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吳範)은 자가 문칙(文則)이고, 회계군(會稽) 상우(上虞) 사람이다. 그는 역법을 익히고 풍기(風氣)에 밝았기 때문에 군(郡)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유도(有道)에 천거되어 경도(京都)로 가야 했지만, 세상이 혼란하여 가지 않았다. 마침 손권(孫權)이 동남쪽에서 일어났으므로 오범은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 일을 했다. 오범은 언제나 재앙의 징조가 있을 때마다 미리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였는데, 그의 방술은 효험이 많았다. 그래서 명성이 더욱더 빛나게 되었다.

당초 손권이 오(吳)에 있으면서 황조(黃祖)를 토벌하려고 하자, 오범이 말했다.

“금년(今)에는 이로움이 적어 내년만 못합니다. 내년은 무자년(戊子)으로 형주(荊州)의 유표(劉表)는 물론 나라도 망할 것입니다.”

손권은 황조를 정벌하러 갔지만, 끝내 이길 수 없었다. 다음해, 군대를 출동시켜 심양(尋陽)까지 달려갔을 때, 오범은 풍기를 관찰하고 손권의 배까지 와서 축하하였다. 오범은 병사를 재촉하여 긴급히 행동해 도착하는 즉시 황조 군대를 무찔렀으며, 황조는 밤에 달아났다. 손권은 황조를 놓친 것을 걱정했다. 오범은 이렇게 말했다.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황조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오경(五更)이 되자 과연 황조를 사로잡았다. 유표는 결국 죽었고, 형주는 분할되었다.

임신년(壬辰)이 되자, 오범이 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갑오년(甲午)에는 유비(劉備)가 반드시 익주(益州)를 얻을 것입니다.”

이후에 여대(呂岱)는 촉(蜀)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백제(白帝)에서 유비를 만났다. 여대는 돌아와, 유비의 부대는 흩어져 버렸고 죽은 자가 거의 절반이므로 일은 반드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권이 여대의 말에 근거하여 오범을 힐난했다. 오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말한 것은 하늘의 도리(天道)이지만, 여대가 본 것은 사람의 일(人事)일 뿐입니다.

유비는 과연 촉을 차지했다.

손권(權)은 여몽(呂蒙)과 함께 관우(關羽)를 습격할 일을 미리 모의하고, 신임하는 가까운 신하들과 상의하였는데,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손권은 이 일에 관해 오범에게 질문을 하였다. 오범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관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후에 관우는 맥성(麥城)에 있으면서 사자를 보내 항복을 요청하였다. 손권은 오범에게 질문했다.

“그는 결국 본심으로 투항하려는 것이오?”

오범이 말했다.

“그에게는 달아나려는 징후가 있습니다. 투항한다는 말은 거짓일 뿐입니다.”

손권은 반장(潘璋)을 시켜 관우의 길을 끊도록 했다. 정찰하는 자가 돌아와 관우가 이미 떠났다고 보고했다. 오범이 말했다.

“비록 떠났을지라도 모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손권이 관우를 체포하게 될 시간을 묻자, 오범은 이렇게 말했다.

“내일 정오입니다.”

손권은 해시계와 물시계를 장치하고 그 시간을 기다렸다. 정오가 되었는데도 관우가 붙잡혀 오지 않자, 손권이 그 까닭을 물었다. 오범이 이에 대답하였다.

“시간은 아직 정오가 안되었습니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 휘장을 움직이자, 오범은 손을 치며 말했다.

“관우가 붙잡혀 왔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밖에서는 만세 소리가 들려왔고 관우를 붙잡았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후 손권이 위(魏)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을 때, 오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람의 징후로써 말하면, 그들은 예절있는 모습으로 왔지만 사실은 음모가 있으니 마땅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유비(劉備)가 서릉(西陵)에서 병사를 많이 일으키자, 오범이 말했다.

“이후에 반드시 화친을 맺을 것입니다.”

결과는 모두 그의 말과 같았다. 그의 점(占)의 징험은 이와 같이 분명했다.

손권은 오범을 기도위(騎都尉)로 임명하고 태사령(太史令)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여러 차례 방문하여 점의 비결을 알려고 했다. 오범은 자신의 법술을 비밀로하고 아꼈으므로 중요한 것에 이르러서는 손권에게 말하지 않았다. 손권은 이 때문에 그를 한스러워 했다.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오범吳範이 홀로 내심 고려하길, 중히 여겨짐은 법술 때문이고, 법술이 없어지면 자신은 버려질 것이었기에, 끝내 말하지 않았다.


처음 손권이 장군(將軍)으로 임명되었을 때, 오범은 일찍이 강남(江南)에 제왕(王)의 기운이 있으며, 해년(亥)과 자년(子) 사이에 큰 복과 경사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손권이 말했다.

