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黃權)은 자가 공형(公衡)이고, 파서(巴西)군 낭중(閬中)현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군리(郡吏)가 되었으며, 주목 유장(劉璋)이 불러내 주부(主簿)로 삼았다.
 
당시 별가(別駕) 장송(張松)이 의견을 올리기를 응당 유비를 영접하여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고 하였다. 황권이 간언하여 말했다.
 
"좌장군(左將軍,유비)은 용맹한 명성(驍名)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여, 부곡(部曲:예하부대)으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賔客)의 예로 정중히 맞이한다면, 일국(一國)에 두 군주(二君)가 있음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태산과 같은 안정(泰山之安)인 것 같으나, 실은 계란을 쌓아 놓은 위험(累卵之危)인 것 입니다. 단지 국경을 폐쇄하고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림이 옳다 할 수 있습니다."
 
유장은 황권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사자를 파견하여 유비를 맞이하였으므로, 황권을 밖으로 내보내 광한현의 장(廣漢長)으로 임명했다.
 
유비가 익주를 습격하여 탈취했을 때, 그의 장수들은 나누어 군현을 공격했으며, 군현은 그림자가 형제를 따르듯 유비에게 귀순했는데, 황권은 성을 닫고 견고하게 수비하다가 유장이 항복하는 것을 기다린 연후에야 비로소 유비에게 나아가 항복했다. 유비는 황권을 임시로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했다.

서중()이 평하여 말하길 :

 

황권(黃權)이 이미 그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간언하였고 또 성을 닫아 굳게 방비하였으니 주군을 섬기는 예를 이룬 것이다. 무왕(武王) (은나라로 들어가) 수레에 내려 비간(比干)의 묘()에 봉을 더하고, 상용(商容)의 마을에 표창한 것은 충현지사(忠賢之士=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에 대한 존중의 뜻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다. 선주는 임시로 황권을 장군으로 삼았으니 옳은 일이지만, 오히려 그 대우가 미비하고, 충의스러운 높은 절개를 기려 선행하는 자의 의지를 격려함에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조조가 장로를 격파하자 장로는 도주하여 파중(巴中)현으로 들어왔는데, 이때 황권이 간언했다.
 
"만일 한중을 잃게 된다면, 삼파(三巴)는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촉군의 수족을 자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유비는 황권을 호군(護軍)으로 임명하고,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장로를 영접하도록 했다. 장로는 벌써 남정(南鄭)으로 돌아가 북쪽으로 조조에게 투항했다. 그러나 두호(杜濩), 박호(朴胡)를 격파하고, 하후연(夏侯淵)을 살해하고 한중을 점거했는데, 이는 모두 황권의 계획이었다.
 
유비는 한중왕(漢中王)이 되어서도 여전히 익주목을 겸임(領益州牧)하고 있었으며, 황권을 치중종사(治中從事)에 임명했다. 유비가 제라고 칭하며 동쪽으로 오나라를 정벌하려 할 때, 황권이 간언하여 말했다.
 
"오나라 사람은 한전(悍戰:勇猛善战-용감하여 전쟁을 잘함)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려우니, 신이 청하옵건데 앞장서 적을 살필터이니, 페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진군하시기를 청합니다."
 
유비는 황권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황권을 진북장군(鎮北將軍)으로 임명해, 강북의 군대를 통솔(督江北軍)하여 위나라 군대를 막도록 했으며, 유비가 직접 장강 이남으로 갔다.
 
오나라의 장군 육의(陸議육손)가 물의 흐름을 타고, 갑자기 포위하자 강남의 촉나라 군대(南軍)는 크게 패하였다. 유비는 군대를 인솔하여 후퇴했다. 그러나 이때 길이 끊겼으므로, 황권은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장수들을 이끌고 위나라로 투항했다.
 
담당 관리가 법을 집행하면서, 황권의 처자식을 체포해야 한다고 아뢰자 유비가 말했다.
 
"내가 황권을 져버렸지 황권이 나를 져버리지 않았다."
 
유비는 황권의 식구들을 이전과 똑같이 대우했다.


신 송지가 살펴 보건대 :

 

한무(漢武)는 허망된 (거짓되고 왜곡된) 말(虛罔之言)을 들어, 이릉(李陵)의 집안을 멸하였고, 유주(劉主= 유비)는 담당 관리가 법을 집행하는 것을 막고 황권의 가족을 용서하였으니, 이 두 군주의 옳고 그름은 격하게 멀고 아득할 뿐이다. 시경(詩經)에서도 전하기를

 

즐거워라 군자여, 그대의 후손을 편안히 길러 주리라.’

