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霍峻)은 자가 중막(仲邈)이고 남군 지강현 사람이다. 형 곽독(篤)은 고향에서 수백 명의 병사를 모았다. 곽독이 죽자, 형주목 유표는 곽준에게 병사들을 받아 관리하도록 했다. 유표가 세상을 떠난 후, 곽준은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돌아갔고, 유비는 곽준을 중랑장에 임명했다.

유비가 가맹으로부터 남쪽으로 돌아 유장을 습격할 때, 곽준을 가맹성에 머물게 하여 지키도록 했다. 장로가 장수 양백을 보내 곽준을 유인하여 함께 성을 지킬 것을 요구하도록 했다. 곽준이 말했다.

"소인의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성은 얻을 수 없습니다."

양백은 즉시 물러났다. 후에 유장의 장수인 부금, 상존 등의 병사 만여 명이 낭수로부터 올라와 곽준을 공격하며 포위했지만, 거의 일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킬 수 없었다. 성 안에 있는 곽준의 병사는 겨우 몇 백명 뿐이었는데, 적군이 게으름을 피고 있는 틈을 타서 정예병사를 뽑아 출격하여 대대적으로 격파하고 즉시 상존의 머리를 베었다.

유비는 촉군을 평정하고, 곽준의 공로를 칭찬하며 광한군을 분할해 재동군으로 만들고 곽준을 재동태수로 임명하고 비장군으로 삼았다.

곽준은 관직에 3년간 있다가 나이 40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신은 성도로 옮겨져 매장됐다. 유비는 매우 애석해했으며, 곧 제갈양에게 조서를 내려 말했다.

"곽준은 훌륭한 선비였으며, 게다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술을 부어 혼령을 제사지내는 의식을 거행하고 싶다."

그래서 유비는 직접 신하들을 이끌고 조제에 참석하고 그 묘위에 머물며 잤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영예로 생각했다.

그의 아들 곽익(藿弋)은 자가 소선(紹先)이고 유비의 말년에 태사사인으로 임명되었다. 유선이 즉위하자 알자로 임명되었다. 승상 제갈량은 북상하여 한중에서 주둔하고 있을 때, 곽익을 초빙하여 기실로 삼아 아들 제갈교와 함께 왕래하며 교류하도록 했다. 제갈량이 죽은후, 황문 시랑이 되었다. 유선은 유예를 태자로 세우고 곽익을 중서자로 삼았다.

유예는 말타기아 활쏘기를 좋아하고, 나가고 들어옴에 있어서 절제가 없었다. 곽익은 고대의 도의를 이끌어내 말을 다하여 간언하고 절차의 책임을 지극히 다했다.

후에 참군으로 내강둔부이도독 이 되었고, 또 호군으로 전임되었지만, 맡은 일은 예전과 같았다. 당시 영창군의 요족이 험준한 산세에 기대어 복종하지 않고 약탈과 침략을 여러 번 하였으므로, 유선은 곽익에게 영창태수를 겸임하여 한 군대를 이끌고 토벌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들 우두머리의 목을 베고 촌락을 파괴하자, 영창군은 평안해졌다.

감군,익군장군으로 승진했고, 건영태수를 겸임하였으며, 돌아와서 남군의 사무를 총괄하였다. 경요 6년에, (263) 안남장군의 봉호를 더했다.

이 해, 촉나라가 위나라에 병탄되었다. 곽인은 파동장군으로 양양 사람인 나헌과 각각 한쪽의 땅을 보전하다가 군사를 들어 복종하였으므로, 모두 이전의 직무에 따라 일을 맡았고 총애와 대우는 늘어났다.


한진춘추(漢晉春秋): 곽익(藿弋)은 위나라 군대가 온다는 소리를 듣자, 성도로 가려 했으나, 후주가 적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다. 성도가 지켜지 못하자 곽익은 소복을 입고 곡을 하며 3일간 크게 울었다. 많은 장군들이 빨리 항복해야 한다고 했는데, 곽익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도로가 막혀 후주의 안위(安危)를 알 수가 없는데, 항복하고 말고의 일을 [大故去就], 함부러 할 수 없다. 만약에 후주가 위나라와 화평하면 예로써 나아가 만나, 영토를 보존한채 항복해도 늦지 않다. 만약에 후주가 위태롭게 되어 욕을 보았다면, 나는 장차 죽기살기로 싸울 것이다. 어찌 늦고 빠름을 논하겠는가?"


후주가 동쪽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듣고, 6개 군(郡)의 장수(將守)들을 거느리고 표를 올렸다.


"신이 듣기로는, 사람은 3명의 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한다 ---(父母는 낳아주셨고, 스승은 가르켜 주셨고, 임금은 먹여 주셨다[人生於三, 事之如一])---고 하며, 오로지 지금 주군 소재를 알지 못하여, 주군의 목숨을 구하려 했습니다. 지금 나라는 패하였고 주군은 새 나라에 귀부했으니, 목숨바쳐 지킬 곳이 없어져 이에 제 목숨을 위나라에 맡기며 [委質:몸을 맡김], 저는 배반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진문왕(사마소)는 이를 가상히 여겨, 그를 남중제독(南中都督)으로 임명하고, 원래의 일을 계속하게 했다. 나중에 곽익은 병력을 파견하여 여흥(呂興)을 도와 교지(交阯), 일남(日南), 구진(九真)을 평정하고, 열후에 봉해졌고, 진호(進號)되고 숭상(崇賞)되었다.


곽익의 손자인 곽표(藿彪)는 진나라때 월수태수(越嶲太守)가 되었다.


<양양기> [[나헌전]]으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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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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