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각(諸葛恪)은 자가 원손(元遜)이고 제갈근의 맏아들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약관의 나이에 기도위로 임명되었고, 고담ㆍ장휴 등과 함께 태자 손등을 모시면서 도리나 육예에 관해 강론했으며 나란히 태자의 빈우(賓友)가 됐다. 그는 중서자로부터 좌보도위로 승진했다.



江表傳曰:恪少有才名,發藻岐嶷,辯論應機,莫與為對。權見而奇之,謂瑾曰:「藍田生玉,真不虛也。」


강표전에 이르길 : 제갈각은 어려서부터 재능에 대한 명성이 있었고 영민하였으며 임기응변의 변론으로 대적이 없었다. 손권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제갈근에게 말하길 「남전에서 옥이 생산된다더니 진실로 거짓이 아니구나.」


오록에 이르길, 제갈각은 키가 7척 6촌이고, 수염과 눈썹이 적었고, 코는 꺾여있는데다가 이마는 넓었으며, 입은 크고 목소리는 높았다.


제갈각의 아버지 제갈근은 얼굴이 마치 당나귀처럼 길었다. 손권은 많은 신하들이 대대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사람을 시켜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 들어와 그 당나귀의 얼굴에 긴 봉투를 붙이고 제갈자유(諸葛子瑜=제갈근의 자)라고 쓰도록 했다. 제갈각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붓으로 두 글자를 더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손권은 이것을 허락하고 붓을 주었다. 제갈각은 그 아래에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지려(之驢=합쳐 연결하면 '제갈근의 나귀'란 뜻이 됨.)'

그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즐겁게 웃었다. 그래서 손권은 당나귀를 제갈각에게 하사했다. 다른 날 또 만났을 때 손권은 제갈각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부친과 숙부(제갈량) 중에서 누가 현명한가?"

제갈각이 대답했다.

"신의 부친이 뛰어납니다."

손권이 그 까닭을 묻자, 제갈각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의 부친은 일을 맡을 만한 자를 알지만 숙부는 모르기 때문에 뛰어난 것입니다.(아마도 제갈양이 마속을 기용하여 가정에서 참패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손권은 또 크게 웃었다. 손권은 제갈각에게 다니면서 술을 권하도록 명했다. 제갈각이 장소 앞까지 이르렀을 때, 장소는 벌써 취기가 있어 마실 수 없었으므로 제갈각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노인을 공양하는 예의가 아니다."

손권이 말했다.

"그대가 장공(張公)으로 하여금 말을 굽힐 수 있으면, 응당 마실 것이다."

제갈각은 장소를 반박하여 말했다.

"옛날 사상보(師尙父)는 90세 때도 깃발을 잡고 월(鉞)을 가지고는 여전히 아직 늙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사적인 일에 있어서는 장군은 후방에 있지만, 술 마시고 밥 먹는 일에 있어서는 앞에 있으면서 어찌 노인을 공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까?"

장소는 끝내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술잔 가득 마시게 되었다. 이후에 촉나라의 사자가 도착하여 신하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손권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제갈각은 말타기를 매우 좋아한다. 돌아가서 승상에게 말하여 좋은 말을 보내오도록 하라."

제갈각은 그래서 즉시 무릎을 꿇고 감사해 했다. 손권이 말했다.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감사해 하시오?"

제갈각은 이렇게 대답했다.

"촉나라는 폐하의 외부에 있는 마구간인데, 오늘 은혜로운 조서를 내렸으므로 말은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어찌 감히 감사해 하지 않겠습니까?"

제갈각의 재능과 민첩한 사고는 모두 이러한 류였다.

恪別傳曰:權甞饗蜀使費禕,先逆勑羣臣:「使至,伏食勿起。」禕至,權為輟食,而羣下不起。禕啁之曰:「鳳皇來翔,騏驎吐哺,驢騾無知,伏食如故。」恪荅曰:「爰植梧桐,以待鳳皇,有何燕雀,自稱來翔?何不彈射,使還故鄉!」禕停食餅,索筆作麥賦,恪亦請筆作磨賦,咸稱善焉。權甞問恪:「頃何以自娛,而更肥澤?」恪對曰:「臣聞富潤屋,德潤身,臣非敢自娛,脩己而已。」又問:「卿何如滕胤?」恪荅曰:「登階躡履,臣不如胤;迴籌轉策,胤不如臣。」恪甞獻權馬,先(金+芻)其耳。范慎時在坐,嘲恪曰:「馬雖大畜,稟氣於天,今殘其耳,豈不傷仁?」恪荅曰:「母之於女,恩愛至矣,穿耳附珠,何傷於仁?」太子甞嘲恪:「諸葛元遜可食馬矢。」恪曰:「願太子食雞卵。」權曰:「人令卿食馬矢,卿使人食雞卵何也?」恪曰:「所出同耳。」權大笑。 

제갈각 별전에 이르길 : 손권은 일찍이 촉의 사절 비의를 대접하면서, 먼저 군신들에게 칙명을 내리길    

「사절이 올 것이니 엎드려서 먹고 일어나지 말라.」    

비의가 오자 손권은 먹기를 멈췄으나 신하들을 일어나지 않았다.    

비의가 조롱하길    

「봉황이 날아오자, 기린은 먹던 것을 뱉었는데, 당나귀와 노새는 무지하여, 예전처럼 엎드려 먹는구나.」    

제갈각이 답하길    

「오동나무를 심는 것은 봉황을 맞이하려 함인데, 어찌하여 제비나 참새가 자칭하여 날아왔다고 하느냐? 어찌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시게 !」    

비의는 떡을 먹기를 멈추고 붓을 찾아 '맥(보리)부'를 지었는데, 제갈각 또한 붓을 청하여 '마(보리를 가는)부'를 지으니 모두 훌륭하다고 하였다.    


손권이 일찍이 제갈각에게 묻길 「근래에 어떻게 스스로 즐겼기에 다시 살찌고 윤택해졌는가?」 제갈각이 대답하길 「신은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신은 감히 스스로 즐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양했을 따름입니다.」또 묻기를 「경은 등윤(滕胤)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제갈각이 대답하길 「등조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은 신이 등윤만 못합니다. 산가지를 놀려 책략을 짜는 것은 등윤이 신보다 못합니다.」    


제갈각이 일찍이 손권에게 말을 바쳤는데, 먼저 그 귀를 뚫어놓았다. 범신(范慎)이 이때 자리에 있었는데, 제갈각을 조롱하며 말하길    
「말이 비록 큰 짐승이지만 하늘로부터 품성을 타고났는데 지금 그 귀를 상하게 하였으니 어찌 그 인(仁)이 상하지 않았겠는가? 」

제갈각이 답하길    

「어머니가 딸에 대해서는 은애가 지극한 사람인데 귀를 뚫어 귀걸이를 걸은들 그 미덕(仁)에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태자가 일찍이 제갈각을 조롱하며 말하길    

「제갈원손은 말의 똥을 먹을 수 있다.」    

라 하자 제갈각이 말하길    

「태자께선 계란을 드시도록 하십시오」    

라 하였다. 손권이 말하길   

 「다른 사람이 경에게 말똥이나 먹으라고 하였는데 경은 남에게 계란을 먹으라 하니 어찌하여 그리하오?'」    

제갈각이 말하길    

「똑같은 곳에서 나왔을 뿐입니다」    

라 하자 손권이 크게 웃었다.


강표전: 일찍이 머리가 흰 새가 궁전 앞 정원으로 모여들었다. 손권이 '이것이 무슨 새인가?' 라고 묻자, 제갈각이 '백두옹(白頭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소(張昭)는 그 자리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늙었으므로 제갈각이 새로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제갈각은 폐하를 속이는 것입니다. 백두옹이라는 새 이름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갈각에게 백두모(白頭母)라는 새를 구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제갈각은 '앵모(鸚母)라는 이름의 새가 있는데, 이것과 대(對)를 이루는 새가 반드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오(輔吳. 장소가 보오장군의 위치에 있었음)에게 앵부(鸚父)를 구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장소는 대답할 수 없었고, 좌중에 있던 자들은 모두 웃었다.

