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핵(華覈)은 자가 영선(永先)이고 오군(吳郡) 무진(武進)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상우위(上虞尉)ㆍ전농도위(典農都尉)로 임명되었다가 문학적 재능이 있어 조정으로 들어가 비부랑(?府?)에 임명되었으며 중서승(中書丞)으로 승진했다.


촉(蜀)이 위(魏)나라에 병탄된 후, 화핵은 궁문으로 가서 표를 바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근래에 적의 무리들이 서쪽 변방 지역을 향해 개미처럼 모여들어 위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늦게 육항(陸抗)의 표(表)가 도착하여서야 성도(成都)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와 군주가 달아나 사직(社稷)이 전복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옛날 위(衛)나라가 책인(翟)에게 멸망되자 제환공(桓公)은 위나라를 존속시켰습니다. 지금은 길이 매우 멀기 때문에 구원하러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아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고 있는 영토를 잃게 되고, 공물을 바치던 나라를 버리게 됩니다. 미천한 신하는 사사로이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성하고 인자하여 먼 곳까지 은택으로 어루만졌는데, 갑자기 이와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틀림없이 애도의 감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신은 슬픈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삼가 표를 올려 알리게 되었습니다.-


손호(孫皓)가 즉위한 후, 화핵은 서릉정후(徐陵亭侯)로 봉해졌다.


보정(寶鼎) 2년(267), 손호는 다시 새 궁전을 만들면서 규모를 방대하게 하고 진주(珠)와 옥(玉)으로 장식하여 비용이 매우 많이 들었다. 이 당시는 성하(盛夏) 계절로 농업과 수비가 동시에 황폐해졌다. 화핵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


---- 신이 듣기로는, 한문제(漢文)의 시대에는 구주(九州)가 안정되었고, 진(秦)나라 백성들은 잔혹하고 가혹한 정치를 제거하기 좋아하여 유씨(劉氏)의 관대하고 인자함으로 귀순했으며, 노역을 감소하고 법령을 간략하게 하여 조정은 백성과 다시 시작하였으며, 왕족의 자제들을 각지로 보내 한 왕실의 외번(藩)이 되게 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는 모두 태산(泰山)과 같이 안정되어 무궁한 기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의(賈誼)에 이르러서야 통곡하고 눈물을 흘려야 할 원인이 세 가지 있게 되었고, 길게 탄식할 까닭이 여섯 가지 있게 되어, 오늘의 형세는 어찌 섶나무 더미 아래에 불을 피워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고, 불이 다 타지도 않았는데 안전하다고 하는 것과 다르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이후의 변란은 모두 그가 이전에 말한 것과 같았습니다. 신은 비록 미천하고 어리석어 커다란 도리를 알지 못하지만, 사사로이 과거의 일로써 오늘의 형세를 살핍니다.


가의가 말하여,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각 왕후(諸王)들이 강성해지고 한 나라 조정의 부상(傅相)은 질병을 핑계대어 관직을 버리고 돌아갈 것인데, 이러한 상황으로 다스린다면 요(堯)나 순(舜)일지라도 안정되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강대한 적은 구주(九州)의 토지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백성을 수중에 넣고 있으며, 공격하여 싸우는 각종 방법을 익혔고 군대의 옛날 세력을 이용하고 있으며, 중원 지역에서 상대방을 병탄시키기 위해 서로 다투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은 초(楚)와 한(漢)의 세력이 양립하지 못하는 상황과 같아 단지 한왕조의 각 왕후들, 회남왕(淮南)이나 제북왕(濟北)의 위협일 뿐입니다. 가의(誼)가 통곡하려고 한 상황은 현재와 비교하면 느슨한 것이며, 불을 끌어안고 섶나무에서 누워있는 이유는 오늘보다 급박한 것이었습니다. 


