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劉焉)의 자는 군랑(君郞)이며, 강하(江夏)군 경릉(竟陵)현 사람으로, 한(漢) 노 공왕(魯恭王; 노 공왕은 전한 경제의 아들로 제후왕에 봉해진 자입니다. 유표도 노 공왕의 후손입니다)의 후손이다. 유언의 선조가 장제(章帝=후한의 3대 황제) 원화(元和=89년~104년) 중엽에 경릉으로 옮겨져 봉해졌고, 그 지파가 유언의 가문을 이루었다. 유언이 젊었을 때 주군(州郡)에서 벼슬했는데, 종실(宗室)로써 중랑(中郞)에 배수되었고, 후에 스승인 축공(祝公)의 상(喪) 때문에 관직을 버렸다.


[주 : 신 송지가 살피건대, 축공은 사도(司徒) 축념(祝恬)이다.]


양성산(陽城山)에 거처하며, 학문을 쌓으면서 가르쳤는데, 현량 방정(賢良 方正=둘 다 천거 요건입니다)으 로 천거되어 사도부에 불려갔고, 낙양령(雒陽令), 기주자사(冀州刺史), 남양태수(南陽太守), 종정(宗正), 태상(太常)을 역임했다. 유언은 영제(靈帝)의 정치가 쇠퇴하고 왕실에 사고가 많아서, 이내 건의하여 이르길


“자사와 태수는 뇌물을 바쳐 관리가 되었는지라, 백성들을 벗겨 빼앗으니 (백성들이) 이반(離叛)하게 되었습니다. 청렴하고 명망있는 중신을 선발해 지방관(牧伯)으로 삼는다면, 사방과 중원을 진무하여 평안케 할 수 있습니다.”


라 했다. 유언은 내심 교지(交阯)목이 되기를 바래서, 세상의 난을 피하려 했다. 그 의논이 미처 행해지지도 않아, 시중(侍中)인 광한(廣漢)군 사람 동부(董扶)가 사사로이 유언에게 말하길


“경사에 장차 난리가 일어날 것인데, 익주(益州)의 분야(分野=천하의 지역를 천문에 맞춰 배열한 별자리)에 천자의 기운이 있습니다.”


라 했다. 유언이 동부의 말을 듣고, 맘을 바꾸어서 익주에 뜻을 두게 되었다. 


마침 익주자사 극검(郤儉)의 수탈이 가혹하여 유언비어가 멀리까지 퍼지고,


[주 : 극검은, 극정조(郤正朝)이다]


병주(幷州)에서는 자사 장일(張壹)을 살해하고, 양주(凉州)에서는 자사 경비(耿鄙)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니, 유언의 모책을 펼 수 있게 되었다. 나가서 감군사자(監軍使者), 영(領) 익주목이 되고 양성후(陽城侯)에 봉해지니, 바로 극검을 잡아서 그 죄를 다스렸다.


[주 : 『속한서(續漢書)』에 이르길: 이때 유우(劉虞)를 등용해 유주목으로, 유언은 익주목, 유표는 형주목, 가종(賈琮)은 기주목으로 삼았다. 유우 등은 해내의 청명(淸名)한 인사로써, 혹은 경(卿)이나 상서(尙書)에 지위로부터 선발되어 지방관이 되었으니, 각자 본래의 작질을 가지고 부임지로 거처했다.

『구전(舊典)에 이르길 「전거(傳車=역참의 수레)와 참가(參駕 = 참가(驂駕), 높은 이를 배승(陪乘)하는 말 네필의 수레)는 붉은 색 휘장을 둘렀다」고 한다. 

신 송지가 살피건대, 영제가 붕어하고 난 뒤 의군(義軍)이 일어나자, 손견이 형주자사 왕예(王叡)를 죽이고 난 뒤에, 유표가 형주목이 되었으니, 유언과 같은 때의 일이 아니다.

『한 영제기(漢靈帝紀)』에 이르길 「황제가 유언을 인견(引見)하고는 방략(方略)을 일러주며, 더하여 상을 하사하고 칙조를 내려 유언을 익주자사로 삼았다. 이전의 자사 유준(劉雋)과 극검(郤儉)은 모두 탐욕스럽고 잔멸함이 지나치고 거둬 들임이 낭자하여서, 백성들은 의지할 데가 없어 고통소리가 들판에 가득했는데, 유언이 도착하여서는 바로 일을 수습하고 법을 행하여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비밀이 새어 나감이 없도록 영을 내리고, 종기를 째게 하여, 나라를 위해 정직하게 하였다. 유언이 명을 받아 길을 나섰는데, 도로가 통하지 않아, 형주의 동쪽 경계에 머물렀다」고 한다.]


동부 또한 원하여 촉군의 서부 속국도위(屬國都尉)가 되었고, 태창령(太倉令)인 파서(巴西)사람 조위(趙韙)도 관직을 버리고 함께 그를 따랐다.


