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李譔)은 자가 흠중(欽仲)이고, 재동군 부현 사람이다. 그의 부친 이인李仁은 자가 덕현德賢이고, 같은 현의 윤묵과 함께 형주에서 유학하였고, 사마휘, 송충 등을 따라 배웠다. 이선은 그들의 학업을 전부 전수받았으며, 또 윤묵을 따라 책에서 말하는 뜻과 이치를 논했고, 오경, 제자백가를 전부 독파했으며, 게다가 광범위한 기예에 흥미를 가졌고, 산술, 점술, 의약, 활과 화살, 기계의 기교 등을 깊이 탐구했다. 처음에는 주서좌ㆍ상서령사가 되었다.
연희 원년(238)에 유선은 태자를 세우고 이선을 태자 서자로 임명하였고, 또 태자복야로 승진시켰다. 후에 그는 중산대부ㆍ우중랑장으로 전임되었는데, 여전히 태자를 모셨다.
태자는 그의 지식이 풍부함을 아끼고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이선은 본성이 경박하고 다른 사람을 놀리기 좋아했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가 지은 고문(古文, 《역경》,《상서》,《모시》,《삼례》,《좌씨전》,《태현지귀》)은 모두 가규와 마융의 견해를 준칙으로 하여 정현의 견해와는 달랐다.
그는 왕숙(王肅)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그가 서술한 것을 보지 못했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결론에는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경요 연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한중 사람인 진술 역시 박학다식하여 《석문》7편, 《익부기구전》및《악부기구지》를 저술했다. 관위는 세 군의 태수를 역임했다.
이선은 자를 흠중이라고 하고, 재동군 부현의 사람이다. 부친인 이인은 자를 덕현이라 하며, 같은 현의 윤묵과 함께 형주에 유학하여, 사마휘/송충 등을 따라 배웠다. 이선은 부친의 학문을 그대로 이어받아, 게다가 윤묵을 따라 [세세한 자구의 해석이 아니라] 서책이 설명하는 도리를 연구하고, 오경/제자의 모든 것을 독파한데다가, 넓게 기술에 흥미를 가져, 산술/복서/의약의 학, 노/용수철 장치의 기계까지 모든 것에 걸쳐서 사려를 다했다.
처음에는 주의 서좌, 상서령사였다. 연희 원년(238), 후주는 태자를 세우고, 이선을 [태자]서자로 임명해, [태자]복으로 승진시켰다. 중산대부/우중랑장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태자를 가까이 모셨다. 태자는 그의 폭넓은 지식을 사랑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였다. 그러나, 본성이 경박하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여, 그 때문에 세견에서는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문의 《역》,《상서》,《모시(毛詩)》,〈삼례(三禮)〉,《[춘추]좌씨전》,《태현지귀(太玄指歸)》에 대하여 저술하였으나, 모두 가규/마융(두 사람 모두 후한의 학자)에 준거하여, 정현의 설과는 달랐다. [위의] 왕숙과는 떨어진 지역에 살았으므로, 그 저작을 본 적은 없었으나, 생각하는 방식이나 결론은 일치하는 것이 많았다. 경요 연간에 죽었다.
당시 그 외에 한중(漢中)의 진술(陳術), 자는 신백(申伯)이라는 자가 있어, 역시나 박학다식하여, 《석문(釋問)》 칠편,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과 《익부기구지(益部耆舊志)》를 저술했다. 관위는 삼군의 태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