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준潘濬은 자가 승명(承明)이고 무릉군 한수(漢壽) 사람이다. 


오서 : 반준은 총명하여 사물에 밝아, 묻고 대답함에 있어 사물변화의 도리가 있기에, 산양의 왕찬(王粲)은 특별히 귀하게 보았다.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져 군공조에 임명되었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송중자(宋仲子)에게 학문을 전수받았다.

나이가 30이 안 되었을 때, 형주목 유표가 초빙하여 형주에 있던 강하군(江夏郡)의 종사로 임명했다. 그 당시 사이(沙羡)현의 장이 뇌물을 받는 등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었다. 반준은 그를 법에 따라 죽였으며, 군은 진동했다. 이후에 반준은 상향현(湘鄕縣)의 령으로 임명됐고 치적으로 명성이 있게 되었다. 유비는 형주를 다스릴 때, 반준을 치중종사로 임명했다. 유비는 촉으로 들어가면서 반준을 남겨 형주의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손권은 관우를 살해하고 형주 영토를 병탄한 후, 반준을 보군중랑장으로 임명하고 병권을 주었다.


강표전 왈, 손권이 형주에서 이기자 (형주의) 장수와 관리들이 모두 그에게 귀부했으나 반준만이 유독 병들었다 칭하고 만나러 오지 않았다. 손권이 사람을 보내 상(牀)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가서 태워오도록 하니, 반준이 상(牀) 위에서 얼굴을 숙이고 일어서지 않으며 눈물을 쏟아 흐느끼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손권이 위로하며 대화하고 그의 자(字)를 부르며 말했다,

승명(承明), 옛날 관정보(觀丁父)는 약() 나라 출신의 포로이나 (초)무왕은 그를 군사(軍帥)로 삼았고, 팽중상(彭仲爽)은 신(申)나라 출신의 포로이나 (초)문왕은 그를 영윤(令尹)으로 삼았소. 이 두사람은 경과 같은 형국(荊國)의 선현들로 처음엔 비록 죄수(포로)신세가 되었으나 뒤에 모두 탁용되어 초(楚)나라의 명신(名臣)이 되었소. 경이 유독 그리하지 않고 항복하기를 거부하니 내가 옛사람의 도량과는 다르다 여기는 것이오?

측근을 시켜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게 했다. 반준이 일어나 땅으로 내려와 배사(拜謝)하니 이내 그를 치중(
治中)으로 삼았고 형주의 여러 군무를 처리할 때 하나같이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무릉(武陵)의 부종사(部從事) 번주(樊
) 가 여러 만이(夷)들을 유도(誘導)하여 무릉을 유비에게 속하게 하려 꾀하니, 바깥에서 아뢰길 장수(督)을 보내 1만 명을 이끌고 가서 이를 쳐야 한다고 했다. 손권이 이를 들어주지 않고 특별히 반준을 불러 물었다. 반준이 대답했다,

 
5천 명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면 충분히 번주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경이 찌 그를 가법게기는가?

반준이 말했다,


번주는 남양(南陽)에 사는 옛날부터 유명한 성씨로 자못 입술만 마음대로 놀릴 뿐이지 실제로는 재주나 지략은 없습니다. 신이 그를 알게 된 까닭은 번주가 일찍이 주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푼 적이 있었는데, 해가 중천에 이르렀을 즈음에도 음식을 얻을 수 없자 10여 명이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이것도 역시 광대가 똑같은 동작을 보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손권이 크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들여 이내 반준을 보내 5천 군사를 거느리고 가게 하니 과연 번주를 참수하고 난을 평정했다
.

반준을 분위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상천정후(常遷亭侯)로 봉했다.

오서: 예현(芮玄)이 죽자, 반준이 예현의 병사들을 이끌고 하구(夏口)에 주둔했다.

예현의 자는 문표(文表)이고 그는 단영(丹楊) 사람이다. 아버지는 예지(芮祉)이고, 자는 선사(宣嗣)이다. 손견을 따라 정벌에 나서 공이 많았고, 손견이 죽자, 예지는 구강태수(九江)태수로 승진했고 나중에는 오군(吳郡) 태수가 되었으며, 명성을 얻었다.

예현의 형은 예량(芮良)인데, 자는 문만(文鸞)이다. 손책을 따라 강동(江東)을 정복할때 활동했다. 손책에 의해서 그는 회계(會稽)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되었고, 죽자, 예현이 현량의 병사들을이끌었고, 나중에 분무중랑장(奮武中郎將)이 되어, 공을 세워 율량후(溧陽侯)가 되었다.

