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랑(向朗)은 자가 거달(巨達)이고, 양양군 의성현 사람이다. [주]

[주] 양양기에 이르길: 상랑은 젊어서 사마덕조(司馬德條 ; 司馬徽)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서원직(徐元直 ; 徐庶), 한덕고(韓德高), 방사원(龐士元 ; 龐統) 등과 친하게 지냈다.

형주목 유표는 그를 임저현의 장으로 임명했다. 유표가 죽은 후, 그는 유비에게 갔다. 유비는 형주 땅을 평정하고, 상랑에게 자귀, 이도, 무산, 이릉 네 현의 군사와 백성들의 일을 감독하도록 했다. 촉군이 평정된 후에는 또 상랑을 파서태수로 임명하고, 오래지 않아 장가 태수로 전임시켰으며, 또 방릉으로 옮겼다.

유선이 즉위하자, 보병교위로 임명되었다. 후에 왕련을 대신하여 승상장사를 겸임하였다. 승상 제갈량이 남쪽 땅을 정벌하였을 때 상랑은 남아서 후방의 일을 처리했다.(보급?) 건흥5년(227)에 제갈량을 수행하여 한중에 도착했다. 상랑은 평소 마속과 사이가 좋았다. 마속이 도망칠 때 상랑은 그 상황을 알았지만, 검거하지 않았다. [집해]

[집해]

//하작이 말하길, 

"마속이 도망한 일"은 이 열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또한 상세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 일에 미칠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방형(朱邦衡)이 말하길, 

“이는 곧 가정(街亭)의 일로서 마속이 군령을 어겨 패배하게 되었으나 상랑(向郞)이 제갈량에게 간하지 아니한 것을 일컬은 말이다. 만약 관직에 있는 자가 사사롭고 태만하면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라 해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바 이거니와 하물며 마속은 평소 재주가 있어 명성을 얻었고 승상이 남다른 재목으로 여겼음에랴. 이는 문장에 탈오(脫誤)가 있는 것이 아니요 진수가 글을 지음에 있어 애매하게 쓴 까닭이다.” 하였다.

//주수창이 말하길, 

"가정의 패배는 건흥 6년에 있었다. 만일 5년이었다면, 곧 무후(제갈량)가 군대를 한중에 주둔하고 있었을 때로, 마속이 정참군(正參軍)인데, 까닭 없이 도망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 군대가 패한 뒤의 일이 어떻게 《제갈량전》과 《마속전》에 맞을 수 있겠는가? 일의 순서가 갖추어 질 수 없지 않은가? 5년이란 것은 오자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사발복(四史發伏)에서 홍량길(洪亮吉)이 말하길, 

"이를 살펴본즉 마속은 군사가 패하자 도망하였고 후에 다시 잡아들이니 하옥(下獄)되어 죽은 것이다. 마속은 말이 그 실제보다 지나쳐 본래 취할 바가 없었다. 또한 제갈량의 절도(節度-군사 명령)를 어겨 군사를 잃는데 이르렀으나 복죄(伏罪)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尙] 멀리 도망갔으니, 죄가 있으면 형벌을 피하지 아니하는 가르침을 어겼으매 제갈량이 그를 주륙(誅戮)한 것은 심히 마땅하거니와 습착치(習鑿齒)등이 제갈량이 잘못 형벌을 내렸다라고 기록한 것은 지나치다." 라고 하였다.

제갈량은 이점을 한스러워 했으므로, 관직을 박탈하여 성도로 돌아가도록 했다. 제갈량이 죽은 후. 좌장군으로 옮겼는데, 과거의 공적을 소급하여 현명정후로 봉하고 특진의 지위를 주었다. 당초, 상랑은 젊었을 때 비록 문학을 광범위하게 섭렵했지만 평상시의 품행이 바르지 못했고, 관리가 된 이후에야 능력을 칭찬받게 되었다. 

장사의 직책을 떠난 이후부터 한가하게 노닐며 하는 일 없이 거의 30년간을 지냈는데, [주] 전적 연구에 전념하고 근면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주] 신 송지가 보건데, 상랑이 마속의 일로 장사(長史)를 면직 당한 것은 건흥 6년(228)의 일이다. 상랑이 연희 10년(247)에 죽었으므로 20년이 경과했다. 여기서 30년이라고 한 것은 기록이 잘못된 것이다.

80 세가 넘어서도 직접 서적을 교감하여 오류를 정정하였으며, 책을 소장하고 있는 양이 그 당시 (촉)에서 가장 많았다. 그는 문을 열어 빈객을 접대하고 후학들을 받아 인도하였으며, 오직 고대의 도의만을 강론할 뿐. 그 당시 정사에는 간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 위로는 정치를 담당한 자로부터, 아래로는 아이들과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연희(10년) 247 그는 세상을 떠났다.

양양기(襄陽記) 이르길 : 

 

향랑이 아들에게 훈계하며 유언을 남기길,

 

좌전(左伝)에 이르길, ‘군사(軍師)가 조화롭게 군대를 다스리면 (문제될) 많은 일이 없다.’ 하였느니라.  이 말인즉, 천지(天地)가 조화롭게 있으면 만물이 탄생하고, 군신(君臣)이 화목하게 지내면 국가가 평안해질 것이며, 구족(九族)이 사이좋게 합심하여 움직이면 구하는 바를 얻을 것이고, 안정되면 (처해진 상황을) 만족히 여길 것이니, 이러한 연유로 성인(聖人)께서는 화목함()을 지키려 하심이요, (그에 따라) 흥하기도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초국(楚國)의 어린 아이였을 적에, 일찍이도 부모님을 여의여, 두 형님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며 부양받아 그 천성과 품행을 하늘의 복으로 감사히 여겨 (스스로를) 어긋나게 가지 않게 하였단다. 지금은 그저 변변찮을 뿐이다만, 가난은 근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아니다. 단지, 화목함을 귀중히 여겨야 한단다. 너는 이것을 깨우쳐 정진하거라!”



그의 아들 상조
(向條)가 후사를 이었고, 경요 연간에 어사중승으로 임명되었다.

양양기(襄陽記) 이르길 : 

 

상조(向條) 자는 문표(文豹)이며, 그 또한 학문에 밝아 박식하였다. 후에 진()나라 강양태수(江陽太守) 남중군사마(南中軍司馬)가 되었다.


진수의 평:  상랑은 학문하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은 모두 사적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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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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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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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양양기 두 개는 사요님 번역입니다. http://rexhistoria.net/10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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