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번(王蕃)의 자는 영원(永元)이고, 여강(廬江) 사람이다. 그는 책을 광범위하게 읽어 식견이 많았으며, 아울러 유가학설에도 정통했다. 그는 처음에 상서랑(尚書郎)으로 임명되었지만, 관직을 떠났다. 손휴(孫休)가 즉위하자, 그는 하소(賀邵)ㆍ설영(薛瑩)ㆍ우사(虞汜)와 함께 산기중상시(散騎中常侍)로 임명되었고, 모두 부마도위(駙馬都尉)의 관직이 더해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청아하다고 평가했다. 조정에서는 그를 촉(蜀)나라에 사자로 가게 하였다. 촉(蜀)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였으며, 그는 촉에서 돌아온 후 하구감군(夏口監軍)에 임명되었다.

손호(孫皓) 시대 초기, 그는 다시 궁궐로 들어가 상시(常侍)가 되었는데, 만욱(萬彧)과 관직이 같았다. 만욱은 손호와 옛날부터 친밀하게 지냈으므로, 일반 관리들은 그를 배제시키고 공격하면서 왕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중서승(中書丞) 진성(陳聲)은 손호가 총애하는 신하로서 여러 차례 왕번을 참언하고 비방하였다. 왕번은 성격이 맑고 밝아 군주의 안색을 살펴 뜻을 따를 수 없었으며, 때때로 손호의 생각을 어기기도 하였는데, 이런 행동이 쌓여 질책을 받게 되었다.

감로(甘露) 2년(266), 정충(丁忠)이 진(晉)나라에 사자로 갔다가 돌아오자, 손호는 성대한 연회를 개최하여 신하들을 초대했다. 이때 왕번은 만취하여 땅에 엎드려 있었다. 손호는 이를 의심하고 불쾌해 하며 왕번을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였다. 잠시 후, 그가 돌아올 것을 요구했지만 술은 역시 깨지 않았다. 왕번의 성정은 위엄이 있었으며, 이때의 행동거지는 평상시와 같았다. 손호는 매우 노여워 하며 그의 목을 베도록 하였다.


위장군(衞將軍) 등목(滕牧)과 정서장군(征西將軍) 유평(留平)이 왕번을 위해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 <강표전(江表傳)>에 이르길: 손호는 무사(巫史)들이 건업(建業)의 궁궐을 불길하다고 한 말을 신용하고 무창(武昌)으로 순시를 나갔다가 그 땅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손호는 신하들이 이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성대한 연회를 열어 장수와 관리들에게 참석하도록 했다. 손호가 왕번에게 묻기를,


“활쏘는 예절에서는 정확히 맞히는 것을 중시하지 않으며, 이것은 사람들 각각의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이 되는데, 그 뜻이 무엇이오?”


라고 했다. 왕번이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즉시 대답하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왕번을 참수시켰다. 그후 손호는 궁전을 나와 내산(來山)에 올라 측근에 있는 자에게 왕번의 머리를 던지도록 하여 호랑이와 이리가 달려와 다투어 물어뜯도록 하여 왕번의 머리는 전부 부서지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위세를 보여 감히 자신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본전과는 다르다.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손호孫皓는 늘 연회에서,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것을 이용해, 번번이 시신侍臣에게 공경들을 조롱하고 놀리게 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만욱萬彧이 이미 좌승상左丞相이었는데, 왕번王蕃이 만욱을 조롱하길 :


“물고기가 못에 가라앉았다가, 물에서 나오면 마르며 거품이 이는 것은 어째서겠습니까? 만물에는 본성이 있어, 분수에 지나친 곳에 제멋대로 머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욱은 산골짜기 출신으로, 속은 양이고 거죽은 호랑이인데, 역량도 없으면서 찬란한 은총을 받아, 삼공과 구경의 지위를 뛰어넘었습니다. 개와 말도 오히려 길러준 걸 알 수 있는데, 장차 어떻게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려 하십니까!”


