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全琮은 자가 자황(子璜)이고 오군 전당 사람이다. 그의 부친 전유는 한영제 때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상서랑우승을 맡았지만, 동탁의 난 때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주에서 그를 초빙하여 별가종사로 임명하고, 조정에서도 조서를 내려 회계동부도위로 임명했다. 손책이 오군으로 온 후, 전유는 병사를 들어 먼저 손책에게 투항했다. 손책은 표를 올려 전유를 단양도위로 임명했다. 

손권이 거기장군으로 임명되었을 때, 전유를 장사로 삼았으며 계양태수로 옮겼다. 전유는 일찍이 전종을 시켜 쌀 수천 곡을 오군으로 보내 물건과 바꾸도록 했다. 전종은 오군에 도착한 후, 쌀을 모두 흩어 주고 빈 배로 돌아왔다. 전유는 매우 노여워하였다. 전종은 고개를 조아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바꿔 오려고 했던 물건은 긴급히 쓰이는 것이 아니지만, 사대부들이 마침 최악의 고난과 위험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구제했습니다. 이것을 알릴 틈이 없었습니다."

전유는 태도를 바꿔 그를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주] 徐衆評曰:禮,子事父無私財,又不敢私施,所以避尊上也。棄命專財而以邀名,未盡父子之禮。 

臣松之以為子路問「聞斯行諸」?子曰「有父兄在」。琮輒散父財,誠非子道,然士類縣命,憂在朝夕,權其輕重,以先人急,斯亦馮煖市義、汲黯振救之類,全謂邀名,或負其心。    


서중이 평하여 이르길 : 예법에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면 사사로운 재산이 없으며 또한 감히 사사로이 쓸 수도 없다고 하였는데 장자를 범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 것이다. 명을 버리고 재산을 오롯이 하며 이로써 이름을 얻고자 한 것은 부자의 예법을 다한 것이 아니다.    


신 송지가 평하길 자로(子路)가 묻기를,   


“바른 도(道)를 들으면 그대로 실행에 옮깁니까?”    


라고 하자, 공자는   


“아버지와 형제가 있다.”    


고 했다. 전종이 그 자리에서 판단하여 부친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진실로 자식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선비들이 생명의 위기를 만나 걱정이 조석지간에 있었으므로 그 상황의 경중을 헤아려 다른 사람의 급한 일을 우선으로 한 것은 풍난(馮煖)이 맹상군(孟嘗君) 때문에 평판을 팔고, 급암(汲黯)이 자신의 판단으로 나라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준 부류와 같다. 전부 전종이 이름 얻고자 했다는 것은 혹 그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 당시, 중주의 사인들로 난리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전종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전종은 가산을 기울여 구제해 주었으며, 이들과 함게 동고동락 했다. 그래서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간에 그의 명성이 빛났다. 후에 손권은 그를 분위교위로 임명했으며 병사 수천 명을 주어 산월을 토벌하도록 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정예병사 1만여 명을 얻어 진군하여 우저에 주둔했다. 그는 점점 승진하여 편장군이 되었다.

건안 24년(219), 유비의 장수 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자, 전종은 상소를 올려 관우를 토벌할 수 있는 계획을 진술했다. 손권은 당시 벌써 여몽과 관우를 습격할 일을 은밀히 의논하고 있었으므로 일이 누설될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전종의 표를 받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관우를 체포한 후, 손권은 공안에서 주연을 베풀고는 전종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이전에 이 계획을 진술했을 때, 나는 비록 응답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승리는 아마도 그대의 공로일 것이다."

그리고 전종을 양화정후로 봉했다.

황무 원년(222), 위나라가 대규모의 수군을 동구로 출동시켰다. 손권은 여범에게 장수들을 지휘하여 이에 대항하도록 했다. 쌍방의 군영은 서로 대치하고 멀리서 바라보고 잇었다. 적이 날랜 배로 몇 차례 공격할 때마다, 전종은 항상 갑옷을 입고 무기를 손에 쥐고 끊임없이 경계하고 관찰했다. 오래지 않아, 적군 수천 명이 강에 나타나자, 전종은 공격하여 무찔렀으며, 그들의 장군 윤로를 죽였다. 전종을 수남장군으로 승진시켰으며, 나아가 전당후로 봉했다.

4년(225), 전종은 부절을 받고 구강태수로 겸임했다.

7년(228), 손권은 환현에 도착하여 전종과 보국장군 육손으로 하여금 조휴를 공격하도록 하여 석정에서 무찔렀다. 이때 단양, 오군, 회계의 산월족이 또 반란을 도모하여 소속 현을 공격하고 함락시켰다. 

손권은 세 군의 험준한 곳을 나누어 동안군(東安)을 만들고, 전종에게 그곳의 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오록(吳錄)에 이르길: 전종은 당시 부춘(富春)을 다스리고 있었다.

전종은 임지에 도착한 후, 상벌을 분명하게 하고 회유하여 투항하도록 하여서 수년 사이에 1만여명을 얻었다. 손권은 전종을 불러 우저로 돌아도록 하고 동안군을 말소시켰다.


江表傳曰:琮還,經過錢唐,脩祭墳墓,麾幢節蓋,曜於舊里,請會邑人平生知舊、宗族六親,施散惠與,千有餘萬,本土以為榮。    

강표전에 이르길 : 전종이 돌아오는 길에 전당을 지났는데 분묘를 수리하고 제사지냈으며 깃발과 의장이 옛 향리를 빛냈다. 읍인으로 평생의 옛 친구와 종족의 친속들을 청하여 모이게 하고는 재산을 나누어 줬는데 천, 만으로 헤아렸고 본토에서는 이를 영예로 여겼다.