손권은 그를 매우 특이한 인물로 생각하고 구체적인 일로써 시험해 보려고 절도(節度)의 직책을 대리하도록 했다. 그 직책은 군대의 식량을 관장하며 문서가 번잡하였으므로 제갈각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강표전에 이르길: 손권은 오왕이 되자 처음으로 절도라는 관직을 두어 군량미를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한왕조의 제도에는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시중이며 편장군이였단 서상(徐詳)을 이 직책에 임용했었고, 서상이 죽자 제갈각을 대신 임명했다. 제갈양은 제갈각이 서상의 뒤를 잇는다고 전해 듣게 되자,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형(제갈근)은 연로하고, 그의 아들인 제갈각은 거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오늘 그에게 식량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식량은 군사적인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먼 곳에 있지만, 사사로이 불안을 느낍니다. 당신이 특별히 폐하께 알려 그의 임무를 바꾸도록 하십시오.' 육손이 손권에게 아뢰자, 즉시 제갈각에게 병사를 지휘하는 관직으로 바꾸도록 했다.

제갈각은 주장하기를, 단양은 산이 험하고 백성들의 대부분이 과감하고 강인하여, 비록 이전에 병사들을 출동시켰어도 단지 변방 현의 평민만을 얻었을 뿐 그밖에 깊고 먼 산 속에 있는 자들은 전부 붙잡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직접 단양의 관리로 임명되어 나가기를 누차에 걸쳐 요청하여 3년 만에 무사 4만명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중론은 모두 다음과 같았다.

"단양은 지세가 험준하며, 오군ㆍ회계ㆍ신도ㆍ파양 네 군과 인접해 있고, 면적이 수천 리이며 산과 계곡이 무수히 포개져 있고, 외지고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찍이 성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장리를 보지도 못하고 모두들 들녘에서 무기를 쥐고 있으며 최후에는 수풀 속에서 늙어 죽습니다. 도망자나 오랫동안 사악한 행위를 한 자는 모두 함께 이곳으로 달아나 숨어 있습니다. 산 속에서는 구리와 철이 생산되므로 직접 병기를 주조합니다. 그곳의 습속은 무예를 좋아하고 싸움을 익히며 기력(氣力)을 높이 숭상합니다. 그들이 산을 오르고 험난한 곳을 넘으며 가시덤불을 뚫고 지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연못 속에서 질주하고,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틈을 살펴 나와서 소란을 일으키고 약탈하여, 매번 병사들이 출정하여 토벌하려고 그들이 숨어있는 소굴을 찾습니다. 그들이 싸울 때는 벌이 이르는 것처럼 하고, 패배하면 새처럼 사방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곤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제갈각의 부친 제갈근은 이 일에 관해 듣고 역시 이 일을 끝마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탄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갈각은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키지 못하고 장차 우리 종족을 멸하게 할 것이다."

제갈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진력을 다해 진술했다. 손권은 제갈각을 무월장군(憮越將軍)으로 임명했고 단양태수를 겸임하도록 했으며, 적흑색의 비단으로 싼 나무창을 쥔 기병 3백명을 주었다. 관직에 임명하는 일을 끝마치고 제갈각에게 위의를 갖추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행렬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명했다. 당시 제갈각의 나이는 32세였다.

제갈각은 임지에 도착한 후, 네 군에 소속된 성의 장리들에게 편지를 보내 각자 자신들이 관할하는 지역을 지키고 군대를 정돈하여 세우며, 평민들을 복종시키고 교화하여 모두 안정되게 머물러 거주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관소의 장수들을 나누어 파견하고 병사들을 험난한 곳에 배치하여 단지 방어 진지만을 수리하고 그들과 교전하지 말도록 하였으며, 곡식이 장차 익으려고 할 때를 기다렸다가 병사들을 풀어 베도록 하여 씨를 남기지 않게 했다. 산 속에 있는 자들은 옛날 곡식을 이미 다 소비했고 새 곡식을 수확하지 못하게 되었다. 평민들은 안정되게 거주하였으며 약탈하여 손에 넣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산 속의 백성들은 굶주리고 곤궁하게 되자, 점점 나와서 투항했다. 제갈각은 또 수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 속의 백성들은 악을 보리고 복종하여 교화되었으니 모두 응당 위로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밖의 현으로 옮겨 살도록 하고 의심하여 잡아다 구금하지 말라."

구양(臼陽)의 장 호항(胡伉)이 항복한 백성 주유(周遺)를 체포했다. 주유는 과거 사악한 백성으로 상황이 곤란해져 핍박을 받게 되자, 잠시 산을 나왔지만, 속으로는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 호항은 그를 체포하여 제갈각의 관소로 보내왔다. 제갈각은 호항이 명령을 어긴 것으므로 참수하여 사람들에게 돌려 보이고는 표를 만들어 이 일을 조정에 보고했다. 백성들은 호항이 사람을 체포하는 죄를 범하여 주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관에서 산의 백성들을 나오도록 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나오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사람들의 수는 모두 제갈각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 같이 되었다. 제갈각은 직접 1만 명을 인솔했고, 그 밖의 사람들은 여러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손권은 그의 공로를 기뻐하여 상서복야 설종을 보내 제갈각의 군대를 위로하도록 했다. 설종은 먼저 제갈각 등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월의 백성들은 험난한 지세에 의지하고 있어 복종시키지 못한 지 몇 해가 지났습니다. 그들을 느슨하게 하면 의심많은 쥐가 머리를 내놓고 관망하는 것처럼 하고, 급박해지면 이리같이 뒤를 돌아보며 두려워하였으므로 황제는 상당히 노여워하여 장수들에게 서쪽을 정벌하도록 했습니다. 신기한 책략이 조정 안에서 전해지고 군대의 무용은 먼 곳까지 진동시켰습니다. 병기에는 혈흔이 묻어있지 않으며, 갑옷은 땀으로 젖지 않았습니다. 원흉과 사악한 자의 목을 베어 내다 걸자 무리들은 정의로 뒤순했으며 깊은 산 속의 도적들은 소탕되었고 포로 10만 명을 바쳤습니다. 들에는 남은 도적들이 없고, 성읍에도 잔존하는 간사한 사람이 없습니다. 흉악한 자들을 소탕했을 뿐만 아니라 또 군대 비용을 충실하게 했습니다. 명아주와 강아지풀이 유익한 풀로 변했습니다. 도깨비는 다시 용감한 병사가 되었습니다. 비록 실제로는 국가의 위엄과 신령스러움이 더해졌을지라도 또한 확실히 원수가 직접 도달하여 조상한 것입니다. 비록 《시경》에서는 포로를 찬미하고 심문하고, 《역경》에서는 목을 벤 일을 칭찬했으며, 주왕조의 방숙(方叔)ㆍ소백호(召伯虎), 한왕조의 위청(衛靑)ㆍ곽거병(藿去病)을 어찌 나란히 논할 수 있겠습니까? 공적은 옛 사람을 뛰어넘고 공훈은 이전 시대를 초월합니다. 주상(主上)께서는 기뻐하며 먼 곳에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두(四?)>편의 유전(遺典)에 감동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는 병사들에게 연회를 내린 옛날 예의제도를 사모했습니다. 때문에 중대(中臺)에서 가까이 있는 관리를 파견해 장군을 영접하고 상을 내려서 위대한 공적을 빛내고 수고로움을 위로하도록 했습니다.

