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엄(李嚴)은
자가 정방(正方)이고, 남양군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의 관리가 되었고, 재간으로 인하여 칭찬받았다. 형주목 유표는 그를 파견하여 여러
군현의 장을 역임하도록 했다. 조조가 형주로 진입했을 때, 이엄은 자귀현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쪽의 촉나라로 달아났다. 유장은
그를 성도의 현령으로 임명했고, 그는 또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안 18년(213)에 이엄을 호군으로 임명하여 면죽에서 유비를 막아내도록 했다. 그런 이엄은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투항했다. 유비는 이엄을 비장군으로 임명했다. 성도가 평정된 후, 건위태수, 흥업장군으로 임명 되었다.
23
년(218)에 도적 마진, 고승등이 처에서 모반하여 수만 명을 모아 자중현으로 진격했다. 그 당시 유비는 한중에 있었고, 이엄은
다시 병사를 징발할 수 없었다. 단지 그 군의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토벌하러 가서 마진과 고승등의 머리를 베었을 뿐이다.
잔여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전부 민적으로 회복되었다. 또 월수 만족의 우두머리 고정이 군대를 파견하여 신도현을 포위하자, 이엄은 기병을 이끌고 달려가 구원하여 적은 모두 달아났다.
보한장군의 관직을 더했으며, 건중군을 관리하는 것은 이전과 같았다.
장
무 2년(222)에 유비는 이엄을 불러 영안궁까지 오도록 하여 상서령으로 임명했다. 3년(223)에 유비의 질병이 악화되자,
이엄은 제갈양과 함께 어린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조를 받았다. 이엄을 중도호로 임명하고 안팎의 군사를 통솔하며 영안에 주둔하도록
했다.
건흥 원년(223)에 도향후로 봉하고 가절로 삼고 광록훈을 더했다. 4년(226)에 전장군으로 전임됐다.
제갈양은 한중으로 출병하려고 하면서 이엄이 반드쉬 뒷일을 맡아 줄것으로 생각하고 강주로 옮겨 주둔시키고, 호군 진도를 남겨 영안에 주둔시켜 모두 이엄의 통솔하에 두었다. 이엄은 맹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 저는 제갈공명과 함께 유비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책임이 막중한 것이 걱정입니다. 좋은 동반자를 얻고 싶습니다. ----
제갈양 역시 맹달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치 물흐르듯하여, 해야할 일과 버려야 할일을 결정할때 주저함이 없는 것이 정방의 성격입니다. ----
이엄이 귀하게 존중받는 것은 이와 같았다. [주]
[주]제갈량집에 엄이 량에게 의당 구석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작을 받아 왕을 청하라 권하는 글이 있었다.
량이 답글로 일렀다
"나와 족하는 서로 안지 오래 되었는데, 어찌 서로 더는 이해하지 못하단 말이오! 족하는 신하의 길을 고집할 필요 없이 나라의 영광을 위해 마땅히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은 안된다고 가르치치고 있소. 나는 본래 동쪽의 하급 선비로, 선제께서 틀리게 쓰셔서 직위는 신하로서 극에 달했고 녹은 백억을 받았는데, 지금 적을 토벌하는데 효력이 없어 자신을 알아주심에 보답하지 못했는데 제, 진과 같이 귀하고 큰 자리에 앉은면 의가 아니오. 만약 위를 토벌하여 조예를 처단해 황제께서 옛 거처(도읍)로 돌아가시면 더불어 제군(諸子)들 모두가 높아지고, 비록 십명(十命;아래 주석 참조)이라도 받을텐데 하물며 아홉이랴!"
한전(漢典) 사이트의 십명(十命)에 대한 설명: 구석 외에 하나의 물건를 더하는 것, 구석에 비하여 1종 더 많이 하사하는 특수한 영예를 가리킨다. 살피건데, 고대에 십명(十命)의 제도는 전혀 없었으니, 이는 곧 가정된 말이다.
제갈양은 표를 올려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독군으로 임명하고, 이엄의 후방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제갈양은 다음해 출병을 확정짓고 이엄에게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엄은 이평(李平)으로 개명했다.(이엄을 이평이라고도 부른답니다.)
9년(231) 봄에 제갈양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날란체 하며 말했다.
"군량미는 아직 충분하거늘, 어찌하여 돌아옵니까?"
이평은 이렇게 하여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양이 진군하지 않은 잘못을 분명하게 나타내려고 했다. 또 유선에게 표를 올려 말했다.
----- 우리 군대가 거짓으로 퇴각한 것은 적을 유인하여 함께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갈양이 이평이 앞뒤로 쓴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공개했으므로, 이평의 잘못은 분명해지게 되었다. 이평은 힘껏 변명하고 죄를 자백하고 사죄했다. 그래서 제갈양은 이평의 일을 상주하여 말했다.
