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으른사냥꾼님의 알토란 삼국지



[[하후현전]]에서 분리


위략에서 이르길: 허윤(許允)은 자를 사종(士宗)이라 했으며 대대로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 허거(許据)는 전농교위(典農校尉)와 군수를 역임했다. 어린 시절 허윤은 동향인 최찬(崔贊)과 함께 기주(冀州) 일대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군에 입대했다.


명제 때 (226-239 제위) 상서선조랑(尚書選曹郎)이 되어, 진국(陳國) 출신인 원간(袁侃)(원환(袁渙)의 아들임)과 함께 같이 일을 했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두 사람 모두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황제가 조칙을 내려 엄하게 [엄절:嚴切] 다스리라고 했고, 또한 이 사건은 사형선고가 나올만한 사건이었으며, 설사 죄가 없다하더라도 무거운 벌을 받을 처지가 되었다. 허윤은 원간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은 공신의 자손이므로 팔의(八議)(죄를 범했을 때 엄격히 봉(封)한 문서로 임금에게 아뢰어 임금의 뜻을 받아 처리해야하고 함부로 구인(拘引)•심문(審問)하지 못하는 여덟 종류의 특권계층 조건을 말함)에 응하여 처리할 것이니,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원간은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벌을 받았다. 허윤은 옥에서 나와 다시 관리가 되었으며, 군수로 나갔다가 점차 승진하여 시중, 상서, 중령군(中領軍)을 차례로 역임했다.


허윤은 이풍 등이 체포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장군을 만나러 갔다. 문을 나갔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서 우왕좌왕 하다가 도중에 바지를 안 입없다는 것을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이풍 등이 이미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장군은 허윤이 앞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풍 등을 잡았는데, 사대부가 어떻게 이렇게 분주하게 돌아다니는가?”


당시에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遽]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대부분 허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침 진북장군 유정(劉靜)이 죽자 조정에서는 허윤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부절을 받은 허윤은 외사(外舍)로 나가 머무르고 있었다. 대장군은 허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진북장군은 비록 적은 일이지만, 출진을 할 때는 격식을 갖추어야 하니, 그대는 화고(華鼓)를 울리며 주절(朱節)을 세워 본주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를 착수주행(著綉晝行)이라 합니다.”


허윤은 대단히 기뻐하며 대중(臺中)과 서로 상의하여 북과 정기(旌旗)를 바꾸도록 했다. 그의 형제와 아들들은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허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빨리 임지로 출발해야 합니다. 북이나 정기 같은 거 바꿔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충고했다. 그러나 허윤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와 같은 속된 무리들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나는 국가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하려고 한다.”


허윤이 임지로 출발할 때 황제는 여러 신하들을 모이도록 했다. 신하들이 모이자 조방 황제는 특별히 그를 가까이 불렀다. 허윤은 전에 시중(侍中)을 지낸 적이 있으므로 당시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회의를 마치자 황제는 빨리 떠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이때 어떤 관리가 허윤이 전에 자기 마음대로 돈과 곡식을 자신의 무리들과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잡혀 정위(廷尉)에게 압송되었고, 죽을 [竟] 정도의 고문을 받았다. 그는 사형에서 감형되어 유배형을 받았다. 가평(249–254) 6년 (254년) 가을에 유배지로 떠났지만 처자를 데리고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위씨춘추(魏氏春秋)에서 이르길: 허윤은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을 때 군수(郡守)를 선발한 적이 있다. 명제는 그가 임용 차례를 지키지 않음을 알고, 불러들여 죄를 물으려고 했다. 허윤의 아내 완(阮)씨가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남의 관직을 이치를 근거로, 주고 빼앗을 수는 있어도, 남의 관직을 정(情)을 근거로 유지해 줄 수는 어려운 법입니다.”


허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頷] 황제를 만나러 갔다. 황제가 화를 내며 따졌다. 허윤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군의 군수는 비록 문서상으로는 기한 연도를 먼저 채웠지만, 연한으로는 늦었고, 모모의 군수는 비록 기한 연도를 나중에 채웠지만, 일수로는 먼저 도달했습니다.(구구절절 설명해 주었다는 이야기)”


황제는 먼저 그 일을 살펴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석방했다. 황제는 그의 옷이 남루한 것을 보고 청백리(淸白吏)라 하면서 상을 주었다. 허윤은 진북장군이 되어 되돌아 와, 아내에게 자신은 화를 피할 줄 알고 있었다고 좋아했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화가 이미 코앞에 또 있는데, 어떻게 화를 피했다고 말을 하십니까?”


