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하후돈夏侯惇의 자는 원양元讓이고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하후영夏侯嬰의 후손이다. 14세에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배웠는데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모욕하자 그를 죽였고 이로 인해 그의 강직한 기풍이 알려지게 되었다. 태조(=조조)가 처음 거병한 이래 하후돈은 늘 비장裨將으로 정벌을 수행했다. 
 
태조가 분무장군奮武將軍의 직을 행할 때, 하후돈을 사마司馬로 삼아 백마白馬에 따로 주둔시켰고, 절충교위折衝校尉로 승진시켜 동군태수東郡太守를 겸하게 했다.
 
태조가 도겸을 공격할 때 하후돈을 남겨 복양濮陽을 수비하게 했다. 장막張邈이 모반하여 여포를 맞이했는데 태조의 가솔들이 견성鄄城에 있어 하후돈이 경군輕軍으로 (견성으로) 나아가다가 여포와 조우해 교전했다. 여포는 군을 물려 마침내 복양에 입성하여 하후돈 군의 치중輜重을 습격하여 탈취했다. 
 
(여포가) 장수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고는 하후돈을 사로잡아 보화寶貨를 요구하니 하후돈의 군중軍中이 두려움에 떨었다. 이에 하후돈의 장수 한호韓浩가 군사들을 지휘해 영문營門에 둔치고 군리軍吏와 제장諸將들을 불러 모두 각자 담당하고 있는 부部를 단속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여러 군영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하후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를 인질로 잡고 있는 자들을 질책하여 말했다, “너희들이 흉역凶逆하게도 감히 대장군을 사로잡아 겁박하고도 살기를 바라는 것인가! 내가 도적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어찌 장군 한 명 때문에 너희들을 용서하리”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하후돈에게 말했다 “응당 국법國法이 이러하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리고 병사들을 재촉해 하후돈을 인질로 잡고 있는 자들을 공격하게 하자 두려움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다만 자용資用을 얻어 떠나려 했을 뿐입니다.” 한호가 여러 차례 책망하며 모두 참수했다. 
 
하후돈이 풀려나고 난 뒤 태조가 이를 듣고 한호에게 말했다, “경이 이처럼 한 건 가히 만세萬世의 법이오.” 이에 영을 내려 지금 이후로 인질을 붙잡는 자가 있으면 모두 함께 공격하고 인질을 돌보지 말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인질을 붙잡고 협박하는 자가 없어지게 되었다. (주1)
 
(주 1) 손성(孫盛-위씨춘추, 진양추 등을 지은 동진의 역사가)이 이르기를-광무기光武紀에 의하면 건무 9년(33년) 도적이 귀인의 친동생을 인질로 잡았는데 관원이 그를 붙잡을 수 없었고 끝내 인질이 도적에게 살해당했다. 그래서 인질을 붙잡은 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오래된 제도였다. 그러나 안제, 순제 이래로 정치가 어지러워져 왕공王公을 인질로 잡는 일까지 생기게 되자 관원들이 국가의 법령을 준수할 수 없었는데, 한호가 처음으로 인질을 붙잡은 자를 참수해버리니 이 때문에 위무제(조조)가 기뻐한 것이다.
 
태조가 서주徐州에서 돌아오고 하후돈이 이를 수행하여 여포를 공격하다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을 다쳤다. (주2)
 
(주2)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이 둘 다 장군이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하후돈을 맹하후盲夏侯라 불렀다. 하후돈은 이를 싫어했는데 거울을 보면 화를 내며 번번이 땅바닥에 집어던지곤 했다.
 
다시 진류, 제음태수를 겸하고 건무장군建武將軍의 직이 더해지고 고안향후高安鄕侯에 봉해졌다. 큰 가뭄이 들고 황충(蝗蟲-누리.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이 일자 하후돈은 태수太壽의 물을 끊어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손수 흙을 져 나르고 장병들을 이끌고 벼 심기에 힘써 백성들이 이로움을 입었다. 전임하여 하남윤을 겸했다. 
 
태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대장군을 위하여 후방을 지키게 했다. 업이 함락된 후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승진시키는 한편 예전처럼 하남윤河南尹을 겸하게 하고 편의대로 일을 처리하여 법령에 구애 받지 않도록 했다. 
 
건안 12년(207년), 하후돈의 앞뒤 공을 기록해 봉읍을 1800호를 늘려 이전과 아울러 모두 2500호가 되었다. 
 
건안 21년(216년), 손권을 정벌하는데 수행했다가 돌아올 때 하후돈을 26군軍의 도독으로 임명해 거소居巢에 머물게 했다. 기악伎樂과 명창名倡을 하사하며 영을 내려 말했다, “위강魏絳은 융족戎族과 화평한 공으로 금석金石으로 만든 악기를 받았는데 하물며 장군이랴!” 
 
