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陶謙)은 자가 공조(恭祖)이고 단양사람이다.(18) 

[18] 오서(吳書) - 도겸의 아비는 예전에 여요餘姚 현장을 지냈다. 도겸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는데, 처음부터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현縣에 소문이 났다. 14세가 되었으나 오히려 비단을 꿰매어 깃발을 만들고 죽마竹馬를 타고 놀므로, 고을의 아이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옛 창오태수蒼梧太守인 같은 현의 감공甘公이 나갔다가 그를 만났는데, 그 용모를 보고는 특이하게 여겨 불러서 수레를 함께 타고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여, 딸을 처妻로 삼는 것을 허락했다. 감공의 부인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첩이 듣기로, 도씨 집안 아이는 절도가 없어서 오만하게 노닌다는데, 어찌 이같이 딸아이를 허락 하셨습니까?”


감공이 말했다.


“저 사람은 기이한 용모이므로, 자라면 반드시 크게 성공할 것이오.”


마침내 처로 삼게 했다.


젊었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므로 유생이 되었고, 주와 군에서 벼슬을 했으며, 무재로 천거되어 노현의 현령에 임명되었다.[19] 

[19] 오서(吳書) - 도겸(謙)은 강직하고 절개가 있는 인물로서 젊어서 효렴(孝廉)에 선발되었고 상서랑(尙書郞)에 제수되었으며 서현(舒縣)의 령(令)에 임명되었다. 여강군수(廬江郡守) 장반(張磐)은 도겸과는 같은 군 출신의 선배인 동시에 도겸의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으므로 도겸을 특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도겸은 이것을 매우 치욕스럽게 생각하였다. 與眾還城,因以公事進見,坐罷,磐常私還入,與謙飲宴,或拒不為留。常以舞屬謙,謙不為起,固彊之;及舞,又不轉。磐曰:「不當轉邪?」曰:「不可轉,轉則勝人。」由是不樂,卒以搆隙。謙在官清白,無以糾舉,祠靈星,有贏錢五百,欲以臧之。謙委官而去。

유주자사로 승진하고 중앙에서 불러 의랑에 임명되었으며, 거기장군 장온의 군사행동에 참여하여 한수를 토벌하기 위해 서쪽으로 갔다.[20] 

[20] 오서(吳書) - 會西羌寇邊,皇甫嵩為征西將軍,表請武將。召拜謙揚武都尉,與嵩征羌,大破之。後邊章、韓遂為亂,司空張溫銜命征討;又請謙為參軍事,接遇甚厚,而謙輕其行 事,心懷不服。及軍罷還,百寮高會,溫屬謙行酒,謙眾辱溫。溫怒,徙謙於邊。或說溫曰:「陶恭祖本以材略見重於公,一朝以醉飲過失,不蒙容貸,遠棄不毛, 厚德不終,四方人士安所歸望!不如釋憾除恨,克復初分,於以遠聞德美。」溫然其言,乃追還謙。謙至,或又謂謙曰:「足下輕辱三公,罪自己作,今蒙釋宥,德 莫厚矣;宜降志卑辭以謝之。」謙曰:「諾。」又謂溫曰:「陶恭祖今深自罪責,思在變革。謝天子禮畢,必詣公門。公宜見之,以慰其意。」時溫于宮門見謙,謙 仰曰:「謙自謝朝廷,豈為公邪?」溫曰:「恭祖癡病尚未除邪?」遂為之置酒,待之如初。


이때 서주의 황건 무리가 난을 일으키자,조정에서는 도겸을 서주자사에 임명하였다. 그는 황건 무리를 쳐부수어 달아나도록 했다. 

동탁의 난이 발발하자, 각 주와 군의 병사들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천자는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사방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도겸은 사자를 보내어 샛길로 가서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했으므로 안동장군,서주자사로 승진하고 율양후에 봉해졌다. 이 당시 서주 백성들은 부유하여 곡물도 충분하게 비축하였으므로, 매우 많은 유민들이 그곳에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도겸은 도의를 위배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했다. 광릉태수였던 낭야 사람 조욱은 서주의 명사로 충성스럽고 정직하였으나 소원시되었고,(21) 조굉등은 아첨하는 사악한 소인들인데도 도겸은 그들을 가까이하고 임용했다. 따라서 형법과 정치는 형평을 잃고, 선량한 사람이 대부분 그들의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형세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21] 사승의 후한서(謝承後漢書) - 昱年十三,母嘗病,經涉三月。昱慘戚消瘠,至目不交睫,握粟出卜,祈禱泣血,鄉黨稱其孝。就處士東莞綦毌君受公羊傳,兼該群業。至歷年潛志,不闚園圃,親疏 希見其面。時入定省父母,須臾即還。高絜廉正,抱禮而立,清英儼恪,莫干其志;旌善以興化,殫邪以矯俗。州郡請召,常稱病不應。國相檀謨、陳遵共召,不 起;或興盛怒,終不迴意。舉孝廉,除莒長,宣揚五教,政為國表。會黃巾作亂,陸梁五郡,郡縣發兵,以為先辦。徐州刺史巴祇表功第一,當受遷賞,昱深以為 恥,委官還家。徐州牧陶謙初辟別駕從事,辭疾遜遁。謙重令揚州從事會稽吳範宣旨,昱守意不移;欲威以刑罰,然後乃起。舉茂才,遷廣陵太守。賊笮融從臨淮見 討,迸入郡界,昱將兵拒戰,敗績見害。


하비성 사람 궐선은 스스로 천자라고 했는데, 도겸은 처음에 그와 동맹을 맺어 약탈을 일삼았다. 후에 도겸은 궐선을 죽이고 그의 군대를 거두어들였다. 

