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처: 고원님 블로그, 史랑방  
 

공손도(
公孫度)는 자가 승제(升濟)이고, 본래는 요동군 양평현(襄平縣) 사람이다. 

공손도의 부친 공손연(公孫延)은 어떤 사건으로 관리의 추적을 피해서 현도군(玄?郡)에서 살았고, 공손도는 군의 낮은 벼슬아치로 임명되었다. 당시 현도태수 공손역(公孫域)의 아들 공손표(公孫豹)는 열여덟 살로 요절했다. 어린 시절 공손도의 이름은 표 (豹)였으며, 나이도 공손역의 아들과 같았으므로, 공손역은 그를 친자식처럼 사랑하였고 스승에게 보내어 학문을 닦도록 하였으며, 그를 위해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다. 

나중에 유도과(有道科)에 천거되어 상서랑에 임명되었으며 그 다음에는 기주자사로 승진되었지만, 터무니없는 소문으로 해서 파면 당했다. 그와 같은 군 출신인 서영(徐榮)이 동탁의 중랑장으로 임명되자, 공손도를 추천하여 요동태수가 되게 했다. 

※「후한서」권57 사필전 - 건녕 2년(영제, 169년), 조서를 내려 유도지사(有道之士)를 천거토록 하니 사필(謝弼)이 동해의 진돈(陳敦), 현도의 공손도(公孫度)와 함께 (천거된 후) 대책(對策,황제의 책문策問에 대한 응답)을 갖추어 모두 낭중(郞中)에 제수되었다  (※ 한나라의 향거리선제 아래에서는 주나 군국에서 무재, 효렴, 유도 등의 명목으로 인재를 추천하면 황제의 시험을 거쳐 고급관원으로 출사하는 관문인 낭관에 임명됨)

※ 공손도의 요동태수 취임 (189년?) - 동탁집권은 189년(중평 6년) 8월의 일이고 여기 공손도전 맨 뒤에서도 공손도가 요동을 점거한 것을 역시 중평 6년으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한편,「후한서」권74 下 원소유표열전 下에서는 “공손강은 요동 사람이고 그의 부친인 공손도는 처음 관리를 피해 (달아나) 현토(玄兔,중화서국본 교감기에서 동한서간오를 인용하며 玄菟의 오기로 추정)의 하급 관리(아전)(小吏)가 되었다가 점차 (정식관원으로) 벼슬이 올라 중평 원년(184년)에 본군(本郡,즉 요동군)으로 돌아와 태수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여기「삼국지」공손도전에서는 동탁의 심복인 서영과의 관계나 공손씨가 요동을 점거한 기간을 189년-238년의 50년 간으로 특정 하는 등 상세하게 적은 것을 볼 때 이「후한서」기록은 (六의) 오기이거나 와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자치통감」에서는 공손도의 요동태수 취임과 그 뒤 평주목 자칭, 제왕의 의식을 흉내 낸 것 등을 모두 함께 묶어서 초평 원년(190년) 조에 수록하고 있습니다.

공손도는 현도군의 작은 관리로부터 집을 일으켰으므로, 요동군의 사람들에게 경시 당했다. 이보다 앞서 요동 속국의 공손소(公孫昭)는 양평현 영(令)의 지위에 있었을 때, 공손도의 아들 공손강(公孫康)을 불러 오장(伍長)으로 임명했다. 

공손도는 요동태수로 부임한 후 공손소를 체포하여 양평 시장에서 때려 죽였다. 

군내의 호족과 명가인 전소(田韶) 등은 오랫동안 우대를 받았지만 은혜를 갚을 줄 몰랐으므로 모두 법에 따라 처형하였는데, 대가 끊기 고 멸망한 집은 백여 가구에 이르렀으므로, 군 전체를 놀라게 했다. 공손도는 동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를 치고, 서쪽으로는 오환 을 공격하였으므로 그의 위세는 밖까지 이르렀다. 