대황제(大皇帝 : 손권)께서는 이전 시대(한 나라 시대)의 상황이 그와 같음을 보고, 지금의 형세가 이와 같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에 농업과 양잠 사업을 광범위하게 개척하고 사리를 꾀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비축하였으며, 중복된 노역을 하는 백성을 안쓰러워 하고 전사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 때문에 지위의 크고 작음에 구분없이 은혜에 감사하며 각기 목숨을 다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운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대황제는 일찍 만국(萬國)을 버렸습니다. 이 이후로부터 세력이 강한 신하들이 정권을 전횡하며 위로는 하늘의 도의를 버리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의론을 위배하였으며, 안정과 생존의 근본을 잃게 되었고, 한 순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여러 차례 군대를 일으켜 창고에 쌓아놓은 것을 기울여 다 사용하였으며, 병사들은 수고하고 백성은 빈곤하게 되어 한시도 안정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존하고 있는 자들은 부상을 입고 남은 무리들이며, 고통과 슬픔이 있는 백성뿐입니다. 그래서 군용물자는 텅 비게 되었고, 창고는 부실하며, 베나 비단을 내리는 것은 추위와 더위를 막기에 넉넉하지 못하며, 게다가 산업을 잃어 가가호호가 곤궁합니다. 그러나 북방에서는 식량을 축적하고 백성들을 길러 오로지 마음을 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다른 경계는 하지 않습니다.
촉(蜀)나라는 서쪽의 속국으로 토지가 험하고 견고하며, 게다가 선주(先主 : 유비)의 통치 방법을 이었으므로, 그들의 수비는 오랜 시간 지탱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전복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입술을 잃어 치아가 시린 것(脣亡齒寒), 이것은 옛 사람들이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교주(交州)의 여러 군은 우리 나라의 남쪽 영토인데, 교지와 구진(九真) 두 군은 이미 함락되었고, 일남(日南)은 고립되어 위험하여 그 존망(存亡)은 지키기 어렵게 되었고, 합포(合浦) 북쪽은 백성들이 모두 동요하였고 서로 이어서 부역을 피하고 대부분 달아나 모반하였는데, 이에 대한 수비 병사의 인원은 감소하고 위세는 가벼워졌으므로 항상 호흡하는 사이에 변고가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옛날 해적 무리들이 동쪽 현을 엿보고 모반한 백성들을 많이 얻었는데, 지형에 익숙하여 해상을 왕래하며 지난 해보다 탐을 내어 하루라도 약탈하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앞뒤로 경계해야 할 일이 있고 머리와 꼬리가 곤란해졌으니, 이는 우리 나라 조정의 액운이 있는 때인 것입니다. 진실로 궁전을 건립하는 노역을 중지시키고 먼적 적을 방비할 계책을 정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씨를 뿌리는 산업에 힘써서 굶주리고 궁핍함을 구제해야만 합니다. 농사지을 시기를 넘겨 봄의 밭갈이가 늦어지고 일이 있는 날이면 행장은 갖추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이런 긴급한 일을 버리고 궁궐짓는 일에 진력한다면, 갑자기 의외의 적이 침입하는 변고가 있게 될 때에는 궁궐 짓는 노역을 버리고 봉화의 긴급함에 응하여야 하므로 원망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모아 칼날이 번쩍이는 전쟁터로 달려가게 할텐데, 이것은 곧 강대한 적이 이용할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만일 단지 고수하며 오랜 시간 견딘다면, 군대의 식량을 틀림없이 궁픔해질 것이고, 적과 칼날을 접촉시킬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사들은 이미 곤란해질 것입니다.


옛날 태무(太戊)의 시대에 뽕나무와 곡식이 조정에서 자라나자 군주와 신하들은 두려웠으므로 덕을 닦았고, 그래서 괴이한 현상이 소멸되고 은나라는 흥성하였습니다. 화성(熒惑)이 심성(心)에 머물자, 송(宋)나라 사람들은 재앙으로 생각했는데, 경공(景公)이 고사(瞽史)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화성(熒惑)은 물러나 제자리로 갔으며, 경공은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덕을 닦으면 이상한 부류를 감화시킬 수 있고, 입으로 말을 하면 신명에도 통합니다. 신은 우매한데, 잘못되어 폐하의 가까운 곳에 있는 관직을 더하였지만, 폐하를 도와 은택을 나타내어 신령을 감화시킬 수 없었으므로 고개를 들면 하늘에 부끄럽고 고개를 숙이면 땅에 부끄러운데도 달아날 곳이 없습니다. 