손권은 그의 아들 손등(孫登)을 숙원(淑媛)을 배필을 찾을때, 여러 신하들은 예현은 아버지 예지와 형 에량과 함께 문무에 대한 덕과 의로움이 3대에 걸쳐 빛난다고 하였고, 그래서 손등은 예현이 딸을 비(妃)로 삼았다. 황무5년 (226년에) 현이 죽자 손권은 매우 애석해 했다.

손권은 제로 칭한 후, 반준을 소부(少府)로 임명하고 유양후(劉陽侯)로 승진시켜 봉했으며,


강표전 江表傳 에서 이르길 : 손권 孫權 이 자주 꿩을 사냥했는데, 반준潘濬이 손권에게 간하여, 손권이 이르길 :


“친교를 맺은 이와 헤어진 후, 때때로 잠깐 나간 것일 뿐으로, 지난날처럼 거듭 하지는 않소.”


반준이 이르길 :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해, 만기萬機의 직무가 많고, 꿩 사냥은 급한 것이 아니며, 활시위가 끊어지고 화살 끝이 파괴됨도, 모두 해가 될 수 있으니, 특별히 신을 위해서라도 이를 그치고 버리시길 바라옵니다.”


반준이 나가고, 꿩의 깃으로 꾸민 일산이 본래 있던 것을 보고는, 이에 손수 이를 무너뜨렸다. 손권은 이로부터 스스로 그만두며, 다시는 꿩을 사냥하지 않았다.


태상으로 승진시켰다. 오계의 이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결탁했을 때, 손권은 반준에게 부절을 주어 각 군대를 지휘하여 토벌하도록 했다. 그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었으며, 법령에 대해서는 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 머리를 베거나 사로잡은 자는 대체로 수만 명이나 되었다. 이로부터 각 이민족들은 쇠약해졌고 모든 곳이 안정되었다.


오서 吳書 에서 이르길 : 표기장군骠騎將軍 보즐步骘이 구구漚口에 준둔해, 여러 군郡에서 널리 모아 병사를 늘리길 구했다. 손권 孫權이 이를 반준潘濬에게 물으니, 반준이 이르길 :


“횡포한 장수가 민간에 있으면, 혼란스러워져 해가 되고, 게다가 보즐에게는 명성과 권세가 있어서, 있는 곳마다 아첨을 하니, 들어줘선 안됩니다.” 

 

손권이 이를 따랐다. 중랑장中郎將 예장豫章의 서종徐宗은, 유명한 선비였으니, 일찍이 경사에 이르러, 공융孔融과 서로 사귀었으나, 유생은 방종하게 두고, 부곡은 관대하게 내버려두며, 절도를 받들지 않고, 무리를 위해 전殿을 지어, 반준은 마침내 그를 참살했다. 그가 법을 받들며 뒤에서 비방함을 꺼리지 않음이, 모두 이런 류였다. 의에 귀순한 은번隱蕃이, 언변 때문에 호걸에게 중히 여겨졌는데, 반준의 자식 반저潘翥 또한 더불어 주선周旋하며, 그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반준이 듣고는 대노하여, 소疏를 보내 반저를 책망하길 :


“내가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뜻은 목숨으로 보답하려는데, 너희들은 도읍에 있으며, 의당 고분고분 명을 따르며, 어진이를 가까이 하고 선한 이를 높이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항복한 노虜와 사귀며, 그에게 양식을 대접하느냐? 멀리서 이를 듣고는, 마음은 떨리고 면열面熱하여, 수십 일을 낙담하였다. 소가 이르면, 급히 가서 장형 백 대를 받으며, 대접한 바를 책임지는 것을 서둘러라.”

 

당시 사람들은 모두 반준을 괴이하게 여겼으나, 은번이 과연 반역을 모의하다 주살돼, 무리는 숭배하며 신복했다.


강표전:
반준의 이형(=이종사촌형) 장완은 제갈량의 장사였다. 무릉태수 위정(衛旌)이 상주하여 반준이 밀사를 장완에게 보내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촉한에 귀부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이에 오주가 화를 내며 말했다.

"승명은 그같은 일을 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이에 즉시 위정이 올린 상주문을 봉해 반준에게 보내어 그가 보도록 한 뒤 위정을 소환하여 관직을 삭탈했다.

