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조홍전(曹洪)
 
조홍曹洪의 자字는 자렴子廉이고 태조(太祖=조조)의 종제(從弟-사촌동생 또는 육촌동생)이다.
 
(주1) [위서魏書]에 이르길 – 조홍의 백부伯父인 조정曹鼎이 상서령이 되어 조홍을 기춘장蘄春長에 임명했다.
(※기춘장-형주 강하군 기춘현의 현장 : ‘현장’은 1만호 이하인 하현의 수장, 1만호 이상의 상현의 수장은 ‘현령’)
 
태조가 의병義兵을 일으켜 동탁董卓을 토벌할 때 형양(滎陽-사례주 하남군 형양현)에 이르러 동탁의 장수인 서영徐榮에게 패했다. 태조가 말을 잃어버리고 적이 추격하여 매우 급박해지자 조홍은 말에서 내리며 그 말을 태조에게 주었다.
 
태조가 사양하자 조홍이 말했다, “천하에 저 조홍은 없어도 되나 군君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마침내 걸어서 수행하여 변수(汴水-황하의 지류)에 이르렀는데 물이 깊어 건널 수가 없자 조홍은 물가를 뒤져 배를 구해 태조와 함께 물을 건너 초(譙-예주 패국 초현)로 돌아왔다.
 
양주揚州자사 진온陳溫이 평소 조홍과 친했는데, 조홍은 가병家兵 천 여명을 이끌고 진온에게로 가서 모병募兵하여 여강廬江에서 정예 무장병(上甲) 2천 명을 얻고, 동쪽으로 단양丹楊에 이르러 또 수천 명을 얻은 뒤 태조와 용항(龍亢-예주 패국 용항현)에서 합류했다.
 
태조가 서주徐州를 정벌할 때 장막張邈이 연주兗州를 들어 모반해 여포를 맞이했다. 이때 큰 기근이 들었는데 조홍이 군사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먼저 동평(東平-연주 동평국), 범(范-연주 동군 범현)을 점거해 양곡을 모아 군에 공급했다.
 
태조가 장막과 여포를 복양(濮 陽-연주 동군 복양현)에서 토벌하자 여포가 패해 달아났다. 마침내 동아(東阿-연주 동군 동아현)를 점거하고 군을 돌려 제음(濟陰-연주 제음군), 산양(山陽-연주 산양군)과 중모中牟, 양무陽武, 경京, 밀密(사례주 하남군의 현들)등 10여 현을 공격해 모두 함락시켰다.
 
앞뒤의 공적으로 응양교위鷹揚校尉에 임명되고, 양무중랑장揚武中郎將으로 승진했다. 천자가 허현에 도읍을 정하고 조홍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임명했다.
 
별도의 군으로 유표劉表를 정벌하여 유표의 별장을 무양舞陽, 음陰, 섭葉, 도양堵陽, 박망博望(모두 형주 남양군의 현들)에서 격파하는데 공적이 있어 여봉장군厲鋒將軍으로 승진하고 국명정후國明亭侯에 봉해졌다. 여러 차례 정벌전에 수행하였고 도호장군都護將軍에 임명되었다.
 
문제文帝가 즉위하자 위장군衛將軍에 임명되었다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승진하고 야왕후野王侯로 봉해졌다. 식읍 1천 호를 늘려주어 이전과 아울러 2천 1백 호가 되었고 특진特進에 올랐다. 그 뒤 도양후都陽侯로 고쳐 봉해졌다.
 
애초에 조홍의 집안은 부유했으나 성정이 인색하여 문제가 젊을 때 재물을 빌리고자 했는데 원하는 바와 맞지 않아 이를 늘 원망했었는데 마침내 사객舍客이 범법犯法했다는 이유로 (조홍을) 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다. 군신群臣들이 함께 조홍을 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변태후卞太后가 곽후郭后에게 말했다, “오늘 조홍이 죽는다면 내일 황제에게 조칙을 내려 너를 황후에서 폐하겠노라” 그래서 (곽후가) 울면서 여러 번 청하자, 면직되고 관작과 봉토가 깎이는 것으로 그치게 되었다. (주2) 조홍은 선제 때 공신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조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주 2) [위략魏略]에 이르길 - 문제가 조홍을 구금했을 때 조진이 곁에 있었는데 문제에게 청하여 말하길, “지금 조홍을 주살하시면 조홍은 필시 저 조진이 참소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문제가 말했다, “내가 스스로 다스리는 것인데 경이 어찌 관여하시오?”
 
변태후가 문제를 질책하고 분노하며 말했다, “양梁, 패沛(예주 양국, 패국) 일대에서 자렴子廉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소.” 이에 조령을 내려 조홍을 석방했으나 재산은 적몰했는데, 태후가 또 이에 관해 말하자 그 뒤 적몰한 재산을 돌려주었다.
 
당초 태조가 사공空時이 되었을 때 친히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매년 조調를 거두었고, 본현(本縣-고향 현)의 가호들을 평자平貲하게 한 일이 있다. 이때 초현의 현령(譙令)이 조홍을 공의 집안과 같게 평가하자 태조가 말했다.


“우리 집안이 어찌 자렴과 같단 말인가!”
 
(※ ‘平貲’는 가호당 부과하는 세금인 조調를 결정하기 위해, 각각 가호의 재산을 평가해서 재산이 많고 적음의 등급을 매기는 걸 가리킵니다. 즉 여기서 조조가 말한 건, 조홍이 우리보다 부자인데 어째서 같은 등급으로 매겼느냐 하는 그런 불만 섞인 항변입니다)
 
문제가 동궁(東宮-태자궁)에 있을 때 일찍이 조홍에게 비단(絹) 백 필을 빌리려 했었는데 조홍이 문제의 뜻에 어긋난 적이 있다. 그래서 법을 어기자 조홍은 스스로 필시 죽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풀려나게 되니 기뻐하며 글을 올려 사죄했다.
 
“신이 젊었을 때 도리에 따르지 않고 인륜에 어그러짐이 있었으나 장성해서 분수에 맞지 않는 직위를 도적질하고 마침내 관용을 입게 되었습니다. 성정이 검소하지 못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승냥이나 이리와 같이 염치없는 자질인데다 늙으며 혼미해져 탐욕만 늘어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으니 그 죄가 3천 가지에 이르러 사면될 수 없고 마땅히 주살되어 저자거리에 버려져야 하나 오히려 천은天恩을 입어 골육骨肉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신臣이 하늘과 해를 우러르면 영신靈神을 저버린 것이 부끄럽고, 몸을 굽혀 제 허물을 돌이켜보면 참담하고 두려울 뿐입니다. 목 매어 죽어서 스스로 처결할 수 없어 삼가 궐문에서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글을 올려 제 뜻을 전합니다.”
 
명제가 즉위하자 후장군後將軍에 임명되고 낙성후樂城侯에 봉해져 식읍 1천 호를 받았다. 특진에 오르고 다시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임명되었다. 태화 6년(232년)에 죽었고, 시호를 내려 공후恭侯라 했다. 아들인 조복曹馥이 후侯의 작위를 이었다.
 
당초 태조가 조홍의 식읍을 나누어 조홍의 아들인 조진曹震을 열후列侯에 봉했었다. 조홍의 족부(族父-집안 아저씨뻘)인 조유曹瑜는 삼가고 독실한 성격이었는데 관직이 위장군衛將軍에 이르렀고 열후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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