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평(王平)의 자는 자균(子均)으로 파서(巴西) 탕거(宕渠) 사람이다. 본래 외가(外家) 하씨(집안)에서 자랐는데 후에 (본디) 성씨인 왕씨로 회복하였다. 두호(杜濩)와 박호(朴胡)를 따라 낙양에 이르러 가교위(假校尉)가 되었고 조공(曹公)을 따라 종군하여 한중(漢中)을 정벌하였다가 선주(先主)에게 항복하니 아문장(牙門將), 비장군(裨將軍)에 제배(除拜)하였다.

건흥(建興) 6년, 참군(參軍) 마속(馬謖)에게 소속되어 선봉(先鋒)이 되었다. 마속은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였으므로 왕평은 계속 마속에게 규간(規諫)하였으나 마속이 이를 쓰지 못하여 가정(街亭)에서 크게 패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산산이 흩어졌으나 오직 왕평이 거느리고 있던 1천명은 북을 울리며 제 자리를 지키니 위나라 장수 장합(張郃)은 그곳에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에 왕평은 천천히 여러 군영의 흩어졌던 (병사들을) 거두고 장사(將士)들을 인솔하여 되돌아왔다.

승상 제갈량은 마속 및 장군 장휴(張休), 이성(李盛)을 주벌(誅罰)하였고 장군 황습(黃襲)등의 병사를 박탈하였으나 왕평에게는 특별히 공적을 높이 드러내[崇顯] 주었으니[見], 참군(參軍)에 제배하여 오부(五部)를 통솔케 하였고 겸하여 왕평에게 소속된 군영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으며 토구장군(討寇將軍)의 작위로 승진시키고 정후(亭侯)에 봉하였다.

건흥 9년, 제갈량은 기산을 포위하고 왕평은 따로 남쪽을 포위하고 지켰다.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선왕(司馬宣王)이 제갈량을 공격하고 장합은 왕평을 공격하였는데 왕평이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아니하니 장합은 이기지 못하였다.

건흥 12년, 제갈량이 무공에서 졸하자 군대를 물려 돌아왔는데 위연이 난을 일으키자 한번 싸움으로 패퇴시킨 것은 왕평의 공이었다. 이에 벼슬을 옮겨 후전군(後典軍), 안한장군(安漢將軍)이 되었고 거기장군(車騎將軍) 오일(吳壹)을 보좌하여 한중에 주둔하였으며 또한 한중태수(漢中太守)를 겸하였다.

(건흥) 15년, 승진하여 안한후(安漢侯)에 봉해졌고 오일을 대신하여 독한중(督漢中)이 되었다.

【보충】오일(吳壹): 소상과 학경의 속후한서에는 오의(吳懿)로 되어있다. 선제 사마의의 이름을 기휘하여 ‘懿’를 ‘壹’로 쓴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실제로 삼국지에 진나라 황제의 이름이 기휘된 것은 아니어서 정설은 아니다. 캐뻘생각으로는 ‘壹’은 ‘懿’의 성문(省文-글자의 일부분을 생략하여 쓰는 것)이거나 예서의 형태가 혼란스럽던 당시 전사(傳寫)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보이는데, 자(字)가 자원(子遠)이므로 오의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연희(延熙) 원년, 대장군 장완(蔣琬)이 면양(沔陽)에 주둔하니 왕평은 다시 전호군(前護軍)이 되었고 장완의 대장군부(大將軍府) 일을 맡아 처리 하였다.

연희 6년, 장완이 부현(涪縣)으로 돌아가 주둔하니 왕평을 전감군(前監軍), 진북대장군(鎭北大將軍)으로 삼아 한중을 통솔하게 하였다.

