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3
상랑의 형의 아들인 상총(向寵)은 유비 시대에 아문장이 되었다. 자귀에서 패배 때. 상총의 진영만이 온전했다. 건흥 원년(223)에 도정후에 봉해지고, 후에 중부독이 되어 근위병을 지휘했다. 제갈량은 북벌을 하기로 결심하고 유선에게 표를 올려 말했다.
-장군 상총은 성격과 행동이 맑고 공평하여, 군사에 밝습니다. 과거에 임용했을때. 선제께서는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여론이 상총을 추천하여 사령관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군사에 관한 일을 모두 그에게 자문한다면, 틀림없이 군대를 화목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재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각기 알맞은 자리를 얻을 것입니다. -
후에 그는 중령군으로 승진했다.
연의3년(240)한가군의 만족을 정벌할때. 살해되었다. 상총의 동생 상충은 사성교위 상서를 역임했다.
[주] 양양기(襄陽記): 위나라 함희(咸熈: 咸熙) (264-265) 원년 6월에, 진서장군(鎮西將軍) 위관(衛瓘)이 성도(成都)에
도착해서 구슬과 옥을 1개씩 얻었는데 [璧玉印], 그곳에는 "성신"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위나라 수도에 보내)
위나라 백관들에게 보게 한 후에 상국(相國)의 부(府)에서 보관했다. 상충(向充)이 말했다.
"예전에 초주(譙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제 유비의 휘(諱)는 비(備)이고 그 뜻은 "준비하다, 갖추다(具)"의 뜻입니다. 후주
유선의 휘는 선(禪)이고, 그 뜻은 주다, 수여하다(授)의 뜻입니다. 이 둘을 합하면 유씨는 "다 갖춘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지금 중무군(中撫軍) 사마염(司馬炎)의 이름은 염(炎)인데, 그런데 유비의 촉나라는 염흥(炎興:
263-264) 연간에 그 끝을 만났는데, 그 진귀한 옥구슬이 성도에서 나왔으므로, 상국(相國)의 부(府)에서 보관하였는데,
이것은 곧 하늘의 뜻입니다."
이 해에 상충은 재동태수(梓潼太守)가 되었고, 그 다음해에 12월에 진무제(晉武帝)가 즉위했으니, 염흥(炎興)의 뜻이 이것을 불러왔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