물러나 엎드려 생각해 보니, 화성과 뽕나무와 곡식의 이상한 현상은 하늘이 두 군주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미미한 요이(妖)는 문이나 정원 가까이 있는 작은 신이 만든 것으로 천지를 통해 징험해 볼 때 다른 변화는 없지만, 상서로운 징조가 앞뒤로 하여 빈번하게 나왔으며 명주(明珠)가 이미 드러났고, 흰색 참새가 이어서 출현하였는데, 이는 만민의 복이며 확실히 신령이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단지 이런 징조는 구주를 집으로 하고, 천하를 가정으로 삼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과 함께 옮기지 않습니다. 또 지금의 궁실은 본래 선제께서 만든 것이며, 당초 토지를 점쳐 기반을 확정지었으므로 상서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양시(楊市)의 토지는 궁궐과 연접해 있어, 만일 대공정이 끝나 폐하의 수레가 옮겨올 때에는 문과 길의 신령들이 모두 옮겨 가야만 하므로 틀림없이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머물면 의심하니, 이것이 어리석은 신이 밤낮으로 걱정하며 초조해 하는 것입니다. 


신이 예기 월령(月令)을 보니, 계하(季夏)의 달에는 토목공사를 일으킬 수 없으며, 제후들을 모이게 할 수 없고, 병사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동원할 수 없으며, 대사를 일으키면 반드시 큰 재앙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비록 제후들을 모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제후의 군대가 함께 모인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6월, 무기일(戊己)에는 토성의 운행이 왕성하여 이미 침범할 수 없고 게다가 또 농사짓는 달이므로 이 때를 잃을 수 없습니다. 옛날 노은공(魯隱公)이 여름에 중악(中丘)에 성을 쌓았을 때, 춘추(春秋)에서는 이것을 기록하여 후인들의 경계로 삼도록 했습니다. 지금 궁전을 수축하는 목적은 백대의 위대한 기업을 만들려는 것인데, 오히려 천지에서 가장 기피하는 것을 범하고 있고, 춘추(春秋)에 적어놓은 것을 답습하였으며, 농사철에 가장 중요한 일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신(臣)의 어리석은 소견에 의하면 사사로이 불안합니다.


