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史랑방



위연(魏延)은 자(字)가 문장(文長)이고 의양(義陽) 사람이다. 부곡(部曲)으로 선주(先主-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갔고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아문장군(牙門將軍)으로 승진했다.
 
선주(先主)가 한중왕이 되어 성도로 옮겨서 다스리게 되니 중장(重將-중한 장수;신중한 장수)을 얻어 한천(漢川)을 진수케 해야 했다. 중론(衆論)은 필시 장비(張飛)가 될 것이라 하였고 장비 또한 내심 자신했으나, 선주는 위연을 뽑아 독한중(督漢中) 진원장군(鎭遠將軍)으로 삼고 한중태수를 겸하게 하니 일군(一軍)이 모두 놀랐다.
 
선주는 여러 신하들과 큰 모임을 열고 위연에게 물었다, “이제 경에게 중임을 맡겼는데 경은 어찌 임하겠소?” 위연이 대답했다, “만약 조조(曹操)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이를 막아내도록 청합니다. 편장(偏將)이 10만 군사로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삼켜버리도록 청합니다.” 선주가 칭선(稱善-칭찬)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장(壯)하게 여겼다.
 
선주가 존호(尊號)를 칭하자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올렸다.
 
건흥 원년(223년), 도정후(都亭侯)에 봉했다.
 
건흥 5년(227년),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자 다시 위연을 독전부(督前部), 영(領) 승상 사마(丞相司馬), 양주자사(涼州刺史)로 삼았다.
 
건흥 8년(230년), 위연을 시켜 서쪽으로 강중(羌中)으로 들어가게 했다. 위나라 후장군(後將軍) 비요(費瑤), 옹주자사 곽회(郭淮)가 양계(陽谿)에서 위연과 싸웠고 위연이 곽회 등을 대파했다. 전군사(前軍師)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가절(假節)로 승진시키고 남정후(南鄭侯)로 올려 봉했다.
 
위연은 매번 제갈량을 따라 출진할 때마다 번번이 군사 만명을 청해 제갈량과 서로 길을 달리 하여 동관에서 만나 한신(韓信)의 고사(故事)처럼 하고자 했으나 제갈량이 이를 제지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늘 제갈량을 겁이 많다고 하며 자신의 재주가 모두 쓰이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주1)
 
(주1) [위략]魏略 – 하후무(夏侯楙)가 안서장군(安西將軍)이 되어 장안을 진수하니 제갈량은 남정(南鄭)에서 군하(群下-여러 수하)들과 함께 계책을 의논했다. 위연이 말했다, “듣기로 하후무는 어려서 주인(즉 조조)의 사위가 되어 겁이 많고 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 위연에게 정병(精兵) 5천과 부량(負糧-군량을 짊어질 군사) 5천을 주신다면, 곧장 포중(褒中)을 나가 진령(秦嶺)을 돌아 동쪽으로 진군하고 자오(子午)에 당도한 뒤 북쪽으로 향할 것이니, 10일을 지나지 않아 장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것을 들으면 필시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에는 오직 어사(御史)와 경조태수(京兆太守)만이 있을 것이고, 횡문(橫門)의 저각(邸閣-곡식 저장고)과 흩어진 백성들의 곡식으로도 두루 먹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동방(東方-위나라)에서 군사들을 취합하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니, 공(公)이 야곡(斜谷)을 나와 (장안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일거에 함양(咸陽) 서쪽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 계책이 위태로워 안전하게 평탄한 도로를 따라 농우(隴右-농서)를 평정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기니, 십전필극(十全必克-완전무결하게 하여 반드시 이김)하며 근심이 없어야 한다고 하여 이 때문에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위연은 사졸(士卒)을 잘 기르며 용맹(勇猛)이 남보다 뛰어났고 또한 성정이 긍고(矜高-교만하고 뽐냄)하여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避下-피하고 양보함)했다. 오직 양의(楊儀)만이 위연에게 가차(假借-용인,양보함)없어 위연이 매우 분노하니 마치 물과 불 같았다.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이 북곡구(北谷口-포야도 북쪽입구.즉 야곡)를 나오며 위연을 전봉(前鋒-선봉)으로 삼았다. 제갈량의 둔영을 나와 10리 되는 곳에 이르러, 위연은 머리 위에 뿔(角)이 생기는 꿈을 꾸었다. 조직(趙直)에게 점몽(占夢-해몽)에 관해 묻자 조직이 위연을 속이며 말했다, “무릇 기린(麒麟)은 뿔이 있으나 사용하지는 않으니, 이는 싸우지 않고도 적이 절로 격파될 징조입니다.” 물러나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뿔(角)이란 글자는 칼(刀) 아래에 용(用)이오. 머리 위에서 칼을 쓴다는(用刀) 것이니 그 흉함이 매우 심하오.”
 