제갈각을 위북장군으로 임명하고 도향후로 봉했다. 제갈각은 병사들을 인솔하여 여강(廬江)의 환구(喚口)에서 둔전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볍게 무장한 병사들로 서현을 습격하여 그곳의 백성들을 체포하여 돌아왔다. 또 먼 곳으로 정찰할 사람들을 파견해 도로와 요충지를 관찰하도록 하여 수춘을 취하려고 도모했다. 그러나 손권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오 연간, 위나라의 사마선왕(사마의)이 제갈각을 공격하려고 도모했을 때, 손권은 마침 병사를 출동시켜 이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점을 쳐서 형세를 살피는 자가 불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제갈각에게 시상으로 옮겨 주둔하도록 했다. 제갈각은 승상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경숙(楊敬叔)이 고아한 이론을 강술하여 전했는데, 바야흐로 현재 인물들은 그것을 글로 새겼으며, 도덕과 사업을 지키는 자는 또 몇 명 없으므로 마땅히 서로 돕고 보조하여 위로는 국사(國事)를 일으키고 아래로는 서로 중히 여기고 아껴야 합니다. 또 세상 풍속이 서로 훼방하기 좋아하여 이미 성취한 것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도에 손상을 입도록 하니, 장차 앞으로 나아가려는 무리들은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웃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듣고 탄식했으며 진실로 혼자 손을 치며 격분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자는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공자의 문하생 대략 3천 명 중에서 특별하게 돌출되는 72명, 자장(子張)ㆍ자로(子路)ㆍ자공(子貢) 등 70명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아성(亞聖)의 덕을 갖추고 있지만, 각기 단점이 있어 전손사(?孫師:자장)는 편벽되고, 중유(仲由:자로)는 법을 만들지 못했고, 단목사(端木賜:자공)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점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중니(仲尼:공자)는 이런 제자들이 갖추고 있지 못함을 문제 삼지 않고 손을 이끌어 친구로 간주했으며,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그들의 단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재는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 마땅히 지난 옛날보다 관대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현재의 시세는 복잡하지만 훌륭한 인물은 적으며 국가의 각 부처의 관리들은 항상 충족되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정이 사악하지 않고 재력을 다하려는 뜻이 있으면, 곧 임용을 장려하여 본래의 직책에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작은 것에서는 취할 만한 재능이 있지만 개인적인 행동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마땅히 너그럽게 용서해야지 하나하나 꾸짖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재능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세미하게 논의하고 가혹하게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가혹하게 요구하게 된다면 옛날의 현인과 성인도 오히려 완미(完美)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 있어서야? 때문에 도덕으로써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며, 보통 사람의 표준으로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쉽습니다. 이와 같으면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간에 알 수 있습니다. 한왕조 말년 이래부터 사대부, 가령 허자장(許子將. 허소)의 무리들 중에서는 더욱 서로 비방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화를 야기시키기도 했는데,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까닭을 살펴보면 크게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억제하는 예절은 다할 수 없으면서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는 바른 도의로써 질책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예의에 부합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공정한 도의로써 다른 사람을 꾸짖으면 사람들은 참아내지 못합니다. 내심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복종하지 않고,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질책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서로 원수가 안될 수 없습니다. 서로 한 차례 원수가 되면 소이들이 그 중간에 모이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모이게 되면 뜬소문이 여러 차례 전해지며 나날이 참언이 쌓여 혼란스럽게 뒤섞여 이르게 됩니다. 비록 지극히 현명하고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도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스스로 진위를 결정짓기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이미 틈이 생겼으며, 게다가 사리를 명백히 할 수 없는 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장이(張耳), 진여(陳餘)는 서로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소육(蕭育)과 주박(朱博)이 끝까지 좋은 사이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본래 이로부터 말미암은 것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과실을 버리지 않고 미미한 일에서 서로 꾸짖으며,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가가호호 원수가 되어 한 나래에 품행이 완전한 선비는 다시 없게 될 것입니다.

제갈각은 육손이 이것으로써 자신을 책망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 이치를 다방면으로 서술하고 그의 취지를 칭찬했다. 마침 육손이 죽자, 제갈각은 대장군으로 승진했고, 부절을 받았으며 무창에 주둔하여 육손을 대신해 형주자사의 일을 겸임하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손권이 예측하지 못한 사이에 중병이 들자, 태자의 나이가 적었으므로 제갈각을 불러 대장군의 신분으로 태자태부를 겸임하도록 했으며, 중서령 손홍(孫弘)이 태자소부를 겸임하게 되었다. 손권은 질병이 심해지자, 제갈각과 손홍 및 태상 등윤, 장군 여거, 시중 손준을 불러 뒷일을 부탁했다.

오서에서 이르길: 손권은 병상에 있게 되자, 뒷일을 누구에게 의탁하면 좋을지 논의하도록 했다.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제갈각에게 주의하고 있었는데, 손준이 표를 올려 제갈각의 기량은 군주를 보좌하여 정치를 하기에 충분하므로 큰 일을 맡길 수 있다고 했다. 손권은 제갈각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여 일을 처리했으므로 그를 꺼리고 있었으나, 현재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그에게 미치지 못함이 확실하게 보증할 만하다고 여겼으므로 제갈각을 불렀다. 그후 상태가 악화되자 제갈각 등을 병상으로 불러 침대 아래에서 조서를 받도록 했다. 손권은 조서에서

'나의 병세는 절망적이다. 아마 여러분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을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라고 했다. 제갈각은 눈물을 흘리며

'신 등은 모두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므로 응당 죽음으로서 조서를 만들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정신을 안정되게 하고 생각을 하여 외부 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손권은 담당 관리들에게 조서를 내려 모든 일을 제갈각에게 결재를 받도록 했으며 단지 국가 시험 등과 같은 것은 사후에 제갈각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다음날, 손권이 세상을 떠났다. 손홍은 평상시 제갈각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제갈각에게 처벌될 것을 두려워했다. 손홍은 손권이 사망한 소식을 비밀에 부치고 거짓 조서로 제갈각을 제거하려고 했다. 손준이 이 일을 제갈각에게 보고했다. 제갈각은 손홍에게 어떤 일에 대해 자문을 요청하고는 대답하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주살시켰다. 그리고 손권의 부음을 선포했으며 상복을 입었다. 제갈각은 동생 공안독(公安督) 제갈융(諸葛融)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이달 16일 을미시(乙未時)에 대행황제(大行皇帝)가 만국(萬國)을 버리고 떠나갔고, 지위의 높고 낮은 신하들은 슬퍼하며 애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우리 부자와 형제에 이르면, 한결같이 특별한 은혜를 받아 단지 평범한 신하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매우 슬퍼 간과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황태자는 정유일(丁酉日)에 황제의 지위에 즉위하니, 나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공존해 취할 바를 모르겠다. 내 몸은 임종할 때 남긴 명령을 받아 어린 군주를 보좌하고 있는데, 스스로 사사로이 헤아려 보면 재능은 박육(博陸;?光)에 미치지 못하는데 희공(嬉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보좌하여 제후들의 알현을 받는 것같은 중임을 받아 승상이 한왕조를 보좌한 효과를 더하는 일을 두려워하고, 선제께서 중임을 맡긴 영명함을 손상시키게 될 것이 두렵다. 이때문에 걱정하며 두려워 매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위에 있는 자를 싫어하여 행동하면 주시를 받게 되는데, 언제나 이것을 바꾸겠는가? 현재 어리석고 노둔한 자질로 군주를 보좌하는 고관의 위치에 있으면서 어려움은 많고 지모는 부족하고, 임무는 무겁고 모략은 얕으니 누가 입술과 치아처럼 되어 돕겠는가? 가까이로는 한왕조의 시대에 연왕(燕王) 단(旦)과 개장공주(蓋長公主)가 결탁하여 상관걸(上官桀)이 곽광을 살해하려고 했던 변란이 있었다. 현재 나의 처지는 그때와 거의 같은데, 어찌 감히 편안히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또 동생이 있는 곳은 적과 경계가 교차되어 있으니, 이러한 때에는 군수물자를 정돈하고 장수와 병사들을 격려하고 평상시보다 경계와 방비를 강화하고, 만번이라도 나와 함께 죽을 생각을 하여 한 번의 삶을 돌아보지 않음으로서 조정에 보답해 조상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한다. 또 각 장수들은 각기 자신의 지역을 수비하며 적군이 황제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의로 침입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변방의 각 관소에는 이미 별도로 약속한 문서를 내려 수하의 독(督)이나 장(將)은 임의로 자신의 방위 임무를 버리고 직접 달려오지 못하게 했다. 비록 마음속에는 참지 못할 처참한 심정이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공의(工義)로 사사로운 감정을 빼앗아 백금(伯禽)도 상중에 출정했던 것이다. 만일 공의를 어겼다면 단지 작은 잘못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모양으로 소원한 사람을 바로잡는데, 이것은 옛사람들이 분명하게 경계했던 것이다.

