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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稽典錄曰:孫亮時,有山陰朱育,少好奇字,凡所特達,依體象類,造作異字千名以上。仕郡門下書佐。太守濮陽興正旦宴見掾吏,言次,問:「太守昔聞朱潁川問士於鄭召公,韓吳郡問士於劉聖博,王景興問士於虞仲翔,嘗見鄭、劉二答而未睹仲翔對也。欽聞國賢,思睹盛美有日矣,書佐寧識之乎?」育對曰:「往過習之。 昔初平末年,王府君以淵妙之才,超遷臨郡,思賢嘉善,樂采名俊,問功曹虞翻曰:『聞玉出崑山,珠生南海,遠方異域,各生珍寶。且曾聞士人歎美貴邦,舊多英 俊,徒以遠於京畿,含香未越耳。功曹雅好博古,寧識其人邪?』翻對曰:『夫會稽上應牽牛之宿,下當少陽之位,東漸巨海,西通五湖,南暢無垠,北渚浙江,南 山攸居,實為州鎮,昔禹會群臣,因以命之。山有金木鳥獸之殷,水有魚鹽珠蚌之饒,海嶽精液,善生俊異,是以忠臣係踵,孝子連閭,下及賢女,靡不育焉。』王 府君笑曰:『地勢然矣,士女之名可悉聞乎?』翻對曰:『不敢及遠,略言其近者耳。往者孝子句章董黯,盡心色養,喪致其哀,單身林野,鳥獸歸懷,怨親之辱,白日報讎,海內聞名,昭然光著。太中大夫山陰陳囂,漁則化盜,居則讓鄰,感侵退藩,遂成義里,攝養車嫗,行足厲俗,自揚子雲等上書薦之,粲然傳世。太尉山陰鄭公,清亮質直,不畏彊禦。魯相山陰鍾離意,稟殊特之姿,孝家忠朝,宰縣相國,所在遺惠,故取養有君子之謩,魯國有丹書之信。及陳宮、費齊皆上契天心, 功德治狀,記在漢籍,有道山陰趙曄,徵士上虞王充,各洪才淵懿,學究道源,著書垂藻,駱驛百篇,釋經傳之宿疑,解當世之槃結,或上窮陰陽之奧祕,下攄人情之歸極。交阯刺史上虞綦毋俊,拔濟一郡,讓爵土之封。決曹掾上虞孟英,三世死義。主簿句章梁宏,功曹史餘姚駟勳,主簿句章鄭雲,皆敦終始之義,引罪免居。 門下督盜賊餘姚伍隆,鄮主簿任光,章安小吏黃他,身當白刃,濟君於難。揚州從事句章王脩,委身授命,垂聲來世。河內太守上虞魏少英,遭世屯蹇,忘家憂國,列在八俊,為世英彥。尚書烏傷楊喬,桓帝妻以公主,辭疾不納。近故太尉上虞朱公,天姿聰亮,欽明神武,策無失謨,征無遺慮,是以天下義兵,思以為 首。上虞女子曹娥,父溺江流,投水而死,立石碑紀,炳然著顯。』王府君曰:『是既然矣,潁川有巢、許之逸軌,吳有太伯之三讓,貴郡雖士人紛紜,於此足 矣。』翻對曰:『故先言其近者耳,若乃引上世之事,及抗節之士,亦有其人。昔越王翳讓位,逃于巫山之穴,越人薰而出之,斯非太伯之儔邪?且太伯外來之君, 非其地人也。若以外來言之,則大禹亦巡於此而葬之矣。鄞大里黃公,絜己暴秦之世,高祖即阼,不能一致,惠帝恭讓,出則濟難。徵士餘姚嚴遵,王莽數聘,抗節 不行,光武中興,然後俯就,矯手不拜,志陵雲日。皆著於傳籍,較然彰明,豈如巢、許,流俗遺譚,不見經傳者哉?』王府君笑曰:『善哉話言也!賢矣,非君不 著。太守未之前聞也。』」濮陽府君曰:「御史所云,既聞其人,亞斯已下,書佐寧識之乎?」育曰:「瞻仰景行,敢不識之?近者太守上虞陳業,絜身清行,志懷 霜雪,貞亮之信,同操柳下,遭漢中微,委官棄祿,遁跡黟歙,以求其志,高邈妙蹤,天下所聞,故(桓文)〔桓文林〕遺之尺牘之書,比竟三高。其聰明大略,忠直謇諤,則侍御史餘姚虞翻、偏將軍烏傷駱統。其淵懿純德,則太子少傅山陰闞澤,學通行茂,作帝師儒。其雄姿武毅,立功當世,則後將軍賀齊,勳成績著。其探 極祕術,言合神明,則太史令上虞吳範。其文章之士,立言粲盛,則御史中丞句章任奕,鄱陽太守章安虞翔,各馳文檄,曄若春榮。處士(鄧)〔鄮〕盧敘,弟犯公 憲,自殺乞代。吳寧斯敦、山陰祁庚、上虞樊正,咸代父死罪。其女則松陽柳朱、永寧(瞿素)〔翟素〕,或一醮守節,喪身不顧,或遭寇劫賊,死不虧行。皆近世 之事,尚在耳目。」府君曰:「皆海內之英也。吾聞秦始皇二十五年,以吳越地為會稽郡,治吳。漢封諸侯王,以何年復為郡,而分治於此?」育對曰:「劉賈為荊 王,賈為英布所殺,又以劉濞為吳王。景帝四年,濞反誅,乃復為郡,治於吳。元鼎五年,除東越,因以其地為治[주],并屬於此,而立東部都尉,後徙章安。陽朔元 年,又徙治鄞,或有寇害,復徙句章。到永建四年,劉府君上書,浙江之北,以為吳郡,會稽還治山陰。自永建四年歲在己巳,以至今年,積百二十九歲。」府君稱善。是歲,吳之太平三年,歲在丁丑。育後仕朝,常在臺閣,為東觀令,遙拜清河太守,加位侍中,推刺占射,文藝多通。    


