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여포전]]에서 분할


장막(張邈)의 자는 맹탁(孟卓)이고 (연주) 동평(東平)국 수장(壽張)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협(俠)으로 알려졌고 진궁(振窮-가난한 이를 구제함)하고 위급함을 구함에 아낌없이 집안을 기울이니 많은 선비들이 그에게 귀의했으며, 태조(太祖-조조. 이하 같음)와 원소가 모두 장막의 벗이었다. 공부(公府-삼공의 관부)에 징소되었다가 고제(高第-우수한 성적)로 기도위에 임명되고 진류(陳留)태수로 승진했다. 

동탁이 난을 일으키자 태조는 장막과 함께 앞서서 의병을 일으켰고, 변수(汴水) 싸움에서 장막은 위자(衛茲)를 보내 군사를 이끌고 태조를 뒤따르게 했다. 원소가 맹주가 된 후 교만하고 자만하는 기색을 띄자 장막은 정의(正議)로써 원소를 질책했다. 원소는 태조에게 장막을 죽이도록 했는데, 태조는 이를 거절하며 원소를 질책하며 말했다, 

“맹탁은 친한 벗이니 옳든 그르든 마땅히 용납해야 하오. 지금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했으니 서로 해쳐서는 안되오.” 

장막을 이 일을 알고 태조를 더욱 덕으로 대했다. 태조가 도겸(陶謙)을 정벌할 때 그 집안 사람들에게 이르길,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맹탁에게 가서 의지하라.”

고 하고, 그 뒤 돌아와 장막을 만나서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하니 그 친밀함이 이와 같았다.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을 좇으려 할 때 장막에게 들렀는데, 서로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맹세하니 원소가 이 일을 듣고 크게 원한을 품었다. 장막은 태조가 끝내 원소를 위해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하고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흥평 원년(194년), 태조가 다시 도겸을 정벌하자 장막의 동생 장초(張超)는 태조의 장수 진궁(陳宮), 종사중랑 허사(許汜), 왕해(王楷)와 함께 태조에게 모반할 것을 공모했다. 

진궁이 장막을 설득하며 말했다, 

“지금 웅걸(雄傑)들이 아울러 봉기하니 천하가 나뉘고 무너졌습니다. 그대는 천리에 걸쳐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사전지지(四戰之地-사방으로 적의 공격을 받는 땅.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칼을 움켜쥐고 노려본다면(撫劍顧眄) 또한 족히 인호(人豪-인걸, 호걸)가 될 만합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남에게 제어당하고 있으니 비루하지 않습니까! 지금 연주는 군사들이 동쪽을 정벌하느라 비어있습니다. 여포는 장사(壯士)로 싸움을 잘해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으니(善戰無前) 만약 잠시 그를 맞아들여 함께 연주를 다스리고 천하 형세를 관망하며 시사(時事)가 변통(變通)하기를 기다린다면 또한 한 시대를 종횡할 수 있습니다.” 

장막이 이를 좇았다. 

당초 태조는 진궁에게 군을 이끌고 동군(東郡)에 남아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내 그 군사들로 동쪽으로 여포를 맞아 연주목(兗州牧)으로 삼았다. 군현(郡縣)이 모두 호응했고 다만 견성(鄄城), 동아(東阿), 범(範)현만이 태조 편에 남아 수비했다. 

태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와 복양(濮陽)에서 여포와 싸웠는데 태조 군이 불리하여 백 여 일을 서로 대치했다. 이 해는 날이 가물었고 충황(蟲蝗-누리)이 일어 곡식이 부족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라 여포는 동쪽으로 가서 산양(山陽)에 주둔했다.

2년 사이에 태조는 여러 성들을 모두 되찾았고, 거야(鉅野-연주 산양군 거야현)에서 여포를 격파하니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劉備)에게로 달아났다. (8) 

(8) [영웅기] – 여포는 유비를 만나보고 그를 매우 공경했다. 유비에게 말했다, 

“나는 경과 더불어 같은 변경 땅 사람이오. 나는 관동(關東)에서 거병한 것을 보고 동탁을 주살하고자 한 것인데, 내가 동탁을 죽이고 동쪽으로 나오니 관동의 제장들 중에 나를 편안히 하는 자는 없고 모두 나를 죽이려고 했소.” 

유비를 청해 장막 안의 부인의 상(床)위에 오르게 하고는, 부인에게 절하도록 하고 술을 따르며 먹고 마시고 유비를 동생이라 불렀다. 유비는 여포의 말이 무상(無常-수시로 변함)함을 보고 겉으로는 태연했으나 내심 기쁘지 않았다.

장막은 여포를 뒤따르며 장초(張超)를 남겨 가속들을 거느리고 옹구(雍丘-진류군 옹구현)에 주둔하도록 했다. 태조가 이를 공격해 몇 달 동안 포위하여 함락하고 장초와 그 가속들을 참수했다. 장막은 원술에게 가서 구원을 청하려다 미처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9) 

(9) [헌제춘추]獻帝春秋 – 원술이 존호(尊號)를 칭할 것을 의논하자 장막이 원술에게 말했다, 

“한(漢)은 화덕(火德)에 의거하여 끊겼다가 다시 흥하니, 은덕과 혜택이 풍성하게 흘러 명공(明公)을 탄생시켰습니다. 공(公)은 축(軸-굴대, 중추적 지위)에 거처하며, 들어서는 상석(上席)에 앉아 누리고, 나가서는 뭇 사람들이 바라보는 분이니, 화산(華山)과 곽산(霍山)도 이보다 높지 못하고 깊은 샘도 이처럼 풍성하지 않습니다. 가히 외외탕탕(巍巍蕩蕩-높디높고 넓디넓다)이라 이를 만하고 더불어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데, 어찌 이를 버리고 칭제(稱制)하려 하십니까? 

복(福)이 채워지지 못하고 화(禍)가 새어 나올까 두렵습니다. 장주(莊周-장자)가 교제(郊祭)에 희생으로 쓰이는 소에 대해 칭하길, 여러 해 동안 잘 기르고 먹이며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힌다 한들 난도(鸞刀-고리에 방울이 달린 칼)로 도살당해 묘문(廟門)으로 들어갈 뿐이니 그때에 이르러 저 혼자 송아지로 돌아가고 싶어 한들 어찌 가능한 일이겠냐고 했습니다.” 

/ 본전(本傳-여포장홍전)에 의하면 장막은 원술에게로 가다 미처 이르지 못하고 죽었다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원술이 존호를 칭하는 일에 대해 간언했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상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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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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