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劉禪)의 태자 유선은 자(字)가 문형(文衡)이다. [주] 모친 왕귀인(王貴人)은 본래 경애장황후의 시녀였다.
주: 손성의 촉세보에 이르길 : 유선(劉璿)의 동생은 유요,유종,유찬,유심,유순,유거의 여섯이다. 촉이 패망하자 유심은 자살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내지(內地)로 옮겨졌다. 영가(永嘉)의 대란을 만나, 자손이 절멸되었다. 오직 유영(劉永)의 손자 유현(劉玄)만이 촉으로 도망쳤고, 이웅은 멋대로 (유현을) 안락공에 임명하여 유선의 후사가 되게 하였다. 영화 3년 이세(李勢)를 토벌할 때, 손성 도 종군했는데, 성도에서 유현을 보았다.
연희(延熙) 원년(238) 정월에 책명을 내려 말했다.
ㅡ옛날 제왕이 황통을 계승할 때 후사를 세워 국가의 정치 사무를 보좌하도록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제도이다. 지금 유선을 황태자로 삼아 선조의 위엄을 분명하게 나타내도록 하라. 행승상사(行丞相事 : 승상 직무대행) 좌장군(左將軍) 상랑(尙朗)에게 지절을 갖고 가 인수를 주도록 명한다. 너는 자신의 훌륭한 본질을 닦는 데 노력하고, 도의를 공손히 따르며, 전장예의제도(典章禮義制度)를 물어 이해하고 사부를 존경하며, 많은 선(善)을 받아들이려 생각하고, 너의 덕을 기르도록 하라. 수양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 유선은 15세였다.
경요(景耀) 6년(263) 겨울에 촉나라는 멸망했다.
함희(咸熙) 원년(264) 정월에 종회(鍾會)가 성도(成都)에서 난을 일으켰으며, 유선은 난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평하여 말한다
『역경』에서는 부부가 있은 다음에야 부자父子가 있다고 했다. 부부는 인륜의 기초이며 은기恩紀(인정은 있으나 법은 굽히지 않는 일)의 융성함이니 이보다 존중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기록하여 남겨 한 나라의 체제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