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번역: 고원님의 블로그史랑방


 

[[제갈량전]]에서 분리


제갈첨(諸葛瞻)의 자는 사원(思遠)이다.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이 무공(武功)으로 출병하고, 형 제갈근에게 서신을 보냈다. “제갈첨은 이제 벌써 8살로 총명하고 사랑스러우나 그 조숙함이 걱정되니, 중기(重器-중요한 인물, 큰 그릇)가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나이 17세 때(즉 243년), 공주에게 장가들고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었다. 그 다음해 우림중랑장(羽林中郎將)에 임명되고, 여러 번 승진하여 사성교위(射聲校尉), 시중(侍中), 상서복야(尙書僕射)가 되고 군사장군(軍師將軍)이 더해졌다. 제갈첨은 글과 그림에 능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촉인들이 제갈량을 그리워하니 모두 그의 재주와 총명함을 사랑했다. 매번 조정에 선정(善政)이나 좋은 일이 있으면 비록 제갈첨이 제안한 일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은 모두 서로 전하며 말하길, ‘갈후(葛侯)가 한 일이다’고 했다. 이로써 아름다운 명성과 과분한 칭찬이 그 실제를 넘어섰다. 
 
경요 4년(261년), 행도호(行都護) 위장군(衛將軍)이 되어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남향후(南鄕侯) 동궐(董厥)과 함께 상서(尙書)의 일을 관장했다.(평상서사平尙書事) 경요 6년(263년) 겨울, 위(魏) 정서장군(征西將軍) 등애(鄧艾)가 촉을 정벌하고, 음평(陰平)에서부터 경곡도(景谷道)를 거쳐 우회해 들어왔다. 제갈첨은 제군을 지휘해 부(涪)현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전봉(前鋒)이 격파되자 물러나 면죽(綿竹)에 주둔했다. 등애가 서신을 보내 제갈첨을 회유했다,


“만약 투항하면 반드시 표를 올려 낭야왕(琅邪王)으로 삼겠소.”


제갈첨이 분노해 등애의 사자를 참수했다. 그리고는 싸워 대패하고 진중에서 죽으니 그때 나이 37세였다. [주]

삼국지집해 주: 등애(鄧艾)가 촉을 평정한후 세운 경관(京觀)이 덕양현(德陽縣) 북쪽 33리 되는 곳에 있다. 등애는 경원 4년 촉을 정벌하여 제갈첨을 면죽에서 크게 깨트리고 대를 쌓아 경관(京觀)을 만들었다.


그때 제갈첨을 수행해 면죽에서 전사한 자들은 장비의 손자 장준이 장비전에 보이고 황권의 아들 황숭이 황권전에 보이며 이회의 조카 이구가 이회전에 보인다.


두우가 말하길 한주덕현은 등애가 제갈첨을 격파하여 그로 인해 경관이 있다.


조일청(趙一清)이 말하길: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 당초 제갈첨은 부현(涪縣)에 있었는데 등애는 이미 강유로 들어왔다. 제갈첨이 말하기를 "나는 안으로는 황호(黄皓)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밖으로는 강유(姜维)를 제지하지 못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강유(江油)관을 지키지 못하였다. 내게는 (이) 세 가지 죄가 있으니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는가?" 마침내 면죽에서 다리를 (땅에) 묻고서 싸우다가 (제갈첨) 부자는 죽었다.


<환우기(寰宇記)> 권 73: 면죽현 고성은 한주 덕양현 북쪽 35리에 있다. 이응의 <익주기(益州記)>가 운운하기를: 석자두(石子頭) 이십리, 즉 옛 면죽현성(面竹縣城)은 제갈첨이 다리를 전쟁터에 묻고 싸운 곳이다.


당초 제갈첨은 부현(涪縣)에 있었는데 등애는 이미 강유로 들어왔다. 제갈첨이 말하기를 “나는 안으로는 황호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밖으로는 강유를 제압하지 못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강유를 지키지 못하였다. 내게는 (이) 세 가지 죄가 있으니 무슨 면목으로 면죽으로 돌아가 주둔하겠느냐.” 하고 다리를 (땅에) 묻고서 싸우다가 (제갈첨) 부자는 죽었다.


군사들이 모두 흩어지고, 등애는 장구(長驅-멀리 달려감)해 성도(成都)에 이르렀다. 
 
