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전]]에서 분할
 
원소는 막내아들 원상(袁尙)을 사랑했는데, 용모가 아름다웠고,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주 :『논전(論典)』에 이르길 「원담(袁譚)은 장자로 자혜로웠고, 원상은 막내 아들로 잘생겼다. 원소의 아내 유씨(劉氏)는 원상을 사랑해 수차례 그의 재주를 칭찬하니, 원소 또한 그 용모를 빼어나게 여겨 그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원소는 죽었다. 유씨의 성품은 잔혹하여 원소가 죽자, 쓰러져 죽은 시신을 아직 초빈(草殯)하기도 전에 (원소가) 총애하던 첩 5명을 유씨가 다 죽였다. 죽은 자에게 아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지하에서 원소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 여겨, 이에 그들의 얼굴에 검은 칠을 하여 그 형상을 훼손하였다. 원상 또한 죽은 자의 일가족을 다 그렇게 죽였다」고 한다.]

심배(審配)와 봉기(逢紀)가 신평(辛評), 곽도(郭圖)와 권력을 다투었는데, 심배와 봉기는 원상을 좇았고 신평과 곽도는 원담을 따랐다. 많은 사람들이 원담이 장자라 하여, 그를 세우고자 하였다. 심배 등은 원담이 후사를 이으면 신평 등이 자기를 해할꺼라 여겨 원소의 본래 뜻을 따른다 하여, 이에 원상을 받들어 원소를 대신해 세웠다. 원담이 도착했으나, 위에 서지 못하자 스스로 거기장군(車騎將軍)이라 칭했다. 이 때문에 원담과 원상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태조가 북으로 원담과 원상을 정벌하였다. 원담은 여양(黎陽)에 진을 쳤는데, 원상은 원담에게 병력을 조금 보내고서는 이에 봉기를 시켜 원담을 따르게 하였다. 원담이 병력을 더 보태줄 것을 요구했지만, 심배 등이 의논하여 주지 않았다. 원담이 노하여 봉기를 죽였다.


[주 : 『영웅기(英雄紀)』에 이르길 「봉기의 자는 원도(元圖)이다. 처음 원소가 동탁을 떠나 도망쳐 나와서, 허유(許攸) 및 봉기와 같이 기주로 갔는데, 원소는 봉기가 총달(聰達)하고 계책이 있다 하여 그를 매우 친근히 신임하고, 함께 거사를 일으켰다.

후에 심배가 임용되었으나 봉기와 화목치 못했다. 혹 원소에게 심배를 참소하는 자가 있자, 원소가 봉기에게 물었는데 봉기가 (심배를) 칭찬하길


“심배의 천성은 강하면서도 곧으니, 옛사람들의 절개입니다. 그를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라 했다. 원소가 말하길


“그대는 그를 싫어하지 않았소?”


라 하자, 봉기가 대답하길


“예전에 다투었던 것은 사사로운 정이요, 지금 진언하는 것은 나랏일입니다”


라 했다. 원소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끝내 심배를 폐하지 않았다. 심배가 이 때문에 다시 봉기와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가 하수(河水)를 건너 원담을 공격하니, 원담이 원삼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원상은 병사를 나눠 원담에게 더해주고 싶었지만 원담이 그 병사를 끝내 빼앗아 버릴까 두려워 해, 이에 심배를 시켜 업(鄴)성을 지키게 하고, 원상 자신이 병사를 거느리고 원담을 도왔는데 태조와 여양에서 서로 대치하였다.

9월부터 2월까지(혹은 2월부터 9월까지=이 부분은 원문에도 착오가 있고, 교감이 이뤄지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성 아래서 크게 싸웠는데 원담과 원상은 패배하여 퇴각해 성으로 들어가 수비했다. 태조가 그들을 포위하자, 이에 밤에 달아났다. (태조가) 추격해 업성에 이르러, 그 지역의 보리를 거둬들이고, 음안(陰安)을 함락시킨 후, 군대를 이끌고 허도로 돌아왔다.

태조가 남으로 형주(荊州)를 정벌하여 군대가 서평(西平)에 이르렀다. 원담과 원상이 군대를 일으켜 서로를 공격하였는데, 원담이 패배하여 평원(平原)으로 달아났다. 원상이 급하게 공격하자, 원담은 신비(辛毗)를 태조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이에 돌아와 원담을 구원하고, 10월에는 여양에 이르렀다.


