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陸凱는 자가 경풍(敬風)이고 오군 오현 사람이다. 승상 육손의 동족 자손이다.

황무 초년에 영흥현(永興縣)과 제기현(諸暨縣)의 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다스린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육개는 건무도위로 승진했고 군대를 통솔했다. 그는 비록 군대를 통솔했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태현(太玄)》을 좋아했으며, 그 의미를 분석하고 논술하며, 이것으로 점을 쳐 증험을 얻었다. 적오 연간에 그는 담이태수(儋耳太守)로 승진했다. 주애(朱崖)를 토벌할 때, 참수하고 사로잡은 공로가 있었으므로 건무교위로 승진했다. 오봉 2년(255), 영릉(零陵)에서 산월의 도적 진비(陳毖)를 토벌하여 진비를 죽이고 크게 승리하였으므로 파구독ㆍ편장군으로 승진했으며, 도향후로 봉해졌고, 전임되어 무창우부독이 되었다.

그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수춘으로 달려가 적을 무찌르고 돌아와 여러 번 승진하여 탕위장군( 魏將軍)ㆍ수원장군(綏遠將軍)이 되었다. 손휴가 즉위한 후, 정북장군으로 임명되고 가절을 받았으며 예주목을 겸임하게 되었다. 손호가 즉위한 후에는 진서대장군으로 승진했으며, 파구도독이 되었고 형주목을 겸임했으며 나아가 가흥후(嘉興侯)로 봉해졌다. 손호가 진(晉)과 강화를 맺을 때, 사자 정충(丁忠)이 북쪽에서 돌아와 손호에게 익양( 陽)은 습격할 만하다고 설득했다.

육개의 간언이 있은 후에 손호는 행동을 멈췄다. 이에 관한 기록은 〈손호전〉에 있다. 보정(寶鼎) 원년(266), 육개는 좌승상으로 승진했다. 손호의 성품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하들은 그를 모시고 알현할 때, 모두 감히 그의 성품을 어기지 못했다. 육개는 손호를 설득시켜 이렇게 말했다.

"무릇 군주와 신하는 서로 알지 못할 이치가 없습니다. 만일 갑자기 생각지 못한 일이 있게 된다면 갈 바를 모를 것입니다."

손호는 육개에게 자신을 바라보도록 허락했다.

손호가 무창으로 천도한 후, 양주 땅의 백성들은 역류(逆流)하여 그의 생활용품을 공급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게다가 조정의 일에 많은 오류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육개는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이 듣기로는, 도(道)가 있는 군주는 백성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도가 없는 군주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백성을 즐겁게 하는 자는 자신의 즐거움도 영원하지만, 자신을 즐겁게 하는 자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멸망합니다. 무릇 백성이란 국가의 근본이므로, 진실로 그들의 음식을 중시하고 그들의 목숨을 아껴야만 합니다. 백성들이 편안하면 군주도 편안하고, 백성들이 즐거우면 군주도 즐겁습니다. 근년 이래로 군주의 위세는 걸(桀)과 주(紂)에 의해 손상되었고, 군주의 눈 귀는 간사한 영웅들에 의해 막히게 되었으며, 군주의 은혜는 소인들에 의해 가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재앙이 없는데 백성의 생명은 다하고, 하는 일이 없는데 국가의 재물은 텅 비었습니다.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고 공로가 없는 사람을 장려하며 군주로 하여금 황당한 과실이 있도록 하고, 하늘로 하여금 괴이한 현상을 낳게 했습니다. 각 왕공과 대신들이 황상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구하고 백성들을 곤궁하게 하여 풍요로움을 구하며, 불의를 사용하여 군주를 인도하고 음란한 풍속으로 조정의 정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사사로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웃 나라와는 우호관계를 맺었고 사방 변방에는 일이 없으므로 마땅히 노역을 중지하고 병사를 양성하여 곡식 창고를 충실하게 하는데 힘써 하늘의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천심(天心)을 더욱 기울게 하고 동요시켜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여 늙은이와 어린이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보호하고 백성을 양성하는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길흉이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울림이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형체가 움직이면 그림자가 움직이고, 형체가 멈추면 그림자도 멈추게 되며, 이 규율은 제약의 요소이지 사람들이 말로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옛날 진(秦)이 천하를 잃게 된 까닭은, 단지 상을 경시하고 벌을 중시하여 정치와 법령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백성들의 힘이 군주의 사치로 인해 전부 소모되고, 군주의 눈은 미색에 미혹되고, 뜻은 재물과 보물에 오염되며, 간사한 신하는 지위에 있고 현명하고 총명한 사람은 숨어 있으며, 백성들은 불안해 하고, 천하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했기 때문에 결국 둥지를 엎어 알을 깨는 우환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왕조가 강성해진 까닭은 군주가 몸소 성실함과 신의를 실행하고 간언을 듣고 현인을 맞이하였으며, 은혜는 땔나무를 등에 지는 자에게까지 미치고 직접 은둔지사들을 초빙하여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고 정책을 전면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국가를 세울 게책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전 시대의 일이 확실한 증거입니다.

