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史랑방



양의(楊儀)는 자(字)가 위공(威公)이고 양양 사람이다.

 
건안 중, 형주자사 부군(傅群)의 주부(主簿)가 되었는데, 부군(傅群)을 저버리고 양양태수 관우(關羽)에게 나아갔다. 관우가 명하여 공조(功曹)로 삼고, 양의를 사자로 보내 서쪽으로 선주(先主-유비)에게 나아가게 했다. 선주는 더불어 대화를 나누며 군국(軍國-군정과 국정)의 계책(計策)과 정치의 득실을 논하고 크게 기뻐하니, 이에 징소하여 좌장군(左將軍) 병조연(兵曹掾)으로 삼았다.
 
선주가 한중왕이 되자 양의를 뽑아 상서(尙書)로 삼았다. 선주가 존호를 칭하고 동쪽으로 오(吳)를 정벌했는데, 양의는 상서령 유파(劉巴)와 불목하자 좌천되어 멀리 홍농태수에 임명되었다.(遙署) 건흥 3년(225년) 승상 제갈량이 참군(參軍)으로 삼아 승상부의 일을 대행케 하고(署府事) 장차 남쪽으로 행차하려 했다. 건흥 5년(227년), 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갔다. 건흥 8년(230년), 장사(長史)로 승진하고 수군장군(綏軍將軍)이 더해졌다.
 
제갈량이 여러 번 출군할 때 양의는 늘 규획(規 畫-기획,계획), 분부(分部-부서배치)하고 양곡(糧穀)을 주탁(籌度-계산하고 헤아림)했는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이를 곧바로 끝냈으며 군융(軍戎-군사)의 절도(節度)는 양의에 의해 마련되었다.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아끼고 위연의 효용(驍勇-날래고 용맹함)에 의지하니 두 사람이 화목하지 못함을 늘 한스럽게 여기며 차마 어느 한 쪽을 폐하지 못했다.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을 따라 출병해 곡구(谷口)에 주둔했다. 제갈량이 적장(敵場-적진)에서 죽었다. 양의는 군을 이끌고 되돌아오고 또한 위연을 주토(誅討-죄를 들어 토벌함)하니 스스로 공훈이 매우 크다고 생각해 의당 자신이 제갈량을 대신해 정무를 장악해야 한다고 여겼다. 도위(都尉) 조정(趙正)을 불러 주역(周易)으로 점쳤는데 가인(家人)이라는 궤(卦)를 얻자 묵연(黙然-침묵)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갈량의 평소 은밀한 뜻은 양의의 성정이 견협(狷狹-성미가 급하고 편협함)하다 하여 장완(蔣琬)에게 뜻을 두었으니 마침내 장완이 상서령, 익주자사가 되었다. 양의는 중군사(中軍師)에 임명되었으나 통령할 바가 없어 종용(從容-여유로움,한가함)할 뿐이었다.
 
당초, 양의가 선주(先主)의 상서가 되었을 때 장완은 상서랑(尙書郎-상서의 속관)이었고, 그 뒤 비록 둘다 승상 참군, 장사가 되었으나 양의는 매번 제갈량을 수행하며 노극(勞劇-번다하고 무거운 임무)을 맡았으며, 스스로 연환(年宦-나이와 관직)으로 장완에 앞서고 재능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이에 원한과 울분이 말과 표정에서 드러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오내(五內-오장五臟)에서 터져나왔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언어가 절제되지 못함을 두려워해 감히 따르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후군사(後軍師) 비의(費禕)가 가서 그를 위로했다.
 
양의는 비의를 만나자 원망하며 앞뒤의 이러저러한 일을 말했다. 또 비의에게 말했다,

“지난 날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약 군을 들어 위씨(魏氏-위나라)에게 갔다면 내 처지가 어찌 이처럼 추락했겠소! 후회해봤자 다시 어찌할 수 없소이다.”

비의가 은밀히 그 말을 상표했다. 건흥 13년(235년), 양의를 일반백성(民)으로 폐하고 한가군(漢嘉郡)으로 유배보냈다. 양의가 유배지에 이르러 다시 상서(上書)해 비방하는 말을 하자 마침내 군(郡)에 명해 양의를 잡아오게 했다. 양의는 자살하고 그 처자는 촉으로 돌아왔다. (주1)
 
(주1) [초국선현전] 양의의 형 양려(楊慮)는 자가 위방(威方)이다. 어려서 덕행(德行)이 있어 강남의 관면(冠冕)이 되었다. 주군(州郡)에서 예를 갖춰 부르고 여러 공(公)들이 징소했으나 이들 모두가 그를 굴하게 하지는 못했다.(벼슬을 사양했다는 말) 나이 17세에 요절하니 향인(鄕人)들이 그를 덕행양군(德行楊君)이라 칭했다.
 
평한다. (유봉,팽양,요립,이엄,유염,위연,양의에 대한 진수 평)

유봉(劉封)은 혐의(嫌疑-꺼리고 미워함)를 받게 되었으나 방비함(思防)이 스스로를 지키기에 부족했다. 팽양(彭羕), 요립(廖立)은 재주로써 발탁되고, 이엄은 간국(幹局-일을 처리하는 재간과 국량)으로 올려지고, 위연(魏延)은 용략(勇略)으로 임명되고, 양의(楊儀)는 당관(當官-담당한 관직)으로 현달되고, 유염(劉琰)은 오래전부터 섬기었으니(舊仕), 이들 모두가 귀하고 중하게 쓰였다. 그들의 거조(擧措-행동거지)를 살펴보며 규구(規矩-규준,예법)를 되짚어 보건대 화(禍)를 부르고 허물을 취함에 자기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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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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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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