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휴전]]에서 분리



襄陽記曰:衡字叔平,本襄陽卒家子也,漢末入吳為武昌庶民。聞羊茞有人物之鑒,往干之,茞曰:「多事之世,尚書劇曹郎才也。」是時校事呂壹操弄權柄,大臣畏偪,莫有敢言,茞曰:「非李衡無能困之者。」遂共薦為郎。權引見,衡口陳 壹姦短數千言,權有愧色。數月,壹被誅,而衡大見顯擢。後常為諸葛恪司馬,幹恪府事。恪被誅,求為丹楊太守。時孫休在郡治,衡數以法繩之。妻習氏每諫衡, 衡不從。會休立,衡憂懼,謂妻曰:「不用卿言,以至于此。」遂欲奔魏。妻曰:「不可。君本庶民耳,先帝相拔過重,既數作無禮,而復逆自猜嫌,逃叛求活,以此北歸,何面見中國人乎?」衡曰:「計何所出?」妻曰:「琅邪王素好善慕名,方欲自顯於天下,終不以私嫌殺君明矣。可自囚詣獄,表列前失,顯求受罪。如 此,乃當逆見優饒,非但直活而已。」衡從之,果得無患,又加威遠將軍,援以棨戟。衡每欲治家,妻輒不聽,後密遣客十人於武陵龍陽汜洲上作宅,種甘橘千株。 臨死,敕兒曰:「汝母惡我治家,故窮如是。然吾州里有千頭木奴,不責汝衣食,歲上一匹絹,亦可足用耳。」衡亡後二十餘日,兒以白母,母曰:「此當是種甘橘 也,汝家失十戶客來七八年,必汝父遣為宅。汝父恆稱太史公言,『江陵千樹橘,當封君家』。吾答曰:『且人患無德義,不患不富,若貴而能貧,方好耳,用此何 為!』」吳末,衡甘橘成,歲得絹數千匹,家道殷足。晉咸康中,其宅址枯樹猶在。

 

양양기에 이르길 : 이형(李衡)은 자가 숙평(叔平)으로 본래 양양 병졸집안의 자식이었다. 한나라 말기에 오 지역에 들어와 무창의 서민이 되었다. 양신(羊茞)이 인물의 관상을 잘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서 (봐줄 것을) 구했다. 양신이 말하길 「사건이 많은 시대에 상서 극조의 낭관을 할 재주이다.」 당시에 교사 여일이 권력을 휘둘러 대신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양신이 말하길 「이형이 아니라면 그를 궁지를 몰 수 없다.」 하여 마침내 더불어 낭관으로 추천하였다. 손권이 불러 보았는데 이형이 입으로 여일의 간사한 행동과 단점 수 천 마디를 진술하자 손권에게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몇 달 뒤에 여일이 주살당하고 이형이 크게 탁용되었다.


후에 일찍이 제갈각(諸葛恪)의 사마가 되어 부의 일을 맡았다. 제갈각이 주살당하고 단양태수 되기를 구하였다. 당시에 손휴(孫休)가 군의 치소에 있었는데 이형이 자주 법도로 그를 얽어맸다. 처인 습씨(習氏)가 매번 이형에게 간언을 했지만 이형은 좇지 않았다. 손휴가 즉위하는데 이르러 이형은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처에게 말하길 「그대의 말을 쓰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네.」하고는 마침내 위나라로 도망가려 하였다. 처가 말하길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군께서는 본래 서민인데 선제께서 과중하게 발탁해주셨습니다. 이미 수차례 무례를 저질렀는데 다시 스스로 혐의를 억측하여 도망쳐 살기를 구하여 북쪽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면목으로 중국인을 보겠습니까?」이형이 말하길 「무슨 계책이 있겠소?」 처가 말하길 「낭야왕은 본래 선한 것을 좋아하고 명성을 사모하여 바야흐로 스스로를 천하에 드러내고자 하니 끝내 사사로운 혐의로 군을 죽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스로 손을 묶고 감옥에 이르러 일전의 과실을 열거하고 죄를 받길 청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며 또한 응당 훌륭한 대우를 받을 것이니 비단 목숨을 부지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이형이 이대로 하였는데 과연 재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위원장군이 더해지고 계극이 주어졌다.


이형은 매번 가산을 불리려고 했지만 처가 항상 들어주지 않아 이후에 몰래 객 10명을 무릉(武陵)군 용양(龍陽)현의 사주로 보내 위에다가 집을 짓고 감귤나무 1000그루를 심도록 하였다. 죽음에 임박하여 아들에게 말하길 「너의 어머니가 가산 불리는 것을 싫어하여 이토록 궁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리(양양과 무릉은 모두 형주에 속하기에 이렇게 말한 것임)에 1000두의 나무 노예가 있어 너에게 의식을 요구하지 않고 매년 1필의 비단을 올릴 것이니 또한 족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이형이 죽은 후 20여일이 지나고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로써 알려주니 어머니가 말하길 「이는 응당 감귤 심은 것을 말한 것이다. 너의 집안에 객 10명을 잃은 지 7~8년이 되었는데 반드시 너의 아버지가 보내서 집을 짓는데 썼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는 항상 태사공의 『강릉의 귤나무 1000그루 응당 그대의 가문을 봉하겠네.』라는 말을 칭하였다. 나는 대답하길 『또한 사람은 덕의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지 부유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존귀하면서 능히 가난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인데 이것을 사용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라 하였다.」


오나라 말기에 이형이 심은 감귤이 이루어지고 해마다 비단 수 천 필을 얻었으니 집안이 풍족하였다. 진 함강(咸康) 연간에도 그 택지와 고목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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