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전(賀齊傳)

하제는 자가 공묘(公苗)이고 회계군 산음 사람이다.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서 이르길: 하(賀)씨는 원래 경(慶)씨 성이었다. 하제의 백부(伯父) 경순(慶純)은 학자로서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판을 들었고, 한 안제 시대에 시중과 강하(江夏)태수로 임명됐다. 이후 그는 관직을 떠났지만, 강하의 황경(黃瓊), 한중(漢中)의 양후(楊厚)와 함께 추천되어 빈수레가 그들을 모시러 왔다 [公車徵]. 그때 황제 안제(安帝)의 부친인 효덕황제(孝德皇帝)의 휘를 피해 성을 하씨로 바꾸었다.

젊어서 군의 관리로 임명되었고, 섬현(剡縣)의 장을 대행했다. 현의 관리 사종(斯從)은 경솔하고 협기가 있어 간사한 행동을 했다. 하제가 그를 다스리려고 하자, 주부가 다음과 같이 간언을 했다.

“사종은 현의 호족이며 산월 사람들이 그를 의지하고 있으므로 오늘 그를 다스리면 내일 도적이 이를 것입니다.”

하제는 이 간언을 듣고 매우 노여워하며, 즉시 사종을 참수시켰다. 사종의 종족과 무리들은 마침내 서로 규합하여 천여 명이 병사를 들어 현을 공격했다. 하제는 관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돌격하여 크게 격파시켰으며, 그의 위세는 산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이후 태말현(太末縣)과 풍포현(豊浦縣)의 백성들이 모반을 일으키자, 하제는 태말현의 장으로 전임되어 사악한 사람들을 주살시키고 양민을 보호하여 한 달 만에 완전히 평정됐다.

건안 원년(196), 손책이 회계군에 임하여 하제를 관찰하고 효렴으로 천거했다. 이 당시 왕랑(王郞)이 동야(東冶)로 달아나자, 후관(候官)의 장 상승(商升)이 왕랑을 위해 병사를 일으켰다. 손책은 영녕현(永寧縣)의 장 한안(韓晏)을 파견하여 남부도위를 겸임하도록 하고 병사를 인솔하여 상승을 토벌하도록 했으며, 하제를 영녕현의 장으로 임명해다. 한안이 상승에게 패배하자 하제가 또 한안을 대신하여 도위의 일을 겸임하게 되었다. 상승은 하제의 위세와 명성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신을 보내 맹약을 맺기를 요청했다. 하제는 이 기회에 상승을 깨우치고, 아울러 화와 복이 만들어지는 것에 관해 진술했다. 상승은 결국 인수를 보내오고 진영을 나와 투항을 구했다. 

도적의 우두머리 장아(張雅)와 첨강(詹彊) 등이 상승의 투항을 원하지 않았다. 상승이 돌아오자 이들은 함께 상승을 죽였으며, 장아는 무상장군(無上將軍)으로, 첨강은 회계태수로 칭했다. 당시 도적의 수는 성대하고 하제의 병사는 적었으므로 토벌할 수 없자, 하제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병사들을 쉬도록 했다. 장아와 사위 하웅(何雄)이 세력을 다투어 두 사람 사이가 어그러지자, 하제는 산월 사람들로 하여금 이들의 불화를 틈타 쌍방에게 동시에 항쟁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의심하고 틈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서로 병력을 파견해 상대방을 공격하였다. 하제는 곧 진군하여 토벌하러 가서 한 번의 싸움으로 장아를 크게 격파시켰고, 첨강의 무리는 놀라고 두려워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나와서 항복했다.

후관이 평정된 후, 건안(建安), 한흥(漢興), 남평(南平)에서 또 소란이 일어났다. 하제는 건안으로 병사를 진군시키고 도위부(都尉府)를 세웠다. 이 해는 건안 8년(203)이다. 군에서는 소속 현의 병사 5천 명을 보냈는데, 각각 그 본래 현의 장으로 하여금 이들을 인솔하도록 하엿으며, 모두 하제의 지휘를 받았다. 도적 홍명(洪明), 홍진(洪進), 원어(苑御), 오면(吳免), 화당(華堂) 등 다섯 명이 각기 1만 호를 인솔하여 진영을 이루어 한흥에, 오오(吳五)의 6천 호는 별도로 대담(大潭)에, 추림(鄒臨)의 6천 호는 따로 개죽(蓋竹)에 주둔하였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여간(餘汗)으로 침범했다. 대군은 한흥을 토벌하러 가면서 여간을 지나게 됐다. 