또 걱정되는 것은, 흩어졌던 백성들을 불러도 간혹 어떤 사람은 오지 않는데, 이들을 토벌한다면 노역을 폐기하고 군사(事)를 일으킬 것이고, 토벌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갈수록 만연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전부 온다면, 수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이게 되어 질병이 없는 자가 드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면 선행을 생각하지만, 고통스러우면 원망하고 모반을 합니다. 장강(江) 남쪽의 정예병사는 북쪽 땅에 있는 자들이 대적하기 어려워 하여 병사 10명으로 동쪽의 병사 1명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군대를 깊이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궁전을 세워 죽거나 모반한 자가 5천 명이 된다면 북방 군대의 사람은 또 5만으로 늘어나는 것이며, 만일 1만 명이라면 배가 늘어 10만 명이 될 것입니다. 병든 자 중에서도 사망하는 손실이 있고, 모반하는 자 중에서도 좋지 못한 말을 전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강대한 적이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지금 적과 우리는 중원 지역에서 결전을 하여 강함과 약함을 확정짓게 되는데, 마침 이때 적군은 증강하고 우리는 손실을 보았으며 게다가 피로하고 곤궁합니다. 이것은 영웅과 지혜있는 선비들이 매우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고대의 군왕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3년 간 필요한 것을 비축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안녕된 시대에도 이와 같이 경계하고 준비하거늘, 하물며 적이 강대한 데 농업을 홀시하고 비축하는 것을 잊겠습니다. 오늘 비록 여러 가지를 심었지만 얼마 전에 홍수로 침몰되었으며, 무사히 남아 있는 것은 반드시 김매어 수확해야 하는데 지방 장관들은 기한을 어긴 것을 두려워하고 북쪽과 동쪽의 각 군 사람들이 직접 산림 속으로 들어가 힘을 다해 재목을 베고 농사를 폐기시키고 있습니다. 병사와 백성들의 처자식은 힘이 약하므로 개간하여 농사지은 것 또한 빈약한데, 만일 수재나 한재라도 있게 된다면 수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州)나 군(郡)에 현재있는 살은 당연히 일이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굶주린 사람들이 관청의 공급에 의지하여 구제되고 있습니다. 만일 위아래가 비고 궁핍하여 식량 수송도 미치지 못하는데, 북방의 적이 영토를 침범한다면, 주공(周)과 소공(召)으로 하여금 다시 소생하게 하고, 장량(良)과 진평(平)이 다시 출현하여도 폐하를 위해 도모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신은, 군주가 밝으면 신하는 충성스럽고, 군주가 성스러우면 신하는 직언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렵게 진언하여 감히 폐하의 위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애틋하게 살펴주기를 희망합니다.----


이 상소는 바쳐졌지만, 손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 화핵은 승진하여 동관령(東觀令)이 되었고 우국사(右國史)를 겸임하게 되었다. 화핵은 상소를 올려 사양했다. 손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표를 받아 보았습니다. 동관(東觀)은 유림(儒林)들이 모여 있는 관부(府)로 항상 문학과 육예에 대해 강의하고 교감을 하며, 의문이 있거나 혼란스러운 문제를 결정하여 처리합니다. 한 왕조 때는 모두 저명한 학자와 걸출한 유생들이 그 직책을 맡았으므로, 나 또한 훌륭한 현인들을 선발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듣건대, 당신은 경전을 연구하여 정통하고, 여러 서적을 두루 열람하여 식견이 많고, 예악(禮樂)을 좋아하고 시서(詩書)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땅히 당신의 문채를 발휘하고 당신의 재학을 운용하여 이 시대의 정사를 빛나게 하여 양웅(楊)ㆍ반고(班)ㆍ장형(張)ㆍ채옹(蔡)의 무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기이한 사람이 겸손하게 물러나고, 중요한 사람이 자신을 가볍게 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이전의 현인들을 뛰어넘어야지 또 사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창고에는 쌓아놓은 것이 없었지만 세속에서는 더욱더 사치스러웠다. 화핵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지금 도적들이 천하를 가득 메우고 있고 정벌은 끝나지 않았으며, 나라에는 몇 년 간의 비축물이 없고 밖으로 나가서는 적과 대항하기 위해 군량미를 쌓아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응당 깊이 우려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릇 재물과 곡식의 생산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오므로, 농사 지을 시기에 농사에 힘쓰는 것이 나라의 가장 급박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경도(都)의 많은 관원들은 관장하는 일이 구분되어 다르며, 각자 백성을 징용하면서 백성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있어 항상 규정된 한계 가까이 이릅니다. 추수할 달이 되자 기한 내에 부세를 납입하도록 질책합니다. 관원들은 그들의 파종할 시기를 빼앗았지만, 금년의 세금을 재촉하며, 만일 체넙하는 자가 있으면 재물을 기록하여 몰수합니다. 때문에 가가호호 빈곤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부족한 것입니다. 마땅히 잠시 각종 노역을 멈추고 농사와 양잠에 마음을 모으도록 해야 합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 남자가 쟁기질을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이 때문에 굶주리게 되고, 한 여자가 길쌈을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이 때문에 추위로 떨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선왕들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오직 농사에만 힘썼던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이래, 이미 1백년 쯤 되었으므로 농민들은 남쪽 밭에서 농사짓는 것을 버렸고, 여자들은 방직 산업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거친 음식을 먹거나 장기간 굶주리고, 홑옷을 입고 빙판 위를 걷는 자가 진실로 적지 않습니다. 신은 군주가 백성들에게 구하는 것은 두 가지이고, 백성이 군주에게 바라는 것은 세 가지라고 들었습니다. 두 가지란, 백성이 군주 자신을 위해 수고롭기를 요구하고, 백성이 군주 자신을 위해 회생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란, 굶주린 자가 먹을 수 있고, 수고로운 자가 휴식할 수 있으며, 공로 있는 자가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백성은 군주의 두 가지 요구를 만족시켰지만, 군주는 백성의 세 가지 희망을 저버렸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공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창고는 부실하고 백성은 노역을 하고 있으며, 군주의 두 가지 요구는 이미 갖추어졌지만, 백성의 세 가지 희망은 보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굶주린 사람은 맛난 음식을 기대하지 않은 연후에 배 부르고, 추위에 떨고 있는 자는 여우털이나 담비털로 만든 옷을 기대하지 않은 연후에 따뜻할 수 있습니다. 맛난 음식은 구미의 이상함이며, 무늬가 있고 수놓은 옷은 몸의 장식일 뿐입니다. 지금은 일이 많고 부역이 빈번하며, 백성들은 빈곤하고 세속은 사치스러우며, 모든 장인들이 만드는 것은 쓸모없는 기구이며, 부녀자들은 기려하고 화려한 장식만을 추구하고, 부지런하지 않고 게으르며, 수놓은 예복을 입고 서로 모방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없습니다. 병사와 백성들의 가정에서조차 오히려 또 이러한 풍속을 따라하여 집안에는 비축해 놓은 쌀이 없으면서도 밖으로 나올 때는 비단 옷을 입고 있습니다. 부유한 상인의 가정에 이르러서는 금이나 은의 장식을 더하여 사치와 황음이 더욱 심합니다. 


