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번역: 고원님 블로그


 

장비(張飛)는 자(字)가 익덕(益德)이고 탁군(涿郡-유주 탁군)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先主-유비)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선주가 조공(曹公-조조)을 수행해 여포를 격파하고 함께 허도로 돌아온 뒤 조공이 장비를 중랑장(中郎將)으로 임명했다. 선주는 조공을 배반하고 원소, 유표에게 의지했다. 
 
유표가 죽고 조공이 형주(荊州)로 들어오자 선주는 강남(江南-장강 남쪽)으로 달아났다. (※ 208년의 일) 조공이 하루 낮, 하루 밤을 추격하여 당양(當陽-형주 남군 당양현) 장판(長阪)에 이르렀다. 선주는 조공이 갑작스럽게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 채 달아났고, 장비로 하여금 20기(騎)를 이끌고 뒤를 끊도록 했다. 장비는 물가에 의지한 채 다리를 끊고는 눈을 부릅뜨고 모(矛)를 비껴 잡으며 외쳤다, 
 
"내가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 
 
감히 접근하는 적군이 아무도 없었고 이 때문에 마침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선주가 강남을 평정한 뒤 장비를 의도태수(宜都太守)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임명하고 신정후(新亭侯)에 봉했고, 그 뒤 남군(南郡)(태수)로 전임시켰다. 
 
선주가 익주(益州)로 들어간 뒤 군을 돌려 유장(劉璋)을 공격했고, 장비는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군현(郡縣)들을 나누어 평정했다. 강주(江州)에 이르러 유장의 장수인 파군태수(巴郡太守) 엄안(嚴顔)을 격파하고 산 채로 붙잡았다. 장비가 엄안을 꾸짖으며 말했다, “대군이 당도했는데 어찌 항복하지 않고 감히 맞서 싸웠느냐?”
 
엄안이 대답했다, “경(卿) 등이 무도하게 우리 주(我州→익주)를 침탈했으니, 우리 주에는 다만 머리를 잘리는 장군(斷頭將軍)은 있을 뿐 항복하는 장군은 있을 수 없소.” 
 
장비가 노하여 끌고 가서 머리를 자르라고 좌우에 명했지만, 엄안은 안색이 변하지 않으며 말했다, “머리를 자르면 자르는 것이지 어찌 화를 내는가!” 
 
장비가 이를 장하게 여겨 풀어주고 그를 빈객(賓客)으로 삼았다. (주1) 
 
(주1) 화양국지 – 당초 선주가 촉으로 들어와 파군(巴郡)에 도착하니 엄안이 가슴을 두드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는 험한 산에 홀로 앉아 호랑이를 풀어 스스로를 지키려는 격이로구나!” 
 
장비는 지나는 곳마다 승리하고 성도(成都-촉군 성도현)에서 선주와 만났다. 익주가 평정된 후 제갈량, 법정(法正), 장비와 관우에게 각각 금(金) 5백 근(斤), 은(銀) 천 근, 전(錢) 5천만, 비단 천 필을 하사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각기 차이를 두어 포상했다. 장비를 영(領-겸직의 의미) 파서태수(巴西太守)로 삼았다.
  
조공이 장로를 격파하고 하후연(夏侯淵)과 장합(張郃)을 남겨 한천(漢川)을 수비하도록 했다. 장합은 별도로 제군(諸軍)을 지휘해 파서(巴西)로 내려가 그 백성들을 한중으로 옮기려 하니, 탕거(宕渠), 몽두(蒙頭), 탕석(盪石)으로 진군해 장비와 50여 일간 서로 겨루었다. 
 
※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격파한 뒤 하후연, 장합을 남겨 진수하도록 하고 되돌아간 것이 215년 12월이고(무제기), 장비와 장합의 싸움은 그 뒤의 일이며(장비전 이 대목과 장합전) 50여 일 걸렸다고 했으니 탕거전투는 대략 216년 무렵의 일로 보입니다.
 
장비는 정졸(精卒-정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다른 길을 따라 장합군을 요격하여 교전했는데 (장합군은) 산길이 좁아 앞뒤가 서로 구원할 수 없었고 장비가 마침내 장합을 격파했다. 장합은 말을 버린 채 산을 타며 단지 휘하 10여 명과 함께 샛길을 따라 퇴각했고, (장합이) 군을 이끌고 남정(南鄭-한중군 남정현)으로 돌아가니 파(巴) 땅은 안정을 찾았다.
 