하제는 도적은 많은데 병사는 적었으므로 깊숙히 들어갔다가 후원 부대가 없게 된다면, 아마도 적에게 퇴로를 끊기게 되 것으로 생각하고 송양현(松陽縣)의 장 정번(丁蕃)에게 여간에 남아 지키도록 했다. 정번은 본래 하제와 이웃하는 성을 다스리고 이었는데, 하제의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치욕스럽게 여겨 남아서 지킬 수 없다고 사양했다. 

하제는 곧 정번을 참수시켰다. 그래서 군대 안의 사람들은 놀라 전율하였으며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병사들을 나누어 여간에 남아 수비하도록 하고 나서 진군하여 홍명 등을 토벌하였으며 연이어 적군을 크게 무찔렀다. 진지에 이르러 홍명을 참수하자, 오면, 화당, 홍진, 어원이 모두 항복했다. 이들은 방향을 돌려 개죽을 공격하고 대담으로 진군하였고, 그곳의 두 장수들 또한 항복했다. 이번 출동에서 토벌하여 평정하고 머리를 벤 자는 6천 명이고, 유명한 장숟르이 전부 체포되었으며, 현과 읍의 관소를 새로 세웠으며, 출동시킨 병사는 1만 명이었다. 하제는 평동교위(平東校尉)로 임명됐다.

10년(205), 하제는 방향을 돌려 상요(上饒)를 토벌하고, 그곳을 분할하여 건평현(建平縣)을 만들었다.

13년(208), 하제는 위무중랑장(威武中郞將)으로 승진했고, 단양군의 이현(黟縣)과 흡현(歙縣)을 토벌했다. 당시 무강(武彊), 섭향(葉鄕), 동양(東陽), 풍포(豊浦) 네 개 향(鄕)이 먼저 투항하였으므로, 하제는 표를 올려 섭향을 시신현(始新縣)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흡현의 도적 우두머리 김기(金奇)의 1만 호가 안륵산(安勒山)에, 모감(毛甘)의 1만 호가 오료산(烏聊山)에, 이현의 도적 우두머리 진복(陳僕)과 조산(祖山산) 등의 2만 호가 임력산(林歷山)에 주둔하고 있었다. 임력산 서쪽 면은 절벽으로 우뚝 서 있고, 높이는 수십 장(丈)이 되며, 길이 위험하고 좁아 칼이나 방패를 사용할 수 없으며, 적이 높은 곳에 있으면서 돌을 떨어뜨리면 공격할 수 없었다. 군대는 하루 동안 주둔해 있었고, 장수들은 근심하였다.

하제는 직접 나가 사방을 두루 다니며 지형을 관찰하였고, 그런 연후에 날쌔고 민첩한 병사들을 은밀히 모집해 철제 주살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는 험악하므로 도적들이 방비하지 않는 곳에 주살로 산을 끊어 오르는 길을 만들고, 밤에 은밀히 올라가도록 했다. 이어서 수많은 삼베끈을 던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 오르도록 하여 1백여 명이 올라가게 되었다.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동시에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었다. 하제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때를 기다렸다. 

도적들은 한밤중에 사방에서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는 것을 듣고 대군이 벌써 모두 올라왔다고 말하며,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져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으며, 길을 지키고 험한 곳을 수비하더 자들은 모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의지했다. 대군은 이 기회에 산을 올라가 진복 등을 크게 무찔렀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투항했다. 참수된 자는 총 7천 명이었다.