이전에 반준은 육손과 함께 무창에 주둔해 남은 일을 함께 관리하였으며, 반준이 출정갔다 돌아온 후에도 과거와 같이 했다.

당시 교사(校事) 여일이 위세있는 정권을 마구 휘둘러 승상 고옹과 좌장군 주거 등을 질책하는 상주를 올려 모두 연금되었다. 황문시랑 사굉이 여일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고공-(顧公)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일은 대답했다.

"상황이 좋을 수 없습니다."

사굉은 또 질문했다.

"만일 고공이 파면되어 물러나게 된다면, 누가 그를 대신하겠습니까?"

여일은 사굉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사굉이 다시 물었다.

"반태상이 그 직책을 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일은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말이 거의 맞습니다."

사굉이 말했다.

"반태상은 항상 당신에게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다만 길이 멀어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오늘 그가 고공을 대신한다면, 아마도 다음날에는 곧장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여일은 매우 두려웠다. 그래서 고옹에 대한 일을 해결하여 취소했다. 반준은 조정에 요청하여 건업으로 가서 손권을 만나 진력을 다해 간언하려고 했다. 그는 건업에 도착하여 태자 손등이 이미 여러 차례 말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반준은 신하들에게 요청하여 연회를 이용해 칼로 여일을 죽이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씀으로써 국가를 위해 환란을 제거하려고 했다. 여일은 은밀히 이 소식을 들어 알았으므로 질병을 칭하고 가지 않았다. 반준은 매번 손권에게 나아가 알현할 때마다 여일의 간사함과 음험함에 관해 진술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로부터 여일의 총애는 점점 쇠미해졌으며, 이후에는 결국 주살되었다. 손권은 허물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책하였으며, 이 때문에 대신들을 꾸짖었다. 이에 관한 기록은 〈손권전〉에 있다. 적오 2년(239), 반준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반저(潘翥)가 작위를 계승했다. 반준의 딸은 건창후 손려의 앙내가 되었다.

吳書曰:翥字文龍,拜騎都尉,後代領兵,早卒。翥弟祕,權以姊陳氏女妻之,調湘鄉令。    


오서에서 이르길: 반저(潘翥)의 자는 문룡(文龍)이다. 기도위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병사들을 이끌었다. 일찍 죽었다. 반저의 동생은 반비(潘祕)인데 손권은 누나인 진씨의 딸과 결혼시켰으며 상향령에 임명하였다.

복양기(襄陽記): 과거 습온(習溫)은 오나라의 형주대공평직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반준의 아들 반비가 그를 방문하여 와서


"선군(반비의 아비인 반준)은 과거 군후가 향리의 논의를 주도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과연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허면, 이후에 누가 (군후의)뒤를 잇는 것이 좋겠습니까?"

라 묻자, 습온
 
"그대보다 나은 자는 없을 것이오."

라 답하였다. 결국 반비는 이후 상서복야가 되었고, 습온의 뒤를 이어 대공평이 되어 고향의 영예가 되었다.
분류 :
오서
조회 수 :
4699
등록일 :
2013.05.01
14:55:25 (*.125.6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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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6.23
16:36:28
(*.52.89.88)
번주 관련 주석 번역이 잘못되어서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6
15:05:46
(*.0.203.140)
배주 추가 애매하게 번역된 놈들이 있군요.

구라뱅뱅

2013.10.10
10:23:40
(*.49.168.253)
吳書曰:濬為人聰察,對問有機理,山陽王粲見而貴異之。由是知名,為郡功曹。
오서 : 반준은 총명하여 사물에 밝아, 묻고 대답함에 있어 機理가 있기에, 산양의 왕찬은 특별히 귀하게 보았다.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져 군공조에 임명되었다.

機理 : 事物变化的道理 (사물변화의 도리)
對問 : 互相问答交谈
貴異 : 特别看重

코렐솔라

2013.10.10
11:52:18
(*.166.245.168)
넵 반영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12.06
17:52:15
(*.52.91.73)
반준 꿩 사냥 얘기는 처사군님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970863

코렐솔라

2013.12.06
17:59:57
(*.52.91.73)
오서에 있는 반준이 지 아들 반저를 은번과 사귄다고 백대를 때린 것은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970980

코렐솔라

2016.05.29
17:54:49
(*.196.74.143)
반저, 반비에 대한 부분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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