최근 한왕조가 쇠미해지자, 세 국가가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조조는 국가의 기강을 잃었고, 진은 그들의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또 익주의 지세는 위험하고 험난하며 병사들은 대부분 정예이고 강하였으므로, 문을 닫고 굳게 지키면 만대를 보존할 수 있었겠지만, 유씨(촉한)는 여탈(與奪)이 어그러졌고, 상벌(賞罰)은 마땅함을 잃었으며 군주는 마음대로 사치스럽게 하고, 백성들의 힘을 긴급하지 않은 곳에서 고갈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진에게 토벌되고 군주와 신하는 포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눈앞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신은 커다란 이치에 어둡고, 문장은 바른 뜻에 미치지 못하며, 지혜는 얕고 열등하며, 다시 바라는 것이 없는데, 사사로이 폐하를 위하여 천하를 아낄 뿐입니다. 신은 삼가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을 상주하여 백성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고통과 형법과 정치상의 혼란을 반영하고, 폐하께서 거대한 공정을 멈추고 수많은 노역을 줄여 정책을 관대하게 하는 데 힘쓰고 가혹한 정치를 줄이기를 원한 것입니다.

또 무창의 토지는 확실히 위험하고 빈약하여 수도로 세워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기를 만한 곳은 아닙니다. 배를 정박시키면 격류속에 침몰하고, 구릉지에 거주하면 산세가 험준하여 위험합니다. 그리고 동요에서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시지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을래요(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 죽지 무창에 남아 살지 않을래요)' 라고 했습니다. 신은 익성(翼星)에 변화가 생기고 형혹(熒惑)에 괴이함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동요에서 말한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고, 이것은 무창에서 안심하고 거주하는 것과 건업으로 돌아가 죽는 것을 비교한 것으로, 하늘의 뜻은 매우 분명하며,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신은 국가가 3년 간의 준비가 없으면 나라로 칭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현재 1년 간의 비축도 없으니, 이것은 신하의 책임입니다. 각 공경들은 사람들의 위쪽 지위에 있으며, 그 이익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목숨을 바치는 절개나 나라를 구하는 계책이 없이 단지 군주에게 미소한 이익만을 바침으로써 총애를 얻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고 군주를 위한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손홍(孫弘)이 의병을 조직한 이래 농업은 이미 황폐화되었으며,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또 부세 수입이 없게 되어 한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곳에서 부역을 하게 되었고, 국가에서 지출하는 식량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축적한 것을 나날이 소모시켰으며, 백성들에게는 헤어져 흩어지게 된 원망이 있고, 국가에는 근본이 파괴될 싹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애통해 하는 자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재력이 곤궁해지자 자식들을 팔고, 징수하는 조세가 빈번해져 나날이 피폐함이 극점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장리들은 이런 사태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감독하는 관리들은 백성들을 아끼지 않고 위엄있는 세력을 행사하는 데만 힘쓰면 도처에서 소란을 일으키므로 더욱더 번잡하고 가혹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이 양쪽에서 고통을 받아 재력이 또 소모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런 무리들을 철저히 끊어버리고 의롭고 미약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백성들의 마음을 진무시키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된다면, 물고기나 자라가 독사가 살고 있는 연못을 탈출하고, 새와 짐승이 그물이 쳐진 망을 벗어나는 것과 같아 사방의 백성들이 어린아이를 등에 엎고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백성들은 보존될 수 있고, 선왕의 나라는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오음(五音)은 사람들의 귀를 맑게 하지 않고, 오색(五色)은 사람들의 눈을 밝게 하지 않는데, 이런 것은 정치에 이익이 없고 국사에 손해만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옛날 선제 때는, 후궁의 궁녀 및 길쌈하는 노복들의 수가 백 명이 넘지 않았지만 식량은 축적되었고 재화는 남음이 있었습니다. 선제가 붕어한 후, 유주(幼主)와 경제(景帝)가 제위에 있을 때는 절약과 근검을 다시 사치로 바꾸어 선제의 자취를 밟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사로이 듣기로는, 길쌈하는 자와 특별히 일을 맡지 않은 여자가 천 명이나 되었으니, 그들의 재능을 헤아려 보면 국가의 재산을 만들기에는 부족했지만, 앉아서 국가의 식량을 먹으면서 해마다 이와 같이 지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그녀들이 제공한 노동을 헤아려 출가를 허락하여서 아내가 없는 자에게 주십시오. 이와 같이 한다면,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땅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니, 천하가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신이 듣건대, 은나라의 성탕(城湯)은 상인들 사이에서 인재를 취하고, 제환공(齊桓公)은 부역하는 사람들 중에서 인재를 얻었으며, 주무왕(周武王)은 땔나무를 지는 사람들 중에서 인재를 취했고, 위대한 한왕조는 노복들 중에서 인재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영명한 왕과 신성한 군주가 인재를 취할 때는 현명함으로써 하지 비천함에 구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공덕이 천하에 충만하고, 명성은 역사책에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안색을 구하고 좋아하는 복식을 취하며 구변이 좋고 영접하는 데 뛰어난 자가 아닙니다. 신이 사사로이 보건대, 지금 내전에서 총애 받는 신하들은 지위에 있어서는 마땅한 사람이 아니며, 직무상으로는 알맞은 역량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를 보좌하고 시정을 도울 수 없고, 서로 당을 만들어 결탁하여 충신을 해치고 현인을 가리기만 합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문무 관리들을 살펴서, 각각 그 관직에서 근면하도록 하며, 주목이나 각지의 군대를 지휘하는 자들은 변방 밖의 번진(藩鎭)이 되게 하고 공경과 상서는 인의와 교화를 확충시키는 데 노력하게 하면서, 위로는 폐하를 보좌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구제하며 각자 충성을 다하도록 하며, 만에 하나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보충하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즐거운 악곡이 연주될 것이며, 형법은 이치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의 어리석은 말에 마음을 기울여 주십시오. ―