[주 :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실린 유표(劉表)가 원담에게 보낸 서한에 이르길:


「天篤降害,禍難殷流,尊公殂殞,四海悼心。賢胤承統,遐邇屬望,咸欲展布旅力,以投盟主,雖亡之日,猶存之願也。何寤青蠅飛於干旍,無極游於二壘,使股肱分 為二體,背膂絕為異身!昔三王五伯,下及戰國,父子相殘,蓋有之矣;然或欲以成王業,或欲以定霸功,或欲以顯宗主,或欲以固冢嗣,未有棄親即異,扤其本 根,而能崇業濟功,垂祚後世者也。


「하늘이 재앙을 내려 화난禍難이 도처에 흘러넘치는데 존공(尊公:곧 원소)께서 돌아가시어 천하의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후손이 사업을 이어 받으니 원근의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모두 온 힘을 다해 맹주에게 몸을 맡기고자 하며 비록 죽는 날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 소원을 품고 있습니다. 어찌 똥파리가 간정(干旍:干旌 곧 귀인)에 날아오르고 무극(無極:곧 비무기)이 양 쪽 진영에 노닐어 팔과 다리를 두 몸으로 만들고 등과 척추를 끊어 다른 몸으로 할 줄 알았겠습니까 ! 옛날 삼황오제에서부터 아래로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죽이는 일은 대체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 왕업을 이루고 싶어하거나 혹 패공霸功을 정하고 싶었다거나 혹 가문을 현달하게 하고자 했거나 혹 집안의 계승자를 견고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지 친족을 버리고 적에게 다가가 그 근본을 흔들고서 능히 사업을 이루어 후세에 전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若齊襄復九世之讎,士匄卒荀偃之事,是故春秋美其義,君子稱其信。夫伯游之恨于齊,未若(文公)〔太公〕之忿曹;宣子之 承業,未若仁君之繼統也。且君子之違難不適讎國,豈可忘先君之怨,棄至親之好,為萬世之戒,遺同盟之恥哉!冀州不弟之傲,既已然矣;仁君當降志辱身,以匡 國為務;雖見憎於夫人,未若鄭莊之於姜氏,兄弟之嫌,未若重華之於象傲也。然莊公有大隧之樂,象受有鼻之封。願棄捐前忿,遠思舊義,復為母子昆弟如初。」


마치 제나라 양공이 9대의 원수를 갚고 사개가 순언의 사업을 끝마친 것과 같은 일들은 춘추에서 그 도의를 아름답다고 여겼고 군자는 그 신용을 칭찬하였습니다. 무릇 백유(伯游:곧 순언)가 제나라에 원한을 품은 것은 태공(太公: 곧 원소)이 조조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고 선자(宣子: 곧 사개)가 사업을 이은 것은 인군(仁君:곧 원담)께서 부업을 이은 것만 못합니다. 또한 군자는 어려움을 피할 때에도 원수의 나라에 가지 않는 법인데 어찌 선군의 원한을 잊고 지극히 친한 사람과의 우호를 버리고 만세의 경계가 되어 동맹에게 부끄러움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기주(冀州:곧 원상)는 동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굴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인군仁君께서는 응당 뜻을 내리고 몸을 욕되게 하더라도 이로써 국가의 일을 바로잡아 고치는 것을 업무로 하여야 합니다. 비록 부인에게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정장공이 강씨에게 미움을 받는 것과 같지 않고 형제지간에 혐의가 있기는 하나 상이 순 임금에게 한 것처럼 오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공은 대수(大隧:自註)의 즐거움이 있었고 상은 유비에 봉해졌습니다. 원컨대 이전의 분노를 버리고 오래된 도의를 멀리 생각하시어 모자와 형제의 관계를 처음처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自註 : 큰 지하도(地下道). 유폐된 곳을 뜻함. 정(鄭)나라 장공(莊公)이 그의 어머니 무강(武姜)이 모반한 아우 공숙단(共叔段)을 도와 준 것을 증오하여 마침내 무강을 성영(城潁)에 안치하고서 “황천에 가기 전에는 다시 보지않겠다.”고 맹세하였다가, 뒤에 후회하여 영고숙(潁考叔)의 말을 따라 대수(大隧)를 뚫어 놓고 그 속에서 모자가 서로 만나 보아 옛날로 되돌아간 고사에서 비롯되었음.  [네이버 지식백과] 대수 [大隧]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又遺尚書曰:「知變起辛、郭,禍結同生,追閼伯、實沈之蹤,忘常棣死喪之義,親尋干戈,僵尸流血,聞之哽咽,雖存若亡。昔軒轅有涿鹿之戰,周武有商、奄之 師,皆所以翦除穢害而定王業,非彊弱之(事)爭,喜怒之忿也。故雖滅親不為尤,誅兄不傷義。今二君初承洪業,纂繼前軌,進有國家傾危之慮,退有先公遺恨之 負,當唯義是務,唯國是康。


또 원상에게 편지를 보내 이르길 :「변고가 신평, 곽도로부터 일어나 형제간에 재앙을 맺어 알백(閼伯:『좌전』에 보면 동생 실침(實沈)과 함께 광림(曠林)에서 살았는데 형제간에 서로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싸우다가 상구로 옮겼다고 되어 있다.)과 실침(實沈)의 종적을 좇았고 상체(常棣:≪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 상체<아가위 나무>의 꽃을 형제의 우애에 비유한 노래임. 전轉하여 형제兄弟간의 우애友愛를 비유하는 말.)에서의 사상死喪의 뜻을 잊고 친족간에 다툰 것을 알면 시신이 피를 흘리고 이를 들으면 오열할 일로 비록 (형제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하니 실로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옛날 헌원씨는 탁록의 전쟁이 있었고 주나라 무왕은 상과 엄에 군사를 보냈으나 모두 해악을 제거하고 왕업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지 강약을 다투고 감정적인 분노에 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친족을 멸해도 잘못이 아니었고 형을 죽여도 도의를 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두 분께서는 처음 홍업을 이어받고 이전의 궤도를 계승하고자 하는데 나아가서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걱정이 있고 물러나서는 선공의 유한遺恨을 저버리는 것이니 응당 오직 도의를 업무로 여기고 오직 국가를 평안하게 하셔야 합니다.