주 : 진수(陳壽)의 『익부기구(益部耆舊)』에 이르길: 동부의 자는 무안(茂安)이다. 어려서 스승을 따라 학문을 배워서, 아울러 여러 경전에 통달하였는데, 『구양 상서(歐陽 尙書=금문 상서의 일종)』를 잘했고, 또 초빙한 선비 양후(楊厚)를 섬겨, 도참에 대해 연구했다. 마침내 경사에 이르러, 태학(太學)을 둘어보고, 집으로 돌아와 강의하니, 제자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왔다.


영강(永康) 원년(167) 일식이 있자, 조칙을 내려 현량 방정한 선비를 천거하여, 득실(得失)에 관하여 책문(策問)케 하였다. 좌풍익(左馮翊) 조겸(趙謙) 등이 동부를 천거하였지만, 동부가 병 때문에 가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장안에 봉사(封事)를 올리고, 끝내 병을 칭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후로 하여 재부(宰府=승상부)에 10번이나 불려지고, 공무용 수레(公車)가 와서 3번이나 부르고, 현랑방정, 박사(博士), 유도(有道)로 2번이나 천거되었지만, 모두 가지 않으니, 명망이 더욱 중해졌다.


대장군 하진(何進)이 표를 올려 동부를 천거하길


“유하(游夏=자유(子游)와 자하(子夏), 둘 다 공자의 제자)의 덕을 지니고 있고, 공자의 풍모를 이어받고 있는데다, 內懷焦﹑董消復之術(이부분의 해석은 보류해두죠. 초(焦)와 동(董)이 인명인 듯 한데, 정확히 누굴 지칭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 야흐로 지금 병주와 양주는 소요에 빠졌고, 서융(西戎)이 준동하며 모반하니, 마땅히 조칙으로 공거(公車)를 보내 특별히 불러오되, 남다른 예로 대우하고, 그의 빼어난 계책에 대해 자문해서 모의해야 합니다.”


라 했다. 이에 영제가 동부를 불러서, 곧 시중에 배수했다. 조정에 있으면서 유종(儒宗)이란 평을 받았는데, 그 기량(器量)이 매우 중함을 보였다.


촉군의 속국도위가 되길 원했다. 동부가 나간지 1년만에 영제는 붕어하고, 천하는 큰 혼란에 빠졌다. 후에 관직을 버리고, 나이 82세에 집에서 죽었다.


처음 동부가 말을 꺼내 항변하면, 익주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적으니, 그래서 호칭을 지지(至止; “(그에게) 이르면 그친다” 란 의미)라 했으니, 사람들이 능어 당해낼 수 없어 그에게 이르면 얘기를 그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후에 승상 제갈량이 진(秦宓)에게 동부의 장점을 물으니, 진밀이 말하길


“동부는 터럭같은 작은 선이라도 칭찬하고, 티끌만한 악이라도 내쳤습니다.”


라 했다.


이때, 익주의 역적 마상(馬相), 조지(趙祗) 등이 면죽(綿竹)현에서 스스로 황건(黃巾)이라 부르며, 부역에 피폐해진 백성들을 모으니, 하루 이틀만에 수천명을 얻고는 먼저 면죽 현령 이승(李升)을 살해하자, 관리와 백성들이 많이 모여들어 합하자 1만여 명이나 되니, 바로 전진하여 낙현(雒縣)을 격파하고, 익주를 공격해 극검(郤儉)을 죽이고, 또한 촉군, 건위(犍爲)군에 도착하여 한달여 사이에 3군을 파괴하였다. 마상이 천자를 자칭하고, 그의 무리는 만단위로 헤아렸다. 주 종사(從事) 가룡(賈龍)이 가병 수백인을 거느리고 건위군의 동쪽 경계에 있었는데, 대신 관리와 백성들을 모아, 1천여 명을 얻어 마상들과 서로 공격하였으나, 수일만에 패주시키니, 주의 경계가 조용해졌다. 가룡이 이에 관리와 군졸을 뽑아 유언을 영접하였다. 유언은 면죽현으로 옮겨 다스리면서, 이반했던 자들을 위무하고 받아주며, 관대하고 은혜롭게 행하는 데 힘쓰면서, 속으로 다른 계책을 꾸몄다.


장로(張魯)의 모친이 처음 귀도(鬼道)를 하였는데, 또한 젊은 용모가 있어, 항상 유언의 집을 왕래하곤 하였는데, 그래서 유언이 장로를 파견해 독의사마(督義司馬)로 삼자, (장로가) 한중(漢中)에 머물면서, 계곡의 각도(閣道)를 끊고 한의 관리를 살해하였다. 유언이 미곡적(米穀賊=오두미교(五斗米敎)이 길을 끊어 다시 통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고, 또 다른 일을 핑계삼아 주 중의 호강(豪强)인 왕함(王咸), 이권(李權) 등 10여인을 죽여서, 위엄과 형벌을 세웠다.


주 : 『익부기구잡기』에 이르길: 이권의 자는 백예(伯豫)로 임공(臨邛)현 현장이다. 아들은 이복(李福)이다. 건위군 사람 양희(楊戱)의 『보신찬(輔臣贊)』을 보라.


