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費詩는 자가 공거(公擧)이고, 건위군 남안 사람이다. 유장의 시대에 면죽현의 령으로 임명되었고, 유비가 면죽현을 공격했을 때 비시는 먼저 성을 들어 항복했다. 성도가 평정된 후 유비는 익주목을 겸임했으며, 비시는 독군종사로 임명되었고, 지방으로 나가 장가태수가되었고, 돌아와 주전부사마(州煎部司馬)가 되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비시를 보내 관우를 전장군으로 임명했는데, 관우는 황충이 후장군으로 임명되었다는 말을 듣고 격분해서 말했다.

"대장부는 평생 노병(老兵)과 같은 대열에 있지 않는다!"

그는 관직을 받을 수 없었다. 비시가 관우에게 말했다.

"왕업을 세우는 자가 임용하는 인물에게 하나의 기준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전한의 고조와 어릴 적부터 친한 교분이 있었고, 진평(陳平)과 한신(韓信)은 초나라에서 도망쳐 뒤에 한나라에 도착했지만, 관직의 순서를 정하는 논의에서는 한신을 가장 높은 지위에 있게 하였고, 이 때문에 소하와 조참이 원한의 마음을 가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왕(漢王)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漢升:황충)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君候)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은 비유컨데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생각해 보면, 관호(官號)의 높고 낮음이나 작위와 봉록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그의 마음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일개 관리로 명령을 받아 시행하는 사람이지만, 만일 당신이 임명을 받지 않아 곧 돌아가게 된다면 당신 때문에 이와 같은 거동을 애석해 할 것이며, 아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관우는 크게 깨닫고 즉시 임명을 받았다.

후에 신하들이 한중왕을 추천하여 제(帝)로 칭할 것을 논의했을 때, 비시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전하께서는 조조 부자가 주상 헌제를 협박하여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만리 밖에 몸을 기탁하고 병사들과 사람들을 결집시켜 장차 역적을 토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대한 적을 아직 이기지 못했는데 먼저 스스로 즉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의혹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옛날 고조는 초와 약정하여 먼저 진(秦)을 격파시킨 사람을 왕(王)이라 칭했습니다. 함양(咸陽)을 함락시킨 후 자영(子영)을 잡았으므로 사양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지금 문앞의 땅에도 나가지 않았는데, 스스로 즉위하려고 하십니까! 어리석은 신하는 진실로 전하를 위해 그런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이 때문에 비시는 유비의 뜻을 거역하게 되었고, 영창종사(永昌從事)로 좌천되었다.


습착치(習鑿齒) 말하길 :

 

무릇 군주() 창업이란 것은, 마땅히 전체적인 기틀이 정해진 후에야 스스로를 돌이켜 바르게함이며, 군주로서 신하를 거느리고 통솔하고 하는 것은, 신속히 기틀을 세움으로써 무리의 마음() 결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연고로, 진혜공(晉惠公= 춘추 시대 진나라의 군주 이오(夷吾)) ()왕조에 포로가 되었을 적에는 아들 이어() (대신해) 제위에 올랐으며, 경시제(更始帝)= 현한(玄漢) 황제 유현(劉玄), 전한(前漢) 황족 출신) 아직 존재함에도 생전에 광무제(光武帝) 존오를 칭한 것이다. 어찌하여 군주를 잊고 () 쫓아 따르는 것인가? 이는 사직을 보존하기 위한 까닭이다.

 

지금, 선주(先主) 의로운 병사와 장수를 끌어모아, 도적(: 여기서는 조위(曹魏)) 토벌하고자 한다. 도적의 세력은 강대하여 피해가 날로 커져가, 주상(: 여기서는 헌제(獻帝)) 폐위시키고 나라를 멸망시켜 이조(二祖: 한고조 한세조(광무제), 전한과 후한) 제사는 후로 끊겼으니, 진실로 친족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이어가겠는가? 조상을 이어 배천(配天: 임금이 조상을 하늘과 함께 제사지내는 )하려하는데, 비단 함양(咸陽)에서의 비유 따위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병장기를 바로 갖춰(=명분이 충분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일이거늘, 누가 점잖빼며 사양하려 들겠는가?

