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조진(曹眞)의 자(字)는 자단(子丹)이고 태조(太祖-위태조 조조)의 족자(族子)다. 태조가 거병했을 때 조진의 부친 소(邵- 조소 또는 진소)가 무리를 모으다 주군(州郡)의 관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1)

(주 1) [위략魏略] – 조진의 본래 성은 진(秦)씨인데 조(曹)씨에 양자로 들어갔다. 혹은 일설에 의하면, ‘조진의 부친인 진백남(秦伯南)은 일찍이 태조와 친했는데, 흥평(194-195) 말에 원술의 무리와 태조가 서로 싸웠다. 태조가 출병했다가 도적에게 쫓겨 진씨에게로 달아났는데, 진백남이 문을 열고 태조를 받아들였다. 도적이 태조가 있는 곳을 묻자 “내가 여기 있다”고 대답하여 (태조 대신) 죽임을 당했고 이에 태조가 그 공적을 기려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태조는 조진이 어려서 고아가 된 것을 애처로이 여겨, 거두어서 여러 자식들과 함께 길렀는데 문제(文帝-위문제 조비)와 함께 하도록 했다. 자주 사냥을 다녔는데 호랑이에게 쫓기게 되자 뒤돌아 활을 쏘아 호랑이를 쓰러뜨린 일이 있었다. 태조가 조진의 사납고 용맹함을 장하게 여겨 호표기(虎豹騎)를 이끌게 했다.
 
영구(靈丘)의 도적을 토벌하여 무너뜨렸고 영수정후(靈壽亭侯)에 봉해졌다. 편장군으로 군사들을 지휘해 유비의 별장(別將)을 하변(下辯)에서 공격해 깨뜨리고 중견장군(中堅將軍)에 임명되었다.
 
태조를 수행해 장안에 이르렀고 중령군(中 領軍)에 임명되었다. 이때 하후연이 양평(陽平)에서 죽어 태조가 이를 우려했다. 정촉호군(征蜀護軍)으로 임명되어 서황 등을 지휘해 양평에서 유비의 별장인 고상(高詳)을 격파했다. 태조가 친히 한중에 이르러 제군을 가려 뽑아 출병했는데, 조진을 무도(武都)로 보내 조홍 등을 맞아들여 돌아와 진창(陳倉)에 주둔하게 했다.
 
문제(文帝)가 왕위에 오르자(220) 조진을 진서장군(鎭西將軍) 가절 도독옹량주제군사(都督雍涼州諸軍事-옹주, 양주의 군무를 총괄)로 임명했다. 앞뒤의 공적을 기록해 동향후(東鄕侯)로 올려 봉했다. 장진(張進) 등이 주천(酒泉)에서 모반하자 조진은 비요(費曜)를 보내 이를 격파하고 장진 등을 참수했다.
 
황초 3년(222) 경도(京都-수도)로 돌아와 상군대장군 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중앙과 밖의 모든 군무를 총괄) 가절월에 임명되었다. 하후상(夏侯尙) 등과 함께 손권을 정벌해 우저(牛渚)의 둔영을 공격해 깨뜨렸다. 전임하여 중군대장군에 임명되고 급사중(給事中)이 더해졌다.
 
황초 7년(226), 문제가 병에 걸리자 조진과 진군(陳群), 사마선왕(사마의) 등에게 유조(遺詔-임금의 유언)를 남겨 보정(輔政-어린 황제를 도와 정무를 보좌함)하게 했다.
 
명제(明帝-위명제 조예)가 즉위하자(227) 소릉후(邵陵侯)로 올려 봉해지고 (주2) 대장군으로 승진했다.
 
(주 2) [위서魏書] – (조진의 부친인) 소(邵-조소or 진소)는 충성스럽고 독실한 성격에 재능과 지혜가 있어 태조의 신임을 받았다. 초평(190-193) 중에 태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조소는 무리를 모아 태조를 수행해 떠돌았다. 이때 예주자사 황완(黃琬)이 태조를 해치려 하자 태조는 이를 피했으나 조소가 홀로 해를 입었다.
 
신 송지가 살펴보건대, 조진의 부친 이름은 소(邵)이다. 그런데, 소릉후(邵陵侯)에 봉해졌다니, 만약 이 책이 전ㅌ는 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일의 전말을 논하기 어렵다.
 
