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분(孫奮)은 자가 자양(子揚)이고 손패(霸)의 동생이다. 손분의 어머니는 중희(仲姬)라고 불렀다.

태원(太元) 2년(252), 손분은 제왕(齊王)으로 세워졌으며 무창(武昌)에서 거주했다. 손권(權)이 세상을 떠난 후, 태부(太傅) 제갈각(諸葛恪)이 여러 왕들을 장강가의 군사 요충지에 있게 하지 않으려고 손분을 예장(豫章)으로 옮겼다. 이에 손분은 노여워하며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또한 법도를 넘는 행동을 여러 차례했다. 제갈각은 편지를 바쳐 간언했다.

- 제왕(帝王)의 존귀함은 하늘과 같은 지위입니다. 이 때문에 제왕은 천하를 집으로 여기고 부모와 형제를 신하로 여기며, 사해(四海)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노복입니다. 원수이지만 선행이 있으면 추천하지 않을 수 없고, 친척이지만 악행이 있으면 주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천명을 이어받아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국가를 앞에 두고 자신을 뒤에 두는 것으로, 아마도 성인이 세운 법도이고 백대에 바뀌지 않는 이치인 것입니다. 


옛날 한(漢)왕조가 막 창립되었을 때, 많은 자제들을 왕으로 삼았으며, 이들의 세력이 매우 강하여 항상 불법적인 행동을 하였으므로 위로는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했고 아래로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의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이 이후로 이 일을 인용하여 경계로 삼고 크게 꺼리게 되었습니다. 광무(光武) 이래부터 각 왕들에게 규제가 있게 되었는데, 오직 궁궐 안에서만 스스로 즐길 수 있을 뿐, 백성들과 접촉하거나 정사에 간여할 수 없게 했으며, 왕들과 왕래함에 있어서도 모두 엄격한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안전해지고 각각 자신의 복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전 시대의 성공과 실패의 실례입니다. 가까이로는 원소(袁紹)와 유표(劉表)가 각기 국토를 점유하고 있었으며, 토지는 협소하지 않고 사람들은 허약하지 않았는데,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종묘의 제사를 끊어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어리석은 자든 지혜로운 자든 간에 공동으로 탄식하고 고통스러워한 것입니다. 

고인이 된 황제께서는 옛 것을 보고 오늘날의 일을 경계하였고, 이러한 근심을 싹틔워 발전시킨 것은 천 년 후의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질병으로 누워있을 때, 각 왕들을 나누어 파견하여서 각기 일찍 봉읍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으며, 조서는 매우 간절했고 법률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가 경계하여 명령한 것은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확실히 위로는 종묘를 안정되게 하고 아래로는 각 왕들을 보전하여 백대가 서로 이어지게 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후회가 없도록 하려고 한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위로는 주나라 시대의 태백(太伯)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고, 중간에는 하간헌왕(河間獻王 : 유덕)과 동해왕(東海王 : 유강)의 공경하는 기절을 생각하고, 아래로는 교만하고 방자하고 음란함을 눌러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제가 듣기로는 당시은 무창(武昌)으로 온지 오래되지 않아, 여러 조서를 어기고 제도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독자적으로 많은 장수와 병사들을 동원하여 궁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또 주위에서 항상 따르는 자들로 죄나 허물이 있는 자는 응당 표를 올려 보고하여 담당 관리에게 넘겨주어야만 하는데, 마음대로 사사로이 죽여 사건을 명백히 하지 않았습니다. 

대사마(大司馬) 여대(呂岱)가 선제의 조서를 직접 받아 대왕을 보좌하여 인도하는 일을 맡았지만, 당신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쓰지 않았으므로 그로 하여금 근심하고 두려워하도록 했습니다. 화기(華錡)는 선제의 측근에 있던 신하로 충성스럽고 선량하며 정직한 사람이므로 그가 진술한 이치는 마땅히 받아들여 사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의 의견을 듣고 화기에게 화를 내며 그의 말을 붙들어 매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중서(中書) 양융(楊融)은 직접 조서를 받았고, 그가 담당하고 있는 사무는 공경스럽고 엄숙한데도 당신은, ‘나 스스로 금령을 듣지 않는데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대, 크고 작은 관리들은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으며 마음이 섬뜩함을 느끼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밝은 거울은 형체를 비출 수 있고, 옛 일은 현재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노왕을 경계로 삼아 그 행동을 바꾸어 조심하고 근신하며 진심으로 조정을 공경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당신은 구하여 얻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선제의 법제와 가르침을 버리고 있어서 경솔하고 오만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신하는 차라리 대왕을 저버리지 감히 선제께서 남긴 조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차라리 대왕에게 원망과 질시를 받지 어찌 감히 존귀한 군주의 위엄을 잊어버리고 조서를 하여금 번신(藩臣)에게 실행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고금의 정확한 도의이며, 대왕께서 명백히 한 것입니다. 