회계전록에 이르길 : 손량(孫亮)의 시대에 산음사람 주육(朱育)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기이한 글자를 좋아하여 뭇 요소에 특히 현달하여 본체에 의거하고 모습을 유추하여 이자 1000자이 상을 지어냈다. 군에 벼슬하여 문하서좌를 지냈다.


태수 복양흥(濮陽興)이 정월에 연회를 열어 연리들을 만나보았는데 말하다가 묻기를


「태수가 듣기로 옛날 주영천이 정소공에게 선비를 물었고 한오군이 유성박에게 선비를 물었으며 왕경흥이 우중상에게 선비를 물었다고 하는데 정소공과 유성박의 대답은 일찍이 보았으나 우중상(虞仲翔;우번虞翻)의 대답은 본적이 없네. 나라의 현자에 대해 듣는 것을 흠모하고 성대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오래됐는데 서좌께서는 정녕 이를 아시는가?」


하니 주육이 대답하길


「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옛날 초평 말년에 왕부군(王府君)이 심묘한 재주로 군을 다스리는 것을 뛰어 넘어 현자를 사모하고 훌륭함을 아름답게 여겨 명망있는 준걸들을 채용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는데 공조 우번에게 묻길


『듣기로 옥은 곤산에서 나오고 진주는 남해에서 생산되는데 머나먼 지방, 다른 영역이 각자 진귀한 보물을 생산해내오. 또한 일찍이 듣기로 선비들은 귀방을 찬미하면서 예부터 영웅준걸이 많이 나와 다만 경기에서 멀기 때문에 품은 향기가 넘지 못한 것이라 하더이다. 공조는 고아한 애호와 옛날일에 대해 널리 아니 진실로 그 사람을 알 수 있겠소?』


하니 우번이 대답하길


『무릇 회계는 위로 견우의 자리에 상응하고 오래로는 소양의 지위에 해당하니 동쪽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고 서쪽에는 5호와 통하며 남쪽으로는 무한이 뻗어있고 북쪽으로는 절강과 닿아있습니다. 남산은 아득히 거하고 있으니 실로 주의 중진이라 옛날 우임금이 군신들을 모아 명령을 내리던 곳입니다. 산에는 금속, 나무, 조수의 풍부함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 소금, 진주, 어패류의 풍요가 있으며 바다와 산악의 정액이 준걸을 잘 만들어내 이로써 충신, 효자가 잇달아 등장하고 아래로 현명한 여자에 이르기까지 길러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니 왕부군이 웃으면서 말하길