(※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배송지가 진수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는데, 당대에 존재하던 백 수십가지의 각종 문헌들을 참조해 삼국지의 각각 해당부분에 발췌 인용하여 추가한 형식입니다. 위의 (주1)에서 위략이나 위서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진수 삼국지 본문과 다른 문헌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또는 참고문헌의 신빙성에 대해 아주 가끔 자신의 코멘트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경우가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꺼려서 쓰지 않고 ‘피휘’하는게 당연한데, 봉작의 이름에 자기 아버지의 이름글자가 들어갔다는 게 이상하다는 그런 의문입니다)
 
제갈량이 기산(祁山)을 포위하자 남안, 천수, 안정의 3개 군이 모반하여 제갈량에 호응했다. 명제는 조진으로 하여금 제군(諸軍)을 지휘해 미(郿) 에 주둔케 하고, 장합을 보내 제갈량의 장수 마속을 공격케 하여 대파했다. 안정의 백성 양조(楊條) 등이 관원과 백성을 탈취하여 월지성(月支城)을 지키자 조진이 진군하여 이를 포위했다. 양조 등이 자신의 무리들에게, “대장군이 친히 왔으니 나는 일찍 항복하고자 한다”고 말하고는 스스로 몸을 결박하고 성을 나왔다. 3개 군이 모두 평정되었다.
 
조진은 제갈량이 기산에서 고전했으므로 이후에는 필시 진창(陳倉) 쪽으로 출병할 것이라 생각하고 장군 학소(郝昭), 왕생(王生)을 보내 진창을 수비하며 다스리게 했다. 다음 해 봄, 과연 제갈량이 진창을 포위했으나 이미 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이길 수 없었다. 식읍을 늘려 이전 것과 아울러 2900호가 되었다.
 
(태화) 4년(230), 낙양으로 돌아가 대사마로 승진하고 검리상전(劍履上殿), 입조불추(入朝不趨)의 특전이 내려졌다.
 
조진이 권하길, “촉은 연이어 출병하여 변경을 침략하니 이를 토벌해야 마땅합니다. 여러 길로 정벌하면 크게 이길 수 있습니다.”라 하자 명제가 그 계책에 따랐다. 조진이 서쪽으로 토벌군을 일으키려 할 때 명제가 친히 전송했다.
 
조진은 8월에 장안을 출발해 자오도(子午道)를 따라 남쪽으로 들어갔다. 사마선왕(사마의)은 한수(漢水)를 거슬러 올라가 남정(南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제군이 야곡도(斜穀道)나 무위(武威)로부터 들어갔다. 큰 비가 30여 일 내렸고 혹 잔도(棧道)가 끊어지기도 했으므로 조진에게 조서를 내려 회군하도록 했다.
 
조진은 어려서부터 일족인 조준(曹遵), 고향사람인 주찬(朱讚)과 함께 태조를 섬겼다. 조준, 주찬이 일찍 죽자 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식읍을 나누어 주준, 주찬의 자식들에게 내려 주도록 청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대사마는 숙향(叔向)이 고아를 보살펴준 인자함과 독실했던 안평(晏平)의 구요지분(久要之分)을 갖추고 있다. 군자는 다른 이의 미덕을 이루도록 돕는 법이니, 조진의 식읍을 나누어주자는 청을 들어주어, 조준과 주찬의 자식들에게 관내후(關內侯)의 작위와 각 1백 호의 식읍을 하사하노라”
 
(※ [논어] 공야편에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이란 구절이 있는데, 오래된 친구일수록 공경하여 섬기는 안영의 교우관계를 공자가 칭찬하는 대목입니다. ‘구요지분’이란 말은 아마 이걸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입니다)
 
조진이 매번 정벌할 때 장병들과 노고를 함께 하고 군상(軍賞)이 부족하면 집안의 재물을 나누어 하사하니 사졸들이 모두 그에게 쓰이기를 원했다. 조진이 병에 걸려 낙양으로 돌아오자 명제는 친히 사저를 방문하여 병세를 살폈다. 조진이 죽자 시호를 내려 원후(元侯)라 했다. 아들 조상(曹爽)이 후사를 이었다.
 
명제가 조진의 공적을 추사(追思-추모)하여 조서를 내려 말했다
 
“대사마는 충절을 이행하고 2조(二祖-조조와 조비)를 좌명(佐命-제왕을 도와 정권을 세움)했다. 안으로 친척으로서 총애 받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밖으로 백옥지사(白屋之士-미천하고 가난한 선비들)에 교만하지 않았으므로, 능히 지영(持盈-가득 찬 것을 보존하여 지킨다…창업/수성을 대비해 볼 때 수성의 비유적 의미로 쓰인 듯)하여 수위(守位)할 수 있고,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니 가히 덕 있는 인물이라 할 것이다. 조진의 다섯 아들인 조희(曹羲), 조훈(曹訓), 조칙(曹則), 조언(曹彥), 조애(曹皚)를 모두 열후에 봉하노라.”
 
그 이전 문제(文帝)는 조진의 식읍 2백 호를 떼어내어 조진의 동생인 조빈(曹彬)을 열후에 봉했었다.


[[조상전]]으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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