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3
[[제갈량전]]에서 분리
제갈교(諸 葛喬)의 자는 백송(伯松)이고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諸葛瑾)의 둘째 아들이다. 본래 자는 중신(仲愼)이었다. 그의 형인 원손(元遜-제갈각)과 더불어 당시에 명성이 있었는데, 논자들은 제갈교의 재주가 형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성업(性業-품행)은 형을 능가한다고 여겼다. 당초 제갈량에게 아들이 없어 제갈교로 후사를 잇고자 청하니, 제갈근이 손권에게 여쭈어 제갈교를 서쪽으로 보냈다. 제갈량이 제갈교를 자신의 적자(適子)로 삼고 이 때문에 그의 자(字)를 바꾸었다. (※ 仲은 둘째, 伯은 첫째의 의미) 부마도위(駙馬都尉)에 임명되어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이르렀다. (주29) 나이 25세로 건흥 6년(228년)에 죽었다.
(주29) 제갈량이 형 제갈근에게 보낸 서신 – 제갈교는 본래 성도(成都)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으나, 지금 제장들의 자제(子弟)들이 모두 전운(傳運-군량운반)하니 생각건대 영욕을 함께 함이 마땅합니다. 지금 제갈교에게 5-6백 군사를 감독하게 하여, 여러 자제들과 함께 곡중(谷中)에서 전운하도록 했습니다. / 이 서신은 [제갈량집]에 있다.
(제갈교의) 아들 제갈반(諸葛攀)은 관직이 행호군(行護軍) 익무장군(翊武將軍)에 이르렀는데, 또한 일찍 죽었다. 제갈각(諸葛恪)이 오(吳)에서 주살되어 자손이 끊겼는데(253년의 일) 제갈량에게는 후손(즉 제갈첨)이 있으니, 이 때문에 제갈반을 다시 돌려보내 제갈근의 후사를 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