당시 전상열장(殿上列將) 하정(何定)이 아첨하고 기교를 부린 말로 부름을 받아 손호의 총애를 얻었으며 정사를 마음대로 하였다. 육개는 면전에서 하정을 질책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앞뒤로 군주를 모시면서 충성을 하지 않아 국가의 정치를 기울이고 혼란스럽게 한 자로써 천수를 다한 자가 있음을 보았습니까? 어찌하여 오로지 아첨하고 사악한 행동만을 하여 황상의 귀를 오염시킵니까? 마땅히 잘못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면, 당신에게 예측하지 못하는 재앙이 있게 됨을 볼 것입니다."

하정은 육개를 매우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육개는 끝까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고, 일심으로 나라를 위했으며, 마음속의 정의는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표나 상소를 올릴 때는 모두 일을 직접 진술하고 수식을 더하지 않았다. 그의 충성과 간절함은 가슴속에서 나왔다. 건형 원년(269), 육개의 질병이 위독해지자, 손호는 중서령 동조(董朝)를 파견하여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도록 했다. 육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정을 임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 외부의 임무를 주는 것은 마땅하지만, 국가의 대사를 맡기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해희(奚熙)는 작은 관리로 포리(浦里)의 초야에서 집을 일으켜 엄밀(嚴密)의 옛 자취를 밟으려고 하지만, 역시 들어줄 수 없습니다. 요신(?信)ㆍ누현(樓玄)ㆍ하소(賀邵)ㆍ장제(張悌)ㆍ곽탁(郭?)ㆍ설영(薛瑩)ㆍ등수(騰脩) 및 동족의 동생 육희(陸喜)ㆍ육항(陸抗)은 어떤 자들은 청렴결백하고 충성하며 근면하고, 어떤 자들은 천부적인 재능이 풍부한데, 모두들 사직의 근간이 되며 국가의 훌륭한 보좌가 됩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에게 깊이 유의하여 생각하시고, 이 시대의 정무에 관해 질문하여 각자 충성을 다하도록 해 만에 하나의 허물을 보충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육개는 72세였다.

육개의 아들 육위(陸褘)는 처음에는 황문시랑으로 임명되었다가 이후에 지방으로 나가 부대를 통솔하게 되었으며, 편장군으로 임명됐다. 육개가 사망한 후, 육위는 중앙으로 들어가 태자중서자가 되었다. 우국사(右國史) 화핵이 표를 올려 육위를 추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육위는 체질적으로 강직하고 신체가 강인하며 부대를 통솔하는 재능이 있는데, 노숙도 그를 넘지 못합니다. 그가 부름을 받아 아래 지역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직접 수도로 달려 돌아와 도중에 무창을 경유하면서도 일찍이 부모를 돌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무기나 군수물 자에 있어서는 일체 취하는 것이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는 과감하고 강인하였으며, 재산에 임해서는 절약함이 있습니다. 하구(夏口)는 적의 요충지이니, 마땅히 명장을 선발하여 그곳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신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위보다 알맞는 자가 없다고 봅니다. -

당초 손호는 육개가 자주 자신의 얼굴을 범하고 뜻을 어기자 늘상 마음속으로 불만스러워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하정이 육개를 참언하는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육개는 중신이었으므로 법에 따라 제재하는 일이 곤란하였으며, 또 육항이 당시 변방 지역에서 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황을 헤아려 용서하고 참아냈다. 그러나 육항이 죽자, 결국 육개의 집을 건안으로 내쫓았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정 원년(266) 12월에 육개는 대사마 정봉(丁奉), 어사대부 정고(丁固)와 모의하여 손호가 종묘를 알현하는 기회를 이용해 손호를 폐출시키고 손휴의 아들을 옹립시킬 것이라고 했다. 당시 좌장군 유평(留平)이 병사를 인솔하여 앞에서 가게 되었으므로 유평에게 은밀히 말했다. 유평은 이를 거절하고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 일을 누설시키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이 때문에 도모한 일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서에 이르길: 옛날 종묘에 참례할 때는 적당한 자를 선발하여 대장군의 임무를 겸임하도록 하고 3천 병사를 인솔하여 호위를 담당하도록 했다. 육개는 이 병사의 일을 생각하고 선조에게 정봉을 그 직책에 임용하도록 했다.