何者?金木水火以剛柔相濟,然後克得其和,能為民用。今青州天性峭急,迷于曲直。仁君度數弘廣,綽然有餘,當以大包小,以優容 劣,先除曹操以卒先公之恨,事定之後,乃議曲直之計,不亦善乎!若留神遠圖,克己復禮,當振旆長驅,共獎王室,若迷而不反,違而無改,則胡夷將有誚讓之 言,況我同盟,復能戮力為君之役哉?此韓盧、東郭自困於前而遺田父之獲者也。憤踴鶴望,冀聞和同之聲。若其泰也,則袁族其與漢升降乎!如其否也,則同盟永 無望矣。」譚、尚盡不從。


漢晉春秋載審配獻書於譚曰:「春秋之義,國君死社稷,忠臣死王命。苟有圖危宗廟,敗亂國家,王綱典律,親疏一也。是以周公垂泣而蔽管、蔡之獄,季友歔欷而行鍼叔之鴆。

 

왜 그런 것입니까? 금,목,수,화는 강하고 부드러움이 서로 도운 연후에야 조화를 얻어 백성들이 능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청주(青州:곧 원담)는 천성이 급하고 각박하여 시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합니다. 인군(仁君:곧 원상)께서는 대세를 헤아리고 도량을 크게 하여 넉넉히 남는 마음으로 응당 큰 것으로 작은 것을 포용하고 우월한 것으로 열등한 것을 용납하여 먼저 조조를 제거하여 선공(先公:곧 원소)의 원한을 끝내고 일이 정해진 연후에 시비를 가릴 만한 계책을 의논하여도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원대한 계획에 마음을 두고 자신의 욕심을 이겨 예법으로 돌아간다면 응당 군대를 떨쳐 길게 밀고 나가 왕실을 더불어 도와야지 만약 미혹되어 되돌아올 줄 모르고 틀린 줄 알면서도 고치질 아니한다면 비록 오랑캐라도 장차 비웃는 말이 있을 텐데 하물며 우리 동맹이 다시 능히 힘을 합쳐 그대를 위해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이는 한로(韓盧:명견)와 동곽(東郭:토끼)이 스스로 곤핍하여 농부의 수확이 되는 꼴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기대하건대 (형제가) 화해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싶습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된다면 원씨 집안은 한나라의 사직과 그 존망의 운명을 더불어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동맹은 영원히 희망이 없습니다.」  원담과 원상은 모두 따르지 않았다.


『한진춘추(漢晉春秋)』에 실린 심배가 원담에게 올린 글에 이르길(심배여담서):

<춘추>의 뜻에 따르면 나라의 임금은 사직을 위하여 죽고 충직한 신하는 왕명을 위하여 죽는다 하오. 진실로 종묘를 해하려는 모략과 나라를 패란하게 하는 행위가 있다면 왕의 질서와 법도는 친한 사람이든 소원한 사람이든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오,

이에 주공은 흐느끼며(垂泣) 관채의 죄를 다스렸고 계우는 흐느끼며(歔欷) *침숙의 짐주(鴆酒)를 행하였소.

 

何則?義重人輕,事不得已也。昔衛靈公廢蒯聵而立輒,蒯聵為不道,入戚以篡,衛師伐之。春秋傳曰:『以石曼姑之義,為可以拒之。』是以蒯聵終獲叛逆之罪,而曼姑永享忠臣之名。父子猶然,豈況兄弟乎!昔先公廢絀將軍以續賢兄,立我將軍以為適嗣,上告祖靈,下書譜牒,先公謂將軍為兄子,將軍謂先公為叔父,海內遠近,誰不備聞?

 

그것은 왜 그러한가? 도의가 무겁고 사람이 가벼운지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 부득이하였기 때문이네. 옛날 위령공은 괴외를 폐하고 괴첩을 세웠는데 괴외는 무도하여 척(戚)으로 들어가 찬위를 도모하니 위가 그를 정벌하였소. 춘추전에 이르길 :『석만고의 의로움으로 가히 이를 거절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로써 괴외는 끝내 반역의 죄를 얻었고 만고는 영원히 충신의 이름을 향유하게 되었네. 부자 간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형제 간 임에야! 일찍이 선공(=원소)은 장군을 폐출하여 존형(=원기)을 잇게 하고 우리 장군(=원상)을 세워 적사로 삼으니 위로는 신령(-선대)에 고하고 밑으로는 족첩(-족보)를 써서 남겼다. 선공은 장군을 조카라 칭했고 장군은 선공을 숙부라 칭했으니 세상에서 누가 이를 알지 못하겠는가?

