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張翼은 자가 백공(伯恭)이고 건위군 무양현 사람이다. 고조부는 사공 장호 [주1] 이고, 


[주 1]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 장호(張浩)는 자가 숙명(叔明)이다, 율(律)과 춘추(春秋)를 정리했으며, 경사(京師)에서 유학하여, 광한태수 담찬(鐔粲), 한중의 이합(李郃), 촉군(蜀郡)의 장패(張霸)와 함께 사이가 좋았다. 대장군 등즐(鄧隲)이 장호를 불러 점차 상서복야로 옮겼고 나아가 팽성상(彭城相)이 되고, 은사(隱士: 세상(世上)을 피(避)하여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 여구막(隱士閭丘邈) 등을 천거하여 불려가 정위(廷尉---중국 진(秦)나라 때부터, 형벌을 맡아보던 벼슬---)에 배임되었다.

연광(延光) 3년(124), 안제(安帝)가 태자를 폐의하길 의논하자, 오직 장호와 태상(太常) 환언(桓焉), 태복 내력(來歷)와함께 불가(不可)하다고 말했다. 순제(順帝) 초에 장호는 사공(司空)에 배임되었고, 83세에 죽었다.

증조부는 광릉태수 장강[주2]이며, 


[주2] 속한서에서 이른다 : 장강(張綱)의 자는 문기(文紀)이고, 어려서 삼공의 아들로 경(經)에 밝고 행동을 닦아, 효렴에 천거되었으나 사도(司徒)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시험을 통과함으로 시어사(侍御史)가 되었다.

한 안(漢安: 141-144) 원년(141), 광록대부에 배임되었고, 시중(侍中) 두교(杜喬) 등 8명과 같은날 조를 받아 지절을 나눠 나아가 천하의 탐욕과 청렴을 순시해 묵수(墨綬)로 죄있는 자를 즉시 잡아들이고, 자사 이천석으로 역(驛)으로 표문을 올려, 위혜청충(威惠清忠)의 이름이 군국(郡國)에 떨치니 팔준(八儁)이라고 불렸다.

이 때, 대장군 양기(梁兾)가 백성을 침입해 소요를 일으켰고, 두교(杜喬) 등 7인이 모두 명을 받들어 사방으로 나갔는데 오로지 장강(張綱)만이 홀로 차바퀴를 묻어 낙양도(洛陽)에서 멈춰 가지 않으며 일렀다 : "이리와 늑대가 길을 막았는데 어찌 여우에게 〔죄를〕묻는가?"

이에 글을 올려 일렀다 :
------대장군 양기, 하남윤(河南尹) 불의(不疑)는 외척(外戚)의 지원으로 속여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음에도, 추요(芻蕘: 원래 소에게 먹이는 꼴과 땔나무, 또는 소를 먹이는 목동(牧童)과 꼴을 베는 나무꾼을 의미하기도 하며, 지위가 낮은 천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임)의 모습으로 안거(安居)하여 보호 양육되니, 오교(五教)를 널리 알려 전파하지 못하고, 일월(日月)을 보좌하지 못하니, 돼지를 봉(封)하고 뱀을 장(長)으로 삼는 전횡을 하여 탐욕하기를 만족할 줄 모르고, 좋은 물건을 좋아하며 멋대로 구는 것이 끝이 없으며, 여러차례 아첨을 심어 충량(忠良)을 해하니, 진실로 하늘의 위엄이 죄를 용서하지 않은 바 의당 사형을 더해야 합니다. 삼가 그 무군지심(無君之心)의 15가지 일을 왼쪽에 조항을 나누어 두니, 모두 충신(忠臣)들이 이를 가는 것입니다------

글이 상주되니, 경사(京師)가 떨리고 두려워했다.

이 때 양기(梁兾)의 여동생이 황후였는데 안에서 깊게 총애받아 양기 형제의 권력이 인주(人主: 임금)에 있으니, 순제(順帝)가 비록 장강의 말이 모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양기를 다스릴 마음이 없었다. 양기는 깊게 장강을 원망했다.

광릉(廣陵)의 도적 장영(張嬰) 등의 수만사람이 자사(刺史) 이천석(二千石)을 살해했는데, 양기가 장강을 함정에 빠트리려 하여 글을 올려 장강을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삼고, 소문을 퍼트려, 만약 장영을 죽이지 못하면 법으로 다스리려 하였다.

이전의 태수(太守)가 가면서 언제나 많은 병사를 요청했었는데, 장강이 배임 받았을 때 응당 병마가 얼마나 필요한지 조를 내려 물었으나, 장강은 병마는 필요치 않다고 대하여 이르고, 이에 홀로 수레를 타고 관직에 임해, 직접 장영의 누문에 도착해 화복(禍福)을 보였다.