抱朴子曰:昔吳遣賀將軍討山賊,賊中有善禁者,每當交戰,官軍刀劍不得拔,弓弩射矢皆還自向,輒致不利。賀將軍長情有思,乃曰:「吾聞金有刃者可禁,蟲有毒 者可禁,其無刃之物,無毒之蟲,則不可禁。彼必是能禁吾兵者也,必不能禁無刃物矣。」乃多作勁木白棓,選有力精卒五千人為先登,盡捉棓。彼山賊恃其有善禁 者,了不嚴備。於是官軍以白棓擊之,彼禁者果不復行,所擊殺者萬計。
포박자(抱朴子)에 이르길: 옛날 오나라가 하장군을 보네 산적을 토벌했는데 산적중에 기공에 뛰어난 사람이 있어 매번 교전을 당해 관군의 도검이 뽑히지 않고 궁노가 발사한 화살이 쏜 사람들의 방향으로 되돌아와 문득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장군은 사물의 정황에 밝고 사려가 깊어 말하길

"내가 듣기로 병기 중에 칼날이 있는 것은 기공으로 봉인할 수 있고 벌레 중에서 독이 있는 것도 가히 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칼날이 없고 독이 없는 것은 봉할 수가 없다. 저들이 필시 우리 병사들의 병기를 봉인할 수 있지만 칼날이 없는 병기는 봉할 수 없을 것이다."

라 하고 강경한 목재를 이용하여 많은 수의 목봉을 제작하고는 힘센 정예병을 5천명을 선발하여 선봉에 서게 하고는 모두 손에 목봉을 들도록 하였다. 그 산적들은 기공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고 방비를 엄중하게 하지 않았다. 이에 관군이 곤봉으로 공격해오니 금술을 부리는 사람이 과연 다시 그의 기술을 부릴 수 없었고 격살한 사람이 만 여명이나 되었다.


하제는 또 표를 올려 흡현을 분할하여 신정현(新定縣), 여양현(黎陽縣), 휴양현(休陽縣)을 만들었다. 아울러 이, 흡 등 6개현을 합하여 (단양군으로부터) 신도군으로 분할하여, 하제를 태수로 임명하였으며, 시신(始新)에 부서를 세웠다. 편장군을 더했다.


16년(211), 오군 여항현(餘杭縣)의 백성 낭치(郎稚)가 종족 사람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수천 명이 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제는 출병하여 토벌하러 가서 즉시 낭치를 무찔렀다. 그는 표를 올려 여항현을 분할하여 임수현(臨水縣)을 만들 것을 건의했다.

오록 : 임수현(臨水縣) 은 진나라 시기에 임안(臨安)현으로 고쳤다.
# 臨安市 의 역사를 찾아보면
1. 臨安縣建置始於東漢建安十六年(211),時稱臨水縣 : 211년(동한 건안16년) 임수현이 설치되었으며 (본문 내용)
2. 西晉太康元年(280),因境内臨安山出名而更名臨安縣。 : 280년(서진 태강원년) 임안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나옵니다.

그가 손권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명을 받고 신도군으로 돌아가려고 할 대, 손권은 나와서 전행(餞行)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도록 했다.

吳書曰:權謂齊曰:「今定天下,都中國,使殊俗貢珍,狡獸卒舞,非君誰與?」齊曰:「殿下以神武應期,廓開王業,臣幸遭際會,得驅馳風塵之下,佐助末行,效鷹犬之用,臣之願也。若殊俗貢珍,狡獸率舞,宜在聖德,非臣所能。」
오서에 이르길: 손권이 하제에게 말하길

"지금 천하를 평정하고 중국에 도읍하며 풍속이 다른 지방으로 하여금 공품을 바치게 하고 교활한 짐승이 요동을 멈추도록 한 것은 군이 아니면 누구인가?"

라고 하니 하제가 말하길

"전하께서 신무하심으로 천하의 기망에 응하셔서 군왕의 대업을 널리 여시니 신은 다행히 이런 시기를 만나 풍진속에서 내달려 보잘 것 없는 행동으로 보좌하여 매나 사냥개 같은 용도로 쓰였으니 이는 신이 원하던 바였습니다. 풍속이 다른 지방으로 하여금 공품을 바치게 하고 교활한 짐승이 요동을 멈추도록 한 것과 같은 일은 마땅히 성덕에 속하는 것이지 신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제에게 병거(輧車)와 준마를 하사했으며, 송별연이 끝나 수레에 앉으면서 하제에게도 수레를 타도록 했다. 하제는 사양하고 감히 하지 못했다. 그러자 손권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제를 부축하여 수레에 오르게 하고, 길을 여는 관리와 보병, 기병에게 군(郡)에서의 의식과 똑같이 하도록 명령했다. 손권은 하제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마땅히 노력해야만 한다. 덕행을 쌓고 공을 쌓지 않았다면 이런 대우는 얻을 수 없다.”

