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賀邵)는 자가 흥백(興伯)이고 회계군(會稽) 산음현(山陰) 사람이다.


오서에 이르길: 하소는 하제(賀齊)의 손자며 하경()의 아들이다.


손휴(孫休)가 즉위 했을 때, 그는 중랑(中郎)으로부터 산기중상시(散騎中常侍)가 되었으며, 지방으로 나가 오군태수(吳郡太守)가 되었다. 손호의 시대에는 중앙으로 들어와 좌전군(左典軍)으로 임명되고, 승진하여 중서령(中書令)이 되었으며 태자태부(太子太傅)를 겸임하게 되었다.

손호(皓)가 흉포해지고 교만해져 정사가 나날이 피폐해지자, 하소는 상소(上疏)를 올려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 옛날 성스러운 군왕(聖王)들이 궁문이 첩첩이 쌓인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도 만 리 밖의 상황을 알고,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모으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팔방의 변방 지역을 밝게 비출 수 있었던 까닭은 현명한 사람을 임명한 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뛰어난 덕행과 정숙한 자태로써 황업(皇業)을 계승하였으니, 응당 솔선하여 직접 도를 이행하고 공손하게 제위를 받들고 현명한 사람을 드날리고 선량한 사람을 표창함으로써 모든 정무를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근래 이래로, 조정의 관위는 혼란스러워져 진위가 서로 섞이고 위와 아래가 헛되이 임명되어 있으며 문무(文武)의 관직도 비어 있습니다. 조정 밖에는 산악(山嶽)과 같은 수장이 없고, 조정 안에는 빈 곳을 수습할 신하가 없습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은 비상하여 올라와 조정의 권위를 농락하고 영리를 도적질하고,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들은 배제되고 신실한 신하가 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직한 선비들은 두각을 제거하고 평범한 신하들은 아부하며, 먼저 폐하의 안색을 살펴 뜻을 따르고 각자 시류에 편승하기를 희망합니다. 사람들은 사리에 위반되는 평가를 견지하고, 선비들은 도의를 왜곡시킨 이론을 토로하고 있으며, 그 결과 맑은 수류를 혼탁하게 변화시켜 충성스런 신하로 하여금 혀를 묶도록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구천(九天) 위에 몸을 두고 백 개의 중첩된 궁실에 숨어 있으면서 말을 꺼내면 천하를 풍미하고, 명령을 선포하면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긴밀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아첨을 가까이 하여 총애를 받게 된 신하들이 있어 날마다 듣는 것이 마음에 순응하는 말이며, 이런 사람들은 진짜 현인이라고 한다면 천하는 벌써 태평스럽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은 마음속으로 불안한 곳이 있어 감히 사실대로 보고하지 못합니다.