건위태수 임기(任岐) 및 가룡이 이 때문에 반역하여 유언을 공격하자, 유언이 임기와 가룡을 쳐서 죽였다.


[주 : 『영웅기(英雄記)』에 이르길 「유언이 병사를 일으켜서 천하와 함께 동탁을 토벌하지 않고, 자기 주를 보존하며 스스로 지켰다. 건위태수 임기가 장군을 자칭하며 종사 진초(陳超)와 함께 병사를 일으켜 유언을 공격하니, 유연이 이들을 쳐서 죽였다. 동탁이 사도(司徒) 조겸을 시켜 병사를 거느리고 익주로 향하게 하고, 교위(校尉) 가룡을 설득하여 병사를 이끌고 돌아서 유언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유언이 청강(靑羌)을 나와 전투를 벌였기에 능히 격파하여 죽일 수 있었다. 임기와 가룡 등은 모두 촉군 사람이다.」고 한다.]


유언의 뜻이 점차 번성하는데 있어, 수레와 용구 1천 대을 만들었다. 형주목 유표가 표를 올려 유언이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성인의 말씀을 의심한 것과 유사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 유언의 아들 유범(劉範)이 좌중랑장(左中郞將)이 되었고, 유탄(劉誕)은 치서어사(治書御史), 유장(劉璋)은 봉거도위(奉車都尉)로 모두 헌제를 따라 장안에 있었다.


[주 : 『영웅기』에 이르길 「유범의 부친 유언이 익주목이 되었을때, 동탁이 징발해 불렀으나, 모두 이르지 않았다. 유범의 3형제를 잡아다 미오(郿塢)에 형구를 채워 뒀는데, 옥사가 몰래 풀어주었다」고 한다.] 


단지 셋째 아들인 별부사마(別部司馬) 유모(劉瑁)만이 본래부터 유언을 수종했다. 헌제가 유장을 보내 유언을 타일러 깨우치게 하였지만, 유언은 유장을 남겨두고 보내지 않았다.


[주 : 『전략(典略)』에 이르길 「이 때 유장은 봉거도위로 경사에 있었다. 유언이 병을 칭탁해 유장을 부르자, 유장은 유언을 살펴봐야 한다는 표를 직접 올렸는데, 유언이 마침내 유장은 남겨두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정서장군(西將軍) 마등(馬騰)이 미(郿)현에 주둔하며 반역을 일으키니, 유언 및 유범이 마등과 통모하여, 병사를 이끌고 장안을 습격했다. 유범은 모의가 누설되자 괴리(槐里)로 달아났고, 마등은 패배하여 퇴각해 양주로 돌아왔는데, 유범은 이때에 죽임을 당하고 이에 유탄도 잡아다 형을 집행했다.


[주 : 『영웅기』에 이르길 「유범은 장안의 패망한 마등의 진영에서 유언에게 병사를 요청했다. 유언이 교위 손조(孫肇)를 시켜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도와주게 했으나, 장안에서 패배했다.」고 한다.]


의 랑(議郞)인 하남사람 방희(龐羲)와 유언은 가문이 서로 통교했는데, 이에 유언의 여러 손자를 모아 거느리고 촉으로 들어갔다. 이때 유언은 천화(天火)를 입어 성이 불타고, 수레와 용구는 모두 없어지고, 그 불이 민가에까지 이어졌다. 유언은 성도(成都)로 옮겨 다스렸는데, 그 자식들을 애통해 하고 요상한 재앙에 감응하여, 흥평(興平) 원년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주의 큰 관리인 조위 등이 유장의 온아하고 인자한 성품을 탐내, 함께 유장을 올려 익주자사로 삼아며, 조서로 인하여 (유장은) 감군사자 영 익주목이 되고, 조위는 정동중랑장(征東中郞將)으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유표를 치게 했다.


[주 : 『영웅기』에 이르길 「유언이 죽자, 아들 유장이 대신하여 자사가 되었다. 장안에서 영천사람 호모(扈冒)를 배수하여 자사로 삼아 한중으로 들어가게 했다. 형주의 별가(別駕) 유합(劉闔)은 유장이 거느리던 심미(沈彌), 누발(婁發), 감녕(甘寧)이 반란을 일으키자, 유장을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패주하여 형주로 달아났다. 유장이 조위를 시켜 형주로 진공하여 구(朐)에 주둔했다. 위로는 준동하고, 아래로는 반란이 일어나는 듯 했다.」고 한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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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07:11:03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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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01:13:59
(*.52.89.87)
주석에 색깔만 넣었습니다.

쭈니군

2014.01.15
18:35:11
(*.192.68.189)
퍼갈게요

재원

2014.01.15
21:05:42
(*.148.42.188)
출처 정도는 남기시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네요.

약먹은신선

2014.12.18
16:25:32
(*.33.20.10)
마등에 대한 부분에서 서장장군이 아니라 정서장군 아닌가요?

아리에스

2014.12.20
20:02:01
(*.144.59.121)
정서장군이 맞습니다. 수정에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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