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여포전]]에서 분할

진등(陳登)은 자가 원룡(元龍)이고 광릉(廣陵)에서 위명(威名)이 있었다. 또한 여포를 기각(掎角-군을 나누어 협공함)하여 공을 세워 복파장군(伏波將軍)이 더해졌는데 39세에 죽었다. 그 뒤 허사(許汜)와 유비가 형주목 유표(劉表)와 함께 자리했는데, 유표는 유비와 함께 천하인들에 관해 논했다. 


허사가 말했다,


“진원룡(陳元龍)은 호해(湖海-강호)의 선비이나 호기(豪氣-오만한 기풍)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유비가 유표에게 말했다,


“허군(許君)의 견해가 옳습니까, 아니면 그릅니까?”


유표가 말했다,


“그르다고 하자니 이 사람(허사)이 빼어난 선비라 의당 허언(虛言)은 하지 않았을 터이고, 옳다고 하자니 원룡의 명성이 천하에 두텁구려.”


유비가 허사에게 물었다,


“군(君-그대)이 호(豪)라고 말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허사가 말했다,


“예전 전란을 만나 하비를 지나가다 원룡을 만났소. 원룡은 주인과 빈객의 예의도 없었으니,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은 큰 상(床)에 누워있고 빈객인 나는 상(床) 아래에 있게 했소.” 

유비가 말했다,


“군(君)은 국사(國士)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소. 지금 천하에 대란이 일어 제왕이 그 거처를 잃었으니, 군(君)은 집안일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며 세상을 구할 뜻을 품어야 마땅하나, 구전문사(求田問舍-밭을 구하고 집을 사러 다님. 사사로운 이익만 추구함)할 뿐 채택할 만한 견해조차 없으니 이 때문이 원룡이 군(君)을 꺼린 것이오. 무슨 까닭으로 군(君)과 대화하겠소? 나 같았으면 백척 누각 위에 누운 채 군(君)은 땅위에 눕혀 놓았을 것이오. 어찌 다만 상(床) 위와 아래의 차이 뿐이었겠소?”


유표가 크게 웃었다. 이에 유비가 말했다, “만약 원룡처럼 문무(文武)와 담지(膽志-담력과 포부)를 갖춘 자는 응당 고대에서 구할 뿐, 창졸간에 그와 비견될 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9)

(19) [선현행장]先賢行狀 – 진등(陳登)은 충량(忠亮-충성되고 현명함), 고상(高爽-높고 시원함), 침심(沈深-진중함?)하여 대략(大略)이 있었으니 어려서부터 세상을 바로하고 백성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 재적(載籍-서적)을 널리 읽고 우아한 문예(文藝-문학과 기예)가 있었으니 구전(舊典-옛 제도와 문물 or 옛 서적)과 문장(文章)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었다. 나이 25세에 효렴에 천거되어 동양장(東陽長-서주 광릉군 동양현의 현장)에 제수되니,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기르며 백성들을 보살피다 몸을 상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세상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는데, 주목(州牧) 도겸(陶謙)은 표를 올려 진등을 전농교위(典農校尉)로 삼았다. 이에 (진등은) 토전(土田-논밭)을 돌아보며 농사에 적합한지를 살피고 모두 수로를 뚫고 물을 대어, 갱도(粳稻-메벼, 찰지지 않고 메진 벼)가 풍성히 쌓이게 되었다. 

사명을 받들어 허도에 이르니 태조는 진등을 광릉태수로 삼고, 은밀히 무리를 모아 여포를 도모하도록 명했다. 진등이 광릉에 있을 때 상벌을 밝게 살피고 위신(威信-위엄과 신망)을 널리 펼치니 해적(海賊) 설주(薛州)가 스스로 손을 묶고 귀부했다. 기년(期年-만 1년이 되는 날)에 이르기 전에 공(功)을 이루어 백성들이 외복하고 경애하니 진등이 고하길,


“이제 가히 쓸 만하다”


고 했다. 태조가 하비에 도착하자 진등은 군병(郡兵-광릉군의 군사)들을 이끌고 군의 선구(先驅-선두,선봉)에 섰다. 이때 진등의 동생들이 하비성 안에 있었는데 여포는 진등의 세 동생을 볼모로 잡고 화친하기를 청했다. 진등은 뜻을 굳게 지키며 흔들리지 않으니, 진격하여 포위함이 날이 갈수록 급박해졌다. 여포의 자간(刺姦-죄법을 관장하던 장군부 속관) 장홍(張弘)은 뒤에 처벌받을 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진등의 세 동생을 이끌고 달아나 진등에게로 나아갔다. 

