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요전]]에서 분리


종육(鍾毓)은 자를 치숙(稚叔)이라 불렀으며, 12살에 산기시랑(散騎侍郞)이 되었다. 기민하고 우스개 소리를 잘하여 아버지의 풍모를 그대로 이었다. 태화 초에 촉의 재상 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하자 명제가 직접 서정에 나서려고 했다. 종육은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려 반대했다.

“대체로 책략은 직접 전투를 하지 않고 조정에서 세운 계략만으로도 승리하는15) 것을 귀중하게 여기며, 전공은 장막에서 세우는 것을 숭상합니다. 전당 위에서 내려가지 않고도 천리 바깥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가가 중앙을 지키고 있어야 사방을 그 위세로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대군이 서쪽으로 원정에 나선다면 비록 위세는 백배로 강해지겠지만, 관중의 비용이 증가되어 손실을 입는 것이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또 더운 날씨에 행군을 하는 것은 시인에게는 소중한 소재가 되겠지만, 천하의 지존으로서는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후에 종육은 황문시랑으로 관직을 옮겼다. 이 때 낙양의 궁실을 크게 지어 놓고, 황제의 어가가 허창(許昌)으로 행차하자. 천하의 사람들은 허창을 수도로 생각했다. 허창이 협소하여 성의 남쪽에 전각을 꾸미기 위한 어룡대(魚龍臺) 공사가 늘어지자 백성들이 노역에 시달리게 되었다. 종육은 이렇게 간언했다.

“수해나 가뭄으로 들지 않았을 때에도 창고는 텅텅 비어야 합니다. 대체로 이러한 일은 풍년에가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마땅히 관내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백성들이 농사에 전념하도록 해야 합니다.”

종육의 건의가 채택되었다.

종육은 조방(曹芳)이 즉위를 하자 산기시랑(散騎侍郞)으로 임명되었다. 대장군 조상(曹爽)이 여름에 군사를 일으켜 촉을 공격했지만, 저항에 부딪쳐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했다. 조상은 증원군을 요청하여고 하자, 종육은 조상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묘승지책(廟勝之策)이란 화살과 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왕자의 군대는 정벌에 나서도 전투를 하지 않습니다. 방패나 도끼로 유주목(幽州牧) 묘증(苗曾)을 굴복시킬 수가 있었지만, 물러나서 적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면, 오한(吳漢:?~AD44)16)을 강관(江關)17)에 풀어놓고 한신(韓信)을 정형(井陘)18)으로 초빙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능하면 진격하고, 어려우면 물러나는 것이 예로부터 당연한 병법이었습니다. 공후께서는 이러한 점을 잘 살피십시오.”

조상은 아무런 전공도 세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종육은 나중에 이 때의 일로 조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시중으로 좌천되었다가, 위군태수로 밀려났다. 조상이 실각한 후에 다시 중앙관직으로 들어와 어사중승, 시중, 정위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정원(正元) 년간에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반란을 일으키자, 지절(持節)을 들고 양주와 예주로 가서 사면령을 반포하여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돌아와 상서로 임명되었다. 제갈탄(諸葛誕)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장군 사마문왕(司馬文王)과 함께 수춘(壽春)에 대한 작전을 논의했다. 오의 대장 손일(孫壹)이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자, 혹자는


"오나라는 최근들어 죄과가 있었으므로, 반드시 다시는 군사를 출동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동쪽의 군대(제갈탄의 군대)는 이미 많으니, 뒤의 처치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사실을 의논하고 적의 동태를 예측하려면 우리 쪽 상황에 비추어 다른 쪽을 헤아려야 합니다. 지금 제갈탄은 회남(淮南)의 땅을 들어 오나라에 주었고, 손일이 인솔하여 투항하였으니 인구는 천 명에 이르지 못하고, 병사는 3백 명을 넘지 못합니다. 오나라가 손실한 것은 사실 얼마 안됩니다. 만일 수춘의 포위가 풀리지 않는다면 오나라의 국내 형세는 안정될 것이고, 우리는 오나라 병사를 보증할 수 없어 반드시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대장군(사마소)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래서 종육을 데리고 출발했다.


臣松之以為諸葛誕舉淮南以與吳,孫壹率三百人以歸魏,謂吳有釁,本非有理之言。毓之此議,蓋何足稱耳!


회남이 평정된 후에 종육은 청주자사로 임명되었으며, 후장군이 되어 서주 일대의 군사를 총괄했으며, 지절을 들고 형주의 군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종육은 경원(景元) 4년에 죽었으며, 거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혜후(惠侯)였다. 아들 종준(鍾駿)이 후사를 이었으며, 그의 아우 종회(鍾會)는 별도의 열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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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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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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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2
12:10:27
(*.104.141.18)
번역이 이상한 것이 있기에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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