 

하였으니, 이것은 유주를 일컫음이랴! 



위문제(
魏文帝)가 황권에게 말했다.
 
"그대가 천의를 배반한 군주를 버리고, 천의에 순종하는 군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평과 한신(진평과 한신은 항우를 버리고 한고조에게 갔던 인물)을 따르려는 것이오?"
 
황권이 대답했다.
 
"신은 유주로부터 과분한 대우를 받아 오나라에 항복하는 일은 없었는데, 촉으로 돌아가는 길이 없어서 귀순한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한 군대의 장수로서, 죽음을 면한 것은 다행스런 일인데 어찌 고인을 따라 흠모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황권의 대답에 감동하여 진남장군(鎮南將軍)으로 임명하고, 육양후(育陽侯)로 봉했으며, 시중(侍中)의 관직을 더하고, 그로 하여금 수레에 함께 타도록 했다.
 
촉나라에 투항한 사람 중 어떤 이가 황권의 처자식이 처형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황권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상을 치르지 않았다.

한진춘추(漢魏春秋) 이르길 :

 

문제(文帝)가 발상(發喪)을 명하였다. 황권이 답하여 말하길:

 

신에게 선주와 제갈량은 (서로를) 정성으로 대하고 서로 믿어 신의 진심을 (선주와 제갈량은)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의혹은 사실이 아닐지언대, 청컨대 (자세한 내막을) 들은 후에 발상하겠습니다.”



후에 상세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과연 황권이 말한 대로였다.
 
유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위나라 신하들은 모두 기뻐했는데, 황권만은 그렇지 못했다.
 
위문제는 황권이 도량이 있다고 판명하여, 그를 놀래키려는 생각으로 주위 사람을 보내, 황권에게 출두하라는 칙명을 내리고, 도착하기까지 사이에 재촉하는 사자를 보냈다. 말을 탄 사자가 질주하여 길에서 교체했다. 황권 수하의 기종으로 혼비백산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황권의 행동거지와 안색은 태연자약했다. 후에 황권은 익주자사를 겸임(領益州刺史)하였고, 하남(河南)으로 거쳐를 옮겼다.
 
대장군(大將軍) 사마선왕(司馬宣王)은 그(황권)를 매우 중시했다. 사마선왕이 황권에게 질문을 했다.
 
"촉나라에는 그대와 같은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황권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명공께서 저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깊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사마선왕은 제갈량에게 주는 편지에서 말했다.

─ 황공형은 호방한 남자(快士)입니다. 항상 앉으나 서나 그대를 칭찬하였는데 말을 빌려 어떤 구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
 
경초 3년(239), 즉 촉나라 연희 2년에 황권은 거기장군(車騎將軍), 의동삼사(儀同三司)로 승진했다.

촉기(蜀記)에 이르길: 위 명제(魏明帝조방)가 황권에게,
 
"천하는 삼국정립의 상황인데, 어떤 국가를 정통으로 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자, 황권은
 
"천문에 따라 정통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형혹(熒惑: 화성)이 심성(心星)이 되어 문황제가 붕어했지만, 오와 촉의 군주에게는 어떠한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라고 했다.
 
다음해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경후(景侯)라고 했다. 아들 황옹(黃邕)이 후사를 이었다. 황옹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작위는 끊겼다.
 
황권이 촉에 남겨 두었던 아들 황숭(黃嵩)은 상서랑(尚書郎)이 되어 위장군(衞將軍) 제갈첨(諸葛瞻)을 수행하여 등애(鄧艾)를 방어했다. 부현(涪縣)에 도착하자, 제갈첨은 주저하여 전진하지 못했다. 황숭은 제갈첨에게 응당 신속하게 가서 요충지를 점거하여 적군의 평지 진입을 저지하도록 여러차례 권유했다. 제갈첨은 결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황숭은 눈물까지 흘리게 되었다.
 