 

且先公即世之日,我將軍斬衰居廬,而將軍齋于堊室,出入之分,於斯益明。是時凶臣逢紀,妄畫蛇足,曲辭諂媚,交亂懿親,將軍奮赫然之怒,誅不旋時,〔我〕將軍亦奉命承旨,加以淫刑。自是之後,癰疽破潰,骨肉無絲髮之嫌,自疑之臣,皆保生全之福。

 

이전 선공이 세상을 뜬 때에 나의 원장군(=원상)은 움막에 거하며 오복(五服)을 행하였고 장군(=원담)은 악실(堊室:상주가 거처하는 방)에 머물러 있었으니 출입(出入)의 분별이 이에 더욱 분명해졌소. 당시에 흉신 봉기는 망령되게도 쓸데없는 일을 계획하여 그릇된 말로 첨언하며 간사한 말로 아첨을 떨어 친밀한 친척들을 교란시켰네. (이에) 장군이 불 같이 화내며 떨쳐 일어나 봉기를 주살하니. 우리 장군 역시 역시 명(命)과 뜻(旨)을 받들어 (그 일족에게) 음형을 내렸소. 이 일이 있은 후 악창(瘡)은 쪼개져 터졌고 골육 간은 일말의 미움조차 없어졌으니 스스로 의심했던 자들은 모두 목숨을 간직하게 되었소.

 

故悉遣彊胡,簡命名將,料整器械,選擇戰士,殫府庫之財,竭食土之實,其所以供奉將軍,何求而不備?君臣相率,共衛旌麾,戰為雁行,賦為幣主,雖傾倉覆庫,翦剝民物,上下欣戴,莫敢告勞。何則?推戀戀忠赤之情,盡家家肝腦之計,脣齒輔車,不相為賜。

 

그러므로 모두들 강한 오랑캐를 보내고 명장을 간택하며 병기를 요정(料整.수효를 세고 정리함. 병장기를 날카롭게 다듬다)하고 병졸을 가려 취하고, 부고(府庫.관소의 곳간 등)의 자재를 두루 쓰고 식토(食土.논밭.식읍.알짜배기 땅)의 재화를 전부 꺼냈소. 그것이 장군(=원담)을 받드는 까닭이니 어찌 구하고자 하면 갖춰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군신이 서로를 이끌고 함께 국가를 지키고 전장에 나가서는 안행(雁行.居前하는 싸움)하고 군주에게 바치기 위해 부세를 거두었네 . 비록 곳간이 비고 인민의 물자가 없어진다 해도 상하가 기뻐 옹대 할뿐 감히 고달픔을 얘기하지 않았소. 무엇 때문인가? (주군을 그리는) 충정이 성(盛)하고, 집집마다 간뇌(肝腦)의 계책을 다한 것은 이와 입술, 수레의 덧방나무와 수레바퀴의 관계이기에 서로에게 무슨 물건을 주지 않는 것이네. (自註: 이는 곧 임금과 신민은 서로를 보완하는 일체의 관계이고 이해를 따져가며 행동하는 사이가 아님을 밝힌 것임)

 

謂為將軍心合意同,混齊一體,必當并威偶勢,禦寇寧家。何圖凶險讒慝之人,造飾無端,誘導姦利,至令將軍翻然改圖,忘孝友之仁,聽豺狼之謀,誣先公廢立之言,違近者在喪之位,悖紀綱之理,不顧逆順之節,橫易冀州之主,欲當先公之繼。

 

이는 장군을 위해 마음을 합치고 의도를 같이하여 하나의 단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성세와 위력을 모아서 도적을 막고 집안을 평안하게 해야 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네.

 

어찌 흉험하고 참특한 인간이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 간사한 이익으로 꼬셔 인도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번연히 의도를 바꿔 효우의 도리를 잊게 하고 이리와 승냥이의 간계를 듣게 하여 선공의 폐립에 관한 말을 변명하며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고 근래 상중에 있었던 지위에 위배해 기강의 도리에 어긋나고 역순의 절도를 돌아보지 않으며 기주의 주인을 마음대로 바꾸고 선공의 후계가 되고자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겠소?

 

遂放兵鈔撥,屠城殺吏,交尸盈原,裸民滿野,或有髡{髟剔}髮膚,割截支體,冤魂痛於幽冥,創痍號於草棘。又乃圖獲鄴城,許賜秦、胡,財物婦女,豫有分界。或聞告令吏士云:『孤雖有老母,輒使身體完具而已。』聞此言者,莫不驚愕失氣,悼心揮涕,

 

마침내 (장군이) 군대를 풀어 휘젖고 노략질하며 성민과 관민을 도살하니 맞댄 시체가 언덕에 수북하고 헐벗은 난민이 들에 가득했소. 혹 머리칼이 잘리고 피부가 드러난 자도 있고 사지가 몸으로부터 잘려나간 자가 있어 원혼은 저승에서도 신음하고 (길가의) 잡초에서도 상처를 호소하고 있소. 또 업성을 취할 요량으로 오랑캐들에게 재물과 부녀를 주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과의 경계선을 정하였소. 또한 혹자*가 (장군이) 사리(士吏)에게 고한 바를 들었는데 말하길 『나에게 비록 늙은 어머니가 있지만 몸이 온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했다는데,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고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없었으며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렸소.

