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孫峻)은 자가 자원(子遠)이고 손견(孫堅)의 동생인 손정(靜)의 증손자이다. 손정은 손호(暠)를 낳았고, 손호는 손공(恭)을 낳았다. 손공은 산기시랑(散騎侍郎)으로 임명됐다. 손공이 손준을 낳았다. 손준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 타기에 뛰어났으며 예리하고 용감하고 대담하여 과단성이 있었다. 그는 손권 말년에 무위도위(武衛都尉)로 옮겨졌고, 시중(侍中)이 되었다. 손권이 임종할 때, 손준은 정치를 보조하라는 유조를 받아 무위장군(武衛將軍)을 겸하게 되었고 옛날 관례에 따라 숙위를 겸하고 도향후(都鄉侯)로 봉해졌다. 제갈각(諸葛恪)을 주살한 후, 손준은 승상(丞相)ㆍ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모든 군사적인 일을 관리했으며, 부절을 받고 나아가 부춘후(富春侯)로 봉해졌다. 등윤(滕胤)이 제갈각(恪)의 아들 제갈송(竦)의 장인이었으므로 사직하려고 하자, 손준은 이렇게 말했다.

“곤(鯀)과 우(禹)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았는데, 등후께서는 어찌 그러십니까?”

손준과 등윤은 비록 속으로는 어떠한 은혜도 없었지만, 겉으로는 서로 포용했다. 손준은 등윤의 작위를 승진시켜 고밀후(高密侯)로 삼았으며 이전과 같이 함께 일했다.


吳錄曰:群臣上奏,共推峻為太尉,議胤為司徒。時有媚峻者,以為大統宜在公族,若滕胤為亞公,聲名素重,眾心所附,不可貳也。乃表以峻為丞相,又不置御史大夫,士人皆失望矣。    


오록에 이르길 : 군신이 상주하여 더불어 손준을 태위로 추대하고 의논하길 등윤이 사도가 돼야한다고 하였다. 당시에 손준에게 아첨하는 사람이 있어 대통은 응당 공족의 손에 있어야 하고 만약 등윤이 아공(亞公: 사도의 위치가 태위에 버금가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이 된다면 원래부터 명성이 무거운 지라 무리의 마음이 의부하게 될 것이니 (사람들의 마음을) 둘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마침내 표로써 손준을 승상으로 삼고 어사대부를 두지 않으니 선비들이 모두 실망하였다. [주1]   


[주1]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호삼성이 이르길 “한나라는 진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아 어사대부를 설치하여 승상을 보좌하여 뭇 정사를 처리하였다. 지금 손준이 승상이 되면서 어사대부를 설치하지 않았으니 곧 오나라의 정치를 전권한 것이므로 나라의 사람들이 실망한 것이다.”」

손준은 평소 중후한 명성이 없었으며, 교만하고 음험하며, 살해한 사람이 많았으므로 백성들은 그를 원망했다. 또 그는 궁녀들을 간음하고 공주 노반(魯班)과 사통했다.

오봉(五鳳) 원년(254), 오후(吳侯) 손영(英)이 손준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했지만, 일이 탄로나 손영은 죽게 되었다.
오봉 2년(255),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부대를 인솔하여 반란을 일으켜 위나라 사람들과 악가(樂嘉)에서 싸웠다. 손준은 표기장군(驃騎將軍) 여거(呂據)와 좌장군(左將軍) 유찬(留贊)을 인솔하여 수춘을 습격했다. 그러나 마침 문흠이 패배해 항복했으므로 군대를 돌렸다.

이 해, 촉나라 사자가 와서 방문하자, 장군 손의(孫儀)와 장이(張怡)ㆍ임순(林恂) 등이 회견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손준을 죽이려고 했다. 그렇지만 일이 탄로나 손의 등은 자살했고, 수십 명이 죽었으며, 공주 노육(魯育)까지 이 일에 연좌되었다.

손준은 광릉(廣陵)에 성을 쌓으려고 했다. 조정의 신하들은 그곳에는 성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준을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등윤 만이 간언하여 손준을 저지시키려고 했지만, 손준은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성취되지 못했다.

그 다음해, 문흠이 손준에게 위나라로 출정하도록 설득하자, 손준은 문흠으로 하여금 여거(呂據)ㆍ거기장군(車騎將軍) 유찬(留贊)ㆍ진남장군(鎮南將軍) 주이(朱異)ㆍ전장군(前將軍) 당자(唐咨)와 함께 강도(江都)로 부터 회수(淮)와 사수(泗)로 들어가 청주(青)와 서주(徐)를 취할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오서(吳書): [유찬전]으로 분리


손준은 등윤과 석두(石頭)까지 이르러 그곳에서 출정 군대를 떠나보내고 따르는 자 백여 명을 이끌고 여거의 진영으로 들어왔다. 여거가 군사를 정돈시켜 놓고 있자, 손준은 그를 싫어하여 가슴이 아프다고 핑계대고 떠났다. 결국 그는 제갈각에게 공격당하는 꿈을 꾸고 두려워하다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으며, 뒷일은 손침에게 부탁했다.

진수의 평: 손준과 손침은 나쁜 습관이 가득하여 본래 논할 가치도 없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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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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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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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6.28
12:49:34
(*.104.28.55)
유찬전을 분리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09
18:33:55
(*.104.141.18)
한문 주석 추가

코렐솔라

2016.05.29
17:22:29
(*.196.74.143)
어사대부 관련 내용은 dragonrz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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