하제의 수레가 백여 보 떠난 후에 손권은 돌아갔다.

18년(213), 예장동부(豫璋東部)의 백성 팽재(彭材), 이옥(李玉), 왕해(王海) 등이 1만여 명을 모아 반란을 했다. 하제는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그 우두머리를 주살시켰다. 그 나머지는 모두 항복했다. 하제는 이들 중에서 건장한 자들을 선발하여 병사로 만들었으며, 그 다음 사람들은 현의 민호로 만들었다. 그는 분무장군으로 승진했다.

20년(215), 하제는 손권을 따라 합비를 정벌하러 갔다.(주2) 당시 성안에서 나온 적병과 전쟁하는 중에 서성(徐盛)이 부상을 입어 창을 잃게 되자, 하제가 병사를 이끌고 대항하여 서성이 잃었던 것을 찾았다. [주] 

[주] 강표전에 이르길 손권이 합비로 원정을 갔다가 돌아올 때, 소요진(逍遙津) 북쪽에서 장료(張遼)의 급습을 받아 위태롭게 되었다. 하제는 이대 병사 3천 명을 인솔하여 소요진 남쪽에서 손권을 맞이하였다. 손권은 큰 배로 들어가 장수들을 모아 연회를 열었다. 하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지존의 위치에 이는 군주는 항상 몸을 중시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일은 거의 재앙이 이른 것으로 저희들은 두려워 떨었으며, 천지가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원컨대 이 일을 평생의 훈계로 삼으십시오.”

라고 했다. 손권은 앞으로 나가 하제의 눈물을 닦아주며

“매우 부끄럽소! 삼가 마음에 새길 것이며, 뿐만 아니라 큰 띠에 써서 달고 다니겠소.”

라고 했다.

21(216), 파양의 백성 우돌(尤突)이 조조의 인수를 받고 백성들을 변화시켜 도적으로 만들었으며, 능양현(陵陽縣), 시안현(始安縣), 경현(涇縣)이 모두 우돌과 서로 호응했다. 하제와 육손은 우돌을 토벌하여 무찔러서 수천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나머지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복중했다. 단양의 세 현은 모두 투항했으며, 정예병사를 총 8천 명 얻었다. 하제를 안동장군으로 임명하고, 산음후(山陰侯)로 봉했으며, 밖으로 나가 장강가에 주둔하여 부주(扶州) 상류 지역으로부터 환()까지 지휘하게 되었다. 

황무 초, 위나라에서 조휴를 시켜 토벌하러 왔을 때, 하제는 길이 멀었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였으므로 신시에 주둔하여 방어하게 되었다. 마침 동구(洞口)에 있던 여러 군대들이 폭풍을 만나 흩어지고 물에 빠져 과반수를 잃게 되자 장수들은 아연실색했지만, 하제가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아 그의 군대만은 유독 온전하였으므로 장수들은 그에게 의지하는 형세가 되었다.

하제의 성품은 사치스럽고 화려하며, 특별히 군사적인 일을 좋아하여 병기나 갑옷이나 기계는 매우 정교하고 훌륭했다. 타고 다니는 배에는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 있고 무늬를 그려 채색하였으며, 푸른 색 덮개를 씌우고 붉은 색 휘장을 늘어지게 하였으며, 노나 창에는 꽃문양을 그려넣었고 활과 화살은 모두 상등품의 재료를 사용했다. 몽충이나 투함 같은 것들의 모습은 산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조휴 등은 두려웠으므로 곧장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하제는 후장군으로 승진하여 부절을 받았고, 서주목을 겸임하게 되었다.