제갈각은 다시 태부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관리들의 상태를 보고 듣는 교관(校官) 제도를 폐지하고, 납부하지 못한 세금을 면제시켜 주고 관세(關稅)를 없앴다.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 은혜와 혜택을 숭상하였으므로 백성들은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제갈각이 항상 드나들 때면, 백성들은 고개를 길게 빼고 그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당초 손권은 황룡 원년(229)에 수도를 건업으로 옮기고, 2년(230)에 동흥제(東興隄)를 만들어 호수를 막았다. 이후에 회남군으로 출정했을 때, 호수 안의 배 때문에 패배하였는데, 이로부터 다시는 수리하지 않고 방치했다. 제갈각은 건흥 원년(252) 10월, 동흥에 사람들을 모아 다시 큰 제방을 만들어 왼쪽과 오른쪽은 산으로 이어지고, 그 제방을 낀 형태로 두 성을 쌓았다. 각각의 성에는 1천 명을 남겨놓고 전단(全端)과 유략(留略)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고 근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위나라는 오나라 군대가 그들의 변방지역을 침입하고 모욕을 받은 것을 치욕스러워 했기 때문에 대장 호준과 제갈탄 등에게 명하여 무리 7만 명을 이끌고 두 보루를 포위해 호수를 막고 있는 제방을 파손시키려고 했다. 제갈각은 군사 4만 명을 일으켜 밤낮으로 달려가 구원하려고 했다. 호준 등은 각 부대에게 부교를 만들어 호수를 지나 제방 위에 진을 치고 병사를 나누어 두 성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성은 높고 험준한 곳에 세워져 있었으므로 창졸간에 함락시키지 못했다. 제갈각은 장군 유찬, 여거, 당자, 정봉을 선두 부대로 삼아 파견했다. 당시 날씨는 춥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위나라의 장수들은 모여 술을 마시면서 유찬 등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는 단지 두건을 쓰고 칼과 방패만을 갖고 무장을 푼 몸으로 제방 곁에서 크게 웃으며 즐기고, 군대를 엄격히 정돈하지 않았다. 유찬 등의 병사들은 해안으로 올라오면서 즉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어지러이 베어 버렸다. 위나라 군대는 놀라 흩어져 달아나 다투어 부교를 건너려고 하였으므로 다리가 파괴되어 저절로 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고, 또 서로 밟았다. 낙안태수 환가(桓嘉) 등이 동시에 익사했고, 죽은 자는 수만 명이나 됐다. 과거 모반한 장수 한종은 위나라의 전군독(前軍督)이 되었는데, 그 역시 참수되었다. 노획한 수레와 소, 말과 당나귀는 각기 수천 마리씩 되었고, 물자와 기계는 산처럼 쌓였다. 제갈각은 군대를 정돈시켜 돌아왔다. 제갈각은 승진하여 양도후(陽都候)로 봉해졌고, 형주와 양주목을 더했으며, 안팎의 여러 가지 군사적인 일을 감독하였고, 금 1백 근, 말 2백 필, 비단과 베 각각 1만 필씩을 하사받았다.

그래서 제갈각은 적을 경시하는 적을 경시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12월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봄에 또 군대를 출정시키려고 했다. [주]

[주] 한진춘추에서 이르길, 제갈각이 사마 이형(
李衡)으로 하여금 촉으로 가서 강유에게 유세하여, 함께 거사하도록 명하며 말하길 '옛 사람이 말하길, 성인도 때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나, 때가 이르면 또한 놓치지 않는다고 하였소. 지금 적의 정치가 일개 집안(私門=사마씨집안)으로 넘어가, 안팎이 (서로) 의심하고 있으며, 병사는 밖에서 꺾이고 백성은 안에서 원망하여, 조조 이래로 그 망하는 형세가 지금같은 적이 없었소. 만약 크게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벌하여, 오(吳)로 하여금 그 동쪽을 공격하게 하고, 한(漢=蜀)으로 하여금 그 서쪽을 공격하게 하면, 그들이 서쪽을 구원하면 동쪽이 빌 것이고, 동쪽을 중히 여기면 서쪽이 가벼워질 것이니, 단련된 군대로 적의 허하고 가벼운 틈을 탄다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소'

강유가 이를 따랐다.

여러 대신들은 자주 출병하면 병사들이 피로해진다고 생각하고 일제히 제갈각에게 간언을 했지만, 제갈각은 듣지 않았다. 중산대부(中散大夫) 장연(葬延)이 완강히 다투어 간언하자 사람들이 부축되어 나가게 되었다.


제갈각은 글을 지어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치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무릇 하늘에는 두개의 태양이 없고 땅에는 두마리의 용이 없다. 왕된자가 천하를 겸병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그자리만을 후세에게 남기려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없었다. 옛날 전국시대의 각 제후들은 스스로 강력한 병사와 광범위한 영토에 의지하여 서로 구원하였는데, 이와 같은 정권은 충분히 대대로 전할수 있고 사람들이 위태롭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방종되게 하고 노고를 꺼려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점점 강대하게 하면 결국에는 그들을 병탄시키는데, 이것은 과거의 사실이다. 근래에는 유경승이 형주에서 병사 1만명을 가지고 있고 재물과 식량은 산만큼 있지만, 조조는 아직 미미하여 그와 힘을 다투지 않고 그의 세력이 강대해져 여러 원씨를 병탄하여 멸망시키는 것을 좌시하고 있다. 북방이 전부 평정된후 조조는 30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형주를 향해 왔다. 그 당시는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었지만 또 계획을 만들어 낼수 없었다. 그래서 유경승의 아들이 어깨를 교차시켜 투항을 요청해 결국 포로가 되었다. 적대 국가가 서로 병탄하려고 하는 것은 우너수가 서로 제거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원수가 있다고 하여 힘을 축적한다면 화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에게 있게 되니 멀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옛날 오자서가 말하기를 월나라가 10년간 백성들을 양육해서 모으고 10년간 훈련시키면 20년후에는 오나라가 전쟁에서 패하여 소택지가 될것이다. 라고 하였다. 부차는 오나라의 강대함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이 말을 들었는데 이 때문에 오자서를 주살시키고 월나라에 대비하는 마음이 없었다 싸움에 패하여 후회함에 이르러서는 어찌 미치는 것이 있었겠는가? 월나라는 오나라에 비해 작았지만 여전히 오나라의 화근이 되었으니 하물며 월나라 보다 강대한 나라는 어떻겠는가? 옛날 진나라는 단지 관서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오히려 육국을 병탄하였으며 현재 적들이 모두 진, 조, 한, 위, 연, 제 등 아홉주의 땅을 얻었다