“만일 결과가 당신의 말과 같다면, 당신을 후(侯)로 임명하겠다.”

손권이 오왕(吳王)으로 세워지자, 오범은 그 당시 연회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오중(吳中)에 있을 때, 일찍이 이 일을 말했었는데, 대왕(大王)께서는 기억하십니까?”

손권이 말했다.

“기억한다.”

그리고 수하 사람들을 불러 오범에게 후작(侯)의 수대(綬)를 주도록 했다. 오범은 손권이 이것으로 이전의 약속을 막으려 하는 것을 알고 손으로 밀고 받지 않았다. 이후 공로를 논하여 작위를 봉할 때, 오범을 도정후(都亭侯)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조서가 공포되기 직전에 손권은 오범이 자신에게 법술을 아끼는 것을 한탄하며 그의 이름을 삭제했다.

오범은 사람됨이 강직하며 자신을 뽐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까운 친구와의 왕래에는 시작과 끝이 있었다. 그는 평소 위등(魏滕)과 같은 읍(邑)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위등이 일찍이 죄를 짓자, 손권(權)은 노여워 하며 매우 심하게 질책했고, 감히 간언하는 자는 죽임을 당했다. 오범은 위등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죽겠습니다.”

위등이 말했다.

“죽어도 이익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합니까?”

오범이 말했다.

“어떻게 이점을 생각하고 당신의 일을 앉아서 보기만 합니까?”

그리고 머리를 자르고 직접 결박하여 궁궐 문 밖으로 와서 장수로 하여금 간언하러 왔음을 통보하도록 했다. 장수는 감히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죽게 될 것이므로 감히 보고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범이 말했다.

“당신은 자식이 있습니까?”

장수는 이에 대답했다.

“있습니다.”

오범이 다시 말했다.

“만일 당신이 나 오범 때문에 죽는다면, 자식을 나에게 주십시오.”

장수는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장수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손권은 매우 노여워하며 창을 그에게 던져 찌르려고 했다. 그는 몸을 돌려 달려 나갔고, 오범이 그 기회를 타서 갑자기 들어와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며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손권은 마음이 풀렸고, 비로소 위등을 풀어주었다. 위등은 오범을 마나 감사해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모님은 나를 낳고 기를 수는 있었지만, 나를 죽음에서 모면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장부(丈夫)의 지기(知)로는 당신과 같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거늘 어찌 많이 얻겠습니까!”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이르길(魏滕)의 자는 주림(周林)이다. 그의 조부는 내태수 랑()으로 자는 소영(少英)인데, 팔준(八俊) 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위등의 성품은 강직하여 구차하게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일을 하지 않아 비록 곤란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더라도 끝내 굽히거나 구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책을 크게 거슬러 위태로워 졌으며, 태비(太妃; 오부인 손책의 어머니)에게 의지해  구원을 얻어 용서받을 수 있었는데 이 일은 비빈전(妃嬪傳)에 보인다. 역산(歷山) 역양(歷陽) 파양(潘陽)(鄱陽), 산음(山陰) 세 현의 현령을 역임했으며 파양태수(鄱陽太守)가 되었다.

황무(黃武) 5년(226), 오범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범의 장남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작은 아들은 여전히 어렸으므로 그의 사업은 끊어지게 되었다. 손권(權)은 그를 추념하고, 관할하는 세 주(三州 : 형주ㆍ양주ㆍ교주)에서 오범(吳範)과 조달(趙達) 같이 술수를 알고 있는 자를 천거하도록 하여 천호후(千戶侯)로 봉하려고 했지만 끝내 얻지 못했다.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오범吳範이 이전에 그의 죽을 날을 알고는, 손권孫權에게 이르길 : “폐하께선 모일이 되면 응당 군사軍師를 잃을 것입니다.” 손권이 이르길 : “나는 군사가 없는데, 어찌 이를 잃을 수 있겠소?” 오범이 이르길 : “폐하께서 출병하셔 적에게 임하시며, 신의 말을 기다렸다가 후에 행하시니, 신이 바로 폐하의 군사이옵니다.” 그 날이 되니 과연 죽었다.

 

신 배송지裴松之가 상고하건대, 오범이 죽었을 때, 손권은 아직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니, 여기서 폐하라 이름은, 옳지 않습니다.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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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15:21:37 (*.125.6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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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1
13:23:14
(*.104.141.18)
한문 주석 올리고 가능한 부분은 번역함

코렐솔라

2013.12.04
20:50:54
(*.166.245.165)
맨밑에 있는 손권의 군사를 자처한 오범은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859362

코렐솔라

2013.12.05
15:48:26
(*.166.245.165)
오범이 버려질 것을 걱정해서 안 말한 것도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88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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