----- 선제께서 붕어하신 이후부터 이평은 임지에서 기산을 다스리며 작은 은혜를 베푸는 일을 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지키고 명예를 추구하며 나라의 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북방으로 출병을 하면서 이평의 병사들에게 한중을 지키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이평은 이일을 직접 하기에는 어려우며, 올 의사가 없었으므로 다섯 개 군을 주어 파주자사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작년에 신이 서쪽으로 정발나가려고 하면서 이평으로 하여금 한중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이평은 사마의 등이 관서를 설치하여 자신을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은 이평의 계산으로 출병한 기회를 틈타 신을 핍박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표를 올려 이평의 아들 이풍에게 강주를 관리하도록 하고 융성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한 시기의 정무를 처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 평이 한중에 있을 대, 모든일을 그가 책임지도록 했으므로 신하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모두들 신이 이평을 너무 후하게 대우한다며 질책했습니다. 그대는 국가의 대사가 아직 확정되자 못했으며 한나라 왕실이 기울어 위험하였으므로, 이평의 잘못을 문책하는 것은 그를 칭찬하는 것만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평의 마음은 영예와 이익에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평의 마음이 시비를 전도시키는 데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만일 일의 처리를 늦추게 된다면 재화와 실채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민첩하지 못한 결과이며, 설며을 많이 할수록 허물은 늘어 날 것입니다. -----
亮 公文上尚書曰:「平為大臣,受恩過量,不思忠報,橫造無端,危恥不辦,迷罔上下,論獄棄科,導人為姦,情狹志狂,若無天地。自度姦露,嫌心遂生,聞軍臨 至,西嚮託疾還沮、漳,軍臨至沮,復還江陽,平參軍狐忠勤諫乃止。今篡賊未滅,社稷多難,國事惟和,可以克捷,不可苞含,以危大業。輒與行中軍 師車騎將軍都鄉侯臣劉琰,使持節前軍師征西大將軍領涼州刺史南鄭侯臣魏延、前將軍都亭侯臣袁綝、左將軍領荊州刺史高陽鄉侯臣吳壹、督前部右將軍玄鄉侯臣高 翔、督後部後將軍安樂亭侯臣吳班、領長史綏軍將軍臣楊儀、督左部行中監軍揚武將軍臣鄧芝、行前監軍征南將軍臣劉巴、行中護軍偏將軍臣費禕、行前護軍偏將軍 漢成亭侯臣許允、行左護軍篤信中郎將臣丁咸、行右護軍偏將軍臣劉敏、行護軍征南將軍當陽亭侯臣姜維、行中典軍討虜將軍臣上官雝、行中參軍昭武中郎將臣胡 濟、行參軍建義將軍臣閻晏、行參軍偏將軍臣爨習、行參軍裨將軍臣杜義、行參軍武略中郎將臣杜祺、行參軍綏戎都尉臣盛勃、領從事中郎武略中郎將臣樊岐等議, 輒解平任,免官祿、節傳、印綬、符策,削其爵土。」
제갈량이 상서에게 보내는 공문에 이르길
"이평(李平)은 대신이 되어 과분한 총애를 받으면서도 충성을 다하여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근거도 없는 낭설을 지어내고 방자하게 굴었으며 본인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고 상하를 미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재판을 함에 있어 법조를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간사한 일을 하도록 이끌었으며 감정은 저열하고 뜻은 광망해 마치 천지가 없는 듯 했습니다. 스스로가 계획했던 간사한일이 드러나자 의심이 마침내 생겨 대군이 장차 올것이라는 것을 듣고서 병을 핑계대고 저沮현과 장漳현으로 돌아갔으며 군대가 다시 저현에 당도하니 돌연 강양江陽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이평의 참군인 호충이 간언하자 마침내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 찬적篡賊이 소멸되지 않았고 사직에 어려움이 많은데 국가의 대사는 오직 모두가 화합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포용하여서 국가의 대사를 망쳐서는 안됩니다. 지금 행중군사 거기장군 도향후 신 유염劉琰, 사지절 전군사 정서대장군 령양주자사 남정후 신 위연魏延, 전장군 도정후 신 원침袁綝, 좌장군 령형주자사 고양향후 신 오일吳壹, 독전부 우장군 현향후 신 고상高翔, 독후부 후장군 안락정후 신 오반吳班, 령장사 수군장군 신 양의楊儀, 독좌부 행중감군 양무장군 신 등지鄧芝, 행전감군 정남장군 신 유파劉巴, 행중호군 편장군 신 비의費禕, 행전호군 편장군 한성정후 신 허윤許允, 행좌호군 독신중랑장 신 정함丁咸, 행우호군 편장군 신 유민劉敏, 행호군 정남장군 당양정후 신 강유姜維, 행중전군 토로장군 신 상관옹官雝, 행중참군 소무중랑장 신 호제胡濟, 행참군 건의장군 신 염안閻晏, 행참군 편장군 신 찬습爨習, 행참군 비장군 신 두의杜義, 행참군 무략중랑장 신 두기杜祺, 행참군 수융도위 신 성발盛勃, 령종사중랑 무략중랑장 신 번기樊岐 등과 더불어 의논하였는데 막바로 이평을 해임하고 그의 관록, 절전節傳(한조 관리의 신분증), 인수, 부책符策(군주의 관리 임명 조서)을 없애며 작위와 봉지를 박탈해야 합니다." 출처 (한문은 모두 번역된 상태입니다.)