여포가 복주(伏誅-처형됨)된 후 진등은 그 공으로 복파장군이 더해지니 강(江), 회(淮) 사이에서 심히 환심(歡心)을 얻었고, 이에 진등은 강남(江南)을 탄멸(呑滅-병탄하여 멸망시킴)할 뜻을 품었다. 손책은 군사를 보내 광기성(匡琦城)에서 진등을 공격했다. 적이 막 당도했을 때 그 깃발과 갑옷이 강을 뒤덮을 정도였다. (진등의) 군하(群下-수하)들은 모두 이르길, 적 병력이 군병(郡兵)의 10배에 이르러 항거할 수 없으니, 군사들을 이끌고 피하여 성을 비우면 (적군은) 물에 익숙한 자들(水人)이라 뭍에 오래 거처할 수 없을 것이니 필시 잠시후에는 군을 이끌고 물러갈 것이라고 하였다. 진등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 땅을 진수하고 있소. 옛날 마문연(馬文淵-후한 초 복파장군 마원)이 이 지위에 있을 때 능히 남쪽으로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여러 적(狄-이민족 명칭)들을 멸했소이다. 내가 흉특(凶慝)한 무리를 제압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찌 도적놈들을 피해 달아나겠소! 출명(出命)하여 나라에 보답하고 의(義)에 기대어 난을 평정하고 천도(天道)에 순응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소.” 

이에 성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는데, 약점을 드러내보이며(示弱) 출전하지 않고 장사(將士-장졸)들은 입에 재갈을 물고 조용하니 마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진등은 성 위에 올라 형세를 관망하여 가히 공격할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장사들에게 신령(申令-하령)하여 밤새 병기를 정비하게 하고, 날이 새자 남문(南門)을 열고는 군을 이끌고 적 둔영으로 진격하며 보기(步騎)로 그 후방을 초략했다. 적(賊)은 당황하여 비로소 결진(結陳)했으나 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진등은 손수 북을 잡고 이 틈을 타 군사를 풀었다. 마침내 적군은 대파되어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진등은 승세를 타 추격하여 1만을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았다. 

적(賊)은 군사들을 상한데 분노하여 그 후 다시 대군을 일으켜 진등에게로 향했다. 진등은 자신의 병사로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겨 공조(功曹) 진교(陳矯)를 보내 태조에게 구원을 청했다. 진등은 은밀히 성 밖 10리 되는 것을 군영의 처소로 삼고 땔나무를 많이 베어오게 했다. 두 개를 하나로 묶어 서로 10보 간격으로 가로 세로로 두고는 밤중에 불을 일으키니 땔나무 묶음이 불타올랐다. 성 위에서 칭경(稱慶-축하의 말을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구원군이 도착해 기뻐하는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는 말로 보입니다)하니 마치 대군이 도착한 것처럼 보였다. 적이 이 불을 보고는 놀라서 궤주하니 진등은 군을 이끌고 추격해 1만을 참수했다. 

진등을 동성(東城)태수로 올렸다. 광릉의 관원과 백성들이 진등의 은덕에 감복하여 군(郡)을 떠나 진등을 뒤따랐고 노약자들은 포대기에 업힌 채 뒤쫓았다. 진등이 이들을 타일러 돌아가게 하며 말했다,


“태수가 경들의 군(郡)에 있어 빈번히 오(吳)의 침입을 받았으나 다행히 이길 수 있었소. 경들은 어찌 영군(令君-현령의 경칭)이 없다고 근심하시오?”


손권이 마침내 장강 바깥을 걸터앉아 차지하니, 태조는 매번 대강(大江-장강)에 임할 때마다 탄식하며 ‘진원룡(陳元龍-진등)의 계책을 일찍 쓰지 않아 봉시(封豕-큰 멧돼지. 여기서는 손권 비유)가 발톱과 이빨을 기를 수 있게 했다’고 한스러워했다. 문제(文帝)는 진등의 공을 추념하여 진등의 아들인 진숙(陳肅)을 낭중(郎中)으로 삼았다. 

※ 참고 [후한서] 화타열전 중 

광릉태수 진등이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생기고 얼굴이 붉어지고 음식을 먹지 못했다. 화타가 맥을 짚어보고 말했다, “부군(府君-태수의 경칭)의 위(胃) 안에 벌레가 있어 종기와 성물(腥物-비린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시 탕약 2승(升-되)을 달여 두 번 먹였다. 잠시 후 3승(升) 분량의 벌레 같은 것을 토해냈는데 (토해낸 것은) 머리가 붉고 움직이며 반신(半身)이 생선의 회와 같았다. (진등은) 고통스러워하다 곧 치유되었다. 화타가 말했다, “이 병은 3기(期) 뒤에 재발할 것이나 양의(良醫)를 만나면 가히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 기일에 이르러 진등의 병이 재발했으나 이때 화타가 없어 마침내 죽었다.

진수의 평: 

진등(陳登)과 장홍(臧洪)은 모두 영웅의 기개와 장사의 절개가 있었으나 진등은 성년이 되어 세상을 떠나 공적을 세우지도 못하였고, 장홍은 약소한 군대로서 강대한 적을 대하여 원대한 뜻을 세우지도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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