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개(呂凱)는 자가 계평(季平)이고 영창군 불위현 사람이다.



옛날 진(秦)은 여불위(呂不韋)의 자제나 일족을 촉한(蜀漢)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한무제 시대, 서남(西南)의 만족을 교화시켜 군현을 설치하고, 여씨(呂氏)를 이주시켜 그 땅의 백성이 되게 했다. 그래서 불위현(不韋縣)이라고 부른 것이다.


손성의 촉세보에서 이른다 : 당초, 진때 여불위(呂不韋)의 자제 종족이 촉한에 유배왔다. 한 무제 때, 서남이(西南夷)를 개발하여 군현

을 설치하고 유배된 여씨로 채우니, 이로 인해 불위현(不韋縣)이라고 이르렀다.


그는 군에 임명되어 오관연공조가 되었다. 그 당시 옹개 등은 유비가 영안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불손하고 교활한 태도가 더욱 심해졌다. 도호 이엄이 편지 여섯 장을 옹개에게 주어 이해득실을 분석하였고, 옹개는 단지 한 장의 분량으로 이렇게 답장했다.

─ 무릇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없고, 땅에는 두 명의 임금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천하가 정립하여 역법이 세 종류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의심하며, 누구에게 귀순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

그는 흉포하고 오만함은 이와 같았다. 옹개는 또 오에 항복했고, 오는 먼 곳에서 옹개를 영창태수로 임명했다. 영창군은 익주군 서쪽에 위치하며, 길이 막혀 촉과는 두절되었으므로 군태수가 교체되었다. 여개와 부승인 촉군의 왕항은 관민을 통솔하여 격려하고, 국경을 페쇄시켜 옹개의 침입을 막았다. 옹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영창으로 격문을 보내 여러 가지를 말했다.

여개가 격문에 대답하여 말했다.

─ 하늘이 동란을 내리고, 간웅이 틈을 타고

, 천하 사람들이 이를 갈며, 전국이 애통해하고, 관원이든 노복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간에 근력을 다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간이나 뇌로 땅을 칠해서라도 나라의 어려움을 없애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장군께서 대대로 한왕조의 은혜를 받게 된 것은 직접 친족과 사람들을 모아 솔선하여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선조를 저버리지 않으며, 역사책에 공훈을 적어 이름을 천 년간 남겼기 때문입니다. 어찌 신이 오와 월의 노비가 되어 근본을 저버리고 끝을 추구하기를 원했겠습니까?

옛날에 순은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창오에서 죽었는데, 경전에서는 그를 찬미했으며 명성은 끝없이 흐로고 있습니다. 강가에 매장되었다고 해도 어찌 슬프겠습니까! 주문왕과 주무왕이 천명을 받아 주성왕이 패열을 이룩했습니다.

선제(유비)가 교룡처럼 일어나자, 천하 사람들은 그의 풍모를 우러러 바라보았으며, 일을 주재하는 대신들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니, 하늘에서 내려준 평안함입니다. 그러나 장군은 흥성하고 쇠하는 이치, 성공과 실패의 징조를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원에 들불이 일어나고 시냇물의 얼음을 밟고 지나가는 상태에 비유되는데, 불이 사그라들고 얼음이 녹는다면, 당신은 어느 곳에 의지하겠습니까? 과거 장군의 선조인 옹후는 한고조와 원수를 맺은 이후에 봉해졌고, 두융은 한나라가 장차 흥성하게 될 것을 알고 세조에게 마음을 돌렸으며, 그들은 모두 후세에 이름을 전했으며 대대로 그들의 미덕이 노래되었습니다. 지금 제갈승상은 재능이 탁월하고 걸출하여 아직 싹트지 않은 일을 깊이 볼 수 있으며, 유비의 유언을 받아 고아(유선)를 맡아 말세에 다시 일어나는 왕실을 보좌하며,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고 공적을 기록하고 과실을 잊었습니다.

장군이 만일 돌이켜 마음을 바꿔 지금까지의 태도를 고친다면, 옛 현인을 배우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변방 지역에서 지배할 가치가 충분하겠습니까! 초나라가 천자를 공경하지 않았을 때 제환공은 초나라를 질책했고, 오나라 왕 부차가 패자의 이름을 참칭했을 때, 맹약하는 자리에서 진나라 사람은 부차를 우두머리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정식 군주가 아닌 자에게 신하라고 한다면, 누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을 수긍하겠습니까? 고대의도의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하에게는 국경을 넘는 사귐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앞뒤로 하여 오는 것은 있어도 가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그대의 고시를 받고 분발하여 먹는 것까지 잊었으며, 때문에 마음의 생각을 간략하게 진술하여 장군께서 저의 뜻을 살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여개의 위세와 은혜는 군대에서 빛났으며, 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래서 그의 절개를 보전할 수 있었다.

승상 제갈량이 남정하여 옹개를 토벌하려고 길에 있을 때, 옹개는 이미 고정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제갈량이 남방에 도착할 후, 상소를 올려 말했다.

─ 영창군의 관리 여개와 부승 왕항 등은 먼 곳에 있으면서 충성을 지켜온 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옹개, 고정이 그 동북쪽에서 핍박했지만, 여개 등은 의를 지키며 그들과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영창군의 풍속이 이처럼 돈후하고 정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

여개를 운남태수로 임명하고 양천정후로 봉했다. 마침 여개는 반란을 일으킨 만족에게 살해되었으므로 아들 여상(呂祥)이 후사를 잇게 되었다. 왕항 또한 정후로 봉해졌고, 영창태수가 되었다.


촉세보에서 이른다 : 여상(呂祥)은 후에 진에서 남이교위(南夷校尉)가 되었고, 상의 아들 및 후세는 영창태수가 되었다. 이웅(李雄)이 영주(寧州)를 깨뜨리자, 여러 여씨는 귀부하려 하지 않고 군을 들어 굳게 지켰다. 왕항 등도 역시 정절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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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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