초평 원년(190)에 공손도는 중원지역이 혼란스러운 것을 알고 자신과 친한 관원 유의(柳毅)와 양의(陽儀) 등에게 말했다. 

"한 왕조의 운명은 끝나려 하므로 나는 제군 등과 왕업을 취하기로 결정했소." [1]

[1]「위서魏書」– 공손도(公孫度)가 유의(柳毅), 양의(陽儀)에게 이르길, 참서(讖書,참위서)에서 손등(孫登)이 응당 천자(天子)가 될 것이라 했는데 태수의 성(姓)이 공손(公孫)이고 자(字)가 승제(升濟)이며 升(승)은 즉 登(등)이라 했다.

그 당시 양평현의 연리(延里) 사(社)에 커다란 돌이 나타났는데, 길이가 한 장쯤 되고, 그 아래에는 작은 돌 세 개가 그것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공손도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한 선제(宣帝)의 관석(冠石)의 징조이고, (※) 또 마을 이름은 당신의 부친(공손연)의 성함과 같습니다. 사(社)는 토지를 관리하는 귀신이므로, 당신이 토지(천자의 지위)를 지배하고, 삼공이 당신을 보좌한다는 징후입니다." 

※ 冠石之祥 –「한서」권27 오행지 中之上 이나 권75 휴홍전 등에 의하면, 전한 소제(昭帝) 원봉(元鳳) 3년(BC 78)에 태산(泰山) 내무산(萊蕪山) 남쪽에 큰 돌이 서 있는 걸 발견했는데 높이 1장 5척, 크기 48위(圍)이고 땅 속에 8척 깊이로 박혀 있으며 돌 셋이 발처럼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옛 고인돌이나 거석문화 흔적을 이때 발견한 것으로 보이며 위에 공손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휴홍(眭弘)이「춘추」의 뜻을 빌어 당시의 다른 징조들과 함께 이를 ‘필부가 천자가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였다가 집정하고 있던 곽광(霍光)의 미움을 사 혹세무민한 죄로 처형당하는데, 그 5년 뒤 무제의 증손인 선제(宣帝)가 민가에서 추대되어 황제가 되자 이를 그 징조가 증험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공손도는 매우 기뻐했다. 

원래 하내태수였던 이민(李敏)은 군의 유명인사로서 공손도가 하는 일을 싫어했지만, 그한테 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바다로 해서 도망갔다. 공손도는 격노하여 그의 부친의 묘를 파헤쳐 관을 쪼개고 시체를 불태웠으며 그의 종족을 주살했다. [2] 

[2]「진양추晉陽秋」– 「진서」이윤전 (※이민(李敏)의 아들)에 의하면 이신李信)은 이민을 뒤따르다 새(塞) 밖으로 나갔는데, 20여 년을 지나도록 장가들지 않았다. 주리(州里) 사람인 서막(徐邈)이 (※)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삼국지」서막전에 의하면 서막은 연국 계현 출신이고「진서」이윤전에 의하면 이윤은 요동군 양평현 출신으로, 서막과 이민 집안이 서로 郡縣이 같지는 않고 州(여기선 유주)가 같을 뿐입니다. 州里(人)는 보통 고향이나 동향인으로 풀이하는데 꼭 출신군현이 같다는 의미는 아니고 같은 州 출신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쓰입니다.

“후사가 없는 것보다 더 큰 불효가 없는 법인데, 어찌 종신토록 장가들지 않는 것이오!” 이에 처를 얻어 아들 이윤(李胤)을 낳고는 처를 내보내고 항상 거상(居喪)의 예(禮)를 치르는 것처럼 하며 근심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 몇 년 뒤에 죽었다. 이윤은 태어나서 부모를 알지 못했는데, 견식을 갖춘 나이가 되자 소식(蔬食,채소반찬 만으로 밥을 먹음)하고 슬퍼하며 또한 3년 상(喪)을 치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존망(存亡,생사)을 알지 못했으므로 신주를 세우고 이를 받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고 출사하여 그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 신 송지(松之,삼국지 주석자인 배송지裵松之)가 보건대, 본전(위 공손도전 본문)에서는 이민이 그 집안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갔다고 했으나 다시 (여기서는) 아들과 서로 헤어졌다고 하니 그 연고가 상세하지 않다.