손호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다른 자를 뽑으시오."라고 했다. 육개는 선조의 관리에게 지시하여 비록 잠시 대장군을 겸임하는 것이지만 알맞은 인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도록 했다.

손호는 "유평을 임용하시오."라고 했다. 육개는 아들 육위에게 명하여 손호를 페위시킬 일을 유평에게 전하도록 했다. 유평은 평소 정봉과 틈이 벌어져 있었고, 육위가 육개의 뜻을 미처 전하기도 전에 유평은 육위에게 "들돼지가 정봉의 진영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흉악한 징조입니다."라고 하고 기쁜 기색이 있었다.

육위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돌아와 육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때문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태사랑(太史郞) 진묘(陳苗)가 오랫동안 어둡고 비가 내리지 않으며 바람이 역으로 불고 있으니 장차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상주했다. 손호는 매우 경계하며 두려워했다.

나는 형주와 양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육개가 손호를 간언한 20가지 일에 대해 듣게 되어 이 일의 진위에 대해 오군 사람들에게 널리 물었는데, 대부분 육개에게 이런 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또 그 문자를 살펴보면 특히 매우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으므로 아마 손호가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육개가 책장 속에 감춰두고 감히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데 질병으로 위독할 때, 손호가 동조를 보내 그의 하고 싶은 말을 살펴 묻도록 하였으므로 그에게 건네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일의 허실(虛實)은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편에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손호를 질책한 일을 좋아하며, 이런 질책은 후대의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므로 〈육개전〉의 뒷면에 베껴 나열한다.

손호가 측근 조흠(趙欽)을 보내 육개의 이전 표에 대한 답장을 구두로 전하도록 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행동은 반드시 선제를 존경하여 따랐는데 무엇이 잘못 됐소? 당신의 간언은 이치가 없소. 또 건업의 궁궐은 이롭지 않기 때문에 피하고, 서궁(西宮; 무창의 궁궐)은 방이 파괴되어 수도를 옮기는 일이 불가피한데 무엇 때문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인가?"

육개는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이 폐하께서 정치를 잡은 이래의 상황을 사사로이 살펴보니,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않고 오성(五星)은 광택을 잃었으며, 관리들은 충성하지 않고 간사한 무리들은 서로 결탁하였는데, 이것은 폐하께서 선제가 이루어 놓은 것을 준수한 것이 아닙니다.


江表傳載凱此表曰:「臣拜受明詔,心與氣結。陛下何心之難悟,意不聰之甚也!」    


강표전에 육개의 이 표를 실어 이르길 : 「신이 명조를 받아들고 마음과 기운이 엉킵니다. 폐하께서는 어찌 마음이 깨우치기 어렵고 의식이 총명하지 않음이 이와 같이 심하십니까!」


무릇 왕된 자의 흥기는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며, 도덕 수행의 결과이지 어찌 궁전에 있습니까? 그리고 폐하는 국가를 보좌하는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달려가지만, 육군(六軍)은 고향을 떠나 떠돌아 다니게 되어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천지를 역행하여 범하였으므로 천지는 재앙을 내리는 것이며 어린이들이 그 가요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설령 폐하의 한 몸이 편안함을 얻는다고 해도 백성들은 근심과 고통 속에 있으니, 어찌 다스려지는 것입니까? 이것은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자는 현인을 근본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는 용봉(龍逢)을 죽이고, 은나라는 이지(伊摯)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이전 세상의 분명한 증거이며 오늘의 교훈입니다. 중상시 왕번(王蕃)은 중용(中庸)의 입장을 견지하고 사리에 통달하였으며 조정에 몸을 두고 충성스럽고 솔직하므로, 이는 국가의 중요한 초석이며, 위대한 오나라의 용봉인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의 쓴 말을 분해하고, 그의 직언으로 하는 대답을 싫어하였으며 궁전의 당에서 죽여 머리를 베어 내다 걸고 그의 시신을 들에 드러나게 버렸습니다. 국내의 백성들은 이 때문에 상심하고,식견있는 자들은 슬퍼하고 애도하며, 모두들 오국(吳國)의 부차(夫差)가 다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선제는 현인을 가까이 했는데, 폐하는 이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폐하께서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의 두 번째입니다.

