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완蔣琬은 자가 공염(公琰)이고, 영릉군(零陵郡) 상향현(湘鄕縣)사람이다. 약간의 나이에 사촌 동생 천릉(泉陵)의 유민(劉敏)과 함께 이름이 알려졌다.

장완은 주서과(州書과)의 신분으로 유비를 따라 촉군으로 들어가 광도현(廣都縣)의 장으로 임명됐다.

유비는 일찍이 유람하다가 갑자기 광도현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장완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며, 또 만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노여워하며 처벌하려고 했다. 군사장군 제갈량이 간청하며 말했다.

"장완은 국가의 그릇이지, 백리의 토지를 다스릴 인재가 아닙니다. 그의 정무 처리는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외양을 장식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지 않습니다. 원컨대 주공께서는 다시 살펴 주십시오. "

유비는 제갈량을 존경하고 아꼈으므로, 그의 죄를 벌하지 않고, 관직을 박탈했을 뿐이었다. 장완은 면직된 이후에, 한밤중에 소 한 마리가 문 앞에서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는 꿈을 꾸고 내심 매우 언짢았으므로 해몽가(趙直)를 불러 물어보았다.

조직이 말했다.

"대저 피를 보는 것은 일이 분명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소의 뿔과 귀는 '공(公)'자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당신의 지위는 반드시 공(公)에 이를 것입니다. 아주 길한 징조입니다."

오래지 않아, 장완은 십방(什防)의 현령이 되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장완은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랑이 됐다.

건흥 원년(223)에 승상 제갈량은 막부를 열고, 장완을 초빙하여 동조연(東曺椽)으로 임명했다. 장완은 무재에 천거되었지만 유옹(劉邕), 음화(陰化), 방연(龐延), 요순(요淳)에게 간곡하게 사양했다. 제갈량은 장완을 깨우치며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까이 있는 자를 배반하고, 도덕을 버리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동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또 멀고 가까운 사람들 에게 그 사퇴하려는 뜻을 이해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그대는 자신의 공업과 덕행을 나타내어 이 선발의 타당함과 중요함을 밝혀야만 합니다. "

건흥 5년(227)에 장완은 참군으로 승진했다.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고 있을 때, 장완은 장사 장예와 부에 남아 일을 총괄했다. 8년(230)에 장예를 대신하여 장사가 되었고, 무군장군(撫軍將軍)을 더했다. 제갈량은 자주 밖으로 출정 나갔지만, 장완은 매번 식량과 병사를 충분히 공급해 주었다. 제갈량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공염은 뜻을 충성과 고아함에 두고 있으니, 나와 함께 제왕의 대업을 도와줄 사람이다."

제갈량은 또 은밀히 표를 올려 유선에게 말했다.

"신에게 만일 불행이 있게 된다면, 훗일은 응당 장완에게 맡기십시오."

제갈량이 죽자 장완을 상서령으로 임명했으며, 오래지 않아 관직을 더하고 도호를 대행하도록 했다. 이어 장완에게 부절을 주고, 익주자사를 겸임시켰다. 장완은 승진하여 대장군,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었으며 안양정후(安陽亭候)로 봉해졌다.

당시 원수(元帥:제갈량)를 방금 잃었으므로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간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장완은 발탁되어 백관들의 위에 있게 되었지만, 슬퍼하는 모습도 없고 또 기뻐하는 모습도 없이 정신을 전일하게 하고 행동거지가 차분하여 평상시와 똑같았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장완을 점점 믿고 복종하게 되었다.

연의 원년(238)에 유선이 장완에게 조서를 내렸다.

- 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고 있고, 조예(曹叡)는 교만하고 흉악한 사람이다. 요동의 세 군은 그의 포학함으로 고통 받아 서로 규합하여 그와는 떨어져 거리가 있게 되었다. 조예는 대군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또 서로 공격하여 토벌하도록 했다. 옛날, 진(秦)이 멸망한 것은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반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러한 변란은 하늘이 내려 준 좋은 기회이다. 그대는 전쟁 준비를 하여 군사들을 통솔해 한중에 주둔하고, 오나라의 행동을 기다렸다가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호응하여 틈을 타서 행동하라.

또 장완에게 부서를 개설하도록 명령했다. 다음해에 장완에게 대사마로 승진시켰다.

동조연 양회(楊회)는 평상시의 성품이 간략한데, 장완과 대화를 할 때도 항상 응답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장완에게 양희를 헐뜯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공께서 양회와 말을 나누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은 양회가 윗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또한 심한 것이 아닙니까!"

장완이 말했다.

"사람이 마음이 다른 것은 각기 그 얼굴이 닮은 것과 같습니다. 그 앞에서는 순종 하고 뒤에서는 나쁜 말을 하는 것은 고인들이 경계로 했던 것입니다. 양회가 나의 생각이 옳다고 찬성한다면 그의 본심이 아닌 것이고, 나의 의견에 반대한다면 나의 과오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묵묵히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양회의 좋은 태도입니다."

또 독농(督農) 양민(楊敏)이 일찍이 장완을 비방하여 말했다.

"장완은 일하는 것이 모호하여 진실로 이전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양민의 이 말을 장완에게 말했다.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양민을 다스림을 청했지만, 장완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확실히 이전 사람만 못하므로 추궁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추궁하지 않기로 다시 결정하고, 오히려 장완의 모호한 일처리에 대해 추궁하려고 했다. 장완이 말했다.