그는 요동군을 구분하여 요서중료군(遼西中遼郡)을 세우고, 그곳에 태수를 두었다. 

바다를 건너 동래군(東萊郡)의 여러 현을 정복하여 영주자사를 두었다. 그는 스스로 세워 요동후(遼東侯)ㆍ평주목(平州牧)이 되고, 그의 부친 공손연을 건의후(建義侯)로 봉했다. 

※ 遼西中遼郡 - 문장구조상 ‘요서중료군’이나 ‘요서군과 중료군’ 이 두 가지 경우가 다 가능한데, 중화서국본 표점에 따라 ‘요서중료군’으로 풀었습니다. 

한편「자치통감」중화서국본(자치통감에서도 원문이 같음) 표점에는 ‘요서군과 중료군’으로 되어 있는데 군현이름이 두 글자인 통례에 비추어서 이렇게 본거 같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요서군이 있으므로 다시 중복되는 이름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기존 요동군의 서쪽 지역으로서 요수 서쪽이나 중간지대에 해당하는 곳을 관할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명명한 것으로 볼 수 있겠죠. 한편 張舜徽의「삼국지사전」에도 ‘요서중료군’으로 해설되어 있습니다.

(추가: 아무래도 '요서중료군' 자체가 군명은 아닌듯하고, "요동군을 갈라 요서(=요수 서쪽) 땅에 '중료군'을 설치했다"로 읽는 게 더 정확한 거 같습니다. 당시 요동군은 요수(=지금의 요하) 동쪽에 국한되지 않고 서쪽에도 속현이 있었는데 이를 따로 떼어 내어 '중료군'을 새로 신설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한 나라 두 왕조(고조와 광무제)의 제묘를 세우고, 

※ 원굉(袁宏)의「후한기」– (초평 원년, 190년) 요동태수 공손도가 평주목(平州牧)을 자칭하고 한나라 세조(世祖)의 묘(廟)를 세웠다.

단(檀)과 선( )을 양평 성남에 설치하여 하늘과 땅에 제사지냈으며, 적전의식 을 행하고 열병식을 하였으며, 난거(鸞車)에 올라 구류(九旒)를 이용하고 모두( 頭)를 사용하는 기사와 우림기(羽林騎 ; 근위 병) 병사들의 호위를 받았다. 

조조는 상주하여 공손도를 무위장군으로 임명하게 하고, 영녕향후(永寧鄕侯)로 봉하게 하자, 공손도는 말했다. 

"나는 요동에서 왕 노릇할 뿐인데, 무엇 때문에 영녕향후가 되겠습니까!" 

건안 9년(204)에 공손도는 인수를 무기창고 속에 감춰 두었다. 공손도가 죽은 후, 그의 아들 공손강이 자리를 계승하였으며, 동생 공손공(公孫恭)을 영녕향후에 임명했다. (※ 공손도 재위 : 189-204)

건안 12년에 조조는 삼군(요서ㆍ요동ㆍ우북평)의 오환족을 정벌하고, 유성(柳城)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원상 등은 요동으로 도망갔지만, 공손강은 원상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보냈다. 이 일은 《무제기》에 기록되어 있다. 

조조는 공손강을 양평후(襄平侯)에 봉하고 좌장군으로 임명했다. 공손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공손황(公孫晃)ㆍ공손연(公孫淵) 등 은 어렸기 때문에, 모두들 동생 공손공을 내세워 요동태수로 삼았다.  (※ 공손강 재위 : 204 - ?)