이 땅은 모두 전쟁용 말이 생산되는 곳이며 유능한 인재를 배출시킨 땅이다. 지금 위나라를 옛날 진나라에 비교하면, 토지의 수는 배나 되고 오와 촉을 고대의 육국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위나라를 대적할수 있는 까닭은 단지 조조시대의 병사들은 오늘 마침 힘을 다했고 이후에 출생한 자는 아직 성장하지 않아 바로 적군이 쇠약해지고 수가 적으며 아직 왕성해지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마의는 이전에 왕릉을 주살했고 이어서 그 자신도 죽었고 그의 아들은 어리고 약한데 독자적으로 대임을 맡고 있으므로 비록 지혜와 계책이 있는 선비가 있을지라도 임용할수 없을것이다. 응당 오늘 정벌해야 하며, 바로 그들이 액운을 만날때이다. 성인은 시기를 긴급히 붙잡는데 진실로 오늘을 말한것이다. 만일 사람들의 감정에 순응하여 편안함을 훔치려는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장강은 험난하여 대대로 전할수 있다고 주장하고 위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논의하지 않고 오늘의 상황으로써 그 이후의 변화를 경시한다면 이것이 내가 길게 탄식하는 까닭일것이다. 고대 이래로 위정자들은 사람을 낳아 기르는 일에 힘썼는데 현재 적의 백성은 해마다 달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나이가 작아 아직 사용할수 없을 뿐이다. 만일 또 10년이 지나면, 위나라 백성들은 틀림없이 현재의 배가 될것이고 우리 나라의 강인한 병사가 주둔해 있는 곳은 모두 공허하게 되어 오직 이런 사람들이 대사를 정함을 볼수 있을뿐이다. 만일 그들을 일찍 사용하지 않고 얌점히 앉아 늙게 하여 또 10년이 지나면 절반으로 감소할 것이며 이들 자제의수가 부족함을 보게 될것이다. 만일 적의 인구가 배로 증가하고 우리 병사가 절반으로 손실된다면 비록 또 이윤이나 관중이 계획할지라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멀리 생각하는데 이르지 못하는 자는 틀림없이 나의 이런말을 실지와 거리가 멀어 어두운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우환이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걱정하는것 이것이 진실로 사람들이 어둡다고 보는것이다. 어려움이 이르게 된 연후에 머리를 땅에 닿도록 굽혀 절하는 것은 비록 지혜가 있는 자일지라도 또한 방법을 도모할 수 없다. 이것은 고금의 병폐이지 오직 한 시대의 상황만은 아니다. 과거 오나라는 처음에 오자서의 견해를 어두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이르자 구할수 없었던 것이다. 유경승은 10년 뒤의 일을 생각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손을 남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나 제갈각은 신하의 재능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위대한 오에서 소하와 곽광의 임무를 받았으며 지혜는 일반 사람들과 같고 생각하는 것은 먼 곳 까지 가지 못하지만 만일 오늘 국가를 위해 변방 지역을 개척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나이를 먹을 것이고 그대 원수와 적은 더욱 강대해져 목을 잘라 잘못을 사죄하려고 해도 어찌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 사람들은 간혹 백성들이 여전히 빈곤하므로 휴식에 힘쓰도록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크나큰 위험을 걱정할줄 모르고 작은 은혜를 베풀기 좋아하는것이다. 과거 한고조는 다행이도 삼진의 땅을 자신것으로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함곡관을 페쇄시키고 요충지를 지키며 직접 오락을 즐기지 않고 오히려 근거지를 나와 초나라를 공격하려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갑옷에는 이가 생겼으며 장수와 병사들은 어려움과 고통을 견뎠겟는가? 어찌 예리한 칼날이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고 안녕을 잊었겠는가? 이것은 적과 우리가 끝까지 오랫동안 있을수없음을 생각한것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형한이 공손술에게 출병하여 천하를 취하는 계책을 설명한 것을 보고 있으며 근래에는 집안의 숙부가 표를 올려 적과 천하를 다투는 계책에 관해 진술한것을 보았는데 일찍이 탄식하지 않았을 때가 없었다. 나는 밤이 되면 몸을 뒤척이며 이런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적어 여러 군자들 곁으로 보낸다. 만일 하루 아침에 내가 죽는다면 지향하고 계획한 것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므로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걱정한 일을 알게 되어 훗일을 생각할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제갈각의 이러한 논의는 반드시 자신의 말을 실행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감히 다시 반박하는 자는 없었다. 단양태수 섭우는 평소에 제갈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섭우는 제갈각에게 편지로 간언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대행황제는 본래 동관을 막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대업을 보좌하여 선제의 유지를 완성하며 적군은 먼곳으로부터 사자를 보내오고 장사들은 위엄과 덕망에 의지하고 있으며 직접 출정하여 목숨을 바쳐 하루 아침에 비상한 공을 세웠는데, 어찌 종묘의 신령과 사직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병사들을 안배해 날카로움을 기르도록 하고 기회를 봐 출동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들이 승리의 기세를 타고 또 대대적으로 출병하려고 하는데 천시로는 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임의로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있으니, 저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제갈각은 앞의 문장을 읽은 뒤에 편지를 써서 섭우에게 답장해 이렇게 말했다.

─ 그대에게는 비록 자연스런 이치가 있지만, 존망의 대국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문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깨달을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의 의견을 어기고 출병했다. 각 주와 군에서 20만명을 대대적으로 징발했으므로, 백성들은 소동을 일으켰고 이로서 인심을 잃게 되었다. 제갈각은 회남에서 위엄을 빛내려고 그곳의 백성들을 쫓아낼 생각을 했는데 장수들 가운데 간혹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자가 있었다.

"지금 군대를 인솔하여 깊이 들어간다면, 변방의 백성들은 반드시 서로 멀리 달아날 것이고, 아마 병사들이 수고로우면서 공은 적을 것이므로 신성(합비신성)을 포위하는 것만 못할것입니다. 신성이 어렵게 되면, 반드시 구원병이 이를것이고 구원병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계책을 세운다면 크게 승리할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각은 그의 계책 따라 군대를 돌려 돌아와 신성을 포위했다. 전쟁은 몇달간 계속 되었지만 신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사졸들은 피로해졌고, 날씨가 더워 물을 마셨기 때문에, 설사나 각기병에 걸린 자가 태반이었으며 죽거나 부상당한 자로 땅을 뒤덮었다. 각 진영의 관리들은 날마다 병든 자가 많다고 보고 했지만, 제갈각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목을 베려고 했다. 이로부터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제갈각은 내심 자신의 계책의 실패를 인정하며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치욕스러워 하여 얼굴에 분노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장군 주이가 옳고 그름을 논하려 하자. 제갈각은 분노하여, 즉시 그의 병권을 빼앗았다. 도위 채림은 군의 계책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했지만 제갈각이 능히 쓰지 않자 말을 타고 위나라로 도주했다. 위나라에서는 오나라의 병사들이 지치고 병들어 있음을 알고 구원병으로 하여금 전진하도록 했다. 제갈각은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사졸들은 부상당하고 병들어 철수하는 길에 어떤 자는 구덩이 속으로 넘어지고 어떤 자는 적군의 포로가 되었으므로 산자도 죽은 자도 비분의 감정을 품었으며 귀천에 차이 없이 모두 탄식했다. 그러나 제갈각은 태연자약했다. 그는 장강 해안가로 나와 한달 간 머문후에 심양현에서 둔전을 일으킬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를 돌아오도록 부르는 조서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천천히 병사들을 돌려 돌아왔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그를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원한이 생겼다.

가을 8월 군대가 건업으로 돌아오자. 병사들을 배열시켜 이끌고 관소로 돌아왔다. 그는 즉시 중서령 손묵을 불러 사나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어떻게 감히 망녕되게도 몇 차례나 조서를 작성했소?"

손묵은 두려워하여, 물러나와 병을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 제갈각은 그가 출정하여 떠난후에 상주하여 임명하여 임명한 영이나 장등의 관리들은 일제히 파면시키고 다시 선발하였다. 그는 더욱더 위엄을 빛냈으며, 항상 사람들을 꾸짖었으므로 그의 앞으로 나아가 만나야만 되는 사람들 중에서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또 숙위를 바꾸어 가까이 신임하는 자를 기용하였으며, 또 군대를 정비하도록 명령하여 서주와 청주로 나아가려고 했다. 손준은 백성들이 원망을 많이 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틈타서 제갈각을 모함해 정변을 만들려고 손량과 상의하여 술자리를 만들어 제갈각을 초청했다. 제갈각이 손량을 만나기 전날밤, 정신이 어지러워 한밤 내내 잠을 자지 못했다. 날이 밝아 세수를 하려고 하자. 물에서 냄새가 났고 그를 모시는 사람이 옷을 주자 옷에서도 역한 냄새가 났다. 제갈각은 그 변고를 이상하게 여기며, 옷을 바꾸고 물을 바꾸었지만 처음과 같은 냄새가 났으므로 우울해하고 불쾌해 했다. 그가 단장을 마치고 걸어나오자. 개가 그의 옷을 물어 당겼다. 제갈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가 나를 가지 못하게 하는구나."