신이 듣기로는, 국가를 일으킨 군주는 자신의 허물에 관해 듣기 좋아하고, 황음하고 어지러운 군주는 자신의 명성을 듣기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과실을 듣는 군주는 과실이 하루하루 줄어들어 복이 내리고, 자신의 명성을 듣는 군주는 과실이 하루하루 줄어들어 복이 내리고, 자신의 명성을 듣는 군주는 명성이 하루하루 손상되어 화가 이르게 됩니다. 이 때문에 고대 사람들의 군주는 예절로써 현인들을 나아가도록 밀고, 겸허하게 과실을 찾기를 구하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제위는 날뛰는 말을 타는 것에 비유하고, 호랑이 꼬리로써 경계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폐하에 이르러서는 형법이 엄해져 직언이 끊기고 훌륭한 선비를 폐출시켜 간언하는 신하를 거절하며, 비난과 칭찬의 실제를 밝히지 않으며 옆에 가까이 있는 자들의 말에 빠져 있습니다. 옛날 고종(高宗)은 보좌할 만한 자를 그리워하여 꿈 속에서 현인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폐하께서는 현인을 구하는 일을 잊은 듯하며, 그들을 홀시하는 것이 마치 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과거 상시(常侍)였던 왕번의 충심은 공적인 것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보필할 자로 임용할 수 있었지만, 그가 술에 취한 사이에 극형을 가했습니다. 최근 홍려(鴻臚) 갈해(葛奚)는 선제(先帝)의 노신(舊臣)으로 우연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혼미할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한 말일 뿐이고, 술을 석 잔 마신 후에는 예의에 따라 거리낌이 없는데도, 폐하께서는 갑자기 화를 내며 그가 경솔하고 오만하다며, 그로 하여금 술을 많이 마시게 하여 중독되어 목숨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이후부터 해내(海內)의 사람들은 상심했고, 조정의 대신들은 희망을 잃게 되었으며, 관리로 있는 자들은 퇴직을 복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이것은 영예를 지키며 제업을 발전시키고, 도의를 확충시키고 교화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정(何定)은 본래 흐름을 따라 달리는 소인이며 노예 이하의 사람으로 그 자신에게는 실오라기 만큼의 덕행도 없으며, 재능은 매나 개의 쓰임이 없는데, 폐하께서는 그의 아첨을 좋아하여 그에게 권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정으로 하여금 총애를 의지해 방자하게 굴면서 위엄과 복을 마음대로 만들게 하여, 입을 열면 국가의 계획을 바꾸고 손을 펴면 국가의 중요한 기밀을 갖고 놀도록 하여, 위로는 해와 달의 밝기를 훼손시켰으며 아래로는 군자의 길을 막았습니다. 소인이 조정으로 들어오기를 구하면, 반드시 간사한 이익을 바치게 됩니다. 하정은 일이 없는데도 노역을 발동시켰으며 장강 해안가의 수비 병사들을 동원하여 산이나 구릉 위에 그물을 쳐놓고 임야의 초목을 베어 들판의 짐승들을 힘을 다해 쫓아 두터운 포위망 속으로 몹니다. 그의 행위는, 위로는 시정의 명분에 이익이 없고, 아래로는 소모시켜 낭비하는 것만 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은 운송으로 지쳤으며, 백성들의 힘은 들짐승을 쫓느라 고갈되었고, 노약자들은 굶주려 죽고 얼어 죽으니, 어른 아이가 원망하고 탄식합니다. 신이 사사로이 하늘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근년 이래부터 음양이 섞여 어그러지고 사계절이 시절을 범했으며, 일식과 지진이 있었고 중하(中夏)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전적을 참고하니, 모두 음기(陰氣)가 양기를 누른 것으로, 소인(小人)이 권세를 농락하는 일이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신은 일찍이 경전을 두루 읽을 때, 이러한 현상들을 증험했었는데 모두 재앙의 징조가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며 사람들을 전율케 하는 것입니다. 옛날 고종(高宗)은 자신을 수양하여 솥에 꿩이 있는 이변을 말소시켰고, 송경(宋景)은 덕을 숭상함으로써 화성의 이변을 물러가게 하였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위로는 하늘이 나타낸 질책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두 군주가 재앙을 제거한 방법을 따라서 멀리로는 이전 시대에 현인을 임용한 공을 두루 살펴보고, 가까이로는 오늘 사람을 잘못 임명한 과실을 깨달아 조정의 관위를 맑게 하고, 걸출한 인재를 나아가게 하여 빛내고, 간사하고 사악한 자를 방출시켜 물러나게 하며, 사악한 자의 세력을 억제하고 빼앗아 앞에서 제시했던 소인의 무리들은 일체 다시 임용하지 말며, 지금까지 임용했던 재능있는 사람들을 널리 불러들이고 직언을 수용하여 받아들이며, 삼가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선제의 기업을 공경스럽게 받든다면 위대한 교화는 널리 보급될 수 있고, 하늘과 사람의 원망은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경전(傳)에서 말하기를, ‘국가(國)가 흥성하려면 백성 보기를 아들처럼 하고, 국가가 멸망하려면 백성을 잡초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이전에 신성한 광채를 숨기고 동방에서 몰래 덕행을 닦을 때, 영명한 지혜와 우수한 자질로써 용이 비등하며 천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하여 사해(四海) 사람들은 목을 빼고 바라보며, 팔방에서 눈을 씻어 주성왕(成)과 주강왕(康)의 교화가 반드시 눈앞에서 일어날 것으로 기대 했었습니다. 