 

使太夫人憂哀憤懣于堂室,我州君臣士友假寐悲歎,無所措其手足;念欲靜師拱默以聽執事之圖,則懼違春秋死命之節,貽太夫人不測之患,隕先公高世之業。

 

태부인(원소의 처 유씨)으로 하여금 집 안에서 우애분만(憂哀憤懣)하게 만드니 우리 주(=기주)의 군신사우(君臣士友)가 모두 눈을 뜬 채 밤을 보내며 비통함에 탄식하면서 그 수족을 둘 곳 조차 없네. 군대를 멈추고 조용히 집사의 의도를 듣고 싶으나 춘추에서의 목숨을 바치는 절개를 위반하여 태부인에게 예측하지 못한 환난을 끼치고 선공의 높은 업적을 타락시킬 까봐 두렵네.

 

且三軍憤慨,人懷私怒,我將軍辭不獲已,以及館陶之役。是時外為禦難,內實乞罪,既不見赦,而(屠辱各)〔屠各〕二三其心,臨陳叛戾。我將軍進退無功,首尾受敵,引軍奔避,不敢告辭。

 

또한 삼군이 비분강개하고 인민이 사사로운 분노를 품어 우리 장군은 부득이하게 관도(館陶=위군 관도현)에 늘어섰소. 당시에 바깥으로는 적을 막는 어려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실로 죄를 빌었으나 이미 사면을 받지 못하였는데 도각(屠各: 곧 흉노)이 배신을 하여 군진에 임하여 반란을 일으켰네. 우리 장군은 진퇴에 공이 없고, 머리와 꼬리에 적을 맞이하며 군을 이끌어 분주히 빠져나갔으니 감히 물러난 다는 말도 하지 못했소.

 

 

亦謂將軍當少垂親親之仁,貺以緩追之惠,而乃尋蹤躡軌,無所逃命。困獸必鬥,以干嚴行,而將軍師旅土崩瓦解,此非人力,乃天意也。是後又望將軍改往修來,克己復禮,追還孔懷如初之愛;而縱情肆怒,趣破家門,企踵鶴立,連結外讎,散鋒於火,播增毒螫,烽煙相望,涉血千里,遺城厄民,引領悲怨,雖欲勿救,惡得已哉!

 

또한 장군에게 말해 (장군이) 마땅히 약간이라도 골육의 도리를 지키고 추격을 늦추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으나 마침내 도망친 흔적을 따라 추격해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칠 곳도 없게 되었네. 궁지에 몰린 짐승은 반드시 싸울 기세로 덤벼드는 법이거늘. 이로써 급박하게 몰아넣으니 장군의 군대가 와해된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오.

이후에 장군이 과거를 고쳐 미래를 닦고(改往修來), 욕망을 억누르며 도리를 되찾아(克己復禮) (형제지간이) 본래의 우애를 회복하길 기대하였소. 허나 방자하여 온갖 성질을 부리고, 가문의 파국을 재촉하며 밖으로는 간절히 바라 바깥의 원수와 결탁하여 불길을 일으키고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쳐 봉화의 연기가 서로를 바라보게 하며 피가 천리를 흐르도록 하여 버려진 성곽과 액운을 만난 백성들이 목을 길게 내밀며 탄식하고 있네. 비록 구하고 싶지 않다하더라도 어찌 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故遂引軍東轅,保正疆埸,雖近郊壘,未侵境域,然望旌麾,能不永歎?

 

그러므로 동쪽으로 군사를 내고, 영토를 보전하고자 한 것인데 비록 교루를 가까이 하여 경역을 침공하지 않았다 하나 (군대의) 깃발을 본다면 어찌 길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소?

 

配等備先公家臣,奉廢立之命。而圖等干國亂家,禮有常刑。故奮敝州之賦,以除將軍之疾,若乃天啟于心,早行其誅,則我將軍匍匐悲號于將軍股掌之上,配等亦袒躬布體以待斧鉞之刑。若必不悛,有以國斃,圖頭不縣,軍不旋踵。願將軍詳度事宜,錫以環玦。」典略曰:譚得書悵然,登城而泣。既劫于郭圖,亦以兵鋒累交,遂戰不解。

 

심배 등은 본디 선공(=원소)의 가신. 그분께서 정한 폐립(=원담을 폐하고 원상을 세운)의 명을 따를 뿐이오. (또한) 곽도 등 나라의 일을 잘못 주관하여 본 가문(=원씨)을 그르친 자들은 도리에 따라 마땅히 벌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주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장군의 해악을 쳐 없앨 것인데, 만약 마음을 열어 일찍 그를 주살하도록 한다면 우리 원장군이 장군의 앞에 엎드려 슬프게 울부짖을 것이고 나 심배 등은 옷을 벗고 헐벗은 채로 도끼 밑에 목을 바칠 것이다. 만약 반드시 고치지 못하여 국가를 무너뜨릴만 하고 또 곽도의 목이 효수되지 않는다면 군대를 물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 원컨대 장군은 일의 마땅함을 상세히 고려하여 결정을 내려주기 바라오.」