곧바로 이평의 관직을 폐하여 서민이 되게 했으며, 재동군으로 방축시켰다. [주]
건흥 12년(234)에 이평은 제갈양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질병이 들어 죽었다. 이평은 항상 제갈양이 자신을 다시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으며, 제갈양의 후계자는 이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헤아렸기 때문에 격분하여 결국 병들어 죽은 것이다. 이풍의
관직은 주제태수에까지 이르렀다. [주]
코렐솔라
- 2019.06.15
- 21:15:02
- (*.74.126.190)
->
'황제께서 옛 거처(도읍)으로 돌아가시면 더불어 제군(諸子;제군)들 모두가 높아지고 비록 십명이라도 받을텐데 하물며 아홉이랴!'
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뭐라 판단하기 어렵고 옛부터 논란 있던 부분이라 바로 수정하기 좀 그렇네요.(간자 텍스트 파일 집해도 지워버려서 뭐라고 써있는지 몰라요;;;) 기다리고 다른 분들께서 confirm 해주면 그때 수정하는 걸로 할께요.
서현12
- 2019.06.16
- 13:55:27
- (*.125.4.26)
후둥백과나 바이두 백과를 보면 이건 아예 고사성어화 되었더라구요.十命可受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설명하길 十命可受는 '공훈이 뛰어난 것을 비유하여 최고의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성어이다. 임금이 권신에게 하사한 아홉 가지 기물을 구석이라고 하고, 구석 외에 하나의 물건를 더하는 것. 십명을 칭하는 것은 임금이 신하들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다. 공훈이 탁월하다는 비유로 최고의 상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코렐솔라
- 2019.06.16
- 22:20:57
- (*.74.126.190)
만약 위를 멸하고 예를 베어 제께서 옛 거처로 돌아가신다면, 나와 모두가 더불어 높아지고, 비록 10개라도 받을 수 있겠는데 하물며 아홉이랴?!
->
만약 위를 멸하고 예를 베어 황제께서 옛 거처(도읍)로 돌아가시면 더불어 제군(諸子)들 모두가 높아지고, 비록 십명(十命;구석 외에 하나의 물건를 더하는 것)이라도 받을텐데 하물며 아홉이랴!
로 수정할께요. 다른 분들도 이의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코렐솔라
- 2019.06.17
- 17:51:26
- (*.46.174.164)
제가 올드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전까지는 중국정부에서 작성했으니 의미가 있다 보는데(잘못 알고 있으면 알려주세요) 바이두나 후둥백과는 나무위키 같은 위키위키 아니던가요? 제가 이전에는 이것저것 막 가져다 놔서 리그베다 위키 링크도 있고 더 수준 낮은 곳 출처도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이제는 스스로도 분야는 다르지만 논문을 쓰는 입장이 되다 보니 소스를 모르는 부분을 적기는 좀 그렇네요. 뭔가 좀 더 구체적인 출처가 있는 발언쪽은 없을까요?