장영이 크게 놀랍고 두려워, 달아나 성문을 닫으려 하였다. 장강은 또 문밖에서 관리와 병사를 흩어지게 하고, 가까운 자 10여명만 남긴 뒤, 장영이 믿을 만한 장로(長老)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게 하여, 장영과 서로 만나보기를 청하고, 본래의 변사(變事)에 대해서 묻고, 조은(詔恩: 천자의 조령으로 내린 은혜)을 보여주며, 장영을 초청하게 하였다.

장영이 장강의 뜻이 진실인걸 보고 바로 성밖으로 나와 장강을 만나봤다. 장강이 상좌(上坐)를 설치하고, 그 괴로움을 물어보며, 예를 다하며 말하여 일렀다 :

"전후의 이천석은 대다수 그 사람이 아니니, 국은(國恩)을 막고 방종하여 사사로움을 구했소. 향군(鄉郡)이 멀어, 천자께서 아침 저녁을로 들을 수 없으므로, 백성들이 서로 모임으로써 해(害)를 피했소. 이천석 신이 죄가 있으니, 그 것은 의가 아닌 것이오. 충신은 군주를 속이지 않음으로 스스로 영광되게 만들고, 효자는 그 아버지를 손상시키지 않음으로서 복을 구한다 하오. 천자(天子)는 성인(聖人)이라, 문덕(文德)을 보내고자 하였고, 그리하여 태수(太守)를 시켜 이곳으로 보냈고, 천자는 작위와 녹봉으로 서로 영광되게 생각한 것일 뿐, 형벌은 원하지 않았셨소. 지금 진실로 전화위복(轉禍為福)할 때입니다. 만약 의(義)를 듣고 불복한다면, 천자께서는 발칵 화내셔서 대병(大兵)을 구름같이 합치실테니 어찌 위난이 아니겠소?! 의당 깊이 그 이해(利害)를 생각해야 하오."

영이 듣고는 울며 일렀다 :

"변방의 어리석은 사람이 여러번 이천석의 침해와 억울한 누명을 받아 그 곤란함을 참을 수 없음으로, 이에 서로 모여 구차하게 살아 남은 것입니다. 명부(明府)께서 어짐이 초목(草木)에 미치니, 장영은 갱생(更生)의 은혜(澤)을 기다리겠으나, 다만 병기를 버리는 날에 자손까지 살해될까 두렵습니다."

장강이 일렀다. :

"어찌 그런 일이 있겠소?! 천지(天地)에게 약속하고 일월(日月)에게 맹세하는데, 작위(爵位)로서 보여지게 될 것인데 어찌 화(禍)가 있을 수 있겠소?!"

장영이 일렀다 :

"만약 그 죄를 용서 받는다면 모든 수령(首領)들은 농무(農畝: 농업)를 추구하며 평생동안 [沒齒] 은혜를 품고 덕을 받들 것이니, 작록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장영은 비록 큰 도적으로, 시작은 광폭(狂暴)하여 스스로 반드시 죽을 거라 알았지만, 장강의 말을 얻고는 확 트이고 밝음이 열려 고별하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이에 휘하의 만여명과 처자들을 손을 등뒤로 묶고 [面縛(면박)] 장강에게 와 항복했다

장강이 전부 묶인 것을 풀고는 위로하며 받아들여, 장영에게 말하여 일렀다. "경들 여러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해산하여 변경에서 [方垂] 외로울테니, 응당 조명(條名)을 올려, 반드시 봉상(封賞)을 받을 것이오"

장영이 일렀다 :

"돌아가 본래의 일을 하기를 빌고, 이름을 더렆히고 명시(明時: 평화(平和)스러운 세상(世上)---)를 오염시키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장강이 그 지성으로 각기 그 의를 따르므로, 친히 살 집을 안배했다.

자제가 관리가 되고 싶어하면 그 재능에 따라 직에 임명했고, 백성이 되고 싶다면 농상(農桑)을 권하여 전업(田業)이 아울러 풍부하여 남주(南州)는 안정되었다.

논공(論功)하면 장강은 응당 봉해져야 하나, 양기가 차단하여 막으므로 후(侯)를 받지는 못했다. 천자가 그 공을 아름답게 여겨, 그를 불러들여 쓰고자 했다.

장영 등은 글을 올려 군(郡)에서 2대(二歲)가 남기를 빌었다. 건강(建康) 원년(144) 병으로 죽었는데 이 때 36세였다.