『지세는 그렇다 치고 사녀의 이름을 전부 들어 볼 수 있겠는가?』


우번이 대답하여 말하길


『감히 멀리까지 미치지 못하고 대략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겠습니다. 옛날 효자로 장구사람 동암이 진심을 다해 낯빛으로 봉양하여 상을 치르면서 그 슬픔을 극진히 하여 단신으로 임야에 나갔는데 조수들이 돌아와 품어주었다고 합니다. 양친의 모욕을 한스럽게 여겨 백일 대낮에 원수를 갚아 해내에서 이름이 알려져 밝게 빛났습니다. 태중대부 산음사람 진효는 고기를 잡으면 도적을 교화시키고 거처하는 곳에서는 이웃에게 양보하여 (자신의 땅을) 침범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울타리를 물렸으니 마침내 의리(義里)를 이루었으며 거구를 봉양하여 행실이 족히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양자운 등이 상서하여 천거했고 찬연히 세상에 전해집니다. 태위 산음사람 정공은 청량하고 올곧아 강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노상 산음사람 종리의는 특수한 자질을 품부받아 집에서는 효성스럽고 조정에는 충성스러워 현과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있는 곳에 은혜를 남겼으니 그러므로 취하고 기른데 있어 군자의 지혜가 있었고 노나라에 단서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진궁, 비제에 이르러 모두 위로 하늘의 마음과 결합하고 공덕과 치장이 한나라의 전적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유도 산음사람 조엽, 징사 상우사람 왕충은 각자 넓은 재주와 훌륭한 덕을 가지고 도리의 연원을 궁구하여 책을 지어 문장을 남겼는데 끊이지 않고 이어져 100편이나 되어 경전의 오래된 의문을 해결하고 당세의 머뭇거림을 풀어주었습니다. 혹은 위로 음양의 오묘한 비밀을 궁구하고 아래로 인정의 귀극을 풀어 놓았습니다. 교지자사 상우사람 휘무준은 하나의 군을 구하고도 작토에 봉해지는 것을 사양하였습니다. 결조연 상우사람 맹영은 3세가 의로움을 위해 죽었습니다. 주부 구장사람 양굉, 공조사 여요사람 사훈, 주부 구장사람 정운은 모두 시종일관 정의를 돈독히 하여 죄를 자신에게 끌고선 면하여 집에 거하였습니다. 문하독도적 여요사람 오륭, 무현의 주부 임광, 장안의 소리 황타 등은 몸이 흰 칼날을 당해도 군주를 어려움에서 건져냈습니다. 양주종사 구장사람 왕수는 몸을 버리고 생명을 바쳐 후세에 명성을 드리웠습니다. 하내태수 상우사람 위소영은 어려운 때를 당하여 집을 잊고 국가를 근심하니 8준의 반열에 들어 세상의 영준한 선비가 되었습니다. 상서 오상사람 양교는 환제가 공주로 처를 삼게하려 하였지만 질병으로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근래의 태위 상우사람은 주공(朱儁)은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총명하고 밝았으며 엄숙하고 맑으며 신묘한 무예를 지녀 작전을 짜서 실패하는 것이 없었고 정벌할때 걱정을 남기지 않아 이로써 천하의 의병들이 우두머리로 삼길 바랬습니다. 상우의 여자로 조아는 아버지가 강에 빠지자 물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비석을 세워 기리고 찬연히 전해집니다. 』


왕부군이 말하길


『그것도 당연한게 영천에는 소부와 허유의 남겨진 유적이 있고 오나라 태백이 3번 양보하였으니 귀군의 사람들이 비록 많다하나 이정도면 충분하구려.』


우번이 대답하길


『그렇기에 먼저 가까운 자들을 말한 것입니다. 만약 이에 상세의 일과 항절의 선비들에 관해서 인용하자면 또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월왕 예는 자리를 양보하고 무산의 동굴로 도망쳐 들어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감화받아 나오게 하였으니 이는 태백의 무리가 아닙니까? 또한 태백은 바깥에서 온 군주로 그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바깥에서 온 사람을 말한다면 대우 역시 이곳에 순수왔다 매장되었습니다. 근현의 대리 황공은 폭진의 시대에 스스로를 깨끗이 하다 한 고조가 제위에 오르고 일치되지 못하여 혜제가 양위하려던 때에 나와 어려움을 해결했습니다. 징사 여요사람 엄준은 왕망이 수차례 초빙했지만 항절하여 가지 않았고 광무제가 중흥을 이루고 상종하고자 하였는데 손을 바로 하고 절하지 않았으니 뜻이 구름이나 해를 넘어섰습니다. 대체로 전적에 기록되고 비교적 밝게 알수있는 것들로 어찌 허유나 소부와 같이 유속에 남겨진 이야기만 있고 경전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같겠습니까?』


하니 왕부군이 웃으면서 말하길


『훌륭하구나 말이여! 현명하구나 그대가 아니라면 드러낼수가 없네. 태수가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네.』하였다고 합니다.」