 

이러한 때이므로, 하루 빨리 덕있는 자가 왕조를 계승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기꺼이 (다시) 바르게 돌이켜, 세상에 지난 한왕조의 질서를 들어내 보여 순리에 의지하는 자들의 마음과 같이하고, 역적에 붙은 자들을 한결같이 (후환과 댓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을 깨닫지 못함은 (그 식견이) 우매하고 어리석다할 만하다. 따라서, 좌천당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신 송지가 생각하건데 :

 

습착치의 논의(論議)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최선(最善)의 견해입니다.


건흥 3년(225)에 제갈양을 수행하여 남쪽으로 정벌을 나갔다가 한양현으로 돌아왔따. 항복자 이홍(李鴻)이 와서 제갈양을 만났다. 제갈양이 이홍을 접견했을 때, 장완과 비시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홍이 말했다.

"한가하여 맹달을 방문했을 떄, 마침 왕충이 남쪽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맹달이 유비를 떠나 조조에게 갔으므로 명공께서는 이를 갈며 맹달의 처자식을 죽이려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비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맹달이 말하기를, '제갈양은 다른 사람을 돌아봄에 있어 근본과 끝이 있으니, 결국 이와 같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충의 말을 전부 믿지 않고 명공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은 또 쇠하지 않았습니다."

제갈양이 장완과 비시에게 말했다.

"수도로 돌아간 후 편지를 써서 자도(子度:맹달)와 서로 연락을 해야 합니다."

비시가 진언했다.

"맹달은 소인입니다. 과거 진위장군(유장)을 섬길 때는 충성하지 않았고, 후에는 또 유비를 배반했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인데, 어찌 편지를 받을 가치가 있겠습니까!"

제갈양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제갈양은 맹달을 유인하여 외부의 원조로 삼으려고 했으므로 결국 맹달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난해, 남쪽으로 정벌 갔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마침 이홍과 한양에서 만나게 되어 그대의 소식을 알고 오랫동안 탄식했습니다. 그대의 평소 뜻이 어찌 헛된 지위와 명성을 위하고 군주를 배신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아! 맹선생(孟先生), 이 일은 실제로 유봉(劉封)이 그대를 침해하고, 유비의 인재를 대우하는 뜻을 손상시킨 것입니다. 또 이홍은 왕충이 헛된 말을 조작했을 때, 그대가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왕충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대가 토로한 말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평생 동안의 우의를 추억하며 동쪽을 바라보며 그대를 생각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맹달은 제갈양의 편지를 받은 후, 여러 차례 편지 왕래를 했고, 위나라에게 반기를 들려고 한다고 했다. 위나라에서는 사마선왕을 파견해 맹달을 토벌하도록 했고, 즉시 맹달의 목을 베었다. 제갈양 또한 맹달에게는 충성스런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조하지 않았다. 장완이 정권을 쥐고 있을 때, 비시를 간의대부로 임명했고, 비시는 훗날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왕충은 광한군 사람이다. 아문장(牙門將)이 되었고, 강주독 이엄의 통솔하의 있었다. 왕충은 이엄의 미움을 받았으므로 처벌될 것이 두려워 위나라로 투항했다. 위나라에서는 왕충을 악릉태수(樂陵太守)로 임명했다.


손성(孫盛)의 『촉세보(蜀世譜) 이르길 :

 

비시의 아들 비립(費立)은 진()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되었다. 이후로 익주의 여러 비씨 집안사람들 중에서 명예와 직위가 있던 자들 대다수가 비시의 후예들이다.


*평하여 말한다. ㅡ 곽준은 고립된 성을 지키며 동요하지 않았고, 왕련은 절개를 굳게 지키며 뜻을 옮기지 않았으며, 상랑은 학문하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고, 장예는 명민하여 임기응변에 능했으며, 양홍은 충성스럽고 공정한 마음을 자겼고, 비시는 솔직하게 간언했으니, 이런 사람들은 모두 사적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 유비의 넓은 도량, 제갈양의 공정한 태도에 의지하여, 비시는 직언을 토했지만 오히려 직위를 강등당하는 벌을 받았다. 하물며 평범한 군주야 어떠했겠는가!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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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11:24:34 (*.0.2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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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2
11:24:51
(*.0.203.45)

평하여 말한다 부분이 아예 없어서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23
18:29:55
(*.52.89.88)
주석 추가 습착치와 손성은 사요님 번역입니다. http://rexhistoria.net/10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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