신은 재상이란 국가의 기둥이라고 들었습니다. 기둥은 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한왕조에는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의 보좌가 있었고, 선제에게는 고옹과 보즐이 재상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재상인 만욱(萬彧)은 재능이 미소하고 평범한 자질을 갖고 있고, 과거에는 노예로 있었는데 크게 승진하여 조정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만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것이며, 그릇이 이미 가득찬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그의 미세함만을 좋아하여 큰 취지는 살피지 못하고 그에게 보필하는 신하로서의 영광을 주어 오히려 옛날 신하를 넘도록 했습니다. 어질고 선량한 사람은 분개하고, 지혜로운 선비는 치욕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세 번째입니다.

선제께서 백성들을 아끼는 것은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넘었고, 백성들 가운데 아내가 없는 자에게는 자신의 첩을 주어 아내로 삼도록 했으며, 홑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비단을 주었으며, 마른 유골이 거두어지지 않았으면 취하여 매장했습니다. 그러나 폐하는 이와 반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네 번째의 것입니다.

옛날 걸(桀)과 주(紂)의 멸망은 요사스런 부인에게서 말미암았고, 유왕(幽王)과 여왕(廬王)의 혼란은 애첩에게 있었습니다. 선제는 이것을 귀감으로 삼아 자신을 경계했기 때문에 주위에는 음란하고 사악한 여색을 두지 않았으며, 후궁에는 원망을 대량 쌓은 여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궁궐에는 만을 헤아리는 여자들이 있는데, 비빈(妃嬪)의 행렬 속에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궁궐 밖에는 아내를 얻지 못한 남자가 많고, 궁궐 안에서는 여자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비바람이 평상시와 다른 것도 바로 여기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에서 다섯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각종 국사를 우려하고 수고하면서도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즉위한 이래, 후궁에서 유희하며 여색에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일이 많아지고 확대되었으며, 하급 관리들은 서로 간사한 행동을 용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여섯 번째 것입니다.


선제는 소박한 것을 매우 숭상하여 의복은 전부 화려하지 않았으며 궁궐에는 높은 누대가 없고 물건에는 조각이나 장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충족하였으므로 간사한 도둑이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주와 군으로부터 재산을 징수하여 백성들의 재산과 힘을 고갈시키며 토지를 검정이나 황색으로 덮고 궁궐을 자주색으로 되게 했습니다. 이것은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일곱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외부에 대해서는 고옹ㆍ육손ㆍ주치ㆍ장소에게 의지했고, 내부에 대해서는 호종ㆍ설종을 신임했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일이 생기있게 일어났으며 국내는 맑고 안정되었습니다. 지금 지방에 있는 신하들은 그 직무를 담당하지 못하고 궁궐 안에 있는 관리들은 적합한 인물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진성(陳聲)ㆍ조보(曹輔)는 재색이 얕은 작은 관리로 선제는 그들을 버렸는데 폐하께서는 총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여덟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신하들을 모아 연회를 열 때마다 주량을 제한하여 신하들이 종일 실수를 범하는 잘못이 없었으며, 관리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시선이 부딪히지 않는 공경에 구애되게 하여 술을 남기지 않고 마시는 일을 두려워하게 했습니다.
무릇 술은 예절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양이 지나치면 덕행을 파괴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상신(商辛)의 긴 밤의 연회와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아홉 번째의 것입니다.

옛날 한의 환제와 영제는 환관을 신임하고 가까이 하여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현재 고통(高通)ㆍ첨렴(詹廉)ㆍ양도(羊度)는 환관의 작은 사람인데, 폐하는 상을 내려 존귀한 작위에 오르게 하였으며 군대의 권력을 주었습니다. 만일 장강가에서 어려움이 있게 되어 봉화가 서로 일어난다면, 양도 등의 무공으로는 막을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 번째의 것입니다.


현재 궁녀들은 대다수가 일을 하지 않고 한가하게 있으며, 환관들은 또 주나 군으로 달려가 민간의 여자들을 명부에 등록하며, 돈이 있는 자는 뇌물을 받고 피하도록 하고, 돈이 없는 자는 궁궐로 불러들이기 때문에 길에서 원망하며 외치고, 어머니와 자식이 죽을 때까지 생이별을 합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열한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이 세상에 있을 때, 또한 각 왕들과 태자를 양육하였는데, 만일 유모를 얻게 된다면 유모의 남편에게는 부역을 면제시켜 주고 돈과 재물을 내리고 물자와 식량을 공급해 주었으며, 때때로 유모를 집으로 돌려보내 그의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이와 같지 않아 부부가 생이별을 하고, 지아비는 여전히 노역에 복무하며, 아들은 뒤를 따라 죽어가고 있어 집은 텅 비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열두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음식을 하늘로 여기며, 의복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세 가지를 나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고 했습니다. 오늘날은 이와 같지 않아 농업과 양잠이 동시에 황폐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세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서 신분이 낮고 천함에 구애받지 않고 민간에서 그들을 임용하여 사업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추천하는 자는 거짓으로 하지 않았고, 추천받는 자는 망녕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이와 같지 않아 부화한 자가 등용되고, 붕당을 만든 자들이 승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열네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에게는 다른 부역을 주지 않았으며, 그들로 하여금 봄이 되면 경작하고, 가을이 되면 벼를 수확할 줄 알도록 하였고, 장강 해안가에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사력을 다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오늘날 전쟁터의 병사들은 각종 노역을 받아야만 하고 공급되는 식량은 부족합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것 중 열다섯 번째의 것입니다.