폐하께서 제위에 오른 이래, 법률과 금령은 가혹하게 변했고, 부세 징수는 더욱 번잡해졌으며, 궁궐 안의 환관들은 각 주(州)와 군(郡)에 분포하여 임의로 노역을 발동하고 다투어 폭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베틀과 북에 곤란을 입을 것을 근심하고, 민중은 끝없는 요구에 지쳐 있으며, 노약자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고 집집마다 먹을 것이 없어 푸르뎅뎅한 기색을 하고 있고, 임지에 있는 지방 관원들은 죄의 책임을 지는 일을 두려워하여 엄한 법령과 잔혹한 형법을 사용하여 백성들은 재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가가호호 떨어져 흩어져 있으면서 고통스럽게 외치고 있는데, 이것이 화기(和氣)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또 장강 해안가를 수비하는 병사들은 멀리로는 마땅히 땅을 개척하여 지역을 넓혀야 하고, 가까이로는 응당 변방을 지켜 어려움에 대비해야 하므로, 특별히 두텁게 대우하고 양육함으로써 일에 대비해야 하므로, 특별히 두텁게 대우하고 양육함으로서 일에 대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징발하고 부세를 걷는 것이 안개나 구름이 밀려와 운집해 있는 것 같아 입는 것은 짧은 갈옷도 온전하게 하지 못하며, 먹는 것은 아침 저녁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는 칼과 창이 부딪히는 어려움을 감당해야 되고, 들어와서는 의탁할 곳 없는 우수를 끌어안습니다. 이 때문에 부자끼리 서로 버리고, 모반하는 자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부세를 느슨하게 하여 고통을 제거해 주고, 궁핍함을 구제하고 긴급하지 않은 일을 줄이고, 금령과 법령을 간략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해내(海內)는 안락하게 산업을 하고 위대한 교화는 널리 퍼지게 될 것입니다. 무릇 백성들은 국가의 근본이고, 음식은 백성들의 생명입니다. 지금 나라에는 1년 간 필요한 것을 비축하지 않고 있으며, 가정에는 몇 달 지낼 것도 쌓아놓지 않고 있는데, 후궁(後宮)에는 헛되이 먹고 있는 자가 만여 명이나 됩니다. 궁궐 안에서는 떨어져서 결혼하지 못함을 원망하고 있고, 궁궐 밖에서는 소모하여 낭비함이 있어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인해 국고를 텅비게 하고 백성들은 지게미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또 북쪽의 적은 주목하여 우리 나라의 흥성함과 쇠하는 상황을 엿보고 있습니다. 폐하 께서는 자신의 위엄과 덕망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사해(四海)의 곤궁함을 홀시하며 적군이 난리를 만들지 않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람들의 노력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대황제(大皇帝)는 미덕을 남겨 폐하에게 이르게 하였으니, 폐하께서는 덕행과 지조를 면려하고 숭상하여 이전 사람들의 공업을 빛내고, 백성들을 사랑하고 병사들을 길러 선제의 법도를 보전하여야만 합니다. 어떻게 현조(顯祖)의 공로를 홀시하고 얻기 어려운 대업을 경시하며, 천하의 부진함과 패배와 혼란을 잊고 흥성하고 쇠미해지는 거대한 변화를 버리겠습니까? 신이 듣기로는 길흉의 변화는 일정하지 않으며, 길흉은 사람에게서 정해진다고 합니다. 장강(長江)의 한계는 오랫동안 의지할 수 없고, 만일 우리가 지키지 않는다면 일엽편주로 건널 수 있습니다. 옛날 진(秦)나라는 황제(皇帝)의 칭호를 세우고 효산(殽)과 함산(函)의 요충지를 차지하였지만, 덕행과 교화는 세워지지 않았고, 법령과 정치는 가혹했으며, 독해는 백성들에게 미쳤고,충신은 입을 닫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 보통 남자가 크게 소리 지르자 국가가 엎어진 것입니다. 가까이로는 유씨(劉氏)가 삼관(三關)의 요충지를 점거하고 몇 겹으로 산의 공고함을 지켰으므로 쇠로 만든 성벽과 돌로 만든 궁실은 만대의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임용함에 있어서는 현명함을 잃어 하루 아침에 정권을 잃고, 군주와 신하가 목에 형구를 더하여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분명한 귀감이며, 눈앞의 밝은 경계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멀리로는 이전의 일을 고찰하고 가까이로는 세상의 변화를 살펴 기업을 확대하고 근본을 강하게 하고 감정을 베어내어 도의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주성왕(成)과 주강왕(康) 같이 정치가 흥성할 것이며, 성스런 조상이 남긴 복이 융성해질 것입니다.-