복이 온 것은 원래 말미암은 것이고, 화가 오는 것은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재앙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서 걱정하지 않으면 장래에는 후회할 가능성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노왕이 일찍 충직한 말을 받아들여 놀라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품었다면 복을 끊임없이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며, 어찌 멸망의 재앙이 있겠습니까? 좋은 약은 입에 씁니다. 오직 질병을 앓고 있는 자만이 단맛을 알 수 있습니다.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립니다. 오직 통달한 자만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현재서 제갈각(恪) 등은 진심으로 대왕(大王)을 위해서 위태로움의 싹을 제거해 행복과 길상의 근원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말이 분수에 넘음을 알지 못했는데, 세 번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

손분(奮)은 제갈각의 편지를 받고 두려웠으므로, 결국 남창(南昌)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유렵(游獵)하는 것이 더욱 심해졌으며, 소속 관원들은 그의 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제갈각이 주살되자, 손분은 강을 따라 내려와 무호(蕪湖)에 머물면서 건업(建業)으로 가 변화 양상을 관찰하려고 했다. 부상(傅相) 사자(謝慈) 등이 손분에게 간언하자, [주] 손분은 그들을 죽였다. 


[주] 사자(謝慈)의 자는 효종(孝宗)으로 팽성(彭城)사람이다. 見禮論,撰喪服圖及變除行於世。

그는 이 일로 인해 폐출되어 서민(庶人)이 되었고, 장안현(章安縣)으로 쫓겨났다.

태평(太平) 3년(258), 그는 장안후(章安侯)로 봉해졌다.

건형(建衡) 2년(270), 손호(孫皓)의 좌부인(左夫人) 왕씨(王氏)가 죽었다. 손호는 슬퍼하는 마음이 너무 심하여 아침 저녁으로 곡을 하고 몇 달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로부터 민간에서는 손호가 죽었다 하여, 손분과 상우후(上虞侯) 손봉(奉) 중에서 즉위해야 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손분의 모친 중희(仲姬)의 묘지는 예장(豫章)에 있었는데, 예장태수(豫章太守) 장준(張俊)은 소문이 진짜라고 생각하여 묘지를 청소했다. 손호는 이 일을 듣고, 장군은 거열형(車裂)에 처하고 삼족(三族)을 멸했으며, 손분과 그의 다섯 아들을 주살시키고 봉읍을 없앴다. [주]

[주] 강표전에 이르길: 예장군의 관리 10명이 장준을 대신하여 사형되기를 원했지만, 손호를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손분은 이 일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되어 본래는 장안(章安)에 있었지만, 오성(吳城)으로 돌려보내져 감금됐다. 그 아들과 딸들에게는 결혼이 금지되었으므로 어떤 자는 30 혹은 40이 되었어도 배우자를 얻지 못했다. 손분은 표를 올려 자신을 금수(禽獸)에 비교하고 아들과 딸이 서로 배우자 얻기를 읍했다.

손호는 매우 노여워하며 전쟁을 살피는 관리를 보내 손분에게 독약을 내렸다. 손분은 독약을 받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노신은 자식들로부터 생활을 구하고 국사에는 간여하지 않을 것이니, 여생을 보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그러나 손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부자가 모두 약을 마시고 죽었다.

[주] 신송지가 보건데 건형 2년 270년에 손분이 죽었는데, 그때는 손호가 즉위한지(264년) 오래되었을 때가 아니다. 손분이 손호의 의심을 사기 전이라면 딸 아이들의 나이가 잘해봐야 20 전후였을 것이니, 손분이 죽었을때 30이 되고 40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큰딸이 이미 다 컸더라도 아직 혼기를 놓지지는 않았을 것이니, 딸아이가 배우자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가 손호가 막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로지 손호를 욕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일 뿐으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평하여 말한다.

손등(孫登)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이 있고, 아주 아름다운 덕행을 이루기에 충분했다. 손려(慮)와 손화(和)는 모두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고 엄격하게 자신을 연마했지만, 어떤 사람은 단명하여 일찍 죽었고, 어떤 사람은 부득이 죽게 되었으니, 애석하구나! 손패(霸)는 서자(庶)의 신분으로 적자(適)의 지위를 구했고, 손분(奮)은 법령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아 진실로 위험하고 멸망하는 길을 취했다. 그러나 손분과 그 일족이 주살된 것은 뜻밖에 날아온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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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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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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