만욱이 이르길 :


“당우唐虞의 조정에서는 잘못 천거한 재인이 없었고, 조부造父의 집안에는 느리고 둔한 바탕의 말이 없는데, 왕번은 위로는 엄격하고 공정하게 관리를 선임한 것을 비방하고, 아래로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이를 헐뜯은 것이니, 어찌 해와 달을 해치겠습니까? 마침 그가 기량을 알지 못함을 다수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신 배송지裴松之가 살피건대 본전에서는 정충丁忠이 진晉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니, 손호가 성대한 연회를 열어, 연회 중에 왕번을 죽였다고 이르는데, 검사하기론 정충은 북에서부터 돌아온 것이 이 해의 봄이라, 만욱은 당시에 아직 승상이 아니었고, 가을이 돼서야 재상이 됐을 뿐입니다. 오록에서 말하는 바는 어긋나 같지 않습니다.



승상(丞相) 육개(陸凱)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시(常侍) 왕번(王蕃)은 심성이 아름답고 사리에 통달하였으며, 천도(天)를 알고 만물을 알며, 조정에 있으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기둥이며 위대한 오(吳)나라의 용봉(龍逢)인 것입니다. 옛날에 그는 경황제(景皇)를 섬기며 곁에서 진언을 하였는데, 경황제는 그를 존경하고 칭찬하였으며 사람들과 다르다고 찬탄하였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그가 고심하여 올린 간언을 노여워하고, 그가 직접 응대하는 것을 싫어하여 궁전에서 목을 베어 시신을 들에 버렸습니다. 그래서 군대의 사람들은 상심하고, 식견있는 자들은 슬퍼하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육개는 이와 같이 왕번의 일을 애통해하였다. 왕번은 죽을 당시 39세였다. 손호는 왕번의 가족들을 모두 광주(廣州)로 쫓아냈다. 그의 두 동생 왕저(著)와 왕연(延)은 모두 걸출한 인재가 되었다. 그러나 곽마(郭馬)가 일을 일으켰을 때, 곽마를 위해 힘을 쓰지 않아 살해되었다.

분류 :
오서
조회 수 :
3804
등록일 :
2013.05.01
21:07:47 (*.52.89.88)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153/a3e/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153

코렐솔라

2013.05.01
21:08:08
(*.52.89.88)

등목과 유평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아예 없었고 주석이 없기에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0
16:28:51
(*.104.141.18)
글 순서를 원문에 가깝게 바꿈, 뒤의 오록 추가.

코렐솔라

2014.01.13
15:02:21
(*.166.245.152)
오록과 그에 대한 배송지의 비판은 처사군님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325412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72365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80235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30784
90 촉서 감황후전 [1] 견초 2013-05-02 6135
89 촉서 후주전(유선전) [2] 재원 2013-05-02 15718
88 촉서 선주전(유비전) [2] 재원 2013-05-02 49779
87 촉서 유장전 [6] 견초 2013-05-02 7861
86 촉서 유언전 [5] 견초 2013-05-02 15640
85 오서 화핵전 [1] 견초 2013-05-01 4688
84 오서 위요전(위소) [3] 견초 2013-05-01 4567
83 오서 하소전 [2] 견초 2013-05-01 4046
82 오서 누현전 [2] 견초 2013-05-01 3870
» 오서 왕번전 [3] 견초 2013-05-01 3804
80 오서 복양흥전 [2] 견초 2013-05-01 4052
79 오서 손침전 [4] 견초 2013-05-01 5526
78 오서 손준전 [3] 견초 2013-05-01 4320
77 오서 등윤전 [2] 견초 2013-05-01 3994
76 오서 제갈각전 [10] 견초 2013-05-01 7819
75 오서 조달전 [6] 견초 2013-05-01 4264
74 오서 유돈전 [1] 견초 2013-05-01 3526
73 오서 오범전 [3] 견초 2013-05-01 4218
72 오서 호종전 [8] 견초 2013-05-01 4553
71 오서 시의전 [3] 견초 2013-05-01 4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