상을 줄 때는 공로를 고려하고 벌을 내릴 때는 사악함을 금지하므로, 상벌이 마땅하지 않다면 병사와 백성들은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장강가의 장사들은 죽어도 애도받지 못하고 노고에도 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여섯 번째의 것입니다.

지금 지방에서 감찰을 맡고 있는 관리는 벌써 복잡해졌으며, 게다가 궁궐 안의 사자가 있어 그 속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백성 한 명에 관리가 열 명이나 되니, 이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옛날 경제(景帝) 때, 교지(交 )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실재로 이로부터 야기된 것입니다. 이것은 경제의 잘못을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일곱 번째의 것입니다.

무릇 교사(校事)는 관리와 백성의 원수입니다. 선제 말년에 비록 여일과 전흠이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모두 주살되었으며, 선제는 이들을 신임했던 일을 백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지금 또 교조(校曹)를 세워 확장시켜 관리들의 사무처리를 마음대로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여덟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 시대에, 관직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 자리에 오랜 시간 있은 연후에 공적을 고찰하여 승진과 강등을 결정했습니다. 지금 주와 현의 관리들 중 어떤 자는 관직에 있은지 며칠 안 되어 곧바로 불려가 승진하여 전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임자를 영접하고 옛날 관리를 전송하기 위해 도로에서는 사람들이 분분하며 재산을 낭비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심합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준수하지 않은 열아홉 번째의 것입니다.


선제께서 판결을 보고하는 상주문을 상세히 관찰할 때는 항상 유심히 보고 세세하게 연구하였기 때문에 감옥에는 억울한 죄인이 없게 되었고 사형당하는 자도 납득하여 처벌 받았습니다. 오늘은 이와 상반됩니다. 이것이 선제의 자취를 따르지 않은 스무 번째의 것입니다.

만일 신의 말에서 취할 만한 것이 있다면 맹부(盟府)에 넣어 두십시오. 만일 이 말이 허망하다면 신의 죄를 다스려 주십시오. 폐하께서 저의 말에 유념하시기를 희망합니다. ― 


江表傳曰:皓所行彌暴,凱知其將亡,上表曰:「臣聞惡不可積,過不可長;積惡長過,喪亂之源也。是以古人懼不聞非,故設進善之旌,立敢諫之鼓。武公九十,思 聞警戒,詩美其德,士悅其行。臣察陛下無思警戒之義,而有積惡之漸,臣深憂之,此禍兆見矣。故略陳其要,寫盡愚懷。陛下宜克己復禮,述脩前德,不可捐棄臣言,而放奢意。意奢情[주1]至,吏日欺民;民離則上不信下,下當疑上,骨肉相克,公子相奔。臣雖愚,闇於天命,以心審之,敗不過二十稔也。臣常忿亡國之人夏桀、 殷紂,亦不可使後人復忿陛下也。臣受國恩,奉朝三世,復以餘年,值遇陛下,不能循俗,與眾沈浮。若比干、伍員,以忠見戮,以正見疑,自謂畢足,無所餘恨, 灰身泉壤,無負先帝,願陛下九思,社稷存焉。」 


