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張楊)은 자가 치숙(稚叔)이며 운중군(雲中郡) 사람으로, 무용이 있어 병부에서 일을 하였으며 무맹종사(武孟從事)가 되었다. 


영제 말기 천하가 어지러워 황제가 소황문小黃門 건석蹇碩을 총애하였으므로, 서원상군교위西園上軍校尉로 삼고, 경도에 영을 세웠으며(軍) 사방을 막고자 하여 천하의 호걸을 불러 편, 비로 삼으니 태조와 원소등이 모두 교위가 되어 이에 속했다.(24)

[24] 영제기(靈帝紀) - 이때 원소는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에서 중군교위(中軍校尉)에, 태조는 의랑에서 전군(典軍)교위로, 포홍(鮑鴻)은 둔기교위(屯騎校尉)에서 하군교위(下軍校尉)에, 조융(趙融)과 풍방(馮芳)은 조군교위(助軍校尉)에, 하모(夏牟)와 순우경(淳于瓊)은 좌우교위(左右校尉)에 임명되었다.

병주자사 정원이 장양에게 군대를 통솔하여 건석에게로 가게 하여 임시로 사마에 임명시켰다. 영제가 붕어하고, 건석이 하진에게 살해되었다. 장양은 또 하진에게 파견되어 고향인 병주로 돌아와 병사들을 모집하여 천여 명을 얻었으며, 여 전히 상당에 머물며 산적을 토벌했다. 

하진이 패하자 동탁은 난을 일으켰다. 장양은 자기 병사들을 인솔하여 호관(壺關)에 있는 상당태수를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했다. 다만 많은 현을 공략하여 수천 명의 병사를 모으게 되었다. 산동(동중국)에서는 동탁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대가 일어났다. 그 맹주인 원소가 하내까지 왔을 때, 장양은 원소와 합류하고 도 흉노의 선우 어부라(於夫羅)와 함께 장수 일대에서 주둔했다. 선우는 반역을 꾀하였지만, 원소와 장양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선우가 장양을 납치하여 함께 떠나자, 원소는 대장 국의에게 추격을 명령했으며, 업현의 남쪽에서 이들을 격파시켰다. 선우는 또 장양을 데리고 예양에 도착하여 도료장군 경지(耿祉)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시켜 다시 병력을 일으켰다. 동탁은 장양을 건의장군, 하내 태수에 임명했다. 

천자가 하동(河東)에 있을 때, 장양은 군사들을 이끌고 하동의 안읍현에 이르니 안국장군(安國將軍)에 임명되고 진양후(晋陽侯)에 봉해졌다. 장양은 천자를 맞이하여 낙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여러 장수들이 반대했다. 장양은 부임지인 하내의 야왕현(野王縣)으로 돌아왔다. 

건안 원년(196)에 양봉•동승•한섬이 천자를 모시고 옛 서울로 돌아갔지만, 식량이 매우 부족했다. 장양은 식량을 가지고 길에서 천자를 맞이하여 낙양으로 돌아왔다. 장양이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 천자는 천하 사람들과 함께 살고 함께 망합니다. 다행히 공경대신들이 있으니, 저는 외부의 어려움을 방지해야만 하는데, 무엇 때문에 수도에서 일을 도모하려 하겠습니까? " 

장양은 야왕현으로 돌아갔으며, 곧바로 대사마에 임명되었다.(25) 

[25] 영웅기(英雄記) - 장양은 성품이 어질고 온화하여 위형이 없었다. 아랫사람들이 모반을 꾀하였으나 발각되어 잡혀오자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용서하면서 더는 묻지 않았다.

장양은 평소 여포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조조가 여포를 포위하였을 때, 장양은 그를 구하려고 했지만, 갈 방법이 없었다. 이에 동시東市로 출병하여, 멀리서 구원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장양의 대장 양추가 장양을 살해하고 조조에게 호응했지만, 장양의 장수 수고(眭固)는 양추를 살해해고 그의 병사들을 이끌고 북방의 원소와 합류하려고 했다. 조조는 사환을 파견하여 맞아 싸웠으며, 견성에서 이들을 격파시키고 수고를 참수하였으며, 그의 군대를 모두 거두어들였다(26)

[26] 전략(典略) - 수고(眭固)의 자는 백토(白免)로서 양추를 살해하고 군대를 사견(射犬)에 주둔 시켰는데, 그 당시 무당이 쉬고에게 깨우치며 말하기를, “장군은 자가 토(兎)이고 이 읍의 이름이 견(犬)이오. 토끼가 개를 만나면 그 형국은 반드시 놀라는 것이니, 마땅히 군대를 급히 이동시켜 떠나시오”라고 했으니, 쉬고는 듣지 않았다가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수고가 코에이 삼국지에는 휴고로 나오는 놈으로 배송지 주에 眭,申隨反 라 하여 수로 읽어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진수의 평>

공손찬은 역경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전멸을 당했다. 공손도는 포학하고 자제력이 없었으며, 공손연은 더욱 더 흉악해져서 그들의 종족마저 명망시키게 하였다. 도겸은 혼란으로 인해 걱정하다가 죽었고, 장양은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주군을 지배했지만 일반 백성들만도 못하였으니 실제로 평론할 가치가 없다. 장연•장수•장로는 도적의 생활을 하면서도 근심을 떨쳐 버리고 선조들의 제사를 지켰으니 이들을 공손찬 등과 비교하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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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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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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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8
15:53:53
(*.104.141.18)
한문 띄어쓰기 수정

구라뱅뱅

2013.09.25
17:31:01
(*.49.168.253)
天子之在河東,楊將兵控安邑,천자가 하동(河東)에 이르렀을 때, 장양은 군사들을 이끌고 하동의 안읍현에 도착하여
집해에서는 楊將兵至安邑 이라 표기되어있네요.

在 와 至 에 대해서 명확히 써야 할듯요.

천자가 하동河東에 있을 때, 장양이 兵을 이끌고 안읍에 이르니

## 무제기 흥평2년 기사를 보면, 천자가 장안의 난을 피해 황하를 건너 하동 안읍으로 왔음이 나옵니다.

코렐솔라

2013.09.25
17:36:26
(*.0.203.44)
넵,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라뱅뱅

2013.09.25
18:01:42
(*.49.168.253)
乃出兵東市,遙為之勢。야왕현 동쪽 저자에서 출병하여 여포에게 성원을 보냈다.

이에 동시東市로 출병하여, 멀리서 구원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코렐솔라

2013.09.25
18:04:03
(*.0.203.44)
수정했습니다.

venne

2014.04.07
11:49:28
(*.203.36.95)
[25] 영웅기(英雄記) - 楊性仁和,無威刑。下人謀反,發覺,對之涕泣,輒原不問。

장양은 성품이 어질고 온화하여 위형이 없었다. 아랫사람들이 모반을 꾀하였으나 발각되어 잡혀오자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용서하면서 더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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