제갈첨의 장자 제갈상(諸葛尙)은 제갈첨과 함께 죽었다. (주30) 

(주30) 간보(幹寶-동진 때 인물)가 말했다 – “비록 제갈첨의 지혜가 위급함을 구원하기에는 부족했고 그 용맹이 적과 맞서기엔 부족했으나, 밖으론 나라를 저버리지 않고 안으론 부친의 뜻을 바꾸지 않았으니 충효가 여기에 있었다.” / [화양국지] – 제갈상이 탄식했다, “부자(父子)가 나라에 중은을 입고도 일찍이 황호(黃皓)를 참수하지 못해 패배에 이르렀으니 목숨을 보존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위군(魏軍)에게로 돌진하고 죽었다.

둘째 아들 제갈경(諸葛京)과 제갈반의 아들 제갈현(諸葛顯) 등은 함희(咸熙) 원년(264년)에 내지인 하동(河東)으로 옮겨졌다. (주31)

 
(주31) 제갈씨보(諸葛氏譜)에 의하면, 제갈경(諸葛京)의 자는 행종(行宗)이다. 진태시기거주(晉泰始起居注)에 기재된 조서에서 이르길, “제갈량이 촉에 있을 때 그 마음과 힘을 다했고 그의 아들 제갈첨은 국난에 임해 의롭게 죽었으니 또한 천하의 착한 일이로다.”라고 했다. 제갈량의 손자인 제갈경은 재주에 따라 리(吏)에 서임되고 뒤에 미령(郿令-미현의 현령)이 되었다. 상서복야(尙書僕射) 산도(山濤-위진때 인물)의 계사(啓事)에서 이르길, “미령(郿令) 제갈경은 조부가 제갈량으로, 한나라가 어지러워져 나뉘고 막히자 그 부자(父子-제갈량과 제갈첨)가 촉에 있으며 비록 천명에 통달하진 못했으나 마음을 다해 일에 임했습니다. 제갈경은 미현을 다스려 또한 칭송받았으니, 신이 생각건대 의당 동궁사인(東宮舍人)으로 보임하여 사람을 섬기는 도리를 밝히고, 양주, 익주에 관한 논의를 돕도록 해야 합니다.”라 했다. 제갈경의 지위는 강주자사(江州刺史)에 이르렀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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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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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01:38:27
(*.52.89.87)
분리 링크 추가

서영

2020.12.07
00:45:45
(*.126.255.72)
제갈첨이 노하여 등애의 사자를 참하고서는 싸워 대패해 전쟁에 임하여(전투에 나서서) 죽었다.(瞻怒,斩艾使。遂战,大败,临阵死)
临阵(임진)이 전쟁에 임하다, 전투에 나서다의 뜻입니다.

주: 등애(鄧艾)가 촉을 평정한후 세운 경관(京觀)이 덕양현(德陽縣) 북쪽 33리 되는 곳에 있다. 등애는 경원 4년 촉을 정벌하여 제갈첨을 면죽에서 크게 깨트리고 대를 쌓아 경관(京觀)을 만들었다.

삼국지집해 주석 - 그때 제갈첨을 수행해 면죽에서 전사한 자들은 장비의 손자 장준이 장비전에 보이고 황권의 아들 황숭이 황권전에 보이며 이회의 조카 이구가 이회전에 보인다. 두우가 말하길 한주덕현은 등애가 제갈첨을 다 격파하고 그로 인해 경관이 있다. 조일청(趙一清)이 말하길: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 당초 제갈첨은 부현(涪縣)에 있었는데 등애는 이미 강유로 들어왔다. 제갈첨이 말하기를 "나는 안으로는 황호(黄皓)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밖으로는 강유(姜维)를 제지하지 못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강유(江油)관을 지키지 못하였다. 내게는 (이) 세 가지 죄가 있으니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는가?" 마침내 면죽에서 다리를 (땅에) 묻고서 싸우다가 (제갈첨) 부자는 죽었다. <환우기(寰宇記)> 권 73: 면죽현 고성은 한주 덕양현 북쪽 35리에 있다. 이응의 <익주기(益州記)>가 운운하기를: 석자두(石子頭) 이십리, 즉 옛 면죽현성(面竹縣城)은 제갈첨이 다리를 전쟁터에 묻고 싸운 곳이다.

푸른색 주석은 원래 두 개라 분리합니다.

서영

2020.12.07
01:01:58
(*.126.255.72)
아, '두우가 말하길 한주덕현은 등애가 제갈첨을 격파하여 그로 인해 경관이 있다.'로 고칩니다.

코렐솔라

2020.12.24
13:51:52
(*.46.174.164)
넵 감사합니다. 집해 부분은 모두 반영했습니다.

다만 본문 수정의 경우 고원님이 번역하신 거라 제가 멋대로 수정하기 좀 그렇네요. 위의 원본 링크 보시면 제가 댓글 달아놓은 것처럼 고원님께 확인을 받고 confirm 후에 수정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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