 

『전략』에 이르길 「원담이 그 글을 받아보고 슬퍼져, 성 위에 올라 울었다. 곽도에게 협박당하고 또한 병력의 예봉이 누차 교전하여 마침내 전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원상은 태조가 북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담이 있는) 평원의 포위를 풀고 업성으로 돌아갔다. 원상의 장수 여광(呂曠)과 여상(呂翔)이 원상을 배반하고 태조에게 귀부하였는데, 원담은 다시 몰래 장군의 인수를 새겨 여광과 여상에게 주었다. 태조는 원담이 속인 것을 알고, 그와 혼인관계을 맺어 그를 안심시키고 이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원상은 심배와 소유(蘇由)에게 업성을 지키게 하고, 다시 평원에서 원담을 공격했다. 

태조가 진군하여 장차 업성을 공격하려 원수(洹水)에 도착하였는데, 업성과 거리가 50리였다. 소유가 (태조에게) 내부에서 호응하려고 했지만 모의가 누설되어, 심배와 성중에서 싸우다가 패배하고 탈출해 태조에게 달아났다. 태조가 마침내 진군해 공격하며 땅굴을 파자, 심배 또한 안에서 참호를 파서 대응하였다. 

심배의 장수 풍례(馮禮)가 군문을 열고 돌격하니, 그 안쪽의 태조의 병력은 3백명이었는데, 심배가 이를 알아채고 성 위에서 큰 돌을 떨어뜨려 책문(柵門)을 명중하니, 책문은 닫히고, 들어갔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태조가 마침내 포위하여 참호를 파는데 둘레가 40리였고, 처음에는 얕게 파게 하여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배가 이를 보고 웃으면서 싸우러 나가지 않고도 이로움을 챙기겠다고 생각하였다. 태조가 하룻밤에 이를 파게 하여 너비와 깊이가 2장이나 되게 하고 장수(漳水)의 물길을 터트려 물을 대니, 5월부터 8월까지 성중에 굶어 죽은 자가 반을 넘었다.

원상이 업성의 급보를 듣고, 병사 1만 여명을 거느리고 구원하러 돌아왔는데, 서산에 의지하여 오면서 동으로 앙평정(陽平亭)에 이르렀을 때 업성과 거리가 70리가 되자 부수(滏水)가 임하여서 횃불을 들어 성중에 보여주니, 성중에서도 횃불을 들어 서로 호응하였다. 심배가 성의 북쪽으로 출병시켜 원상과 함께 포위망에 대결하고자 하였다. 태조가 이를 도리어 공격하니, 패배하여 돌아왔고, 원상 또한 격파되어 패주하여 곡장(曲漳)에 의지하여 진영으로 삼으니, 태조가 마침내 이를 포위하였다.

합전(合戰)하기 전에 원상이 두려워서, 음기(陰夔)와 진림(陳琳)을 보내 항복을 빌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원상이 돌아와 남구(濫口)로 달아났지만, (태조가) 진격하여 다시 급히 포위하자, 그의 장수 마연(馬延) 등은 진영에 임하여 항복하니 군사가 크게 궤멸되고 원상은 중산(中山)으로 달아났다. 보충

보충: 위무제(魏武帝)의 상사(上事)에 말하기를 “신이 전에 아뢰옵기로 역적(逆賊) 원상(袁尙)이 돌아가니 바로 정예(精銳)들을 격려하여 이를 토벌(討伐)하였다 하였습니다. 이제 원상의 사람들은 크게 놀라 달아났고 부곡장(部曲將)들은 지킬 곳을 잃어 병사들을 이끌고 도망하였습니다. 신은 군사들로 진을 치되 견고한 갑옷을 입고[被堅] 날카로운 무기를 잡게 하였으며[執銳] 붉은 기를 펄럭이며[震燿] 용맹한 병사들로 벽력같이 소리치게 하니 (적들은 아군의) 깃발을 바라보고는 정신이 아득하였고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는 투지를 잃어 과(戈)를 던지고 갑옷을 풀어 버리니 둑이 무너지듯 하였습니다. 원상은 단기(單騎)로 달아났는데 버려둔 가짜[僞-조정에서 임명한 것이 아니었므로 ‘僞’라 썼음] 절(節)과 부월, 대장군(大將軍)과 강향후(邟鄕侯) 인장(印章) 각 1매, 투구[兜鍪] 19,620매를 (얻었사오며) 그들의 모(矛)와 순(楯), 궁(弓)과 극(戟)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하였다.

(태조군이) (원상의) 운송수레를 다 거두어 들이다가, 원상의 인수(印綬)와 절월(節鉞) 및 의물들을 얻게 되어 이를 그의 일가에게 보여주니, (업)성 중은 무너지고 말았다. 

심배의 형의 아들인 심영(審榮)은 동쪽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밤에 성문을 열어 내부에서 태조의 군대에 호응하였고, 성중에서 심배와 싸워서 심배를 사로 잡았다. 심배의 기세가 장렬(壯烈)하여 끝내 굽힌다는 말이 없으니, 보는 사람마다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그를 참수했다. 