장영 등 3백여 사람이 모두 최장(衰杖)을 들고 장강의 상 보내는 것이 낙양에 이르렀고, 매장이 끝나자 무덤을 올리고 사당를 세워 사시 사철 제사를 올리고, 사모하기를 부모가 [考妣] 상을 당한 것 같았다.

천자가 추념하기를 멈추지 않고, 조를 내려 포양(襃揚: 표창)하고 모든 아들을 랑(郎)으로 배수했다.

모두 명망과 공적이 있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그 주의 목을 겸임했을 대, 장익이 서좌로 임명됐다. 전안 말년에 효렴으로 천거됐고, 강양현의 장이 되었으며, 부릉현의 령으로 옮겼다. 이어 재동태수로 승진했으며, 여러 번 승진하여 광한ㆍ촉군태수까지 이르렀다.

건흥 9년(231)에 내강도독ㆍ수남중랑장이 되었다. 장익은 선천적으로 법률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습속이 다른 민족의 환심을 살 수 없었다. 이민족의 괴수 유주가 반역하여 난리를 일으키자, 장익은 병사를 들어 유주를 토벌하러 갔다. 그러나 유주를 토벌하지 못하고, 마침 부름을 받아 돌아가야만 했다. 그의 부하들은 모두 즉시 말을 달려 가서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익이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만족이 소란을 피워 토벌하러 왔:다가 임무를 다할 수 없어 돌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나를 대신할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쟁터에서 식량 수송과 곡물을 축적하여 적을 멸망시키기 위한 물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찌 쫓겨나는 이유를 빌어 공적인 임무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익은 군대를 통솔함에 있어 게으름이 없었고, 후임자가 도착하자 곧 출발했다. 마충은 장익이 세운 토대에 의지하여 유주를 소멸시켰다. 승상 제갈양은 이 일을 듣고 장익을 칭찬했다. 제갈양은 무공에서 출병할 때, 장익을 전군도독으로 삼고, 부풍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제갈양이 죽은 후, 전령군에 임명됐고, 유주를 토벌한 공로를 소급하여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다.

연희 원년(238)에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고, 점점 승진하여 독건위ㆍ가절이 되었으며, 승진하여 도정후로 봉해졌으며, 정서대장군이 되었다.

연희 18년(256)에 위장군 강유와 함께 성도로 돌아왔다. 강유가 다시 출병하라 것을 제의했을 때, 오직 장익만이 조정에서 논쟁을 하여, 국가가 작고 백성들은 피곤하므로 병력을 남용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강유는 듣지않고 장익 등을 이끌고 출정하여, 장익의 지위를 진남대장군으로 승진시켰다. 강유는 적도에 도착하여 위나라 옹주자사 왕경을 크게 격파시켰다. 왕경의 병사 가운데 조수에서 죽은 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장익이 말했다.

"전쟁을 그칠 만합니다. 다시 전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아가면 아마 이 큰 공로를 훼손시키게 될것입니다."

강유는 매우 노여워하며 말했다.

"뱀을 그리면서 발을 더하는 것이다."

강유는 끝내 적도에서 왕경을 포위했지만, 성은 함락시킬 수 없었다.

장익이 이론을 제기한 이래로, 강유의 마음은 장익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를 데리고 함께 행동했다. 장익 또한 부득이 따라갔다.

경요 2년(259)에 좌거기장군으로 승진했고, 기주자사를 겸임했다. 6년(263)에 강유와 함께 검각에 주둔하다가 일동 부현에 있던 종회에게 항복했다. 다음해 정월, 종회를 따라 성도에 이르렀다가 난리를 일으킨 병사에게 살해되었다.

화양국지에서 말하길, 장익의 아들은 장미張微 이며, 독지호학(篤志好學 : 뜻을 돈독히 하여 배움을 즐김)하니, 관직이 광한태수廣漢太守에 이르렀다.

진수의 평: 장익(張翼)은 강유(姜維)의 날카로움에 항거했고, 종예(宗預)는 손권(孫權)의 위엄에 대항하여, 모두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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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11:00:54 (*.148.47.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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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15:10:39
(*.104.141.18)
여기에 없는 주석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구라뱅뱅

2014.02.14
15:29:03
(*.49.168.253)
華陽國志曰:翼子微,篤志好學,官至廣漢太守。

화양국지에서 말하길, 장익의 아들은 장미張微 이며, 독지호학(篤志好學 : 뜻을 돈독히 하여 배움을 즐김)하니, 관직이 광한태수廣漢太守에 이르렀다.

재원

2014.02.16
14:17:22
(*.70.67.192)
반영하려고 했는데 이미 되어있군요. 이게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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