황룡 원년(229), 전종은 위장군ㆍ좌호군ㆍ서주목으로 승진되었으며,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 당시 손권은 아들 손등에게 출정을 명하여, 그 군대는 출발하여 안락(安樂)에 주둔하였는데, 신하들 중에서 이에 관해 감히 진언하는 자가 없었다. 전종은 표를 올려 말했다. 

“옛날부터 일찍이 태자가 혼자 출정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자가 주군을 따라 출정할 경우는 무군(撫軍)이라 하고, 남아 지킬 경우에는 감국(監國)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태자가 동쪽으로 출정한 것은 옛날의 제도가 아닙니다. 신은 이 일을 걱정하고 의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손권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손등에게 군대를 돌리도록 명했다. 천하를 논의하는 자들은 전종에게는 국가 중신으로서의 절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화 2년(233), 전종은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지휘하여 육안을 정벌하러 갔다. 육안의 백성들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장수들은 병사를 나누어 체포하려고 했다. 전종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위급함을 타고 요행히 성공하고서, 완전하다고 생각지않아 행동을 취하는 것은 국가의 큰 정책이 아닙니다. 지금 병사를 나누어 백성들을 좇아 체포하여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각기 절반씩이라면 어찌 온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설사 얻은 것이 있다고 해도 약한 적으로써 국가의 희망을 실현시키는 것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만일 적과 예기치 않게 만난다면 손실은 적을 수 있습니다. 추격하여 체포하지 않는다는 죄를 받게 되더라도 나는 차라리 스스로 이것을 받지 감히 요행으로 얻은 성공으로써 국가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겠습니다."

적오 9년(246), 전종은 우대사마ㆍ좌군사로 승진했다. 전종은 사람됨이 공손하며, 안색을 관찰하여 간언을 바치는데 뛰어나며, 언사는 일찍이 과격하거나 다른 사람을 범한 적이 없었다. 당초 손권이 주애와 이주를 포위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먼저 전종에게 물었다. 전종은 이렇게 말했다.

"성조의 위세로써 한다면, 어떤 곳으로 향하든지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이역은 바다가 장애물이 되어 그 사이를 끊어놓고, 물과 풍토에는 독기가 있는데, 이것은 옛날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병사들과 백성들이 그곳을 드나들면 반드시 질병을 낳게 되고 서로 전염시켜, 가는 자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을 수 있겠습니까? 장강 해안가의 병사들을 손상시켜 만 분의 일의 이익을 구하는 것, 이것은 어리석은 신이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손권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군대가 출동한지 1년이 지나자, 병사들 가운데 질병 때문에 죽은 자가 10분의 8,9는 되었다. 손권은 매우 후회했다. 이후에 그는 전종과 이 일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전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대 신하들 가운데 간언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신은 그들이 충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종에 대한 군주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그의 종족이나 자제들도 동시에 총애를 받고 귀하게 여겨졌으며, 누차에 걸쳐 천금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전종은 선비들을 겸허하게 대접하였으며, 얼굴에는 교만한 안색이 없었다.

12년(249), 전종은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전역(全懌)이 후사를 이었다. 이후에 그는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군대를 통솔하였다. 수춘에서 제갈탄을 구원할 때, 그는 성을 나와 먼저 투항했으며, 위나라에서는 그를 평동장군으로 임명하고 임상후로 봉했다. 전역의 조카 전위(), 전의(), 전정() 등 또한 위나라에 투항하여 모두 군의 태수가 되고 열후를 받았다.

오서(吳書)에 이르길: 전종(琮)의 장자는 전서(緒)로 어려서부터 유명(知名)했다. 봉조청(奉朝請)이 되었고,밖으로 나가 병권을 잡아 승진하여 양무장군(揚武將軍) 우저독(牛渚督)으로 옮겼다. 손량(孫亮)이 즉위하자 진북장군(鎮北將軍)이 되었다. 동관(東關)의 전투 중에 전서는 정봉(丁奉)과 함께 먼저 군사를 뒤로 물리자고 건의해 위군(魏軍)을 격파했기에 장자 전정(全亭)이 후()로 봉해졌고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둘째 아들은 전기(全寄)로, 노왕(魯王) 패거리(阿黨)의 우두머리였기에 연좌되어 죽었다. 막내 전오(全吳)는 손권(孫權)의 외손(外孫)으로, 도향후(都鄉侯)에 봉해졌다.

진수의 평: 전종은 당대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당시에 귀중함을 받았지만 자식의 사악한 행동을 살피지 못해 비평을 받고 명예가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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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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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1
13:29:38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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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6
13:26:43
(*.0.203.80)

지후ㅢ를 지휘로 수정

코렐솔라

2013.07.10
09:54:02
(*.52.89.212)
한문주석 추가

코렐솔라

2013.08.21
12:26:26
(*.131.108.250)
다른 사이트에서 손권 까는 인간이 기록이 없어 전서는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종보다 먼저 죽었다고 하던데 본전에 바로 기록이 있군요

코렐솔라

2016.05.29
17:00:43
(*.196.74.143)
서중의 평과 전당을 고쳤다는 강표전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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