初,皓始起宮,凱上表諫,不聽,凱重表曰:「臣聞宮功當起,夙夜反側,是以頻煩上事,往往留中,不見省報, 於邑歎息,企想應罷。昨食時,被詔曰:『君所諫,誠是大趣,然未合鄙意,如何?此宮殿不利,宜當避之,乃可以妨勞役,長坐不利宮乎?父之不安,子亦何 倚?』臣拜紙詔,伏讀一周,不覺氣結於胸,而涕泣雨集也。臣年已六十九,榮祿已重,於臣過望,復何所冀?所以勤勤數進苦言者,臣伏念大皇帝創基立業,勞苦勤至,白髮生於鬢膚,黃耇被於甲冑。天下始靜,晏駕早崩,自含息之類,能言之倫,無不歔欷,如喪考妣。幼主嗣統,柄在臣下,軍有連征之費,民有彫殘之損。 賊臣干政,公家空竭。今彊敵當塗,西州傾覆,孤罷之民,宜當畜養,廣力肆業,以備有虞。且始徙都,屬有軍征,戰士流離,州郡騷擾,而大功復起,徵召四方, 斯非保國致治之漸也。臣聞為人主者,攘災以德,除咎以義。故湯遭大旱,身禱桑林,熒惑守心,宋景退殿,是以旱魃銷亡,妖星移舍。今宮室之不利,但當克己復 禮,篤湯、宋之至道,愍黎庶之困苦,何憂宮之不安,災之不銷乎?陛下不務脩德,而務築宮室,若德之不脩,行之不貴,雖殷辛之瑤臺,秦皇之阿房,何止而不喪 身覆國,宗廟作墟乎?夫興土功,高臺榭,既致水旱,民又多疾,其不疑也?為父長安,使子無倚,此乃子離於父,臣離於陛下之象也。臣子一離,雖念克骨,茅茨不翦,復何益焉?是以大皇帝居于南宮,自謂過於阿房。故先朝大臣,以為宮室宜厚,備衛非常,大皇帝曰:『逆虜游魂,當愛育百姓,何聊趣於不急?』然臣下懇 惻,由不獲已,故裁調近郡,苟副眾心,比當就功,猶豫三年。當此之時,寇鈔懾威,不犯我境,師徒奔北,且西阻岷、漢,南州無事,尚猶沖讓,未肯築宮,況陛下危惻之世,又乏大皇帝之德,可不慮哉?願陛下留意,臣不虛言。」    


강표전에 이르길 : 손호의 행동이 갈수록 포학해지고 육개는 그가 장차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표를 올려 이르길 :「신이 듣기로 악은 쌓으면 안 되고 잘못은 길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악을 쌓고 잘못을 길게 하는 것은 상란의 근원입니다. 이로써 고대의 사람들은 잘못을 듣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선량한 말을 진언할 수 있는 깃발을 설치하고 감히 간언할 수 있는 북을 세운 것입니다. 무공은 나이가 90세였지만 경고와 훈계를 생각하였으니 시에서 그 덕을 찬미하고 선비들이 그 행동을 기뻐하였습니다. 신이 폐하를 살펴보니 경고와 훈계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점차 악을 쌓고 있으니 신은 이런 재앙의 징조가 보이는 것을 심히 걱정합니다. 그러므로 그 요점을 간략히 진술하고 어리석은 마음에 품은 바를 전부 써냈습니다. 폐하께서는 응당 극기복례하시어 전대 성현의 덕행을 이어받아 실천하셔야지 신의 말을 버리고 자기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뜻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고 나태함이 지극해지면 관리들은 날로 백성들을 기만하게 되고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면 곧 위에서는 아래를 믿지 못하고 아래에서는 응당 위를 의심하게 될 것이니 골육이 서로를 해치고 공자들이 장차 도망칠 것입니다. 신이 비록 어리석어 천명에 어두우나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건대 패망이 불과 20년입니다. 신은 항상 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인 하나라의 걸왕, 은나라의 주왕을 미워했는데 또한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폐하를 미워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신은 나라의 은혜를 입고 조정을 섬긴 것이 3대나 되는데 다시 여생에 폐하를 만나 유속을 따라 대중들과 더불어 부침을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비간과 오원처럼 충성으로 살해당하고 올바름으로 의심당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남은 원한이 없으며 몸이 죽어도 지하에서 선제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다시 생각하시어 사직이 존속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당초에 손호가 궁전 짓는 일을 시작했는데 육개가 표를 올려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육개가 다시 표를 써서 말하길 :「신이 궁전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야로 걱정하며 이로 인해 빈번하게 표를 올려 말을 했으나 왕왕 금중에 머물러 두고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짧은 숨으로 탄식하고 응당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밥을 먹고 있는데 조서를 받아 이르길 『그대의 간언은 실로 커다란 맥락은 맞다 할 수 있지만 나의 뜻에는 맞지 않는데 왜 그런 것인가? 이 궁전은 상서롭지 못해 응당 피해야하는데 마침내 노역을 꺼려 길게 상서롭지 못한 궁전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불안한데 자식은 또한 어디에 의지해야 하는가?』신이 조서를 받들어 엎드려 한번 읽고는 기운이 가슴에 맺힌 것을 깨우치지도 못하고 비 오듯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의 나이가 이미 69세이고 명예와 봉록이 이미 중한지라 신의 희망을 넘어 섰으니 다시 무슨 기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간절히 수차례 간언을 올리는 이유는 신이 엎드려 대황제가 창업하는 것을 생각하니 노고와 근면이 지극하여 귀 밑에 백발이 생기고 노년에 갑주를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천하가 비로소 안정돼 가는데 세상을 뜨셨으니 숨을 쉬고 말할 수 있는 무리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 탄식하지 않는 부류가 없었습니다. 어린 군주가 제통을 잇고 권세가 신하에게 있으며 군대는 연달아 정벌하는 소비가 있고 백성들은 해를 입어 고통스러운 손해가 있었습니다. 적신이 정치에 관여하니 공가가 텅 비게 됐습니다. 현재 강적의 도래를 맞이하여 서주는 이미 무너졌고 외롭고 피로한 백성들은 응당 휴식하고 살아나가게끔 하여 널리 힘써 농업에 근면하고 걱정에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처음 수도를 옮길 때 군대에서 징발하여 전사들이 흩어지고 주군이 소란스러웠는데 큰 공사를 다시 일으켜 사방에서 징소하면 이는 나라를 보전하고 정치를 청명하게 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신이 듣기로 군주가 되는 사람은 덕으로 재해를 물리치고 도의로 잘못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탕왕은 큰 가뭄을 만나 자기의 몸으로 삼림에서 빌었으며 형혹이 심수에 이르자 송 경공은 궁전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로써 가뭄이 사라지고 요사한 별이 옮겨졌습니다. 지금 궁실이 상서롭지 못하면 다만 극기복례하여 탕왕과 경공의 지극한 도를 독실하게 실천하고 백성들의 고생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어찌 궁전의 불안과 재앙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폐하께서 덕을 닦는데 노력하지 않고 궁실을 짓는데 노력하여 만약 덕이 닦이지 않고 행동이 고귀하지 않다면 비록 은나라 주왕의 요대와 진시황의 아방궁이 있다 한들 어찌 몸이 멸망하고 나라가 전복되어 종묘가 폐허가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 그치겠습니까? 무릇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높은 누대를 지으면 이미 수재와 한재를 불러오고 백성들은 또한 질병에 많이 걸리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되어서 오래 편안한데 자식으로 하여금 의지할 데가 없게 하면 이는 자식이 아버지를 떠나고 신하가 폐하를 떠나는 형상입니다. 신하가 한번 떠나면 비록 깊이 사모하여 제대로 정돈도 안 된 초가집에서 거처한다고 하여도 다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로써 대황제는 남궁에 거처하면서도 스스로 말하길 아방궁보다 지나치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조의 대신들은 궁실은 응당 두텁게 지어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황제는 말하길 『부형의 유혼은 응당 백성들을 사랑하고 기르고자 할 텐데 어찌 비상상황에 생각이 미칠 겨를이 있겠는가?』하였으나 신하들이 간절하여 부득이하게 근처의 군에서 징발할 것을 결정하여 중심에 구차히 맞추고자 하였는데 완성과 비교하면 3년이나 걸렸습니다. 이 당시에 도적들이 위엄을 두려워하여 우리의 영토를 범하지 못했고 군대가 북쪽으로 치달아 서쪽으로 민, 한을 막아 남방에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오히려 겸양하여 궁전을 짓고자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폐하는 위태로운 시대에 처하여 대황제 만한 덕도 없는데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께서 마음을 쓰시기 바라니 신은 허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1] 삼국지 집해를 보면 情을 혹 惰의 오타로 생각했는데 지금 그 견해를 따름