[주 : 『선현행장(先賢行狀)』에 이르길 「심배의 자는 정남(正南)이며 위군(魏郡) 사람인데, 어려서 충렬(忠烈)하고 강개(慷慨)하여 범접할 수 없는 절개가 있었다. 원소가 기주를 다스리게 되자, 그에게 심복의 임무를 맡겨서 치중별가(治中別駕)로 삼았고, 아울러 막부(幕府)를 총괄하게 했다. 

처음 원담이 달아나자, 모두들 신비(辛毗)와 곽도(郭圖)의 집안이 탈출했다고 외쳤는데, 신평(辛評)의 집안만 혼자 잡히게 되었다. 심배의 형의 아들이 성문을 열고 병사를 안으로 들이게 되었을 때 마침 심배는 성의 동남쪽 누각 위에 있었는데, 태조의 병사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신비와 곽도가 기주를 패망시킨 것에 분노하여 이에 사람들 업성의 옥에 보내, 중치(仲治=누군지 불명확합니다. 아마도 문맥상 신평을 말하는 듯 합니다)의 집안을 가리키며 죽이게 했다. 

이때 신비는 군대에 있었는데, 성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달아나 옥으로 가서 그 형의 가족을 풀어주려 하였지만, 형의 일가는 이미 죽었다. 이날 심배를 사로 잡아서 장차 군막으로 보내려 하니, 신비 등이 도리어 말채찍으로 그 목을 치면서 욕하며 말하길


“이놈아(奴), 너는 오늘 진짜로 죽게 될 것이다!”


라 하니, 심배가 돌아보며 말하길


“이 개같은 놈아(狗輩), 진정으로 너 때문에 조씨가 우리 기주를 격파하게 되었으니,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또 그러면서 네가 오늘 살생(殺生)할 수 있겠느냐?”


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조조)이 그를 심배를 인견(引見)하였는데, 심배에게 일러 말하길


“누가 경의 성문을 열었는지 아오?”


라 하니 심배가


“모르오”


라 하니, 말하길


“경의 자식인 심영(審榮)이라 하오”


라 하니, 심배가


“어린 아이가 임용키에 부족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니!”


라 했다. 공이 다시 묻기를


“지난 날 내가 포위하였을 때, 무슨 궁노(弓弩)를 그리 많이 쏘았소?”


라 하니 심배가


“적었던 게 한스러울 뿐이오!”


라 했다. (조조가)


"경이 원씨 부자에게 충성하였는데, 또 직접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소"


라 하니, 그를 살려주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심배에겐 이미 굽히는 말이 없었으나, 신비 등은 호곡(號哭)하는 것이 그치지 않으니, 이에 그를 죽였다.

처음, 기주 사람 장자겸(張子謙)이 먼저 항복하였는데, 본래 심배와 친하지 않아, 웃으면서 심배에게 말하길


“이보오 정남, 경도 결국 나처럼 하는게 어떻소?”


라 하니, 심배가 괴로운 소리를 내며 말하길


“너는 항복한 포로가 되었고 나 심배는 충신이 되었으니, 비록 죽는다 해도 어찌 너처럼 살겠는가!”


라 했다. 사형을 집행함에 임하여, 병기를 쥐고 있던 자들을 질타하여 (자신을) 북으로 향하게 하면서 말하길


“내 임금이 북쪽에 계신다”


고 했다.

악자(樂資)의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 및 원위(袁暐)의 『헌제춘추(獻帝春秋)』에는 모두 태조의 병력이 성에 들어왔을 때, 심배는 성문 중에서 싸웠고, 패배하게 되자 우물 속으로 도망갔지만, 우물에서 잡혔다고 한다. 

신 송지가 보기에, 심배는 일대(一代)의 열사요, 원씨를 위해 죽을 신하이니, 어찌 운수가 사나운(數窮) 날을 당하였다고 우물로 몸을 피신하였다고 하니, 이것은 믿기 어렵고 진실로 바뀐 것이다. 악자와 원위의 무리가 끝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능히 그렇고 그렇지 않음을 식별치 못했으며 가벼이 글을 놀리고 망령되게 다른 단서가 생기게 하여, 그 책을 만든 것이다. 이같은 부류들은 정말 보고 들을 것을 무망(誣罔)하여, 의심과 오해가 훗날 생기게 족한 것이다. 이런 사적(史籍)의 죄인은 학문에 통달한 자는 취하지 않는 바이다.] 

고간이 병주를 들어 항복하니, 다시 고간을 병주자사로 삼았다.

태조가 업성을 포위하자, 원담은 감릉(甘陵), 안평(安平), 발해(渤海), 하간(河間)을 공략해 취하고, 중산(中山)에서 원상을 공격하였다. 원상은 고안(故安)으로 달아나 원희(袁熙)를 따라가고, 원담은 원상의 무리들을 다 거두어 들였다. 태조가 장차 그를 토벌하려 하자, 원담은 이에 평원(平原)을 함락하고 남피(南皮)을 병합하여, 직접 용주(龍湊)에 주둔하였다.