선주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자 장비를 우장군(右將軍), 가절(假節)로 임명했다. (※ 219년의 일)
 
장무(章武) 원년(221년) 거기장군(車騎將軍), 영(領) 사례교위(司隸校尉)로 올리고 서향후(西鄕侯)로 올려 봉하고, 책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朕) 이 천서(天序-하늘의 질서;제왕의 계통)를 계승하고 홍업(洪業-대업)을 이어 받들어 잔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난을 다스렸으나 아직 그 도리를 다 밝히지는 못했다. 지금 도적들이 해를 끼쳐 백성들에게 해독을 입히니 한(漢)나라를 그리워하는 선비들이 학처럼 목을 빼고 바라고 있도다. 짐이 이 때문에 슬피 근심하여 좌불안석하고 식불감미(食不甘味-근심걱정으로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느끼지 못함)하니 군(軍)을 정돈하며 훈계하며 서약하노니 장차 천벌(天罰)을 행할 것이다. 그대의 충의(忠毅-충성스럽고 굳셈)는 소호(召虎)와 나란하여 그 명성을 멀고 가까운 곳에 드날렸으니 이 때문에 특별히 명을 밝혀 관작을 높이고 수도를 겸하여 다스리도록 한다. 천위(天威)를 힘써 받들어 덕(德)으로 유순한 방식으로 복종시키고 형벌로 반란을 정벌할지니 이로써 짐의 뜻에 부합하도록 하라. [시경]에서 이르길, 匪疚匪棘(비구비극) 用錫爾祉(용석이지)라 하지 않던가! 가히 힘쓸만하지 않은가!”
 
※ 여기서 인용된 [시경] 구절은 주나라를 중흥한 왕으로 칭해지는 주선왕 때 회이(淮夷) 정벌을 노래한 대목인데, 책문 중에서 장비와 비교한 소호(召虎-소목공召穆公 호虎)와 관련됩니다. 대충 끼워 맞춰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江漢之滸  王命召虎  式辟四方  徹我疆土  匪疚匪棘  王國來極 于疆于理  至于南海 
강한(江漢)의 물가에서 왕(주 선왕)이 소호(召虎)에 명하여 사방을 개척해 우리 강토로 다스리게 하니, 해독을 입히거나 급하게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왕국으로 와서 올바로 교화하려 함이라, 강토로 가서 다스려 남해에까지 이르렀도다.  
 
王命召虎  來旬來宣  文武受命  召公維翰  無曰予小子  召公是似肇敏戎公  用錫爾祉  
왕이 소호에 명해 와서 두루 펴도록 하며 이르길, 옛날 주문왕, 주무왕이 천명을 받을 때 오직 소공(召公-소공 석奭)이 줄기가 되었으니 스스로 여소자(予小子)라 일컫지 말고 소공을 계승하도록 할지니 민첩하게 너의 공을 세우면 네게 복을 내리겠노라 하였다.

당초 장비의 웅장위맹(雄壯威猛)은 관우에 버금갔으므로 위(魏)의 모신(謀臣) 정욱(程昱) 등이 모두 관우와 장비를 칭하길 만인지적(萬人之敵-만인을 대적할 만한 사람)이라 했다. 
 
관우는 병졸들은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士大夫)에게는 교만했고, 장비는 군자(君子)는 경애했지만 소인(小人)은 돌보지 않았다. 선주가 늘 이것을 경계하여 말하길, “경은 형벌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친데 또 매일 장정들을 채찍질 하고는 그들을 좌우에 있게 하니 이것은 화(禍)를 초래하는 길이오.”라 했으나 장비는 이를 고치지 않았다. 
 
선주가 오(吳) 를 정벌할 때 장비는 군사 1만 명을 인솔하여 낭중(閬中)에서 출발해 강주(江州)에서 만나기로 했다.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장비 장하(帳下-휘하)의 장수 장달(張達), 범강(范彊)이 장비를 죽이고 그 수급을 지닌 채 물길을 타고 내려가 손권(孫權)에게로 달아났다. 장비 영(營)의 도독(都督)이 표(表)를 올려 선주에게 보고했다. 선주는 장비의 도독이 표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말했다, “아! 장비가 죽었구나.” 시호를 추증해 환후(桓侯)라 했다. 
 
장남 장포(張苞)는 일찍 죽었다. 차남 장소(張紹)가 후사를 이었고 관직이 시중 상서복야(侍中尙書僕射)에 이르렀다. 장포의 아들 장준(張遵)은 상서(尙書)를 역임했는데, 제갈첨(諸葛瞻)을 수행해 면죽(緜竹)에서 등애(鄧艾)와 싸우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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