가을, 제갈량의 병이 깊어지자 은밀히 장사(長史) 양의(楊儀), 사마(司馬) 비의(費禕), 호군(護軍) 강유(姜維)와 함께 자신이 죽은 뒤 퇴군할 절도(節度-명령,규정)를 지으니, 위연에게 뒤를 끊게 하고 강유에게 그 다음에 있게 하며 혹 위연이 명을 따르지 않더라도 군이 곧바로 출발하도록 했다. 때마침 제갈량이 죽자 이를 숨기며 발상(發喪)하지 않고, 양의는 비의에게 가서 위연의 뜻을 살펴보게 했다.
 
위연이 말했다, “승상이 비록 죽었어도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가까운 관속들은 곧바로 상여를 운구해 되돌아가 장례를 치른다 하더라도 나는 응당 제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해야 하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천하의 일을 폐하라 하시오? 더구나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가 부륵(部勒-부서를 정하여 배치함)한 바에 따라 뒤를 끊는 장수가 되겠소!” 그리고는 비의와 함께 떠날 부대와 남을 부대를 나누고, 비의에게 친필로 자신과 함께 연명(連名-이름을 쭉 잇달아 씀)하여 제장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비의가 위연을 속이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 되돌아가 양장사(楊長史-장사 양의)를 이해시키겠소. 장사는 문리(文吏-문관)라 군사(軍事)에는 어두우니 필시 명을 거스리진 못할 것이오.” 비의가 문을 나가 말을 달려 떠났고 위연이 곧 후회하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위연은 사람을 보내 엿보게 했는데 양의 등이 마침내 제갈량의 성규(成規-규범,규정)에 따라 여러 군영들이 차례로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위연이 대노하여 양의가 출발하기 전에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앞질러 남쪽으로 돌아가며 지나온 곳의 각도(閣道-잔도)를 불태워서 끊었다. 위연과 양의가 각각 서로 반역했다고 표를 올리니 하루 사이에 우격(羽檄-새의 깃털을 꽂아 긴급함을 표시한 공문)이 번갈아 도착했다. 후주(後主-유선)가 시중 동윤(董允), 유부장사(留府長史) 장완(蔣琬)에게 묻자 장완, 동윤이 모두 양의를 보증하고 위연을 의심했다.
 
양의 등은 산의 나무를 베어내며 길을 뚫고 밤낮으로 행군하여 또한 위연의 뒤를 따라붙었다. 위연이 먼저 도착해 남곡구(南谷口-포야도 남쪽 입구.즉 포곡)를 점거하고 군사들을 보내 양의 등을 역격(逆擊)하니, 양의 등은 하평(何平-왕평)을 앞에 세워 위연을 막았다. 하평이 위연의 먼저 올라온 군사들(先登)을 꾸짖었다, “공(公-제갈량)이 죽어 그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너희 놈들이 감히 이처럼 구느냐!”
 
위연의 사중(士衆-사졸)들은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명을 받들지 않으니 군이 모두 흩어졌다. 위연 홀로 그 아들 몇 명과 함께 도망해 한중으로 달아났다. 양의는 마대(馬岱)를 보내 위연을 추격하게 하고 참수했다. 위연의 수급이 양의에게 도착하자 양의가 일어서서 스스로 이를 짓밟으며 말했다, “용노(庸奴-하찮은 종놈)야! 다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느냐!” 마침내 위연의 3족을 멸했다.
 
당초 장완은 숙위(宿衛)하는 여러 영(營)들을 이끌고 부난(赴難-국난을 구하기 위해 달려감)하여 북쪽으로 행군했는데 수십 리를 가다 위연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사를 되돌렸다.
 
원래 위연의 뜻은 북쪽으로 위나라에 항복하는 것이 아니고 남쪽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다만 양의 등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평소 제장들의 의견이 서로 같지 않았는데, 시론(時論)이 필히 (자신이) 제갈량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길 바란 것이다. 본 뜻이 이와 같았으니 배반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주2)
 
(주2) [위략] – 제갈량이 병들자 위연 등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다만 삼가며 스스로 지킬 뿐 다시 (공격하러) 오지 말라.” 위연에게 자신의 사무를 섭행(攝行-대행)하도록 명하고 은밀히 상여를 지니고 떠나게 했다. 마침내 위연이 이를 숨겨 포구(褒口)에 도착하고 이내 발상했다. 제갈량의 장사 양의는 예전부터 위연과 불화했는데, 위연이 군사를 섭행(攝行)하게 되자 해를 입을까 두려워했다. 이에 부풀려서 말하길 위연이 군사를 들어 북쪽에 귀부하려 한다고 하고 마침내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공격했다. 위연은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으니 싸우지 않고 군이 패주했는데 이를 추격하여 위연을 죽였다. / 신 송지가 보건대(이 위략 기사에 대한 주석자인 배송지의 의견), 이는 적국에서 전해 들은 말로 보이니, 본전(本傳-즉 위연전)과 더불어 다투어서 살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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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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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17:48:02
(*.52.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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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미르

2014.03.04
00:50:20
(*.214.44.212)
음? 이거 고원님 번역이 아니라 자명님 번역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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