당초 진종(晉宗)은 희구(戱口)를 지키는 장수였는데, 부하들을 데리고 모반하여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돌려보내 기춘태수로 임명했다. 임지에서 진종은 안락(安樂)을 습격하여 그곳에 있는 인질들을 탈취하려는 기도를 했다. 손권은 그의 행위에 치욕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전쟁이 막 끝났으므로 6월, 성하(盛夏)에 뜻하지 않게 하제에게 미방과 선우단 등을 지휘하여 기춘을 습격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결국 진종을 생포했다. 이로부터 4년 후, 하제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하달(賀達)과 동생 하경(賀景)은 모두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으며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

會稽典錄曰:景為滅賊校尉,御眾嚴而有恩,兵器精飾,為當時冠絕,早卒。達頗任氣,多所犯迕,故雖有征戰之勞,而爵位不至,然輕財貴義,膽烈過人。子質,位至虎牙將軍。景子邵,別有傳。
회계전록에 이르길: 하경(賀景)은 멸적교위를 지냈는데 무리를 다스리는 것이 엄격하고 은혜로워 병기와 정밀한 장식이 당시에 최고였는데 일찍 죽었다. 하달(賀達)은 자못 기분에 의지해 일을 했기에 범하고 위배하는 것이 많아 비록 전공이 있다 하더라도 작위를 받는데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기를 귀하게 여겨 대담하고 강직한 것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하경의 아들 하소는 별도의 전이 있다.

진수의 평: 산월 사람들은 반란을 조성하기 좋아하며 안정시키는 일은 어려워도 동요시키는 일은 쉬웠다. 이 때문에 손권은 외부의 적을 대함에 있어서 정력적이지 못했고 낮은 언사로 위씨를 대했다.무릇 이런 여러 신하들은 모두 내란을 평정하여 국내의 안정에 노력한 인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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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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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13:29:19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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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09:50:55
(*.52.89.212)
한문주석 추가

구라뱅뱅

2013.08.05
18:34:37
(*.49.168.253)
吳錄曰:晉改為臨安
오록 : 임수현(臨水縣) 은 진나라 시기에 임안(臨安)현으로 고쳤다.
# 臨安市 의 역사를 찾아보면
1. 臨安縣建置始於東漢建安十六年(211),時稱臨水縣 : 211년(동한 건안16년) 임수현이 설치되었으며 (본문 내용)
2. 西晉太康元年(280),因境内臨安山出名而更名臨安縣。 : 280년(서진 태강원년) 임안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나옵니다.

코렐솔라

2013.08.05
18:49:34
(*.131.108.250)
감사합니다. 다른 것좀 하느라고 반영이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구라뱅뱅

2013.08.27
16:51:00
(*.49.168.253)
첫 주석의 출처가 누락됬네요. 원문을 보면 虞預晉書曰:賀氏本姓慶氏。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예(虞預)의 진서(晉書) 가 출처이므로 출처도 기록됬으면 하네요.

코렐솔라

2013.08.27
17:53:25
(*.166.245.166)
당연하죠. 배송지가 그냥 단 주석과 출처가 있는 주석은 구분해야 하는데 원래 없던 것을 제가 한꺼번에 보다보니 누락된 것이 많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했습니다.

구라뱅뱅

2013.08.27
17:09:11
(*.49.168.253)
?? 삭제 해도 될곳이 있네요.

1. 건안?한흥(漢興)?남평(南平)에서 또 소란이 일어났다.
건안(建安) 한흥(漢興) 남평(南平)

2. 홍명(洪明)?홍진(洪進)?원어(苑御)?오면(吳免)?화당(華堂)

3. 진지에 이르러 홍명을 참수하자, 오면?화당?홍진?어원이 모두 항복했다.
=> 오면, 화당, 홍진, 원어

============== 추가
이미 작성한 덧글이라 지우진 않았지만, ? 로 된 지명/이름은 모두 ?를 지워도 될 듯 싶네요.

코렐솔라

2013.08.27
17:54:33
(*.166.245.166)
아 그건 한글의 ,가 아닌 중국어에서 쓰이는 "," 이걸 특정 프로그램에서 인식 못해서 생긴게 아직까지 그냥 넘겨서 생긴 것이군요. ㅜㅠ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매번 이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렐솔라

2013.09.11
15:21:41
(*.0.203.140)
포박자와 오서의 손권 칭찬, 하경, 하달의 주석은 dragonrz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http://rexhistoria.net/51360

지금 한문과 병기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살짝 어지러울 수도 있는데 해당 부분은 기술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걸로 하제전의 모든 주석이 번역되었습니다. 번역에 참여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venne

2014.02.13
12:55:40
(*.111.8.205)
(위무중라장)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원

2014.02.16
14:04:30
(*.70.67.192)
감사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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