연희 7년 봄, 위나라의 대장군 조상이 보기(歩騎) 10여만을 거느리고 한천(漢川-한중 일대)으로 향하였는데 그 선봉이 이미 낙곡(駱谷)에 있었다. 이때 한중을 지키는 병사는 3만이 되지 못하여 여러 장수들은 크게 놀랐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지금 힘이 부족한데 적을 막아야 하니, 마땅히 한성(漢城)과 낙성(樂城)을 굳게 지키고 도적[賊-위나라 군대]들을 만나면 깊이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比爾間] 부현(涪縣)의 군대가 양평관(陽平關)을 족히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평은 말하기를 '그렇지 않소, 한중(漢中)에서 부현(涪縣)까지 가면 거의[垂] 1천리요. 도적들이 만약 양평관을 얻는다면 곧 화(禍)가 되는 것이오. 이제 의당 유호군(劉護軍)과 두참군(杜參軍)을 먼저 보내어 흥세산(興勢山)을 점거하게 하고 평(平-왕평이 자신을 낮추어 하는 말)은 뒤에서 막을 터이니 만약 적이 군사를 나누어 황금곡(黃金谷)으로 향하면 평이 1천명을 거느리고 내려가 그들을 맞아 싸우겠소. 이러는 사이에 부현의 군대가 도착 할 것이니 이것이 계책의 으뜸이오.' 하였다. 오직 호군(護軍) 유민(劉敏)만이 왕평과 더불어 뜻이 같아 왕평과 함께 곧바로 시행하였다. 부현의 여러 군대 및 대장군 비의가 성도로부터 서로 잇달아 도착하니 위나라 군사들은 퇴각하였는데 왕평이 본래 꾀한 것과 같이 되었다. 이때 등지(鄧芝)가 동쪽에 있었고 마충(馬忠)이 남쪽에 있었으며 왕평은 북쪽 경계에 있었는데 모두 명성과 치적을 드러냈다.

【보충】한성(漢城), 낙성(樂城) : 한성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면현(勉縣) 동쪽에 있고, 낙성은 섬서성 성고현(城固縣) 동쪽에 있다. 모두 제갈량이 쌓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遇賊令入 : 송본에는 ‘令入’으로 되어있고 무영전본에는 ‘今入’으로 되어있는데 송본이 옳다.

유호군(劉護軍), 두참군(杜參軍) : 유호군은 유민(劉敏)이고 두참군은 두기(杜琪)를 말한다.

흥세산(興勢山), 황금곡(黃金谷) : 흥세(興勢)는 섬서성 양현(洋縣) 북쪽에 있는 산이고 황금(黃金)은 섬서성 양현(洋縣)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왕평은 군대[戎旅]에서 자라 손으로 글씨를 쓰지 못하였고 아는 글자도 10자를 넘지 못하니 입으로 말한 것을 다른 사람이 적게 하여 글을 지었는데 모두 조리 있었다. 사람을 시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여러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을 읽게 하고 이를 들었는데 그 대의(大義)를 모두 알았고 종종 논하여 말할 때는 그 요지를 잃지 아니하였다. 행동은 법도를 지키고 말은 농지꺼리를 하지 아니하였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르게 앉아 하루를 보내니 정숙하여 무장(武將)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격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니 사람들이 자신를 깔본다 여기게 되어 이 때문에 명예가 깎이게 되었다. (연희) 11년에 졸(卒)하니 아들 왕훈(王訓)이 뒤를 이었다.

보충】

記傳 : 소상의 왕평전에는 ‘紀傳’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더 자연스럽다. 해석도 이를 따라 하였다.

忄+畫 : 주수창은 삼국지주증유(三國志注證遺)에서 광운과 집운을 인용하여 ‘忄+畫’을 고집스러운 것이라 풀이하고 있는데 이 문장에서 ‘忄+畫’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문맥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된다. 조유문은 이를 ‘嫿[정숙함]’ 으로 보았는데 이 교정을 옳게 여겨 이를 따라 해석하였다.

然性狹侵疑 爲人自輕 : 보통 ‘侵疑’으로 끊어 읽으며, 이를 의심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소상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로 ‘性頗狷狹’이라 썼다. 그러나 이는 문맥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필 역시 삼국지집해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조유문은 오지(吳志) 왕번전(王蕃傳)의 문장에 근거하여 ‘疑’자를 연문(衍文)으로 보았고 ‘狹侵’으로 끊어 읽었다. 왕번전에는 ‘狹侵’이 ‘挾侵’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거침없이 말하다’, ‘중구난방으로 떠들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조유문의 의견에 따라 해석하였다.

당초에 왕평과 같은 군 한창(漢昌)사람 구부는 충성스럽고 용맹하며[忠勇] 너그럽고 덕이 있었는데[寛厚], 여러 차례 전공(戰功)이 있어 공명(功名)과 작위(爵位)가 왕평에 버금갔고 관직은 좌장군(左將軍)에 이르렀으며 탕거후(宕渠侯)에 봉해졌다.

배송지(裴松之)의 주석】

배주1) ‘句’는 고(古)와 후(候)의 반절이다.

배주2)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말하기를 “후에 장익(張翼)과 요화(廖化)가 아울러 대장군(大將軍)이 되니,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에는 왕평(王平)과 구부(句扶)가 있더니 뒤에는 장익과 요화가 있구나.’ 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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