천하는 아직 태평하지 않고, 백성들은 위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땅히 백성들의 근원을 통일시켜 곡식과 비단 생산을 풍부하게 해야 되는데 부화한 기교를 추구하여 농사짓는 공을 버리고 사치스런 생활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였으므로 그 결과, 위로는 존귀함과 비천함의 등급 차가 없어졌고, 아래로는 재력을 낭비하는 손해가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관리의 집에는 자녀가 없는 집이 적은데, 많은 경우는 서너 명이 되고, 적은 경우에는 한두 명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집집마다 딸은 한 명씩 있으니, 10만집이면 10만 명이 되고, 모든 사람이 1년마다 한 속(束)씩 길쌈을 하면 10만 속이 됩니다. 국내의 모든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친다면 몇 년 사이에 베와 비단이 반드시 쌓일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다섯 가지 색상으로 옷을 만들어 입도록 하고, 단지 비단 수의 무익한 장식만은 금하게 합니다. 그리고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은 화려한 문채를 기대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드러나며, 자태가 우미한 사람은 아름다운 무늬의 수를 기대지 않아도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색깔의 장식이면 아름답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설령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려 화장을 하게 하고 아름답게 옷을 입게 할지라도 추녀를 없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화려한 문채를 버리고 문양 수를 제거하더라도 미인을 없게 하지는 못합니다. 만일 신이 논의한 것 가운데 무익하여 버려도 손해가 없는 것이 있다면, 어찌 아끼면서 잠시 금하여 관부의 긴급함을 채우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궁핍을 구제하는 최상의 노력이며,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 사업입니다. 관자(管)와 안자(晏)를 다시 태어나게 하더라도 이것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한나라 왕조의 문제(文)와 경제(景)는 평화로운 환경속에서 황제의 지위를 계승했으며, 그 당시 천하는 이미 안정되어 사병에는 변고가 없었는데, 무늬를 조각하여 농사를 방해했으며, 비단옷에 수놓아 여공을 방해하자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이익을 개발하고 굶주림과 추위의 근원을 두절시켰습니다. 하물며 지금 육합(六合)이 분열되어 떨어졌으며 시랑이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고, 병사들은 감히 변방으로 떠나지 못하고 병기는 허리에서 풀지 않았으니, 이런 상황하에서 재화를 생산해내 원천을 넓히고, 관부 창고의 비축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손호는 화핵이 연로하다고 생각하고 명령을 내려 상소문을 정서하도록 했지만, 화핵은 감히 하지 않았다. 또 손호는 그에게 문장을 쓰도록 명령하고 옆에 서서 기다렸다. 화핵은 문장을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소신 화핵은 미천하고 평범합니다. 정직한 성인을 사랑하며 특별히 융숭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민간의 초야에서 조정 안의 높은 지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광휘가 궁궐문을 비추고, 청색 옥돌은 기댈 만했습니다. 삼가 맑은 이슬을 마시며, 따뜻한 바람으로 목욕합니다. 공은 실오라기 만큼도 없고 허물은 산처럼 큽니다. 단이슬이 오점을 용인하고 은혜를 누적시켰습니다. 열등한 자질로 광영을 입어 고달픈 운명이 밝아지게 되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려 했지만 다하지 못하고, 책임을 광막한 하늘로 돌립니다. 성은은 비내리는 것 같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은 특히 더합니다. 외람되게도 어리석은 신에게까지 자문에 대답하도록 명하니, 은택이 저에게 이르렀습니다. 감히 명령을 어기며 죄로 주살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조서의 명령을 받아, 혼이 형체를 남기고 갑니다.-