그는 돌아와 앉았다. 잠시후 다시 일어나자 개는 또 그의 옷을 물어뜯었다. 제갈각은 시종에게 개를 쫓도록 명하고 수레를 탔다. 당초 제갈각이 회남으로 출병하려고 할때. 한 효자가 상복을 입고 안방으로 들어온 일이 있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일을 고하자 제갈각은 밖으로 쫓아내어 문책하도록 했다. 효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팎에서 수비하는 사람들 역시 그를 보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가 밖으로 나간후 머물던 관청의 대들보 중간이 부러졌다.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신성에서 출발하여 동흥에 머물고 있는데 흰 무지개가 그의 배에 나타났으며 돌아와 장릉(손권의 묘)에 제사지냈었던 때도 흰 무지개가 또 그의 수레를 에워쌌다.

제갈각은 손량을 알현하려고 수레를 궁궐 문에 멈췄다. 손준은 이미 휘장 안에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고, 제갈각이 제때에 들어오지 않아 일이 누설될 것을 걱정하여 직접 나가서 제갈각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사군께서 만일 귀한 몸이 불편하시다면, 이후에 만날수 있습니다. 제가 주상께 상세히 보고하겠습니다."

손준은 이말로 제갈각을 살펴보려고 했다. 제갈각이 말했다.

"당연히 저는 들어갈것입니다."

산기상시 장약, 주은 등의 밀서가 제갈각에게 전해졌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오늘 평상시와 다르게 진술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제갈각은 편지를 본 후에 사태를 깨닫고 떠났는데 아직 궁궐 문을 나가지 않아서 태상 등윤을 만나게 되었다. 제갈각은 말했다.

"갑자기 복통이 있어서 조정으로 들어갈수 없습니다."


등윤은 손준의 음모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제갈각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행군에서 돌아와 아직 만나지 않았으니, 오늘 주상께서 주연을 베풀어 당신을 초청하였고 당신은 이미 문까지 이르렀으므로, 마땅히 힘을 다해서 가야합니다."

제갈각은 주저하다가 다시 궁궐로 들어왔다. 그는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 전으로 올라와 손량에게 인사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술상이 차려지자. 제갈각은 의심하고 마시지 않았다. 손준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군의 질병이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연히 늘상 마시는 약주가 있을 것이니 직접 그것을 마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제갈각의 심정은 곧 안정되었으며 별도로 자신이 준비한 술을 마셨다.

오력吳歷에서 이르길 : 장약 張約, 주은朱恩이 제갈각諸葛恪에게 은밀히 소疏를 올려 고하니, 제갈각이 등윤滕胤에게 보여줘, 등윤은 제갈각에게 돌아가길 권했으나, 제갈각이 이르길 : “손준孫峻같은 어린 놈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다만 술과 음식을 통해서 사람을 해칠까가 두려울 뿐이오.” 이에 약주를 가지고 들어갔다. 

 

손성孫盛이 평하길 : 제갈각은 등윤과 친해 정이 두텁고, 장약 등이 소를 올린 것은, 심상치 않은 큰 일이라, 정세상 응당 등윤에게 보여줘서, 함께 안위를 모의해야 했다. 그러나 제갈각의 천성이 강하고 사나우며, 게다가 손준을 본디 업신여겨, 스스로 믿지 않았기에, 들어간 것인데, 어찌 등윤이 조금 권했다고 해서, 곧 이 때문에 화를 무릅썼겠는가? 본전보다 오력이 낫다. 

 

통감고이通鑑考異에서 이르길 : 손성은 본전을 옳지 않다고 여겼으니, 지금은 오력을 따른다.



술을 몇잔 마신후. 제갈각은 내전으로 돌아왔다. 손준은 뒷간에 가는 것처럼 몸을 일으켜, 긴 옷을 벗고 짧은 옷을 입고 나와 말했다.


"조서가 있으니 제갈각을 체포해라!"

吳錄曰:峻提刀稱詔收恪,亮起立曰:「非我所為!非我所為!」乳母引亮還內。吳歷云:峻先引亮入,然後出稱詔。與本傳同。臣松之以為峻欲稱詔,宜如本傳及吳歷,不得如吳錄所言。


오록에 이르길 : 손준이 칼을 들고 조서를 칭하면서 제갈각을 체포했는데 손량이 일어나면서 「내가 한 것이 아니다 !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라 했지만 유모가 손량을 이끌고 안으로 돌아갔다. 


오력에서는 손준이 먼저 손량을 데리고 들어가고 난 연후에 나와 조서를 칭했다고 하여 본전과 동일하다. 


신 송지가 생각건대 손준이 조서를 칭하고자 하면 응당 본전과 오력처럼 해야지 오록에서 말한 것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갈각은 놀라 일어났다. 그가 검을 뽑기도 전에 손준의 칼이 그를 여러차례 찔렀다. 이에 제갈각을 모시고 있던 장약이 손준을 찔러 그의 왼쪽 손에 상처를 입혔고 손준은 이에 응수하고 장약의 오른쪽 팔뚝을 잘랐다. 무장하고 호위하던 병사들이 내전으로 달려 나왔다. 손준이 말했다.

"죽이려고 했던 제갈각은 벌써 죽었다."

칼을 집어 넣도록 명령하고 깨끗히 치운 후 다시 술을 마셨다.
 
수신기(搜神記): 제갈각이 들어와 죽자, 이때 제갈각의 처는 자기 집에서 노비들과 같이 있었는데, 말했다.

"왜 너한테서 피냄새가 나느냐?"

노비가 대답했다.

"안 나는데요?"

잠시 후, 냄새가 더욱 심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너 눈동자 좀 치켜떠 보아라 어찌 평상시와 다른가?"

그러자 그 여자 종은 펄쩍 뛰어올라, 그 머리를 기둥에 찧으며, 팔을 걷어 부치고 이를 갈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제갈공께서 손준(
孫峻)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제야 모든 식구가 제갈각이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뒤이어 관리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지림(志林)에서 이르길: 예전에 손권이 병이 들었을 때 제갈각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려 했다. 막 길을 떠나려 할 때 대사마 여대(呂岱)가 경계하여 말하였다:

"세상은 바야흐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대는 매사에 반드시 열번씩 생각하십시오."

제갈각이 답하였다:

"옛날 계문자(季文子)는 세 번 생각한 다음에 실행하였고, 부자(夫子)는 이르기를 '두 번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이제 그대는 저 제갈각에게 열 번 생각하라고 하니 저 제갈각이 여등하는 것이 분명하오."

여대는 대답한 말이 없었고, 모두 그가 실언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희(虞喜)가 평론하길:

"무릇 천하를 가지고 부탁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신하로서 군주의 권위를 시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두가지 지극한 것을 겸하고서 만 가지의 기틀을 총괄하며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여후(여대)는 나라의 으뜸가는 기로인데, 뜻과 도량은 놃고 먼 곳에 있어서 겨우 열 번 생각하라는 말로써 그에게 경계하였으나, 열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서 거절당하였다. 이것은 원손(제갈각의 자)의 소홀함이며 기민함과 영명함이 모두 찾추어지지 않은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열 번 생각하라는 뜻을 통하여 당시 해야 할 일에 대해 널리 자문을 구하고, 좋은 일을 번갯불보다 빨리 듣고, 간하는 소리를 바람이 옮기는 것보다 더 급하게 좇았다면, 어찌 전당에 엎드려져서 흉악한 녀석의 칼에 맞아 죽었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말재주를 기이하게 여겼고, 급작스럽게 볼만하다 하고, 여후가 대답하지 못한 것을 구차하였다고 비웃었지만 안전함과 위험한, 처음과 나중의 염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봄기운의 번성함을 즐긴 것이며, 가을 열매가 입에 달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옛날에 위나라 사람들이 촉을 정벌할 때 촉 사람들이 방어하는데, 정병이 엄하게 갖추고 바로 출발할 즈음 비의(
費禕)는 바야흐로 내민(來敏)과 바둑을 두었는데 속으로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내민은 반드시 적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그는 밝은 전략을 마음속에 확실하게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겉모양에서 아무런 근심하는 기색을 찾아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하물며 장녕(
長寧) 조차도 '군자가 일을 맡아서 다가갈 때 두려워하여야 꾀를 잘 내어 성공한다'고 하였으니, 촉은 풀 같이 작은 나라인데 바야흐로 큰 적을 향하여 계획하는 바가 있고 오직 지키며 싸우기만 한다고 하여도 어찌 자기를 잘아하고 여유를 가지며 편안히 하면서 근심이 없었겠는가! 