건안 24년(219년), 태조가 마피摩陂에 주둔했을 때 하후돈을 불러 항상 함께 수레를 타고 특히 친밀하고 중하게 대하여 침소에 출입케 하니 다른 여러 장수들 중 이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전장군에 임명되고(주3) 제군을 지휘하여 수춘으로 돌아갔는데, 소릉召陵으로 옮겨 주둔했다. 
 
(주 3)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 이때 여러 장수들이 모두 위魏의 관직을 받았는데 하후돈이 홀로 한漢의 관직을 받았다. 이에 상소하여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어 부당하다고 진술하자 태조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 가장 좋은 것은 스승 같은 신하(師臣)요, 그 다음이 벗 같은 신하(友臣)라 했소. 무릇 신하된 자는 덕을 귀하게 여기는 법이니 구차하게 위魏의 관직일 필요가 있겠소. 신하는 몸을 굽혀 주군을 섬기면 충분하오.” 하후돈이 굳게 청하자 전장군에 임명했다. 
 
문제(=조비)가 왕위에 즉위하자 하후돈을 대장군에 임명했는데 그 몇 달 뒤에 죽었다.
 
하후돈은 군중에 있을 때도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배웠다. 그 성정이 청렴, 검소하여 남은 재물이 있으면 즉시 나누어서 베풀고 부족하면 관청에서 도움을 받고 별도로 산업을 경영하여 치부하지 않았다.(不治産業) 시호를 내려 충후忠侯라 했다. 아들인 하후충夏侯充이 후사를 이었다. 
 
황제가 하후돈의 공을 기려 그 자손들을 모두 후에 봉하려고 하후돈의 식읍 천 호를 나눠 하후돈의 일곱 아들과 두 손자에게 하사하고 모두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내렸다. 하후돈의 동생 하후렴夏侯廉과 아들 하후무夏侯楙는 원래 이와 별도로 열후列侯에 봉해졌었다. (열후>관내후) 
 
당초, 태조의 딸을 하후무에 시집보냈었는데 즉 청하공주淸河公主다. 하후무는 시중 상서, 안서진동장군安西鎭東將軍 가절을 역임했다.(주4) 
 
(주4) [위략魏略]에 이르기를-하후무夏 侯楙의 자는 자림子林이고 하후돈의 둘째 아들이다. 문제(조비)가 젊어서부터 하후무와 친했는데, 즉위하자 안서장군 지절로 임명하고 하후연을 승계하여 관중도독에 임명했다. 하후무는 성정이 무략武略이 없고 치생(治生-경제활동을 두루 일컫는 말)을 좋아했다. 
 
태화 2년(228년)에 이르러 명제가 서정西征할 때 하후무를 고발하는 이가 있어 소환하여 상서로 임명했다. 하후무가 서쪽에 있을 때 기첩伎妾을 여럿 두어 이 때문에 공주와 불화했었다. 그 후 여러 동생들이 예법을 어기자 하후무가 그들을 여러 차례 질책했는데, 처벌될 까 두려워 함께 하후무를 모함하여 비방하고 공주에게 이를 상주케 하니 조서를 내려 하후무를 체포한 것이다. 
 
명제는 하후무를 죽이고자 하여 경조 사람인 장수교위 단묵段黙에게 이에 관해 묻자 단묵이 대답했다, “이는 필시 청하공주와 하후무가 화목하지 못해서 비롯된 모함일 테니 사실을 추궁해 보십시오. 게다가 복파(복파장군 하후돈)는 선제 때 천하를 평정한 공이 있으므로 더욱 심사숙고하셔야 합니다.” 선제가 그 뜻을 이해하고 말했다, “나 또한 경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오.” 이에 조서를 내려 공주를 위해 표문을 작성한 자를 추궁하니 과연 그 동생들인 자장子臧과 자강子江의 모함이었다. 
 
하후충이 죽자 그 아들인 하후이夏侯廙가 후사를 이었다. 하후이가 죽자 그 아들인 하후초夏侯劭가 후사를 이었다.(주5)
 
(주5) [진양추晉陽秋]에 이르기를 - 태시 2년 (266년-태시는 진무제 사마염 즉위연호), 고안향후 하후좌夏侯佐가 죽어 하후돈의 후사가 끊기자 조서를 내려 말했다, “하후돈은 위魏의 으뜸공신으로 그 공적을 죽백竹帛에 남겼다. 옛날 정견庭堅을 제사지내 줄 사람이 없자 뭇사람들이 슬퍼했는데, 하물며 위魏로부터 선위를 받은 짐이 어찌 공신을 잊겠는가! 마땅히 하후돈의 가까운 친척을 택해 책봉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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