서현12
- 2020.07.11
- 08:08:19
- (*.33.184.19)
그리고 역시 삼국지집해에 달린 자치통감 호삼성주에 따르면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라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그의 뜻을 설명하고'라고 쓰인 단어인 '喻指'는 호삼성주에 따르면 '후주(유선)이 양곡운반이 이어지지 않음을 가리킴으로서 알렸던 말(喻以後主指言運糧不繼。)입니다. '喻指'는 '임금이 신하에게 조령을 내리다'라는 뜻이 있으니까요. 또 '天霖雨'은 '장마, 장마철'이란 뜻으로 '值天霖雨'은 '장마철이 올 쯤' 혹은 '장마가 올 무렵'으로 해석됩니다. 국역 자치통감도 장마철로 해석하고 있고 '值' 자체가 ~할 즈음하다, 때를 맞이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해석이 자연스러우려면 이게 맞습니다. 즉, 비가 계속 쏟아지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장마철이 오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날란체 하며 말했다.'라는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장마철이 올 때라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한다하여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식량운반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황제의 지시를 전하고 제갈량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라 했다.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여 후퇴하였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겉으로는 놀라면서 말하였다'
예, 이엄은 황제의 명을 사칭해서 제갈량군을 후퇴시켰던 겁니다. 따라서 원문은 이렇게 고치고 삼국지집해 자치통감 호삼성주의 해석인
'호충은 즉 마충이다. 어려서 외가에 양육되어 성을 호, 이름을 독으로 하였다. 후에 복성하여 마씨가 되었고 이름은 충으로 개명했다.(狐忠,卽馬忠也,少養外家,姓狐,名篤,後復姓馬,改名忠。)'
'喻指'는 호삼성주에 따르면 '후주(유선)이 양곡운반이 이어지지 않음을 가리킴으로서 알렸던 말(喻以後主指言運糧不繼。)이다.
을 밑에 붙여 넣었으면 합니다.
서현12
- 2020.07.11
- 15:55:21
- (*.62.178.192)
다만 이엄이 장맛비를 핑계로 황제의 명을 빙자하여 제갈량을 불렀다는 것은 맞는듯 하니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장맛비를 맞이해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한다하여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식량운반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황제의 지시를 전하고 제갈량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라 했다.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여 후퇴하였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겉으로는 놀라면서 말하였다' 로 고쳤으면 합니다.
코렐솔라
- 2020.07.16
- 15:33:46
- (*.46.174.164)
위의 댓글에서 그런 역주 웬만하면 안 넣겠다고 했지만 진서 사마부 전의 경우 선비욜롱님이 쓰신 역주 모두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선비욜롱님에게만 해당하는 특권이 아니라서 서현12님에게도 적용되요. 예를 들어 진서 단작열전의 경우 등애와 마막의 교전기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단작열전을 서현12님이 번역해서 올리시면 제가 포맷만 바꾸고 거의 그대로 올릴거에염.
PS 그렇다 하더라도 예시로 드신 것처럼 번역자의 의견을 호삼성 의견처럼 만드는 것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어염. 서현12님도 누가 역주 의견 가져다가 넣고 배송지 의견이라 주장하면 화내실 거라 생각해요.
서현12
- 2020.07.18
- 05:46:39
- (*.121.85.54)
아 그리고 진서 단작열전의 경우 '楊欣所領兵,以逼江由之勢,得封者三十人。'이라고 해서 양흔의 병사들이 강유성의 세력을 핍박해서 30명이 득봉했다는 의미지 등애와 마막이 교전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등애전에도 단순히 선두가 강유에 도착하니 마막이 항복했다고 해서 교전 얘기는 적지 않았고요.
http://www.saohua.com/shuku/zhongguolishi/mydoc033.htm 여담이지만 중국전사 위진남북조군사사에도 마막이 바로 항복했다고 나옵니다.
코렐솔라
- 2020.07.13
- 11:08:40
- (*.46.174.164)
喻指는 첫 번째의 '후주(유선)이 양곡운반이 이어지지 않음을 가리킴으로서 알렸던 말(喻以後主指言運糧不繼。)이다.'는 위와 같이 문제 없음. 두 번째의 '이엄은 황제의 명을 사칭해서 제갈량군을 후퇴시켰던 것이다'는 호삼성 주에 없는 내용을 창작해서 적는 것이니 절대불가. 굳이 넣으려면 역주처럼 따로 넣어야 함. 이런 내용은 국의전, 강유전에 님이 쓴 것 마냥 댓글에 내 생각은 이렇다고 써주는 게 좋을 듯 하네염.
장마는 본인도 오락가락 하시고 계시니 제가 넣기 좀 그렇고 다른 사람 의견 들어보고 정할께요. 수정은 한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진행 예정. 제가 까먹으면 더 길어질 수 있음.
구라뱅뱅
- 2020.07.17
- 16:18:16
- (*.114.88.110)
亮承以退軍 의 번역이 누락되었네요. 이건 바로 반영하셔도 될듯요.
9년(231) 봄에 제갈양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 (돌아오도록 한 명령, 지시를 받들어 퇴군하였다.) 의 퇴군한 내용은 번역에 누락이 맞네요.
코렐솔라
- 2020.07.18
- 12:49:40
- (*.153.81.156)
자치통감 호삼성 주 2개 추가.
9년(231) 봄에 제갈양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狐忠)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날란체 하며 말했다.
->
9년(231) 봄에 제갈양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한다하여 이평은 참군 호충(狐忠)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식량운반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황제의 지시를 전하고 제갈량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라 했다.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여 후퇴하였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겉으로는 놀라면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