이 상소가 올려지자, 손호(皓)는 그를 매우 미워하게 되었다. 하소(邵)는 공적인 일을 받들어 바르고 정직하였으므로 손호가 가까이 하고 신임하는 자들은 그를 꺼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공동으로 하소(邵)와 누현(樓玄)은 함께 힐책을 받게 되었다. 누현은 남주(南州)로 보내졌고 하소는 복직되었다. 후에 하소는 중풍을 심하게 앓아 입으로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몇 달 동안 관직을 떠났다. 손호는 그가 질병을 핑계대고 있다고 의심하고 체포하여 주장(酒藏)으로 보내 1천 번 고문을 했다. 하소는 끝까지 한마디도 못했으며, 결국에는 살해되었다. 그리고 그의 식솔들은 임해(臨海)로 쫓겨나게 되었으며, 아울러 조서를 내려 누현의 자손을 주살시키도록 했다.

이 해는 천책(天冊) 원년(275)으로, 하소의 나이 49세였다.


하소(賀邵)의 아들 하순(賀循)의 자는 언선(彥先)이다. 우예진서(虞預晉書): 하순은 가족의 남자들이 화를 당하자, 집을 나와 떠돌아 다니다가, 오나라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절도가 높고 생각이 깊었다.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언행과 행동거지는 항상 예법을 따랐다.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아는 것이 많았고, 특히 삼례(三禮:《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에 뛰어났다.


수재(秀才)로 천거되었고, 양선(陽羨), 무강(武康)의 현령(縣令)이 되었으며 고영(顧榮), 육기(陸機), 육운(陸雲)이 그를 추천하며 표를 올렸다. "표생략". 그후 하순은 수도로 불려가 태자사인(太子舍人)이 되었다. 석빙(石冰)이 양주(揚州)를 공격하자 하순은 백성들을 모아 그를 격파하고, 이후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杜門不出).


진민(陳敏)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하순을 단양(丹陽)의 내사(內史)로 삼았지만, 하순은 병을 핑개대고 한사코 사양(固辭)하였고, 진민도 더이상 강제로 하지 못했다. 그 당시 강동(江東)의 호걸 중에서 진민으로부터 작위(爵位)를 받지 않은 자가 없었지만, 오로지 하순 그리고 그의 동향 사람인 주탄(朱誕)만이 진민에게 합류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국(吳國)의 내사(內史)가 되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원황제(元皇帝 司馬睿: 276년 ~ 322년: 중국 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재위: 317년 ~ 322년))가 진동장군(鎮東將軍)이 되었을때, 원황제가 하순을 군사마(軍司馬)로 삼기를 청했고, 원황제가 진왕(晉王)이 되자, 하순을 중서령(中書令)으로 삼기를 청했는데, 한사코 받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태상(太常)이 되었, 또한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


그당시 조정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리해야 하고 의논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조정의 제도의 상당 부분은 하순의 의견에 따라 만들어지고, 조정에서나 밖에서 하순에게 자문을구해와, 그는 그당시의 유종(儒宗)이었다.


나이 60이었을때, 태흥2년(319)에 죽었고, 사공(司空)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를(穆)이라 했다. 하순은 여러가지 분야에서 책을 썼는데, 그의 전기가 지금도 있다. 아들 하습(賀隰)이 뒤를 이었고,그는 임해태수(臨海太守)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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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21:14:45 (*.52.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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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1
21:15:06
(*.52.89.88)

주석 추가 또 하순은 유명한 인물이니 찾아보면 삼국지와는 다른 정보가 나옵니다.

코렐솔라

2013.07.10
16:58:08
(*.104.141.18)
주석하나 추가 하나 없던 주석이 제가 번역가능한 수준의 주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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