초평 4년 (AD 193)에 조조는 도겸을 정벌하고 십여 개의 성을 공격하여 취했으며, 팽성에서 도겸과 크게 싸웠다. 도겸의 군대는 패한 후 도주하였는데, 죽은 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으며, 사수는 시체로 막혀 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도겸은 물러나 담성을 지켰다. 조조는 양식이 부족하였으므로[22]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22] 오서(吳書) - 조공(曹公)의 부친(조숭)이 도겸의 관할하에 있던 태산(泰山)에서 살해되니, 그 허물은 당연히 도겸에게 돌아갔다. 태조는 도겸을 토벌하려고 생각했으나 그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도겸의 주와 군의 군대를 일시에 해산시키도록 할 것을 상주했다. 詔 曰:「今海內擾攘,州郡起兵,征夫勞瘁,寇難未弭,或將吏不良,因緣討捕,侵侮黎民,離害者眾;風聲流聞,震蕩城邑,丘牆懼于橫暴,貞良化為群惡,此何異 乎抱薪救焚,扇火止沸哉!今四民流移,託身他方,攜白首於山野,棄稚子於溝壑,顧故鄉而哀歎,向阡陌而流涕,饑厄困苦,亦已甚矣。雖悔往者之迷謬,思奉教 於今日,然兵連眾結,鋒鏑布野,恐一朝解散,夕見係虜,是以阻兵屯據,欲止而不敢散也。詔書到,其各罷遣甲士,還親農桑,惟留常員吏以供官署,慰示遠近, 咸使聞知。」謙被詔,乃上書曰:「臣聞懷遠柔服,非德不集;克難平亂,非兵不濟。是以涿鹿、阪泉、三苗之野有五帝之師,有扈、鬼方、商、奄四國有王者之 伐,自古在昔,未有不揚威以弭亂,震武以止暴者也。臣前初以黃巾亂治,受策長驅,匪遑啟處。雖憲章敕戒,奉宣威靈,敬行天誅,每伐輒克,然妖寇類眾,殊不 畏死,父兄殲殪,子弟群起,治屯連兵,至今為患。若承命解甲,弱國自虛,釋武備以資亂,損官威以益寇,今日兵罷,明日難必至,上忝朝廷寵授之本,下令群凶 日月滋蔓,非所以彊幹弱枝遏惡止亂之務也。臣雖愚蔽,忠恕不昭,抱恩念報,所不忍行。輒勒部曲,申令警備。出芟彊寇,惟力是視,入宣德澤,躬奉職事,冀效 微勞,以贖罪負。」又曰:「華夏沸擾,于今未弭,包茅不入,職貢多闕,寤寐憂歎,無日敢寧。誠思貢獻必至,薦羞獲通,然後銷鋒解甲,臣之願也。臣前調穀百 萬斛,已在水次,輒敕兵衛送。」曹公得謙上事,知不罷兵。


태조가 팽성(彭城)으로 진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자 도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저항하였고, 청주자사 전해(田楷)가 와서 도겸을 구하려고 하니 태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신(臣) 송지(松之)의 의견(案)으로, 당시 천자(天子)는 장안(長安)에 있었고, 조공(曹公 : 태조)은 오히려 정치를 보좌하지 못했다. 병력을 출동시킬 조서는 중지하자, 오히려 조씨(태조)가 출병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흥평 원년 (AD 194)에 조조는 재차 동쪽 정벌에 나서서 낭야와 동해의 몇개 현을 공략하여 평정시켰다. 도겸은 두려워하며 단양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마침 이때, 장막이 조조를 배반하고 여포를 맞아들였으므로 조조는 군대를 돌려 여포를 맞아들였으므로 조조는 군대를 돌려 여포를 공격했다. 이 해 도겸이 병으로 죽었다. [23]

[23] 오서(吳書) - 도겸이 죽었을 때 나이는 63세였으며, 장소(張昭) 등은 그를 애도하는 글을 지었다. 그의 죽음을 비통해 하였다. 「猗歟使君,君侯將軍,膺秉懿德,允武允文,體足剛直,守以溫仁。令舒及盧,遺愛于民;牧幽暨徐,甘棠是均。憬憬夷、貊,賴侯以清;蠢蠢妖寇,匪侯不寧。唯帝 念績,爵命以章,既牧且侯,啟土溧陽。遂升上將,受號安東,將平世難,社稷是崇。降年不永,奄忽殂薨,喪覆失恃,民知困窮。曾不旬日,五郡潰崩,哀我人 斯,將誰仰憑?追思靡及,仰叫皇穹。嗚呼哀哉!」謙二子:商、應,皆不仕。

도겸의 두 아들인, 도상(陶商)과 도응(陶應)은 모두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진수의 평>

공손찬은 역경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전멸을 당했다. 공손도는 포학하고 자제력이 없었으며, 공손연은 더욱 더 흉악해져서 그들의 종족마저 명망시키게 하였다. 도겸은 혼란으로 인해 걱정하다가 죽었고, 장양은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주군을 지배했지만 일반 백성들만도 못하였으니 실제로 평론할 가치가 없다. 장연•장수•장로는 도적의 생활을 하면서도 근심을 떨쳐 버리고 선조들의 제사를 지켰으니 이들을 공손찬 등과 비교하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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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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