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으른사냥꾼님의 알토란 삼국지



[[하후현전]]에서 분리


위략에서 이르길: 이풍(李豐)은 풍익 출신으로 자를 안국(安國)이라 했다.


아버지 이의(李義)는 위위(衛尉)를 역임했다. 황초(黃初) 년간에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처음에 관직으로 진출하기 전, 17~8세에는 업(鄴)에서 맑고 깨끗한 사람으로[清白] 명성을 얻었으며, 사람을 잘 알아보아서 국내에서 상당한 주의를 끌었다. 나중에 허창(許昌)에서 군무에 종사했을 때 그의 이름은 더욱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아버지는 그러한 그가 못마땅하여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왕래를 끊도록 했다.


명제(조예)가 동궁(東宮)(황태자 ·태자 또는 왕세자를 일컫는 말)에 있을 때, 그는 문학(文學)(태자를 교육시키는 기관)에서 재직했다. 명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마침 어떤 오나라 사람이 항복을 했는데, 강동에서 잘 알려진 중원인이 누구냐고 묻자, 그 사람은 이풍이라고 대답했다. 당시에 이풍은 황문랑(黃門郞)으로 있었는데, 명제가 이풍이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는지를 물었고, 신하들이 대답했다. 명제는


"이풍의 이름이 오나라에게까지 알려졌단 말인가?"


하고 말했다.


이풍은 나중에 전기도위(轉騎都尉)와 급사중(給事中)으로 승진했다.


명제가 239년 붕어한 후에는 영령태복(永寧太僕)이 되었는데, 이름만 그럴듯한 뿐인 직함이어서, 능력을 별로 보여줄 수 없었다.


정시(正始) 년간에 시중상서복야(侍中尚書僕射)로 승진했다. 이풍은 대성(臺省)에 있을 때 항상 몸이 아프다고 했으며, 대제(臺制)로 있을 때는, 질병이 이유로 100일 이상 휴가를 얻으면 월급이 안 나왔기 때문에, 수십일을 결근하다가 잠시 출근한 뒤에 다시 병석에 눕곤 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이풍이 아들 이도가 공주의 남편감으로 선발되자 그는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지 않았다. 이풍의 아우 이익, 이위(李偉), 이사(李仕)도 여러해동안 군수를 역임했다. 이풍은 일찍이 사람들이 있는 도중에 두 아우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기도 했다.


“당연히 영화를 누리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당시에 사마의는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다. 이위는 2천석으로 술에 빠져 지내면서 신평군(新平郡)과 부풍군(扶風郡)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았지만 이풍은 그를 소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이풍 형제가 황실의 총애를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상(曹爽)이 정권을 전횡했을 때 이풍은 사마의와 조상 사이를 오가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적절히 자신의 권력공간을 만들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풍을 꼬집었다.


“조상의 세력은 끓는 물과 같고, 태부 사마의 부자는 차가운 물과 같으며, 이풍 형제는 유광(游光)과 같다.”


이풍은 겉으로는 맑은 것처럼[清淨] 보였지만, 속으로는 음모를 꾸미고 엿보고 있어서, 작은 틈으로 새어드는 빛 유광(游光)에 비유했던 것이다. 사마의가 조상을 죽이고 수레를 대궐 아래까지 끌고 왔을 때, 이풍은 너무도 놀라서 발을 땅에 디디고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평(嘉平) 4년에 (251년) 사마의가 죽은 후, 중서령(中書令)이 결원되자 대장군은 누가 적당한지 조신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어떤 사람이 이풍을 지목했다. 그는 중서령의 자리가 대단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국가와 혼인관계에 있는 자신의 위치에 좀더 어울릴까 싶어서, 엎드려 사양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수락했다.


이풍이 중서령으로 임명된 지 2년 후에 황제는 그를 홀로 불러서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마사는 황제와 이풍이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알고, 이풍을 불러서 짐짓 그 내용을 물었다. 이풍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자 사마사는 곧 그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비밀에 붙여졌다.


이풍은 전후로 2명의 황제를 섬겼지만,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녹봉만으로 재산을 모으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도가 공주와 결혼했지만 이풍은 그러한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탈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황제가 돈과 비단을 하사했지만,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또 관리들이 뇌물로 바치는 것은 아들과 형제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주지 않고 외가의 조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가 죽은 후에 유사가 집안의 재산을 조사했지만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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