이는 비의의 성품이 관대하고 간결한 것 때문이지만 세세한 것을 막지 않아서 갑자기 항복한 사람인 곽순(
郭脩)의 해침을 당하게 되엇으니, 어찌 저쪽에서 징조가 보이고 이쪽에서 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장녕이 비문위를 논평하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완손이 여후의 충고를 거역한 것을 보니, 두 가지 일은 같은 성질의 것이고 모두 세상을 위한 거울이 될만하다."
 
이전에 동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갈각 갈대 홑옷에 대껍질 구락을 하고 어찌하여 서로 성자합을 구하나.'

성자합이란 석자강을 반대로 말한것이며, 건업 남쪽에 있는 긴 능의 이름을 석자강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곳이다. 구락이란 가죽 허리띠를 장식하는 것으로 세상에서는 구락대라고 한다. 제갈각은 과연 갈대 자리에 시신이 싸이고 대껍질로 허리를 묶여 이 석자강에 던져졌다.

오록(吳錄)에 이르길:이때 제갈각의 나이 51이었다.

제갈각의 맏아들 제갈작(
)은 기도위로 있었는데 노왕과 교류했기 때문에 손권은 그를 제갈각에게 보내 재교육 시키도록 했다. 제갈각은 독을 먹여 그를 살해했다. 둘째 아들 제갈송은 장수교위로 임명됐다. 셋째 아들 제갈건은 보병교위로 있었다. 그들은 제갈각이 주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레에 그의 어머니를 태우고 달아났다. 손준은 기독 유승을 파견해 백도까지 추격하여 제갈송을 참수시켰다. 제갈건은 장강을 건너 북쪽 위나라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수십리를 간 후에 추격병에게 체포되었다. 제갈각의 외숙이며 도향후로 있던 장진과 상시 주은 등은 삼족이 모두 멸해졌다. 당초 제갈송은 누차에 걸쳐 제갈각에게 간언했지만 제갈각이 따르지 않았으므로 항상 화를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제갈각이 죽자 임회 사람 장균이 표를 올려 제갈각을 거둬 장례지내기를 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 신이 듣건데 우레가 울려도 온종일 지속되지 않으며 태풍이 불어도 종일 계속되는것은 드믈지만, 우레와 태풍을 이어 구름과 비가 있기 때문에 만물을 윤택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와 같으면 천지의 위엄은 12일간 계속될수 없고 제왕의 노여움도 감정대로 처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신은 망녕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꺼리는 것을 모르며 감히 집안과 자신을 파괴하고 멸망시킬 죄를 무릅쓰고 군왕의 비바람이 이르는 것과 같은 은택을 요청합니다. 엎드려 생각해보면, 태부 제갈각은 선친들이 남긴 훌륭한 공훈을 이었고 백부와 숙부들은 한왕조의 국운이 다하고 천하에 세 나라가 정립하여 나누어지자 세 방면에 의탁하여 모두 충성과 근면함을 이행했으며, 제왕의 사업을 융성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이어 받은 제갈각은 오나라에서 성장하고 오주의 교화에 훈도되어 영명하고 위대한 명성을 얻었으니, 오나라에 복무한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화란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싹 튀우지 않았습니다. 선제께서는 이윤과 주공과 같은 중임을 그에게 주어 국가의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제갈각의 평소 성격은 강직하고 괴팍하며, 교만하고 자부하며, 다른 사람을 능멸하여 국가 정권을 존경스럽게 지켜 국내를 안정되게 할수 없었고 공업을 세우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킨지 1년도 안되어 다시 출병하여 병사와 백성들을 헛되이 소모시키고 창고 속에 쌓아놓은 물자를 다 사용하여 텅 비게 하였습니다. 그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잡아 관리들을 파면시키고 임용하는 일을 자기 생각대로 했으며, 형법에 의지해 백성들을 위협하였으므로 직위의 높고 낮음에 관련없이 말하지 못했습니다. 시중, 무위장군, 도향후 손준은 그와 함께 선제가 위탁한 조서를 받았는데 그의 간사하고 포악함이 나날이 더욱 심해짐을 보게 되자, 장차 천하를 뒤흔들어 놓고 사직을 기울여 위태롭게 하게 될 것을 걱정하였으며, 이 때문에 위세를 떨쳐 노여워하였으며 정성은 하늘을 관통하였습니다. 그는 신명보다 앞서 계획하고 지혜와 용맹은 형가나 섭정보다 백 배는 되어서 직접 날카로운 칼을 잡고 내전에서 제갈각의 목을 베어 버렸으니 공훈은 주허를 초과하고 동모를 넘었습니다. 나라의 큰 위해가 하루아침에 대대적으로 제거되었으며, 그의 머리를 말에 매달아 달리게 해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육군은 기뻐 뛰었고 일월은 광채를 더했으며 풍진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실제로 종묘의 신령이 하늘과 사람에게 나타난 징조인것입니다. 오늘 제갈각 부자 세명의 머리가 저자에 걸린지 며칠이나 되어 그것을 본자는 수만 명이나 되며 욕하는 소리는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국가의 큰 형벌에는 진동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늙은이든 어리이든 간에 모두 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만물을 관찰할 때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픔이 생기게 되는데, 제갈각이 귀하고 흥성하여 세상에는 그와 견줄 만한 자가 없었으며 몸은 태보의 지위에 있으면서 여러 해를 지냈지만 오늘 주살되고 멸족되어 금수와 다름없이 되었습니다. 이런 정경을 보면 감정에 기복이 일어나 슬퍼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죽은 사람은 토양과 같은곳에 있어 파내어 찌르는 형벌을 다시 더할수 없습니다. 성스런 조정에서는 천지를 본받아 노여움이 열흘을 넘지 않아 그의 고향에 있는 자나 과거의 부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병사들의 복장으로 거두어 염하도록 하고 3촌의 두께의 관으로 장례지내도록 원합니다. 옛날 항적은 예우받아 매장되는 은혜를 받았으며 한신은 거두어 염해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한고조는 신같이 밝은 명예를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오직 페하께서 삼황의 인덕을 발휘하여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드리워서 국가의 은택이 죄를 지은 시체 위에 더해져 또 다하지 않는 은혜를 받도록 하시고 이러한 은덕을 먼 곳까지 선양하여 천하 사람들을 징계하고 권면하시면 어찌 커다란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난포가 한고조의 명령을 어기고 팽월을 제사지냈을 때, 신은 마음속으로 한탄했었습니다. 이전에 주상에게 요청하는 일 없이 독단적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였는데도 그가 주살되지 않은 것은 실로 요행일 뿐입니다. 지금 신은 감히 저의 어리석은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황상의 은혜를 나타내지 못하고 공손히 엎드려 글을 적어 생각한 것을 몽매하게 진술하였습니다. 성명한 주상께서 불쌍히 여겨 살펴보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손량과 손준은 제갈각의 옛 관리가 그를 거두어 염하고 장례지내는 일을 허락했고 석자강에서 제갈각의 시체를 찾아냈다. [주]

[] 강표전: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제갈각을 위해 비를 세워 그의 공훈을 기록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었는데, 박사 성충(盛沖)은 그러한 일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휴(孫休)가 말하기를,

“한여름에 군대를 출동시키고 병사들을 손상시켜 척촌(尺寸)의 공도 없으므로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린 군주를 보필하는 임무를 받고 어린아이의 손에 죽었으니 지혜롭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성충의 의견이 옳습니다.”