마침 등애가 신속하게 전진해 왔다. 제갈첨은 퇴각하면서 싸워 면죽(緜竹)까지 이르렀다. 황숭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필사의 각오로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분류 :
촉서
조회 수 :
14404
등록일 :
2013.05.02
15:55:51 (*.125.69.88)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570/5ee/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570

'9' 댓글

코렐솔라

2013.07.23
18:50:50
(*.52.89.88)
주석 추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사요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99056

구라뱅뱅

2019.10.18
10:01:47
(*.21.49.97)
경초 3년(239), 즉 촉나라 연희 2년에 황권은 거기장군, 의도삼사로 승진했다.
景初三年,蜀延熈二年,權遷車騎將軍、儀同三司。
의도삼사 -> 의동삼사(儀同三司)

구라뱅뱅

2019.10.18
10:15:15
(*.21.49.97)
後領益州刺史,徙占河南。
후에 황권은 익주자사를 겸임하였고, 옮겨 하남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남을 차지한다는 번역이 이상해서 찾아보니, 거처를 하남으로 옮겼다가 맞다고 봅니다.
가규전을 봐도
後占河南 부분을 후에 하남으로 의 형태로 번역이 되어 있으므로, 하남을 차지한다기 보다는

하남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맞다고 봅니다.

혹시나 해서 24사 전역을 찾아보니 해당 번역은
遷據河南 으로 되어 있습니다.

코렐솔라

2019.10.18
15:46:37
(*.46.174.164)
안녕하세요.

번역 감사합니다. 의동삼사로 고쳤고 해당 번역도
익주자사를 겸임하였고, 옮겨 하남을 차지하게 되었다.->익주자사를 겸임하였고, 하남으로 거쳐를 옮겼다
로 수정했습니다.

구라뱅뱅

2021.08.25
08:48:55
(*.114.89.66)
이름/관직/지명 한자 병행 표기.
일부 오자 수정

구라뱅뱅

2021.08.25
09:15:01
(*.114.89.66)
"좌장군(유비)은 용맹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더라도 부하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으로 접대한다면, 주인은 계란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위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단지 국경을 폐쇄하고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左將軍有驍名,今請到,欲以部曲遇之,則不滿其心,欲以賔客禮待,則一國不容二君。若客有泰山之安,則主有累卵之危。可但閉境,以待河清。

대화 번역 수정.

"좌장군(左將軍,유비)은 용맹한 명성(驍名)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여, 부곡(部曲:예하부대)으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賔客)의 예로 정중히 맞이한다면, 일국(一國)에 두 군주(二君)가 있음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태산과 같은 안정(泰山之安)인 것 같으나, 실은 계란을 쌓아 놓은 위험(累卵之危)인 것 입니다. 단지 국경을 폐쇄하고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림이 옳다 할 수 있습니다."

구라뱅뱅

2021.08.25
09:26:29
(*.114.89.66)
"오나라 사람은 용감하여 전쟁을 잘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피고, 페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

吳人悍戰,又水軍順流,進易退難,臣請為先驅以甞寇,陛下宜為後鎮

대화 번역 수정.

"오나라 사람은 한전(悍戰:勇猛善战-용감하여 전쟁을 잘함)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려우니, 신이 청하옵건데 앞장서 적을 살필터이니, 페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진군하시기를 청합니다."

견홍

2021.11.22
15:33:27
(*.88.95.62)
황웅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 황옹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구라뱅뱅

2021.11.23
16:12:54
(*.21.49.97)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삼국지 게시판 도움말 [10] 코렐솔라 2021-08-30 16943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368413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9 381109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263983
147 위서 진류왕전(조환전) [3] 견초 2013-05-03 11649
146 위서 고귀향공기(조모전) [7] 견초 2013-05-03 13405
145 위서 제왕기(조방전) [27] 견초 2013-05-03 16241
144 위서 <배송지주>진랑전, 진의록전, 공계전 [2] 재원 2013-05-03 10127
143 위서 <배송지주>학소전 [7] 재원 2013-05-03 11872
142 위서 명제기(조예전) [16] 견초 2013-05-03 25392
141 위서 문제기(조비전) [8] 견초 2013-05-03 27188
140 위서 <배송지주>왕준전 재원 2013-05-03 9554
139 위서 <배송지주>조등전(조조의 할아버지) 재원 2013-05-03 12106
138 위서 무제기(조조전) [5] 재원 2013-05-03 124454
137 촉서 장익전 [4] 견초 2013-05-03 13021
136 촉서 등지전 [13] 견초 2013-05-03 13630
135 촉서 장완전 [13] 견초 2013-05-03 13998
134 촉서 장억전(장의) [10] 견초 2013-05-03 14192
133 촉서 왕평전 [1] 견초 2013-05-02 17020
132 촉서 마충전 [6] 견초 2013-05-02 12488
131 촉서 여개전 [2] 견초 2013-05-02 8949
130 촉서 이회전 [2] 견초 2013-05-02 9923
» 촉서 황권전 [9] 견초 2013-05-02 14404
128 촉서 극정전 [2] 견초 2013-05-02 9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