 편안해질 것이며 만국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

당시 전기(全寄)ㆍ오안(吳安)ㆍ손기(孫奇)ㆍ양축(楊竺) 등은 함께 손패(霸)에게 기대어 태자(太子)를 위해할 일을 은밀히 도모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함과 비방이 행해진 후, 태자는 패하여 몰락하게 되었고, 손패 역시 죽음을 받았다. 

양축의 시신은 강물에 버려졌고, 그의 형 양목(穆)은 양축(竺)에게 여러 차례 간언하여 경계시켰으므로 큰 형벌은 면했지만 남쪽 주(州)로 유배되었다. 손패가 죽음을 받게 된 후, 또 전기(寄)ㆍ오안(安)ㆍ손기(奇) 등은 주살되었다. 모두 손패와 결탁하여 손화를 무함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손패에게는 두 아들, 손기(基)와 손일(壹)이 있었다. 오봉(五鳳) 연간에 손기를 오후(吳侯)로 봉하고 손일을 완릉후(宛陵侯)로 봉했다. 손기는 궁궐 안에서 손량(孫亮)을 모셨는데, 태평(太平) 2년(257)에 어마(御馬)를 훔쳐 탔으므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손량은 시중(侍中) 조현(刁玄)에게 질문했다.

“어마(御馬)를 훔쳐 탄 죄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조현이 대답했다.

“법률에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노왕(魯王)은 요절했으니, 폐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십시오.”

손량이 말했다.

“법이란 천하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켜야 되는 것인데, 어떻게 가까운 사람을 아끼려는 까닭으로 해서 치우침이 있겠소? 당연히 그를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 문제를 처리하겠소?”

조현이 말했다.

“과거 사면에는 크고 작음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천하를 범위로 했고, 또 천 리나 오백 리 이내를 범위로 하여 자기 마음에 따라 사면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량이 말했다.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사면의 범위를 궁궐 안으로 하였고, 손기는 이 때문에 형벌을 면했다. 손호(孫皓)가 즉위하자 손화(和)와 손패(霸)가 옛날에 틈이 있었던 것을 좇아 손기(基)와 손일(壹)의 작위와 봉토를 삭감사키고, 조모(祖母) 사희(謝姬)와 함께 회계군(會稽) 오상현(烏傷縣)으로 유배시켰다.

진수의 평: 손패(霸)는 서자(庶)의 신분으로 적자(適)의 지위를 구했고, 손분(奮)은 법령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아 진실로 위험하고 멸망하는 길을 취했다.
분류 :
오서
조회 수 :
3697
등록일 :
2013.05.01
13:28:19 (*.148.50.141)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031/9b4/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031

코렐솔라

2013.07.10
16:22:30
(*.104.141.18)
으익, 얘는 주석 없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72203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80056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30705
70 오서 육개전 [3] 견초 2013-05-01 4785
69 오서 반준전 [7] 견초 2013-05-01 5256
68 오서 종리목전 [4] 견초 2013-05-01 4479
67 오서 주방전 [10] 견초 2013-05-01 4271
66 오서 여대전 [14] 견초 2013-05-01 5383
65 오서 전종전 [4] 견초 2013-05-01 5680
64 오서 하제전 [10] 견초 2013-05-01 5516
63 오서 손분전(오서 14권, 손패의 동생) [1] 견초 2013-05-01 3828
» 오서 손패전 [1] 견초 2013-05-01 3697
61 오서 손화전 [3] 견초 2013-05-01 4947
60 오서 손려전 [2] 견초 2013-05-01 3899
59 오서 손등전 [2] 견초 2013-05-01 5153
58 오서 육경전(육손의 손자들) [3] 견초 2013-05-01 4962
57 오서 육항전 [3] 견초 2013-05-01 7423
56 오서 육손전 [27] 견초 2013-05-01 12940
55 오서 주거전 [2] 견초 2013-05-01 4154
54 오서 오찬전 [2] 견초 2013-05-01 3820
53 오서 육모전 [2] 견초 2013-05-01 3860
52 오서 낙통전 [2] 견초 2013-05-01 4094
51 오서 장온전 [3] 견초 2013-05-01 4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