화핵은 앞뒤로 국가와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계책 및 우수한 재능이 있는 자를 천거하였으며 죄과가 있는 자를 풀어주었고, 조정에 바친 상소는 1백여 번이나 되었는데 모두 보충하여 이익이 되게 함이 있었다. 문자가 많아 모두 싣지는 못했다.


천책(天冊) 원년(275), 그는 작은 과실로 면직되었으며, 몇 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위요(曜)와 화핵(?)이 정사를 논의한 장(章)이나 상소는 모두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 평하여 말한다.
설영(薛瑩)은, ‘왕번은 기량이 출중하여 보통 사람들과 다르며 박학하고 여러 방면에 통하였고, 누현(樓玄)은 청렴 결백하여 지조가 있고 재능을 십분 발휘했으며, 하소(賀邵)는 뜻을 닦아 고결하고 중요한 기밀을 관리하며 요직에 있었고, 위요(韋曜)는 뜻이 독실하고 학문을 하며 옛 것을 좋아하고 여러 책을 널리 보았으며 기술하는 재능이 있다.’라고 칭찬하였다.


호충(胡沖)은, ‘누현(玄)ㆍ하소(邵)ㆍ왕번(蕃)은 그 시대의 맑고 우수한 인물로 대체로 우열의 구분은 없다. 반드시 부득이 구분한다면, 누현이 응당 앞에 있어야 하고, 하소는 응당 다음에 있어야 한다. 화핵은 문장을 짓는 재능에 있어서는 위요를 넘는 점이 있지만, 공식적인 글에 있어서는 미치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는, 화핵은 좋은 계책을 여러 차례 진언하여 자신의 능력을 다하기를 바랬으므로 충신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희망이 없는 세상에 있으면서 명망과 지위가 있었고, 자신들의 도리를 억지로 죽여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요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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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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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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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조금 수정했습니다. 배송지의 주석이 없는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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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오서 조달전 [6] 견초 2013-05-01 3897
74 오서 유돈전 [1] 견초 2013-05-01 3152
73 오서 오범전 [3] 견초 2013-05-01 3786
72 오서 호종전 [8] 견초 2013-05-01 4099
71 오서 시의전 [3] 견초 2013-05-01 3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