라고 했다.

당초 제갈각이 군대를 철수시켜 돌아왔을때 섭우는 그가 장차 죽게 될것을 알고 등윤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세력이 강성할 떄는 냇물과 산의 근본을 뽑을 수 있지만 하루 아침에 실패하여 곤경에 처했을 때는 사람들의 감정이 각양각색이 됩니다. 이런 일을 말하면 슬퍼 탄식하게 됩니다.

제갈각이 주살된 후 손준은 섭우
(聶友)를 경계하며 그를 울림태수로 임명하려고 했다. 섭우는 병이 나 걱정하다 세상을 떠났다. 섭우는 자가 문제(文悌)이고 예장사람이다.

吳錄曰:友有脣吻,少為縣吏。虞翻徙交州,縣令使友送之,翻與語而奇焉,為書與豫章太守謝斐,令以為功曹。郡時見有功曹,斐見之,問曰:「縣吏聶友,可堪何職?」對曰:「此人縣間小吏耳,猶可堪曹佐。」斐曰:「論者以為宜作功曹,君其避之。」乃用為功曹。使至都,諸葛恪友之。時論謂顧子嘿、子直,其間無所復容,恪欲以友居其間,由是知名。後為將,討儋耳,還拜丹楊太守,年三十三卒。   

오록에 이르길 : 섭우(聶友)는 말 재주가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현의 관리를 지냈다. 우번이 교주로 옮겨갈 때 현령이 섭우를 시켜 전송했는데 우번이 더불어 말해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예장태수 사비(
謝斐)에게 편지를 보내 공조로 삼으라고 하였다. 당시 예장군에 공조가 있었는데 사비가 그를 보고 묻길 「현리 섭우는 가히 무슨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가?」하니 대답하길 「그 사람은 현의 소리로 조좌정도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사비가 말하길 「논자들은 응당 공조가 돼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대께서는 이를 피하는구나.」 마침내 공조로 임용하였다. 수도에 이르러 제갈각과 친구를 맺었다. 당시의 의론이 고담(子嘿; 고담의 자)과 고승(子直; 고승의 자) 사이에 다시 용납할 자리가 없다고 여겼는데 제갈각이 섭우를 그 사이에 놓고자 하였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유명해지게 되었다. 후에 장군이 되어 담이를 토벌하고 돌아와 단양태수에 임명되었다. 나이 33세에 죽었다. [주1]

[주1] 삼국지집해에 “우번이 교주로 옮긴 것은 위나라 황초 2년(221년)인데 이때 섭우는 이미 현리였고 나이가 20세 좌우였다. 오 건흥 2년(253년)에 이르면 나이가 마땅히 53세가 돼야 하는데 이 글에서 33세라고 하였으니 3은 응당 5의 잘못일 것이다. 만약 33세라면 황무 연호를 쓰기 전의 해(221년)에 겨우 갓 태어난 아기에 불과한데 결코 현의 관리가 될 수 없다.”

진수의 평: 제갈각의 재능과 기질, 재간과 모략은 나라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만했지만 교만하고 인색하였다. 주공(周公)이었을지라도 이룬 것이 없었을 텐데 하물며 제갈각에 있어서랴? 제갈각은 자신을 과장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능멸했으니 실패가 없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가 육손이나 동생 제갈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술한 것을 직접 실행했다면 회한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니, 어찌 더욱이 재앙이 있었겠는가?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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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0
등록일 :
2013.05.01
15:28:32 (*.125.6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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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개구리

2013.05.01
15:52:14
(*.125.69.108)
이전 사이트의 금지단어 때문에 삽입되어있었던 역자의 주석은 제거했습니다. : 여기에는 죽#습니다가 금지단어임으로 이렇게 적습니다.

코렐솔라

2013.05.01
21:32:33
(*.52.89.88)

일찍이 머리가 흰 앞에 강표전(江表傳)붙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무개구리

2013.05.01
23:29:05
(*.252.232.44)

추가 했습니다. 그런데 세 개 일화 모두 강표전 출전입니까?

코렐솔라

2013.05.02
00:15:13
(*.52.89.212)

아뇨, 지금 보니까 순서도 엉망으로 되어 있네요. 다시 순서 정리완료되면 다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렐솔라

2013.05.02
00:30:42
(*.52.89.212)

〔一〕 恪別傳曰:權嘗饗蜀使費禕,先逆敕群臣:「使至,伏食勿起。」禕至,權為輟食,而群下不起。禕啁之曰:「鳳皇來 翔,騏驎吐哺,驢騾無知,伏食如故。」恪答曰:「爰植梧桐,以待鳳皇,有何燕雀,自稱來翔?何不彈射,使還故鄉!」禕停食餅,索筆作麥賦,恪亦請筆作磨 賦,咸稱善焉。


여기까지가 비의와의 문답입니다.


權嘗問恪(손권이 제갈각한테 물었다):「頃何以自娛,而更肥澤?」恪對曰:「臣聞富潤屋,德潤身,臣非敢自娛,脩己而已。」又問:「卿何如滕胤?」恪答曰:「登階躡 履,臣不如胤;迴籌轉策,胤不如臣。」


恪嘗獻權馬,先〈金芻〉其耳。范慎時在坐,嘲恪曰:「馬雖大畜,稟氣於天,今殘其耳,豈不傷仁?」恪答曰:「母之於 女,恩愛至矣,穿耳附珠,何傷於仁?」(이어링 얘기입니다.)


太子嘗嘲恪:「諸葛元遜可食馬矢。」恪曰:「願太子食雞卵。」權曰:「人令卿食馬矢,卿使人食雞卵何也?」恪曰: 「所出同耳。」權大笑。(말 똥 먹으라는 얘기)


江表傳曰:曾有白頭鳥集殿前,權曰:「此何鳥也?」恪曰:「白頭翁也。」張昭自以坐中最老,疑恪以鳥戲之,因曰:「恪欺陛下,未嘗 聞鳥名白頭翁者,試使恪復求白頭母。」恪曰:「鳥名鸚母,未必有對,試使輔吳復求鸚父。」昭不能答,坐中皆歡笑。(이게 백두옹 얘기입니다.)

  〔二〕 江表傳曰:權為吳王,初置節度官,使典掌軍糧,非漢制也。初用侍中偏將軍徐詳,詳死,將用恪。諸葛亮聞恪代詳,書與陸遜曰:「家兄年老,而恪性疏,今使典主糧穀,糧穀軍之要最,僕雖在遠,竊用不安。足下特為啟至尊轉之。」遜以白權,即轉恪領兵。

코렐솔라

2013.05.02
00:34:31
(*.52.89.212)

순서를

A. 제갈각 별전에서의 얘기: 1. 비의와의 문담

2.

權嘗問恪(손권이 제갈각한테 물었다):「頃何以自娛,而更肥澤?」恪對曰:「臣聞富潤屋,德潤身,臣非敢自娛,脩己而已。」又問:「卿何如滕胤?」恪答曰:「登階躡 履,臣不如胤;迴籌轉策,胤不如臣。」

알 수 없지만 일단 이것도 달아두면 누군가 번역 해주지 않을까요?

3. 범신과의 문답(전략에서라는 말을 삭제해주세요)

4. 손등이 제갈각에게 말 똥 먹으라고 함

B. 강표전 백두옹

C. 번역 안 된 강표전


이 되겠습니다.

코렐솔라

2013.05.02
09:16:04
(*.52.89.212)

수정 완료

코렐솔라

2013.07.19
23:20:05
(*.52.89.88)
없는 주석이 있길래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12.04
19:27:00
(*.166.245.165)
오력에 있는 주은 장약의 내용과 손성의 평은 처사군님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850762

코렐솔라

2016.04.13
00:08:56
(*.234.105.133)
섭우 관련해서 예정을 예장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강표전에 실린 제갈각의 어릴 적 평과 제갈각 별전의 제갈각의 영민함에 대한 내용, 손준이 제갈각을 잡을 때의 얘기, 서붕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dragonrz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1548

이걸로 제갈각 전의 모든 번역이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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