복양부군이 말하길


「어사가 말한 바는 이미 그 사람을 들었는데 이와 버금가는 사람 이하로는 서좌가 정녕 알 수 있는가?」


하니 주육이 말하길


「아름다운 행동을 보고 감히 알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근래에 태수 상우사람 진업(陳業)은 몸을 깨끗하게 하고 청렴한 행동이 있으며 뜻은 서리나 눈을 품은 것 같고 올곧고 밝은 믿음이 있어 절조가 유하혜와 같아 한조가 중간에 쇠미해지자 관록을 버리고 이현과 서현에서 종적을 감춰 그 뜻을 구하려 하였습니다. 높은 기절과 묘연한 행적에 대해 천하가 들은 바이므로 환문림이 척독을 남겼으니 (앞의) 3사람에 비해 더욱 높습니다.


총명하고 큰 지략이 있으며 충직하고 간언을 잘하는 사람으로 시어사 여요사람 우번(虞翻), 편장군 오상(烏傷), 낙통(駱統)이 있으며 아름답고 순수한 덕이 있는 사람으로는 태자소부 산음사람 감택(闞澤)이 있어 학식에 통달하고 행동이 훌륭하여 황제의 스승이 될 만한 유학자입니다. 웅장한 자태와 무용으로 당세에 공을 세운사람으로 후장군 하제(賀齊)가 있어 공훈이 현저합니다. 비술을 깊이 탐구하고 말이 신명에 부합되는 사람으로 태사령 상우사람 오범(吳範)이 있습니다. 문장의 선비로 말을 하면 성대하게 빛나는 사람으로 어사중승 구장사람 임혁(任奕), 파양태수 장안사람 우상(虞翔)이 있어 각자 격문을 써 내려가면 휘황찬란하기가 봄날의 영화 같습니다. 무현의 노서(盧敘)는 동생이 법을 범하자 자살함으로써 대신하길 구했습니다. 오녕의 사돈(斯敦), 산음의 기경(祁庚), 상우의 번정(樊正)은 모두 아버지의 죽을 죄를 대신하였습니다. 여자로는 곧 송양사람 유주(柳朱), 영녕사람 적소(翟素)가 있어 혹 혼인하자마자 수절하게 되어 몸을 잃고도 뒤돌아보지 않거나 혹은 도적의 겁박을 당해 죽어도 행실을 일그러트리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근세의 일들이니 오히려 이목에 있습니다. 」


부군이 말하길


「대체로 해내의 영걸이구나. 내가 듣기로 진시황 25년에 오월의 땅을 회계군으로 하고 오를 다스렸다고 하네. 한나라에서 제후왕을 봉해 어느 해에 다시 군이 되고 이렇게 나누어졌는가?」


하니 주육이 대답하길


「유가가 형왕이 되었는데 영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다시 유비가 오왕이 되었습니다. 경제 4년에 유비가 반란으로 주살당하고 마침내 다시 군으로 돌리고 오에 치소를 두었습니다. 원정 5년 동월을 멸하고 그 땅으로 인해 동야를 두었는데 더불어 이에 속하게 하고는 동부도위를 세웠고 이후에 장안으로 옮겼습니다. 영건 4년에 이르러 유부군이 상서하여 절강의 북쪽을 오군으로 하고 회계군이 다시 산음현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영건4년은 기사년인데 이로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총 129년입니다.」


하니 부군이 훌륭하다 칭하였다. 이해는 오나라 태평3년으로 정축년이다. 주육은 이후에 조정을 섬겨 항상 대각에 있으면서 동관령을 지냈는데 멀리서 청하태수에 임명되고 시중의 자리가 더해졌다. 추측하여 치는 점이나 그릇 아래에 물건을 놓고 치는 점에 능했으며 문예가 다방면에 통하였다.


[주] 삼국지집해에서 하작의 말을 인용하길 “주육전을 보건대 한나라가 동월을 멸망시켜 야(冶)로 삼았는데 야현의 등장은 국가가 멸망한 이후이다. 또한 그 백성들을 모두 이주시켰기에 회계의 동부도위에 예속되게 된 것이다. 사서에서 후일의 명칭을 가져다 쓴 것이다. ” 그러므로 응당 治는 冶의 오자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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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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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6.05.20
14: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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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는 우번전에서 분리하기도 애매하고 안 분리하기도 애매한데 너무 길어서 따로 분리했습니다. 번역 해주신 dragonrz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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