12월, 태조가 그 군문에 진을 치자, 원담은 나오지 않고 밤에 남피로 도망가 달아났다가, 청하(淸河)에 임하여 주둔하였다.

10년(206) 정월, 이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원담 및 곽도 등을 참수했다. 

원희와 원상은 그의 장수 초촉(焦觸)과 장남(張南)에게 공격당하니, 요서(遼西) ․ 오환(烏丸)으로 달아났다. 초촉은 스스로 유주자사라 호칭하며, 여러 군의 태수와 현령, 현장들을 몰아다 거느리며, 원씨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향하게 하였고, 벌려 놓은 병사들이 수만인데 백마(白馬)를 죽여 맹서하며 영을 내리길 “명을 어기는 자는 참수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각자 차례대로 (희생의) 피를 마셨다. 

별가 한형(韓珩)의 차례가 되자 말하길 “내가 원공 부자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는데, 지금 그들이 파망(破亡)하였지만 지혜로는 구원하지 못하고 용맹으로는 죽지 못해, 의(義)에 있어서 빠지게 되었소. 만약 조씨에게 북면(北面=임금으로 섬긴다는 의미)하는 것은 할 수 없소”라 했다. 자릴 같이 하던 자들이 한형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초촉이 말하길 “무릇 대사(大事)를 일으킬려면 마땅히 대의(大義)를 세워야 하고, 일의 성패여부는 한사람을 기다릴 수 없으나, 한형의 의지를 다하여 임금을 섬김을 면려(勉勵)할 수는 있소”라 했다.

고간이 반란을 일으켜 상당(上黨)태수를 붙잡고 병사를 일으켜 호구관(壺口關)을 지켰다. 악진(樂進)과 이전(李典)을 보내 격퇴케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11년(207) 태조가 고간을 정벌하였다. 고간이 그의 장수 하소(夏昭)와 등승(鄧升)을 남겨 성을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흉노의 선우(單于)에게로 가서 구원을 요청했으나 얻지 못하여, 혼자 여러 기(騎)와 더불어 도망갔는데, 남으로 형주로 달아나고자 하였으나, 상락(上洛) 도위(都尉)에게 붙잡혀 참수되었다. 


[주 : 『전략(典略)』에 이르길 「상락 도위인 왕염(王琰)이 고간을 사로잡으니, 그 공으로 후(侯)에 봉해졌다. 그 아내가 방에서 울었는데, 왕염이 부귀해지면 장차 다시 잉첩(媵妾)을 들여 자기의 사랑을 뺏을까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12년(208) 태조가 요서에 이르러 오환을 공격했다. 원상과 원희가 오환과 함께 군대를 돌이켜 싸웠으나 패주하여 요동으로 달아났지만, 공손강(公孫康)이 그를 꾀어 참수하고 그 목을 보내왔다. 


[주 : 『전략』에 이르길 「원상은 사람됨에 용력(勇力)이 있었기에 공손강의 군대를 탈취하고자 하여 원희와 모의하길


“지금 도착하였기에, 공손강이 반드시 서로 상견하게 되는데, 형의 손과 함께 그를 치면, 요동을 소유하여 오히려 땅을 넓힐 수 있습니다”


라 했다. 공손강 또한 마음으로 생각하길


“지금 원희와 원상을 취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설명할 방도가 없게 된다”


고 하였다. 이에 먼저 낭청 중에 정용한 무사들을 배치시켜 두고, 그런 후에 원희, 원상을 청하였다. 원상과 원희가 들어오자 공손강이 복병을 내보내 그들을 모두 결박하고 얼은 못에다 앉혔다. 원상이 추워 앉을 자리를 요구하자, 원희가 말하길


“머리가 이제 만리길을 가게 생겼는데(죽는다는 의미), 자릴 구해서 무엇하겠느냐!”


라 했다. 이에 참수했다.

원담의 자는 현사(顯思)이고, 원희의 자는 현혁(顯奕), 원상의 자는 현보(顯甫)이다」라 했다.

『오서(吳書)』에 이르길 「원상에게는 아우가 있어 이름이 매(買)인데, 원상과 함께 요동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조만전(曹瞞傳)』에 이르길 「원매()는 원상의 형의 아들인데, 상세하지 않다」고 한다.]

태조가 한형의 절개를 높이 여겨 누차 불렀으나 오지 않고, 집에서 죽었다. 


[주 : 『선현행장』에 이르길 「한형의 자는 자패(子佩)로 대군(代郡) 사람인데, 성품이 맑고 순수하며 아량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과 누이를 봉양하니, 그 일족들이 그의 효제(孝悌)함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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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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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2
17:06:06
(*.104.141.18)
여긴 번역 안 된 주석이 꽤 있군요.

코렐솔라

2013.11.24
20:44:15
(*.52.91.73)
심배여담서는 초송님의 번역(http://cafe.naver.com/sam10/417919)을 바탕으로 dragonrz님이 재번역(http://rexhistoria.net/159643)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코렐솔라

2017.03.17
17:10:38
(*.46.174.164)
유표가 원담, 원상에게 보내는 편지는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9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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