[[육윤전]]으로 분리

분류 :
오서
조회 수 :
5149
등록일 :
2013.05.01
15:06:59 (*.125.69.108)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047/bc6/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047

나무개구리

2013.05.01
15:07:32
(*.125.69.108)

육개의 간언이 있은 후에 손권은 행동을 멈췄다.: 손권->손호로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6
15:22:54
(*.0.203.140)
배주 추가했습니다. 육개의 상소뒤에 무서울만큼 긴 주석이 있군요.

코렐솔라

2016.05.22
10:45:29
(*.196.74.143)
주석의 강표전에 실린 3개의 표는 모두 dragonrz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38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87855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96357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40058
» 오서 육개전 [3] 견초 2013-05-01 5149
69 오서 반준전 [7] 견초 2013-05-01 5645
68 오서 종리목전 [4] 견초 2013-05-01 4757
67 오서 주방전 [10] 견초 2013-05-01 4581
66 오서 여대전 [14] 견초 2013-05-01 5737
65 오서 전종전 [4] 견초 2013-05-01 6120
64 오서 하제전 [10] 견초 2013-05-01 6011
63 오서 손분전(오서 14권, 손패의 동생) [1] 견초 2013-05-01 4116
62 오서 손패전 [1] 견초 2013-05-01 3948
61 오서 손화전 [3] 견초 2013-05-01 5314
60 오서 손려전 [2] 견초 2013-05-01 4104
59 오서 손등전 [2] 견초 2013-05-01 5510
58 오서 육경전(육손의 손자들) [3] 견초 2013-05-01 5386
57 오서 육항전 [3] 견초 2013-05-01 8032
56 오서 육손전 [28] 견초 2013-05-01 14739
55 오서 주거전 [2] 견초 2013-05-01 4395
54 오서 오찬전 [2] 견초 2013-05-01 4065
53 오서 육모전 [2] 견초 2013-05-01 4106
52 오서 낙통전 [2] 견초 2013-05-01 4349
51 오서 장온전 [3] 견초 2013-05-01 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