위 문제는 황제에 즉위한 후, 사신을 보내어 공손공을 거기장군으로 임명하고 부절을 주고 그를 평곽후(平郭侯)로 봉했으며, 공손강에게는 대사마라는 관위를 추증했다. 

※ 삼군오환(三郡烏丸) – 오환족은 원래 동호(東胡)의 후손으로 추정되고 묵돌(묵특)이 동호, 월지 등 주변 민족을 격파해 흉노제국을 건설한 이래 흉노에 복속했습니다. 그러다 후한 광무제가 중국을 재통일할 때 오환돌기가 함께 활약하기도 했는데, 그 뒤 오환족을 유주, 병주 경내에 나누어 거주하게 하면서 기병자원으로 활용하며 흉노, 선비, 예맥 등을 막는 울타리 구실을 하게 합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나 순이(順夷)―역이(逆夷) 개념의 일환인데, 오환은 당시 여러 북방민족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로 취했음) 그러다 후한 말 삼국시대에 우북평, 요서, 요동(속국) 세 군의 오환이 반란을 주도하거나 원소에 협력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을 받게 되고 (전통적으로 최대 적대국인 흉노는 당시 분열된 채 중국에 내속되어 크게 쇠퇴한 상황이었음) 이들을 三郡烏丸이라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삼군오환은 뒤에 원씨가 패망하는 과정에서 조조에 의해 평정되고 조위의 기병으로 활용됩니다.

당초 공손공(公孫恭)은 병으로 음경이 소실되어 엄인(閹人,고자)이 되었고 열약(劣弱,열등하고 유약함)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공손연전]]으로 분할 

<진수의 평>

공손찬은 역경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전멸을 당했다. 공손도는 포학하고 자제력이 없었으며, 공손연은 더욱 더 흉악해져서 그들의 종족마저 멸망시키게 하였다. 도겸은 혼란으로 인해 걱정하다가 죽었고, 장양은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주군을 지배했지만 일반 백성들만도 못하였으니 실제로 평론할 가치가 없다. 장연•장수•장로는 도적의 생활을 하면서도 근심을 떨쳐 버리고 선조들의 제사를 지켰으니 이들을 공손찬 등과 비교하면 더 낫다.
분류 :
위서
조회 수 :
5872
등록일 :
2013.05.03
11:38:35 (*.148.48.73)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1941/8bc/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941

코렐솔라

2013.07.18
15:54:57
(*.104.141.18)
믿고 보는 사랑방

무명

2013.10.15
15:05:51
(*.102.90.79)
공손경을 공손공으로 고치셔야 할 듯 합니다.

코렐솔라

2013.10.15
15:17:34
(*.0.203.147)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72093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79914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30641
190 위서 하안전 [1] 재원 2013-05-03 4642
189 위서 <배송지주>환범전 재원 2013-05-03 3839
188 위서 <배송지주>이승전 재원 2013-05-03 3968
187 위서 <배송지주>필궤전 재원 2013-05-03 3471
186 위서 <배송지주>정밀전 재원 2013-05-03 3844
185 위서 <배송지주>등양전 재원 2013-05-03 3824
184 위서 조상전 재원 2013-05-03 6425
183 위서 조진전 재원 2013-05-03 7021
182 위서 조휴전 재원 2013-05-03 5947
181 위서 조홍전 재원 2013-05-03 6635
180 위서 조순전 재원 2013-05-03 4591
179 위서 조인전 재원 2013-05-03 10242
178 위서 하후연전 [1] 재원 2013-05-03 10314
177 위서 한호전, 사환전 재원 2013-05-03 4033
176 위서 하후돈전 [1] 재원 2013-05-03 10171
175 위서 장로전 [3] 견초 2013-05-03 6098
174 위서 장수전 [2] 견초 2013-05-03 5168
173 위서 장연전 [1] 견초 2013-05-03 4785
172 위서 공손연전 [1] 재원 2013-05-03 6448
» 위서 공손도전(공손강, 공손공, 공손연) [3] 재원 2013-05-03 5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