"진실로 내가 이전 사람만 못하다면 이 일은 당연히 처리하지 못할 것이고, 이 일이 응당 처리되지 못하면 일을 모호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심문하겠습니까? "

후에 양민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양민이 반드시 죽게 될 거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장완은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양민은 중죄를 면하게 되었다. 그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과 도의를 갖고 있는 태도는 모두 이와 같았다.

장완은 과거 제갈량이 진천(秦川)을 자주 엿보았으므로, 길이 험난하고 운반하기 어려워 결국에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물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많은 배를 만들어 한수와 면수로부터 위흥(魏興)과 상용(上庸)을 습격하려고 했다.

마침 장완은 지병이 연속적으로 발작하여 제때에 행동하지 못했다. 조정에서 논의하는 관리들은 모두 만약 승리하지 못한다면 군사들의 퇴로가 매우 곤란하므로,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244년) 그리하여 후주는 장완에게 상서령 비의와 중감군 강유 등을 파견하여 조정에서 논의된 의견을 알렸다. 장완은 조정에서 논의된 의견을 접수한 이후에 후주에게 상소를 올려 말하였다:

- 세상에 만연한 독을 제거하고 재난을 없애는 것은 신의 직책이 처리할 일입니다. 신이 명령을 받아 한중에 주둔한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신은 어리석고 무능하며 열병이 겹쳐 계획한 일을 실행할 수 없어 아침저녁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는 아홉 주를 차지하여 세력을 뻗히고 있어 제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만일 동쪽과 서쪽이 힘을 합쳐 앞뒤로 호응한다면, 설령 뜻대로 신속하게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잠시 영토를 분열하여 잠식하여 우선 그들의 부분적인 힘을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와는 출병 약속을 두세 차례 계속하여 연이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전진하는 것도 후퇴하는 것도 어려워 실로 침식을 잊게 합니다.

저는 비위 등과 이렇게 상의하였으므로 적군이 아끼는 곳이고, 게다가 강족과 호족은 갈증이 나는 한을 그리워하며, 또 과거 한 부대가 강족을 침입했을 때, 위의 옹주자사 곽회(郭淮) 가 패배하여 달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장, 단점을 헤아려 보면, 양주 점령을 우선으로 해야 되므로 응당 강유를 양주자사로 임명해야만 합니다. 만일 강유가 출정하여 가서 하우(河右)를 제압한다면, 신은 군대를 인솔하여 강유의 뒤에서 계속 따라야 합니다. 지금 부현은 물길과 육로를 통해 사방으로 길이 통해 있으니,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호응할 수 있을 겁입니다. 만일 동북쪽으로 어떤 마비가 있다면, 앞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

이로부터 장완은 곧 부현으로 돌아가 주둔했고, 이후에 질병이 더욱 심해졌다.

연희 9년(246)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공(恭)이라 했다.

장완의 아들 장무(葬무)가 뒤를 이었고 수무장군(綏武將軍), 한성호군(漢城護軍) 으로 임명됐다. 위의 대장군 종회가 한성(漢城)에 도착하여 장무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 파와 촉에는 재능과 지혜가 있는 문인과 무인이 많은데, 그대와 제갈사원(諸葛思遠:제갈첨)에 이르러서는 초목에 비유되며, 나와 똑같은 천지의 기(氣)를 받았습니다. 옛 선인에 대한 존경은 지금이나 과거나 중시했던 일입니다. 서쪽에 도착하면 , 그대 부친의 산소를 차아가 받들어 인사하고, 묘지를 깨끗이 청소하여 경의를 표하려고 합니다. 선친의 산소 위치를 알려주기 원합니다! -

장무는 답장하는 편지를 써서 말했다.

- 같은 부류로써 선친의 묘지를 찾아보려는 생각이 융성함을 알았습니다. 세상일을 떠나 의뢰하거나 교류할 경우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망부는 과거 중병으로 부현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점치는 사람이 묘지의 길(吉)함을 점쳐서 부현에 안장시켰습니다. 그대가 서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으니, 수레를 굽혀 선친의 묘지를 가지런히 하고 경의를 표해 주십시오. 그대가 나를 보는 것과 같이 나의 부친을 대하는 것 은 안자(顔子)의 어짊입니다. 나는 그대가 상심하여 슬퍼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증가했습니다. -

종회는 장무의 답장을 받고, 그의 마음을 찬탄하였다. 부현에 도착한 후,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이 했다.

유선이 등애에게 투항한 후 장무는 부현에 있는 종회에게 갔는데, 교우의 예절로써 대해주었다. 장무는 종회를 따라 성도에 도착했지만 반란병에게 살해됐다. 장무의 동생 장현(葬顯)은 태자복(太子僕)의 직책에 있었는데, 종회는 또 그의 재능과 학문을 아꼈다. 장무와 같은 때에 죽었다.

유민은 좌호군(左護軍), 양위장군(揚威將軍)이 되어 진북대장군 왕평(王平)과 함께 한중을 지켰다. 위나라가 대장군 조상을 보내 촉을 습격했을 때, 논의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단지 성만을 지키며 나가서 적과 대항하지 않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자진하여 퇴각할 것이라고 했다. 유민은 남녀를 들녘으로 내보내 농사를 지으며 그곳에 있게 하고, 만일 적의 침입을 허락한다면 한중을 잃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하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왕평과 함께 흥세를 점령하고, 수많은 기를 꽃아 백여 리까지 이었다. 마침 대장군 비의가 성도로부터 도착하였으므로 위나라 군대는 즉시 후퇴했다. 유민은 공로가 있어 운정후(雲亭候)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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