허윤은 전각(篆刻: 도장 파는 것에 관련된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관직을 받았는데 [將拜] 직인이 너무 낡았기 때문에, 새로 새기도록 했고, 같은 거 3개를 만들라고 했다. 허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도장이 이렇게 잘 안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장차 내가 욕을 볼 모양이구나!”


과연 도장을 배달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측간에 빠뜨려서 (허겁지겁 다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상인서(相印書): 상인법(相印法)은 전각(篆刻)의 예술의 뜻인듯 본래 진군(陳群)으로부터 나왔다. 진군은 그것을 위탄(韋誕: 179-251: 위중장(韋仲將): 후한말과 조위 시대의 명필가: 삼국지에서 마초와 싸웠던 위강(韋康)의 동생)에게 가르쳤고, 도장 기술자인 양리(楊利)가 위중장을 따라다니다가 배워서 허윤(許允: 허사종(許士宗))에게 전했던 것이다.


양리는 이 상인법의 방법으로 길흉을 판단했는데 10번에 9번은 적중했다. 위탄이 진군에게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묻자, 진군은 본래 한나라에서 전해졌는데, 《상인(相印)》, 《상홀경(相笏經)》, 《응경(鷹經)》, 《우경(牛經)》, 마경(馬經)》과 같은 책이 있었다고 했다. 도장공인 종양(宗養)은 이 술법을 신백(申伯)에게 전했는데, 이것이 13가의 상법이 후세에 전해지게 된 연유라고 한다.


허윤의 아내 완씨는 현명했지만 너무도 못생겼기 때문에 처음 그녀를 본 허윤은 깜짝 놀라서 혼례를 치른 후에 신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계집종을 시켜서 허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엿보라고 했다. 종이 와서 환(桓)씨 성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다고 했다. 허윤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은 분명히 환범(桓範)일 것이다. 환범이 남편을 설득해 반드시 내 방으로 오게 할 것이다.”


이윽고 환범은 과연 허윤을 타일러서 신방으로 보냈다. 그러나 방에 들어온 허윤은 다시 아내의 얼굴을 보더니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윤의 아내는 남편을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허윤은 아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는 4가지의 덕이 있소. 그대는 무엇을 갖추고 있소?”


“저는 용모만 모자랄 뿐입니다. 사대부는 100가지의 행동지침을 갖추어야 합니다. 낭군께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나 갖추고 있습니까?”


“나는 다 준비되어 있소.”


“사대부의 100개의 지침 가운데 가운데 으뜸은 덕(德)입니다. 낭군께서는 색을 밝히면서도 덕행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군요. 그리고도 다 갖추었다고 하십니까?.”


허윤은 비로소 부끄러워하며 아내가 비범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그는 아내를 몹시 사랑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허기(許奇)와 허맹(許猛)이라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 허윤의 아들들은 어려부터 명성을 날렸다.


허윤이 사마사에게 살해되자 문생이 허윤의 부인에게 달려와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완씨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으며


"예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고 대답했다. 문생이 두 아들을 숨기라고 하자 완시는


"아이들의 일은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


고 대답했다. 나중에 허윤의 묘소를 옮긴다고 하자, 사마사는 종회(鍾會)를 시켜서 살펴보도록 하고, 만약 그들의 재능이 아버지와 같다면 잡아들이라고 했다. 완씨는 두 아들에게 이렇게 대책을 일러 주었다.


“너희들은 멋진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 재능을 갖추지는 못했다. 종회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되 걱정을 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자 말아라. 종회가 말을 멈추면 너희들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일체 꺼내지도 말아라.”


두 아들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종회는 사마사에게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두 형제가 화를 면하게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종회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지만, 현명한 부인보다는 못했다.



세어에 따르면: 허기(許奇)는 자를 자태(子泰)라 했으며 허맹(許猛)은 자를 자표(子豹)라 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갖추어서 진(晋)의 원강(元康) 년간에 각각 사례교위(司隷校尉)와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역임했다.



부창(傅暢)의 《진제공찬(晋諸公贊)》에 따르면: 허맹은 예악(禮樂)에서는 당대 최고의 경지를 자랑했다고 한다. 또 허기의 아들 허하(許遐)는 자를 사조(思祖)라 했으며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중을 역임했다. 허맹의 아들 허식(許式)은 자를 의조(儀祖)라 했으며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갖추어 복양내사(濮陽內史)와 평원태수(平原太守)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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